CULTURE

이용주 “기존에 갖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면을 조명하려고 하는 거죠”

2023.05.26전희란

웃음으로 화해를 꾀하는 예술가,코미디언 이용주.

왼쪽부터 | 재킷, 아더에러. 셔츠, 타미 힐피거 맨. 하프 팬츠, 네이비 by 비욘드크로젯. 안경, J.T.O 오리지널스. 링, 불레또. 브이넥 니트, 넥타이, 양말,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슈트 셋업, 포르멘테라. 셔츠, 보타이, 커머번드, 행커치프, 비니, 머플러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남녀, 세대, 인종, 빈부, 지역으로 쪼개진 채 개인주의는 점점 심화되고 서로를 비난하면서 갈등은 고조되고 있잖아요. 그 수많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 코미디의 기능인 것 같아요.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웃어서 힘이 났어요”라는 피드백도 물론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저희는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보는 사람들을 미러링하게 해주고, ‘타인은 이랬을 것이다’라고 잠시나마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GQ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예능 작품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이용주의 얼굴에서 잠시 UN에서 연설하던 RM의 당당함과 소신 같은 것을 보았어요.
YJ (손사레 치는 듯한 표정) 오마주라고 해야 할지, 영향을 받은 건 맞죠. 솔직히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으니까. 원래 BTS 멤버 모두 좋아했지만 남준 님을 제일 좋아했어요. 자기만의 고집이나 소신에서 남다른 ‘무언가’가 느껴져서.
GQ “우리는 기존의 판에 끼지 못해서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의도적으로 끼지 않은 것에 가깝지 않았나요? <피식쇼> ‘DPR LIVE & IAN’ 편에서 그들이 <쇼미>에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했었죠.
YJ 처음에는 타의에 의한 이유도 있었어요. 2016년,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턱걸이로 <웃찾사> 공채 개그맨에 들어갔는데, 방송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코미디 외에 다른 능력도 필요하더라고요. 이를테면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잘 어울려야 한다든지. 그 틀이 싫어서 새로운 판을 만든 것처럼 근사하게 포장했지만, 사실 문자 그대로 ‘잘 못하겠다’에 가까웠어요. 그러다 같은 시기에 지금의 멤버들 민수, 재형이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걸 알게 되었고, 같이 무언가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죠. 그렇게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어요. 기존에 있던 판의 팔로워가 되거나, 리드하거나, 아니면 게임에서 나오거나, 선택지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거죠. 관객 10명 앞에서 공연을 하더라도 거기서 느껴지는 확실한 성취감이 있었고, 다행히 제가 가진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동료들이 있어서 서로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GQ ‘찌라시 읽어주는 남자’에서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언급하면서 “가장 공정한 전쟁터”라는 표현을 썼어요.
YJ 유튜브를 4~5년 동안 하면서 느낀 건, 만듦새도 중요하지만 정말 재밌는 콘텐츠는 조회수가 나오더라고요. 알고리즘이 꽤 똑똑하고 정확한 시스템인 것 같아요. 그걸 차트로 매겨놓은 게 ‘인급동’이고요. 유튜브에는 거대 방송국, 대형 기획사, 1인 크리에이터, 저희 같은 집단 등 다양하지만, 자본을 떠나 재밌으면 결국 선택 받고 알고리즘의 파도를 탈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느꼈어요.

왼쪽부터 | 재킷, 아더에러. 셔츠, 타미 힐피거 맨. 브이넥 니트, 넥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안경, J.T.O 오리지널스. 스트라이프 데님 워크웨어 셋업, 스카프, 가방, 모두 겐조. 슈즈, 코스. 링, 불레또. 이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공정한 전쟁터에서 피식대학이 손에 쥔 무기는 뭐였어요?
YJ 저희 셋은 능력치, 관심사, 취향 모두 정말로 달라요. 그래서 주말엔 안 만나죠.(웃음) 그럼에도 공통된 능력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상대의 장점과 매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이 친구를 이렇게 프로듀싱, 브랜딩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할 때 특히 말이 잘 통해요. 고맙게도 그때 저희에게 해준이, 창호, 은지, 세미처럼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는 원석 같은 친구가 많았고요.
GQ 그래서일까요? 셋 가운데 다른 멤버가 기량을 드러낼 때 시기나 질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진심으로 뿌듯해하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더라고요.
YJ 저희에겐 신뢰가 있는 까닭도 있어요. 거기엔 인간적인 신뢰도, 금전적인 신뢰도 있죠. 살면서 보니 전자만으로는 오래 못 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오래가기 위한 장치를 많이 만들어놨어요. 누군가 힘써서 해줄 때 누군가는 쉬어갈 수 있도록.
GQ 그 신뢰는 어떻게 쌓인 것 같아요?
YJ 첫 번째는 숱한 위기를 함께 지나왔기 때문이에요. 큰 위기 속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잖아요. 크고 작은 위기를 여러 번 겪다 보니 그로부터 오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어요. 두 번째는 제가 멤버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업어줄지언정 업혀가지는 말자, 쓸모 있는 존재가 되자. 관계에서 이득을 취하려다 보면 그것이 균열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셋이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들도 저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게을러지는가 싶으면 각자 더 열심히 뭔가를 하려고 하거든요. 그것이 멈추지 않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GQ 평등한 관계로부터 좋은 창작물이 나온다 믿는다고 들었어요.
YJ <웃찾사>가 폐지되고 엄마가 있는 파리로 한 달 동안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서른둘이었고, 코미디를 그만둬야 하나 딜레마에 빠져 있었죠.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고흐.” 그림은 잘 몰랐지만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어요. 엄마의 안내로 고흐를 트레킹하는 여행을 시작했어요.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시작해서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 고흐의 초창기 작품부터 그의 삶의 여정과 선택들을 찬찬히 따라갔죠. 그러면서 차차 생각이 정리되었어요. 코미디언은 보통 공개 코미디를 하다 예능으로 가서 방송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물론 훌륭한 길이지만 제게는 잘 맞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 여행 말미에 제 안에 답이 내려졌어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그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GQ 피식대학의 수평적 관계가 고흐로 연결될 줄이야. 계속 듣고 싶어요.
YJ 미술사를 보면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등 시대가 나뉘잖아요. 그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점은 뭘까? 너무 궁금했어요. 어떤 책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유라고 하더군요. 인상주의가 도래한 건 튜브 물감과 증기기관차 덕분에 화가가 바깥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고 수정할 수 있게 되어서라고요. 신기했어요. 현시대에 대입해보니 우리 손엔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있고, 이것 역시 또 다른 기술의 발전이구나 싶었어요. 기존 공개 코미디에서 한계를 느낀 건, 뭔가 짜 가면 이미 선배들이 했던 거예요. 이건 했던 거야, 누구 스타일이네, 누구 아류네. 벽이 있더라고요. 올라갈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위대한 선배님들을 넘을 수 없었어요. 훌륭한 선배들이 기반을 잡고 있는 코미디 무대가 미술사에서의 르네상스 시대와 닮아 보였어요. 오랜 시간 아카데미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똑같이 따라 하는 기술이 전수되었죠. 아카데미아처럼 팔로를 해야 할까, 설사 도박이라 해도 고흐나 고갱처럼 새로운 붓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야 할까? 저는 후자를 택했죠. 그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작업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아를 카페에 모여서 같이 놀고, 기술도 공유하고, 다투기도 하고,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수평 관계여서라고 느꼈어요. 나이가 많건 적건, 인간 대 인간으로. 수직 구조에서는 어려운 일이죠. 다행히 저희 셋은 선후배 관계가 아니었고, 제가 나이가 가장 많지만 의도적으로 친구처럼 지내기를 원했어요. 고맙게도 재형이와 민수가 그렇게 대해주었고요. 그러니까 서로 갖고 있는 인사이트를 편하게 교류할 수 있었어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지금도 저희는 참지 않고 얘기해요. 수직 구조의 장점도 있겠지만, 타이밍상 저희에게는 수평 구조가 잘 맞았어요.
GQ <피식쇼>에서 본인을 예술가로 치면 ‘폴 세잔’이라고 했는데.
YJ 그건 그냥 웃기려고.(웃음)
GQ 코미디에 예술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던데, 그 둘은 어떻게 연결지어 생각해요?
YJ 첫 번째는 ‘터부’에 관한 거예요. 요단강처럼 건너가면 안 되지만, 가까이는 가야 하는 ‘선’이라는 게 있죠. 예술이라면 터부를 자꾸 건드리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터부를 건드리면서 서로 대화하고, 싸우기도 하고, 소통을 일으키면서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죠. 그게 예술이라서 가능한 일 같아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코미디든, 즐거움이나 화려함으로 진지함을 조금 희석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 중 하나가 ‘한사랑 산악회’였어요. 당시만 해도 유튜브에 ‘산악회’를 검색하면 1백 퍼센트 불륜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우리 주변 삶은 그렇지 않잖아요. 터부를 건드리는 일에 겁을 내기 시작하면 칼이 무뎌지는 거고, 반대로 터부를 훌쩍 넘어 사람들의 원성을 사면 그것 역시 감이 무뎌진 거죠. 저희는 무뎌지지 않은 채로 천천히 가려고 해요.
GQ 이용주는 코미디를 뭐라고 정의하나요?
YJ 제가 감히 코미디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코미디는 이러해요. 살면서 이해 안 되는 것들의 사이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것. 살면서 이해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잖아요. ‘아, 저 사람에겐 저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대화를 하게 해주고, 간극을 좁히려면 양쪽 마음을 섬세하게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진정성 있게 웃길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틀리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희화화하려고 하네’ 생각하게 되죠. 가끔 저희 댓글 창에서 의견 차이로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좋기도 해요. 담론이 일어나면 이해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GQ 댓글에 “불편함 없이 웃을 수 있는”이라는 표현이 많죠. ‘불편’이라는 키워드가 콘텐츠 만들 때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해요?
YJ 누구나 불편하지 않고 누구나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겠다고 의도하지는 않아요. 코미디란 게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놀리게 마련인데, ‘불편’이 기준점이 되면 날이 굳을 것 같아요. 결국엔 자학 코미디밖에 할 수 없을 테고요. 저희는 불편하든 아니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먼저 찾아요. 놀림 당한 사람도 쿨하게 ‘그럴 수 있지’ 받아들이게 하는 게 결국은 좋은 코미디라고 생각하고요. ‘맘충’이라는 혐오가 있으니까 아기 엄마에 대한 소재는 건들지 말자고 했다면, 서준맘은 탄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맘 카페에서 서준맘이 굉장히 호감이거든요.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 있는 소재를 오히려 파고들어서, 이것을 코미디로서 어떻게 설득력 있게 표현할 것인가에 깊이 몰입하는 편이에요.
GQ 기존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랬듯 ‘여기서 웃어라’라고 떠먹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웃음 지점을 찾아내게 하는 점도 흥미로워요. 의도한 건가요?
YJ 굉장히요. 편집에서도 많이 의도하고, 이스터 에그도 많이 넣죠. 한번은 주영훈 작곡가님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가수의 창법이 변한 건 대중이 음악을 듣는 기기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소극장이나 무대에서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발성이 좋고 목소리가 커야 하고 하이 노트를 잘 불러야 했는데, 기계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속삭이듯이 부르는 창법 스타일로 바뀌었다고요. 저희도 소극장 무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했는데, 무대에서는 웃음 포인트를 뾰족하고 명확하고 짧고 굵게 끊어서 해라, 연기도 크게, 과장되게 하라는 훈련을 해요. 요즘은 8인치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보고, 유튜브 기능으로 보다가 뒤로 갈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고, 다시 볼 수도 있고, 댓글 읽으면서 볼 수도 있죠. 하드웨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변화에 따라 우리도 웃음 주는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고, 그렇게 변화를 주다 보니 ‘여기서 웃어라’ 떠먹여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 찾더라고요. 제 생각엔 한국인의 ‘코미디 지능’은 최고 수준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웃긴다고 생각하니까요.(웃음) 무대 할 때 “웃음 포인트가 어려워, 이거 못 알아들어”라는 표현을 했는데, 사실은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 사람들의 수준이 이미 너무 높은데 콘텐츠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니까 즐기지 못했던 거예요. 그렇게 서서히 외면을 받은 거죠. ‘05학번이즈백’, ‘한사랑 산악회’는 웃음 포인트를 흐리게 주었는데, 보는 분들이 웃음 포인트를 다 찾아내시더라고요. 그럴 때 구독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쾌감이 들어요.


GQ 무언가를 치밀하고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과 보다 만듦새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려요?
YJ 시기마다 의제가 조금씩 바뀌어요. 과거에는 전자였어요. 인지도가 없는 걸 이용해 더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우리가 진짜 아저씨라고 헷갈리게 해야겠다’고 의도하고 만들었죠. 지금은 조금 바뀌었어요. 소재는 러프하더라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만듦새 좋은 코미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어요.
GQ 변화의 시점이 있었나요?
YJ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람들이 저희를 인지하기 시작한 때인 것 같아요. 밈은 공중파나 대중에 노출되는 순간 생명력이 다해요. 공중파 방송에 나가서 “열쩡 열쩡 열쩡”을 외치는 순간 우리는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사랑 산악회’로 TV 출연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방송 출연을 모두 거절하고 2~3년을 버텼어요. 당시는 “좋은 기회인데 왜 거절하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저희의 이런 생각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없었어요.
GQ 코미디언으로서 끊임없이 금기를 깨고 싶어요, 혹은 장수하고 싶어요?
YJ 코미디언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너무나 다른데, 다행히 저희 셋은 꽤 비슷한 편이에요. 코미디언으로서 가치 있고 생명력 있으려면 터부를 계속 건드리면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터부시되는 것으로 만든 콘텐츠로 저희를 좋아해주셨기 때문에 오히려 금기를 깨며 나아가야 가치 있는 코미디언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저희가 장수하는 길이라 믿고 있어요.
GQ 코미디의 기능에 대해서도 자주 고민하죠?
YJ 자주 얘기해요. 술도 안 먹고 맨정신으로.(웃음) 남녀, 세대, 인종, 빈부, 지역으로 쪼개진 채 개인주의는 점점 심화되고 서로를 비난하면서 갈등은 고조되고 있잖아요. 그 수많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 코미디의 기능인 것 같아요.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웃어서 힘이 났어요”라는 피드백도 물론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저희는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러링하게 해주고, ‘타인은 이랬을 것이다’라고 잠시나마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GQ <피식쇼>로부터는 무엇을 배웠어요?
YJ 기술적으로는 질문하고 대화하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어요. 상대가 준비한 말 이외에 속 안의 말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고요.
GQ 의도하지 않았는데 속 안의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많았나요?
YJ 굉장히 많았어요. 저희는 다른 콘텐츠에서 이미 했던 뻔한 질문은 안 하려고 노력해요. 대중 예술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가 있는데, 그 이미지와 똑같은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사람도 있더라고요. 후자라면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인물에 대해 잘 ‘디깅’해 알려진 이미지와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끄집어내려고 해요. 새로운 이미지라기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면을 조명하려고 하는 거죠. 그런 지점이 상대에게 가 닿아 속 안의 이야기를 꺼내주었을 때 뿌듯하고, 또 하나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GQ <피식쇼>에서 훌륭한 인터뷰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죠. 경청하는 삶의 자세, 경청의 힘은 어떻게 길러진 것 같아요?
YJ 가정 환경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목사님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고모는 교수님이어서 집안 분위기가 늘 한 명의 화자가 있고, 나머지는 청자가 돼요. 옆에서 보면 지루하죠. 괴로웠어요.(웃음) 어릴 때는 대화에 낄 수 없으니 듣는 척하면서 딴 생각도 했는데, 크고 보니 거기엔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이제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다 보니 경청하게 되었고요.
GQ 유세윤이 “1, 2등은 싫고 3, 4등쯤 하고 싶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전자는 시기와 질투를 받게 마련이라고요. 지금 숙명적으로 하게 될 고민이 아닌가요?
YJ 맞아요. 그 전까지 저희를 아는 사람들은 곧 저희를 좋아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불특정 다수가 보는 ‘백상’에 나가고 나니까 처음 겪는 피드백이 많아졌어요. <피식쇼>의 세계관을 모르고 보는 분들에게 저희는 완전히 이상한 애들인 거죠. 저희가 그동안 사랑받았던 건, 저희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계속 올라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언더독처럼, 계속 3~4등 같은 느낌을 주려면 더 위의 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저희의 목표는 ‘백상’이 아니었어요. 거만해져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전 세계가 K-콘텐츠에 주목하는 이때, 사명을 갖고 되든 안 되든 글로벌 무대를 두드려야 한다고 시작한 게 <피식쇼>예요. 보름달이 되면 다시 지듯이, 우리는 이제 시작이에요. 그래서 수상 소감 말미에 은퇴식에서 쓰는 “PSICK OUT”을 외쳤죠. 시작이고, 한편으로 은퇴라는 중의적 의미로요. 너무 ‘힙찔이’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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