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택연의 심장 박동.
GQ 아, 가슴이 뛰잖아. 최근에 이런 기억 있어요?
TY 솔직히 말하면 ‘가슴이 뛴다’고 잘 느끼지는 않는 편이에요. 실제로도 제 심장 박동은 굉장히 느려요. 2PM ‘Heart Beat’ 활동할 때 티저에 쓰려고 각 멤버의 심장 박동 소리를 녹음한 적이 있는데, 제 심장이 너무 느리게 뛰는 거예요. 두우근 두우우근. 결국은 못 썼죠.(웃음)
GQ 너울 같은 사람일 것 같은데, 들여다볼수록 잔잔한 요동에 가까워 보여요. 이것도 의외였어요. 언젠가 “담백한 물김치”로 자신을 표현했단 말이에요.
TY 제가 그랬어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제가 지금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아요. 자극적이지 않아도 찾는 사람들은 있고, 거기에 빠지면 계속 먹게 되는 것처럼, 물김치도 그렇잖아요.
GQ 지금도 담백한 물김치와 닮은 것 같아요?
TY 지금 저는 갓김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허허허.
GQ 담근 지 며칠째의 갓김치에 가까워요?
TY 담근 지 좀 되어서 라면 먹기 딱 좋은 정도요. (공백) 그때 왜 하필 김치로 비유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물김치라는 표현이 딱 좋은 것 같아요. 세상엔 여러 가지 김치가 있고 각자 취향도 다양하니까 모두가 저를 좋아할 수도, 굳이 좋아할 필요도 없죠. 이왕이면 담백한 물김치가 좋겠어요. 질리지도 않고.
GQ 한 인터뷰에서 뿌듯함으로 “오래해온 것”을 꼽았죠. 그러면서 “강해서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해서 강한 거다”라는 박진영의 말을 언급했어요.
TY 맞아요. 최근에 우영이랑도 이야기했어요. 진영이 형 말이 맞았어.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잘되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안 보이기 시작하니까 요즘 들어 더 느껴요. 버티는 게 힘이구나. 15주년이라 감수성이 풍부해졌나.(우는 시늉)
GQ 지금껏 버텨온 걸 돌아보면 스스로 기특하고 뭉클해요?
TY 정말로요. 무조건 오래한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즐기면서 오래할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좋고, 오래해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GQ “오래해서 강한 것”이라는 말이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린 순간이 기억나요?
TY 어떤 한순간에 열렸다기보다는,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달았어요. 올해 음악 틀어놓고 운동을 하는데 랜덤 알고리즘으로 진영이 형의 ‘니가 사는 그 집’이 나왔어요. 오랜만에 듣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니가 사는 그 집’을 부를 당시의 진영이 형을 떠올려보니까 지금의 저와 나이가 비슷해요. 제가 진영이 형을 처음 만났을 때가 형이 지금 제 나이, 그러니까 서른여섯 살쯤이었어요. 그때 진영이 형은 이미 지오디, 비를 만든 굉장한 프로듀서였죠. 진영이 형은 언제나 현역이었고 지금도 그렇잖아요. 형과 비교하니 저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영이 형처럼 앞서간 선배를 보면서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만약 형도 사라졌다면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웃음)
GQ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게 굉장한 힘일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옥택연은 어떤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TY 글쎄요, 뭘까요? 음…, 즐기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 곁가지로 여러 가지 시도해보는 것이 많아요. 일을 중심에 두고, 그 일을 좀 더 풍성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해요. 그게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즐기는 성격을 갖게 된 것도 고마운 일이고요.
GQ 그 곁가지 중 가장 최근에 관심 두는 건 뭐예요?
TY 술 빚기, 그리고 캠핑. 술 빚기를 왜 처음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러곤 바로 실행에 옮겼죠. 해보니까 맛있더라고요. 실패요? 한 번도 없었어요. 시키는 대로 잘했거든요. 이날은 이것을 하고, 며칠 뒤엔 저것을 하고, 하라는 대로 잘 했어요. 귤도 넣어보고, 딸기도 넣어보고 별의별 걸 다 해봤는데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요. 제 몸값만 제외한다면 술값도 아주 저렴하고요.
GQ 최근엔 뭘 빚었어요?
TY <가슴이 뛴다> 촬영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막걸리 40병을 사서 증류 소주를 만들었고, 지금 집에 있는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 중이에요.
GQ 만들 때는 무슨 생각해요?
TY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그래서 좋아요. 별생각 없이 하는 프로세스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작품에 들어가면 여러 생각이 많아지는데, 술 빚기만큼 은 굉장히 심플하게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드문 시간이에요.
GQ 술 빚는 사람들에게 늘 궁금한 점이 있어요. 새 술을 만들어 꺼내는 그 순간의 기분은 어떨까! 잉태하는 기분일 것 같아서요.
TY 처음 빚을 때는 너무 신기했는데, 요즘은 “음, 이런 맛이군” 하는 정도예요. 타임라인을 기록하려고 해요. 오늘은 나무 향이 진해졌고, 스모키함은 조금 줄었다. 견과류 향이 난다, 베리 향이 조금 나는 것 같다, 두 달째에는 이런 맛이 났는데, 세 달째는 이런 맛이 나네? 이런 것들. 특별할 것 없어요. 단순해요.
GQ 결코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는걸요.
TY 정말이에요. 제 인생은 굉장히 단순해요.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GQ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뭐예요?
TY 미국에 살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랑 이런 생각 테이블을 짠 적이 있어요. 인터넷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거예요. “문제가 생겼을 때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가?”, “있다”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고쳐”, 그러고 끝.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그러면 왜 걱정해?” 그러고 끝. 그 생각의 프로세스와 똑같아요. 복잡하게 생각한들 풀 수 없다면 소용없잖아요. 할 수 있으면 고치려고 노력하면 되고, 안 되면 마는 거고.
GQ 요새 유행하는 밈이 떠오르네요. “너 T지?”
TY 와하하하하. 모든 것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는 게 저도 편하고, 저만 편하죠. ‘T’니까요.(치아 미소)
GQ 연기할 때는 어때요? 될 때까지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TY 있죠. 처음 대본을 접할 때는 아주 이성적으로 접근해요.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를 먼저 따지죠. 예전에는 더 심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감정을 읽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전히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두지 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예전에 윤여정 선생님과 드라마를 찍을 때 여쭤본 적이 있어요. “선생님,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말이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게 배우야.” 요즘 들어 그 말이 자꾸 마음을 툭툭 쳐요. 사람이란 게 화가 난 중에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건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이성을 접어두려고 하고 있어요.
GQ 연기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겠네요.
TY 그로부터 오는 변화도 분명 있겠고, 좀 더 유연해지려고 하고 있어요. 내가 생각한 것만이 길이라 여기지 않으려고요. 대본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께 가서 물어요. 이건 어떠세요?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그럼 “오케이, 그렇게 해봐” 하는 식으로 같이 호흡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가는 방향에 무리만 없다면 여러 가지로 표현해보다가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채택하면 되는 거니까요.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더 느끼는 요즘이에요.
GQ 연출, 제작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요.
TY 전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에 <어사와 조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찾아온 변화예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드라마였고, 하면 할수록 연출이나 제작과 관련된 부분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라고 제작자 마인드로도 생각해보고, ‘이렇게 찍으면 더 예쁘게 찍을 것 같은데’라는 연출자 마인드로도 생각해봐요. 주인공으로서 연출자와 제작사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관심 있게 듣고요. 그러면서 점점 시야가 열리는 것 같아요.
GQ 이야기할수록 옥택연의 심장 박동 속도를 이해할 것도 같아요. “Down to earth”, 두 발이 땅에 닿은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해요?
TY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요즘 들어서도 자주 생각해요. 누군가는 연예인이라면 항상 꾸며야 하고, 멋있고, 빛나야 한다고, 환상이 깨지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배우, 가수,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을 뿐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어요. 영상이나 방송으로 보여지는 옥택연의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닌데, 인간 옥택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섭다고 느껴지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걸까? 그것이 무서워질수록 제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저의 모습을 숨기면 제가 제 자신이 아니게 되는 거잖아요. 그럴 바에는 제 전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40대, 50대 아저씨가 되어 편의점 갈 때 헤어 메이크업을 할 순 없잖아요. 인간 옥택연의 모습까지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정말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 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제일 큰 힘이 되는 것 중 하나예요. 베트맨 같은 은둔형 슈퍼히어로가 있는가 하면, 스파이더맨같이 이웃처럼 프렌들리한 히어로도 있잖아요.
GQ “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무척 인상적인 말이네요. 그렇다면 지금 옥택연은 어디쯤 있는 것 같아요?
TY 지금요? 스튜디오 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