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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여행을 동시에 워케이션 숙소 추천 및 꿀팁

2023.08.14전희란

“일하러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와이파이를 태운 스위스 기차. ©스위스 정부관광청

꿈을 꾸었다. 창밖으로 알프스 꼭대기 고르너그라트의 장면이 느리게 흘러가고, 나는 여느 때처럼 원고를 쓰고 있다. 한번은 여름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업무 메일을 썼다. 취리히에서 쿠어로 가는 기차 안에 서급한 기획안을 몇 개 해결하고, 어느 흔들리는 크루즈 안에서는 줌 미팅을 했다. 여우비를 피하려고 묵지도 않는 런던의 어느 호텔 라운지에 들어갔다가 계획에도 없던 제안 메일을 몇 개 보냈다.

꿈이었는데, 꿈이 아니었다. 대단한 아티스트나 개발자만이 가능할 줄 알았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어느 틈에 내 삶에도 스몄다.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도시가 락다운되어도 세상은 의외로 돌아가고, 일은 의외로 순순히 흘러간다는 걸, 상사가 눈으로 쏘는 직사광선이 없어도 할 사람은 어차피 자기 일을 한다는 걸, 팬데믹은 보란 듯이 증명했다. ‘Remote Work’라는 섹시한 이름의 업무 형태는 삶에 여러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일하러 가는 여행, 일하면서 하는 여행, ‘일’에 시간을 잠시 내어준 여행 등등. 그 모든 가능성을 ‘Workation’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워케이션으로 주목할 만한 블루 팔래스 엘운다 호텔. ©Marriott International
고립을 허락하는 블루 팰리스의 방갈루.

“집중하려면 고립이 필수인데, 익숙한 환경에서는 그게 쉽지 않잖아요.” 10년 넘게 반 쯤 디지털 노마드 삶을 사는 프리랜서 에디터 김나영은 최근에 다녀온 토스카나에서도 워케이션을 즐겼다. “줌 미팅할 때 늘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설정해두었거든요. 토스카나 가니까 그 배경을 켜지 않아도 이미 사방 천지가 줌에 있는 시골 풍경이란 게 재밌더군요. 포도밭 보면서 멍 때리고, 그러다 일하고, 토스카나에서 진짜 워케이션을 경험한 것 같아요. 주변에 방해되는 것도, 소음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도 없었고, 요즘은 유럽의 시골도 와이파이가 굉장히 빠르더라고요.”

‘3B’라는 개념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자 엡스테인 박사가 고안한 개념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Bus, Bed, Bath”를 꼽았다. 버스 안에서, 침대 위에서, 욕실 안에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은 일하고 있지 않을 때, 줄곧 생각으로부터 멀어질 때 완성되기도 한다. ‘일하고 있지 않을 때’를 ‘여행 중’이라는 말로 바꿔도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일하기 위해 훌쩍 떠나는 여행은 특히 이런 사람을 위한 달콤한 워케이션이다. 베네치아의 더 그리티 팰리스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며 글을 쓴 헤밍웨이식 여행법, 혹은 새벽엔 쓰고 오후엔 하와이 해변을 달리는 하루키식 여행법이라고 하면 좀 더 근사할까.

디지털 노마드가 사랑하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캘리포니아 관광청
헤밍웨이가 워케이션을 즐긴 더 그리티 팰리스 호텔.

“코워킹 스페이스마다 차별성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어떤 코워킹은 그야말로 배를 타고 이동하며 일할 수도 있고, 산에 처박혀 있기도 하고, 마을 주민과 연결된 콘텐츠를 운영하기도 하는 등 아주 다양해요. 물론 위워크처럼 코스모폴리탄 기분을 느끼게 해주 는 곳들은 기본이고요.” 오래전부터 국내외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해온 브랜딩 전문가 한지인은 ‘코워 킹’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이 된다고 말한다. “남미에서 셀리나 Selina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다니면서 일과 여행을 병행할 수 있었어요. 전세계에 여행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환경이 잘 갖춰진 것은 물론, 일하는 스태프들의 환대와 어메니티가 굉장해서 완전히 팬이 되었죠. 로컬과 글로벌이 섞여 진화한다는 것이 바로 이거지, 느낀 경험이었어요.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번에 는 포르투갈 해변에 있는 셀리나 지점을 예약했어요. 서핑한 뒤에 젖은 머리를 후다닥 말리고 바로 노트북을 펴는 로망이 버킷 리스트에 있었는데, 바다로 이주할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아서 이번 생엔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생각했죠. 그런데 로망을 이런식으로 실현할 수 있다니, 코워킹 스페이스 만세.”

오-피스 제주의 업무 공간.
휴양지와 업무 공간 그 어디쯤, 오-피스.

최근 국내에도 흥미로운 워크 앤 스테이 형태의 숙박이 늘고 있다. 제주에 가장 먼저 문을 연 오-피스 제주 브랜드 소개에는 “외딴 곳에 가면 진짜 일이 되기 시작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곤 또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시간의 1/3을 일하면서 보내는데, 일할 때도 행복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필요합니다. 책상 한 자리 빌려주는 공유 오피스가 아니라 ‘침해 당 하지 않는 평화로움과 몰입의 시간’을 선물하는 곳을 만들어보자, 오-피스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신촌에 이어 최근 고성에 문을 연 워크 앤 스테이 맹그로브도 강원도 고성을 여행하는 새로운 목적 중 하나가 되었다.“ 고성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러닝, 라이딩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데스티네이션이죠. 건물 안과 밖 어디서든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어디에 있든 당신을 넉넉히 위로할 겁니다.” 맹그로브의 김인애 브랜드 마케터는 조언한다.

도시 전체가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착각이 드는 도시도 있다. 이를테면 베를린이 그렇다. “다른 유럽에서 베를린으로 오는 디지털 노마드가 상당히 많아요. 베를린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빠르게 발달한 도시 중 하나죠. 제 친구 중 한 명은 런던 물가가 비싸서 직장이 런던인데도 베를린에서 살아요. 중요한 대면 미팅이 있을 때만 런던으로 돌아가고요. 베를린은 공연, 전시 등의 문화 비용이 상당히 저렴한 편이라 생활비를 줄이면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죠. 도시를 옮겨가며 휴가 내지 않고도 ‘한 달 살이’를 실현할 수 있고요.” 오랫동안 베를린을 기반으로 생활해온 여행 칼럼니스트 서다희는 말한다.

맹그로브 고성의 루프톱.
해변을 바라보는 맹그로브의 워크 라운지.

다수의 세계적 기업이 모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여전히 1백 퍼센트 재택, 혹은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는 형태로 업무를 이어 나간다. 그리하여 코워킹 스페이스가 고도로 발달했고, ‘POPOS(Privately Owned Public Open Spaces)’라는 개념의 개인 소유의 공공 개방 공간이 도시 곳곳에 다수 숨어 있다. 세일즈포스 공원, 링크드인 본사, 파운드리 스퀘어 빌딩 등 70여 곳의 POPOS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에 표식을 해두지 않아서 관광객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남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는 위워크, 비치 하우 스, 블랭크스페이스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카페처 럼 늘어서 여행과 일의 경계를 뒤범벅인다.

일과 삶이 분리돼야만, 워라밸을 지켜야만 ‘잘 살고 있다’고 믿는 건 어쩌면 가스라이팅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단절이 어려운 이 세상에서 어차피 되지도 않을 ‘워라밸’을 평생 지향만 하다가 낙오자의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진정한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자가 승리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일과 여행을 모두 즐겁게 하려면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맞는 몇 가지 원칙을 확실히 세워두는 편이 좋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침내 승리자의 얼굴로 이렇게 말하게 되리라. “저, 일하러 여행 갑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코워킹 스페이스 같은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관광청

코워킹 in 샌 프란시스코

The Commonsㅣ헤이즈밸리에 위치한 커뮤니티로 코워킹 스터디홀, 카페, 공용 도서관, 라운지, 이벤트 공간, 요가 스튜디오 등이 마련돼 있다.
Neonㅣ위워크의 창업 멤버 중 한 명이 설립한 커뮤니티. 기존 코워킹 스페이스와는 다르게 책상 이용료나 공간 이용료 없이 인터넷 사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Linkedin Officeㅣ링크드인 본사로, 포포스 공간에서 여행자도 무료 와이파이, 카페 등 업무를볼수있다.
Hotel Nikkoㅣ펫 프렌들리 호텔로 반려동물과의 워케이션도 가능하다.

웹 사이트 참고

Nomadlist.comㅣ디지털 노마드에게 중요한 요건인 한 달 생활비, 안전, 인터넷, 날씨, 놀 거리 등을 지수로 표시에 랭킹해두었다. 
Meetup.comㅣ비즈니스 여행자의 네트워킹을 위한 웹사이트.
Safetywing.comㅣ디지털 노마드족이 어느 나라에서든(여행 제한 국가 제외) 보장받을 수 있게 한 보험 사이트.
Anyplace.comㅣ모든 것을 갖춘 숙소를 최소 30일 단위 혹은 그 이상 빌릴 수 있는 웹사이트. 대부분의 숙소에서 홈 오피스를 갖고 있다.
kantoorkaravaan.nlㅣ캐러밴으로 이동하며 업무를 볼 수 있는 코워킹 서비스.
www.remoteyear.comㅣ1개월, 1년, 장기간 어딘가로 떠나 워케이션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여행자 프로그램.
The Nomadic Networkㅣ디지털 노마드족이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디지털 노마드 팁

“일상에 환기가 필요하다면 낮과 밤의 루틴을 바꾸어보는 것도 노하우가 될 수 있어요. 이른 오전부터 낮 동안은 여행을 충분히 즐기고, 영감을 채운 뒤 분위기가 차분하게 내려앉기 시작하는 저녁에 집중해서 꼭 끝내야 하는 업무에 깊이 있게 몰입해보세요.” 김인애(맹그로브 브랜드 마케터)

“해외에서는 한국처럼 카페에서 콘센트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일과 겸한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코워킹 스페이스를 먼저 검색해두면 좋아요. 길이가 긴 케이블, 다회용 컵,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명함을 두둑이 챙겨두면 의외로 유용해요. 주변에 업무를 방해할 정도로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중하게 협조 요청을 할 줄 아는 용기와 태도도 필수죠.” 한지인(브랜딩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