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식물세밀화가가 그린 전국의 산야초

2023.06.12김은희

여행을 채우는 0.1퍼센트. 신종, 미기록종, 자생종 바람이 이는 이름 모를 잎사귀를 바라보는 일.

제주 서귀포, 백약이참나물

제주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을 품고 있는 곳은 아무래도 한라산이지만, 한라산 주변의 크고 작은 오름의 생태계 역시 경이롭다. 2018년 성균관대 김승철 교수 팀은 서귀포 백약이오름에서 참나물속 신종을 발견했고, 식물에 ‘백약이참나물’이라 이름 붙였다. 이들은 우리가 나물로 먹는 참나물과도 닮았다. 신종 발표 시 논문에 색이 제외된 흑백 그림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그림에 담을 수 없었으나, 이들의 흰 꽃 빛깔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전남 진도, 비자나무

비자나무라 하면 제주의 비자림에 있는 개체들이 대표되지만, 내게는 10년 전에 본 전남 진도 임회면의 비자나무가 내 머릿속 ‘기준 비자나무(Type Specimen)’로 저장되어 있다. 1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나무는 정자나무로서 바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인 동시에 천연기념물로서 보호되고 있다. 나무는 분명 자연의 일부이지만, 오래된 나무는 종종 초자연적인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전북 부안, 큰고랭이

최근 정원에서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은 식물이 바로 사초과, 벼과 식물이다. 이들은 눈에 띄지 않고 종 식별도 쉽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곧잘 잡초 취급을 받아왔으나 최근 자연스러운 곡선과 형태, 독특한 생활형 등이 주목받고 있다. 큰고랭이는 저수지, 하천, 강가 등 물가에 사는 사초과 식물이다. 나는 전북 부안에서 이들을 발견했는데, 내 키보다 훨씬 크게 자라는 개체도 있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때 전체 비율을 축소하느라 애를 먹었다.

전남 완도, 속단아재비

2012년 완도 보길도에서 신종 식물이 발견되었다. 이 식물이 특별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처음 발견된 신종 식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된 미기록속 식물이기 때문이다.

전남 신안, 낙지다리

식물 중에는 동물의 이름을 빌린 것이 많다. 낙지다리는 꽃과 열매 줄기가 낙지의 다리를 닮아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전국 습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간의 개발로 인해 습지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낙지다리와 같은 습지식물도 해가 다르게 개체수가 줄고 있다. 나는 전남 신안의 증도라는 섬에서 낙지다리를 관찰해 그림을 그렸다.

강원도 춘천, 한국앉은부채

2020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견되어 한국앉은부채라 명명된 이 식물은 잎이 변형된 불염포라는 기관이 꽃을 감싸는 형태인데, 주변에 이 식물을 소개할 때마다 형태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다. 그러나 꽃다발에 많이 활용되는 칼라, 집에서 주로 재배하는 앤슈리엄의 꽃 형태를 떠올리면 한국앉은부채의 꽃이 새로운 형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식물이 장미, 튤립 같은 형태의 꽃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국화꽃 한 송이는 사실 수백 개의 꽃 묶음이며, 클레마티스는 꽃잎과 꽃받침을 구분할 수 없다. 꽃이 피지 않는 양치식물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식물이 혼재하는 세계가 바로 생태계인 것이다.

    식물세밀화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