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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뿅 지구오락실’ 박현용 PD “프로그램 만드는 게 딱 육아와 비슷해요”

2023.06.16전희란

‘뿅뿅 지구오락실’의 든든한 조력자 박현용 PD가 그려낸 여행기.

<지구 오락실> 박현용 PD

GQ 다시 돌아온 <뿅뿅 지구오락실 2>(이하 <지락실>)이 화제입니다. <지락실>처럼 하는 여행도 하나의 여행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HY 프로그램 후기를 보면 출연자들이 수학여행 떠난 여고생들 같다거나, 대학교 MT 때 게임하고 놀던 기억이 난다는 후기가 많아요. 그런 반응을 보면 <지락실>도 분명 하나의 여행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재밌는 멤버들과 여행을 보내준다면 저는 무조건 떠날 것 같은데요?
GQ <지락실> 시즌 2의 무대가 핀란드, 발리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HY 멤버 모두가 여행 고수는 아니에요. 그래서 시즌 1은 초보 여행자들도 좋아할 수 있는 태국으로 정했죠. 음식도 맛있고 즐길 것도 많아서 누구나 신나게 놀수 있는 곳으로. 이번엔 더운 곳이 아닌 추운 곳이라면 멤버들이 어떻게 반응 할지 궁금하더라고요. 첫 촬영일이 1월로 잡혀 있었는데, 그래서 가장 추운 북유럽, 핀란드로 정했어요. 발리가 선정된 이유는 곧 방송을 통해서…
GQ 사람과 여행지의 궁합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여행지로 그 여행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사람을 여행지로 표현해보기도 하고요. <지락실> 출연자들을 여행지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HY 은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정열과 낭만의 도시잖아요. 미미는 발리요. 평화로운 자연과 도시 분위기가 미미의 건강한 신체, 그리고 단순한 사고방식과 비슷해요. 영지는 뉴욕. 시끌벅적한 도시 분위기로 트렌드를 이끄는 아이코닉함이 영지 그 자체 아닌가요? 유진은 헬싱키요. 과묵한 사람의 이어폰 속에서 헤비 메탈이 흐르는, 북유럽의 그런 반전 매력이랄까.
GQ 인생 첫 여행이 궁금해요. 어째서 떠났고, 누구와 함께였어요?
HY 스무 살에 혼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2000년대는 스무 살 유럽 배낭여행이 ‘국룰’ 같은 거였거든요. 재수를 했는데, 수능 마치자마자 대학 합격 소식도 듣지 않고 떠났어요. 당시는 로밍도 흔치 않아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싸이월드 쪽지로 알게 됐고요. 열흘 동안 여행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다녀서 솔직히 길게 남는 추억은 많지 않아요.
GQ 원래 여행을 좋아했나요?
HY 원래는 굉장히 좋아했어요. 취업하기 전에는 3개월 동안 전국 일주도 하고, 유럽, 북미, 동남아, 중국, 일본 등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고요. 여행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는 그때보다는 덜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공항에 있는 순간은 여전히 설레요. 탈출하는 기분도 들고,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비행기 대기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요.
GQ 오랜 시간 나영석 PD와 여러 여행 예능을 만들어왔죠.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취향, 여행자의 태도 등에 관해 무의식적으로 받은 영향이 있어요?
HY 나영석 PD님을 만나기 전엔 주로 스튜디오 예능을 했어요. 그러다 2016년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죠. 그때가 서른이었는데, 터닝 포인트처럼 PD로서의 직업관, 가치관이 많이 변화했어요. 그 전에는 결과 중심적인 사람이었어요. 시청률이 잘 나오고,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이후로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프로그램도 잘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여행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사람도 즐겁고, 만드는 사람도 즐거운 작업이더라고요. 그게 제가 느낀 다른 프로그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어요. 지금까지도 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때 찍은 거예요.
GQ 어디 봅시다. 비행기 앞에서 찍은 사진이네요? 어떤 상황이었어요?
HY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당시 한국에 미세먼지가 굉장히 심했는데, 아프리카는 정말 깨끗했거든요. 그보다 더 좋은 사진이 아직은 없었어요.
GQ 요즘 여행할 땐 어떤 스타일이에요? 거기에 장르를 부여한다면요?
HY 장르는 ‘동물 다큐멘터리’예요. 동물 다큐 PD들은 동물의 어떤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몇 달 동안 같은 곳에서 숙식한다고 들었어요. 저도 요즘은 한 숙소에서 쭉 머무는 여행을 해요.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정취를 온전히 즐기려고요.
GQ 커리어를 하나의 여행이라고 본다면, 인생에서 가장 발칙한 여행은 뭐였어요?
HY <지락실>을 기획한 게 가장 발칙한 여행인 것 같아요.
GQ 이렇게 대놓고 홍보를 하시면…
HY 정말이에요.(웃음) 낯선 친구들과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만큼 도전적인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GQ 그 발칙한 여행은 순항 중인가요?
HY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발칙하고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지 않고, 의미있는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다행이죠.
GQ 연출자로서의 꿈에 대해 묻고 싶어요.
HY 최근에 아이가 생겨서 열심히 육아 중인데, 프로그램 만드는 게 딱 육아와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아이가 크는 게 달라지는 것처럼, 프로그램도 생명체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한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것처럼, 제가 하는 프로그램도 자극적이기보다는 스트레스 없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GQ 내일 당장 긴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디로 떠나실 거예요?
HY 무인도요. 무인도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자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