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어때. 망한 여행이어도 친구와 함께 있으면 웃을 수 있잖아.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김지우 PD
GQ 늘 궁금합니다. 여행 예능을 만드는 사람은 모두 여행을 좋아할까?
JW 저는 아주 좋아해요. 코로나 전에는 틈만 나면 어디든 나가려고 했어요. 업계에서는 “방송이 죽었다”라고 표현하는데, 갑자기 편성이 바뀌거나 하면 급작스러운 휴가가 생길 때가 있거든요. “내일부터 2주일 쉬어” 통보를 받으면 그 때부터 비행기표 검색 시작하는 거죠. 가능하면 통화가 닿지 않는 곳으로…
GQ “내일부터 2주일 쉬어”라니, 너무 달콤한 통보네요.
JW 4년 차 때 “내일부터 2주 쉬어”라는 통보를 받은 적 있어요. 조연출에게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가장 먼 곳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남미행 비행기를 예약했어요. 여행 정보는 비행기 안에서 찾고, 페루, 칠레, 볼리비아를 여행했어요.
GQ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에서 기안84와 이시언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여행자잖아요. 무계획, 무대책인 전자에 가까운 여행자인가요?
JW 성향이 굉장히 비슷해요. <나혼자산다>에서 기안84님이 한번은 바다를 보고 싶다고 무작정 과천에서 오이도까지 뛴 적 있어요. 그때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저도, 스태프들도 모두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찍었죠. 그 후로 술도 자주 마시면서 친하게 지내게 됐어요.
GQ 입봉하는 연출자 입장에서 이미 많이 노출된 인물의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JW 그가 많이 소비된 건 맞지만, 가까이에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대중들이 아직 잘 모르는 매력이 있다고 느꼈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여행’을 떠올렸고요.
GQ 많은 여행 예능이 PD가 출연자를 놀리는 데서 웃음 포인트를 만든다면, <태계일주>는 조금 달랐어요.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진지하게 출연자를 걱정 하는 모습에서 느꼈죠. 출연자와 같이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찍었나요?
JW 맞아요. 남미라는 공간이 낯설기도 했고, 처음과 끝만 정해두고 그 사이는 무계획에 가까워서 제작진들도 같이 여정을 떠나는 마음으로 임했거든요.
GQ 출연자에게 어떤 연출자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JW ‘어떤 연출자가 되겠다’고는 아직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요즘 방송이 점점 시청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체감하기 때문에, 시청자와의 간극을 좁히고 싶었어요. 시청자가 출연자를 더 편하고 가깝게 느끼길 바랐죠. 기안84님이 계속 자신을 찍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쥐여준 것도,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을 만든 것도 TV와 시청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서였어요.
GQ 여행하는 것과 여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어떤 간극이 있어요?
JW 여행으로 왔으면 좀 더 재밌게 즐기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웃음)
GQ 방송을 보고 시청자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고 싶다, 혹은 방송 자체가 여행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 어느 쪽을 좀 더 바랐어요?
JW 후자였어요. 같이 여행하면서 ‘맞아, 나도 저랬지’ 공감하길 바랐어요. 저희는 롱테이크로 최대한 출연자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찍으려고 했어요. 빅네임 캐스팅, 예쁜 풍경, 맛있는 음식같이 여행 예능의 공식처럼 굳은 것을 따르지 않았어요. 거기엔 제작비 문제도 있었고.(웃음) 출연자가 주도하는 여행이니까 ‘이곳에 가면 이것을 보겠지?’ 정도 예상하고 가는데, 기안84님은 그 예상을 쿨하게 뛰어넘어요. TV에 나온 유명한 곳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면서 그냥 지나치는 거예요. 사실은 프로그램에서 ‘망하는 여행’을 만들고 싶었어요. 부모님이나 연인이랑 가면 실패하지 않는 여행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친한 친구랑 여행할 때는 어디 그런가요? 숙소가 별로여도 그게 웃기고, 음식이 맛없으면 그것대로 재미있잖아요. 저도 망한 여행으로 쌓은 추억이 많거든요.
GQ 망한 여행의 역사들이 피디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 것 같아요?
JW 첫 번째는 계획된 여행보다 더 빨리 녹은 통장 잔고. 무계획은 종종 과소비를 부르죠. 두 번째는 절친과의 불화 혹은 서먹함. 계속 실패하면 둘 중 하나는 폭발하니까요. 그래도 무작정 찾아가 얻어걸린 맛집, 매일 내리던 폭우가 잠시 그친 뒤 보이는 자연 풍경… 망한 뒤 찾아오는 우연한 만남들이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는 것 같아요.
GQ 우리 삶에 여행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JW 낯설고 예측 불가하고 어려워서? 대단한 모험이 아니더라도 처음 가보는 곳에 도착해서, 숙소로 갈 때까지의 과정조차 평범한 하루보다 새로움이 있잖아요. 사소한 고난과 해결 후의 안도감이 일상과 다른 만족을 주는 것 같아요.
GQ 지금까지의 인생을 하나의 여행이라고 볼 때, 예고편을 만든다면 어떤 장면들을 넣고 싶어요?
JW <태계일주> 시즌 1의 마지막 우유니 사막 장면을 넣고 싶어요. 과정이 워낙 험난해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느낀 감동이 아주 강렬했거든요. 출연자도, 저희 스태프들도 모두. 그리고 자고로 예고 그림은 아름답고 센 맛이 있어야 하죠. 일상은 단조로워도 예고는 좀 더 극적으로!
GQ 바로 내일 시즌 2 촬영을 위해 인도로 떠나죠. 망함을 염두에 둔 두 번째 여행을 하루 앞둔 지금 느끼는 불안과 고민, 기대가 궁금해요.
JW 갠지스강부터 히말라야산 꼭대기까지,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가 긴 여정을 소화할 거라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 또 간절합니다. 힌두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이 있는 종교라던데, 부디 수많은 신이 일정을 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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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