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주라는 리듬.
GQ 듣기로는 요즘 하루도 쉬지 못했다면서요.
YJ 계속 달린 거죠, 뭐. 작년 12월부터 <베테랑 2> 촬영 시작해서 올해 5월에 끝났고, 끝나자마자 바로 드라마···, TV 드라마는 처음 하는 건데, 제가 연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돼서 선뜻 선택을 못 하다가 한 번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해서 들어간 TV 드라마 작품을 지금 계속 찍고 있고, 그리고 지난 주 토요일까지 작은 영화 하나 찍었어요. 그 영화는 장마에다 예산 상황 상 한 달 정도를 거의 폭주하듯이 찍었고, 그 중간중간에 이찬혁 씨랑 노래 불렀지, 장필순 씨랑도 불렀지, 이런저런 일들이 뒤섞여서 좀 쉼이 없었죠.
GQ <베테랑>(2015)을 통해 배우 장윤주로 이름을 올리기 전만 해도 영화에 출연한다면 평생 한 작품만 할 생각이라고 했잖아요.
YJ 그러니까, 하후. 어떻게 이렇게 하고 있네요. 그런데 그 <베테랑> 이후에 계속 이런저런 작업들이 들어올 때, 20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계속 이 작업을 해도 될까? 연기에 대한 진심이 내 안에 있나?’ 이런 고민들이 있어서 다 안 하다가 6년 만에 <세자매>(2021)를 하고 나서 좀, 한번 해봐야겠다 싶어 계속하게 된 건 있어요.
GQ <세자매>가 거름이 된 건가요?
YJ 워낙 연기를 잘 하시는 선배님들이다 보니까 그 안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제가 아니라 기존의 배우 분이 하셨어도 영광이지만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딱 해보니까 다른 작품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자신감, 깡 같은 게 좀 생긴 것 같아요.
GQ 그런데 영화라는 키워드가 장윤주와 멀리 있지 않았어요.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이죠. 모델로서 맨날 찍히는 사람이라 나도 좀 찍어보고 싶었다고.
YJ 또 한 가지는 당시에 동덕여대 모델과가 막 생겨서 모델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가기 싫었어. 모델로 일을 하고 있는데 모델과에 가서 뭘 더 배울까?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대신 연출적인 부분을 배우면 어떨까 해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시험을) 봤고, 떨어졌고, 그러고 나서 서울예대에 붙어서 갔죠. 지금 돌이켜보면 신기하죠. 현장에 학교 선후배가 정말 많아요. 그렇게 우연히 학교 들어간 게 훗날 또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참 신기하다 싶죠.
GQ 어릴 때부터 영화 신을 꿈꾼 시네키드는 아니었네요?
YJ 그건 아니었어요. 학교다닐 때 완전 영화에 미친 애들, 특히나 예대같은 경우에는 그게 좀 더 광기처럼 있는 친구가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영화도 이들만의 리그가 확실한 데구나, 패션 이상으로 아주 확실한 장르구나, 그게 막 느껴지는 거예요. 얘네들하고는 내가 대화를 깊게는 못 하는구나, 내가 아는 게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학교 다닐 때도 했던 기억이 나요.
GQ 그래도 학교는 잘 나갔어요? 수업은 잘 들었나요?
YJ 계절학기까지 들었어요.
GQ 모범생 아닌가요, 그럼?
YJ 아니, 학점이 모자라가지고. 하하하하하. 그때는 연출 전공, 연기 전공이 따로 있었는데 저는 그걸 구분 지어 수업을 듣지는 않았어요. 두루두루, 심지어 실용음악과 가서 실내 합주 수업도 청강하고 그랬어요.
GQ 지금와서 돌아보니 그때 배운 것 중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 것도 있어요?
YJ 학교에서 뭘 배웠나 생각해보면 그냥,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게 공부였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전화 통화하는 대학 동기들이 있어요. 감독이 된 오빠도 있고. 완전히 영화광들이죠. 끝까지 갈 수 없는 그 지점까지 가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그들과 함께 있었다!
GQ 장윤주와 대화할 때 <세자매>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어요.
YJ 응, 응.
GQ 특히 미옥이 식탁에 앉아서 남편이 끓여놓은 국과 편지를 볼 때.
YJ “존나 맛없네” 이러면서?
GQ 그때 겨우 숟가락 끝을 쥐고서 국을 픽 떠먹는, 그 손이 확 좋았어요.
YJ 으으음! 그때 근데 NG 되게 많이 났던 것 같아. 하하하하하.
GQ 그랬어요? 왜요, 왜?
YJ 몰라, 기억도 안 나. 제가 세 자매 중에서 제일 먼저 크랭크인을 했거든요. 미옥 집 신을 제일 먼저 촬영했고, 그게 거의 첫 신이었어요. 그래서 NG를 많이 냈던 것 같아요. 뒷모습이긴 했는데.
GQ 그랬구나. 그게 참 계산됐다기엔 뭐하고, <세자매>에 합류하기까지 엄청나게 고민했던 만큼 엄청나게 연구한 결과였으려나 싶었거든요.
YJ 그러지는 않았어요. 계산은 절대 할 수 없었어요. 계산을 아예 할 줄 모르는 상태였고,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를 때였고. 연기에 있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조금 조금씩 이제 좀 알아가고 있는 건데, 그런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선뜻 막 작품을 선택하기가 겁나기도 하고 그래서 작년에는 우정 출연만 두 번 했지 작품을 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반복해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올해 하게 됐어요. 엔진을 계속 가동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텀을 두는 시기가 지금은 아니지 않을까? 언제든지 ‘액셀’을 밟고 나갈 수 있도록 엔진을 켜놓자. 올해는 좀 그랬어요.
GQ 이건 어때요? 장윤주 작사·작곡 1집 앨범 <Dream> 2008년 발매. 4년 후 2 집 <I’m Fine> 2012년 발매. 5년 후 EP <LISA> 2017년 발매. 6년 후가 지금 2023년이에요. 새 음반도 낼 때가 된 것 아닌가요?
YJ 아우, 올해는 못 내요. 마음은 있어요.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제일 많이 떠올랐던 때는 앨범 작업할 때이긴 했어요. 내 것을 내가 온전히 백 퍼센트할 때 제일 뇌가 활성화됐어요. 그런 점에서는 자신의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건 필요해요. 끊임없이 계속 생각하는 맛이 있죠.
GQ 그러니까. 지난 앨범들을 들으니 궁금했어요. 지금의 장윤주는 어떤 가사를 써 내릴까. 어떤 무드의 노래를 할까.
YJ 그러니까. 가사가 너무 중요해. 제가 연기를 할 때도 그렇고 음악을 할 때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사실 진심이거든요. 특히나 음악은 “너 주변에 곡 잘 쓰는 사람들 있으니까 곡을 받아. 왜 네가 다 쓰려고 하니?”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 내가 파워 보컬리스트도 아니고, 히트곡을 만들려는 마음도 아니고, 너무 좋아해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곡은 정말 솔직하게 내가 담아내자’가 첫 번째여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막 만들었던 것 같아요. 한계도 분명히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그렇게 막 넓거나 깊지는 않아요, 목소리도 그렇고. 냉정하게.
GQ 솔직하죠. 아이 리사를 낳고 만든 기쁨의 앨범 <LISA>에 그런 가사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아름다운 너를 품에 안고 기쁜 눈물 흘렸네. 하지만”.
YJ “난 꿈이 많은 여자인데.”
GQ 원래 쓴 가사는 너무 터프해서 남편이 아름답게 다듬어줬다면서요.
YJ 아무튼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그걸 좀 세게 전달했나 봐요. 기억도 안나. 나 이런 가사 썼다고 했더니 “여보 노래 너무 터프한 거 아니야?” 그래요. 남편이랑 이 감정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면서 남편이 이성적으로 수정해줬어요.
GQ 어째서 진심을 담을 수 있어요? 속내를 비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YJ 그냥 뭐, 많이 안 들으니까.
GQ 사람들이 많이 안 들으니까?
YJ 응, 많이 안 들어요. 잘 몰라.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더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괜히 토 달리고 트집 잡히고 그랬으면 겁나서 못 했을 것도 같은데 “아이 뭐, 안 듣는데 어때” 이러면서 막 하는 것도 있어요.
GQ 2023년의 장윤주를 담은 앨범명은 무엇이 될까요?
YJ 일만 했어, 정말. 올해 키워드는 약간···, 연기 같아요. 어떤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반복. 반복의 미학을 난 믿거든요. 운동을 예로 들면 똑같은 거 매일 해야 돼요. 어쩔 수 없어. 계속 반복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몸을 트레이닝하면서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반복을 한번 해봐야겠다. 연기를 계속 고민만 할 게 아니라 반복해서 해 보자. 모델로 무대 활동을 할 때 잘 모르겠지만 계속하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고, 모델은 이제 반복의 미학이라기보다 즐기는 장이 됐다면, 연기로도 그렇게 해보자. 아까 얘기한 것처럼 연기에 대한 엔진을 계속 가동 중이에요. 그러니까 델리 스파이스의 ‘항상 엔진을 켜둘게’처럼 <엔진을 켜둘게>.
GQ 장르는요? 음악에 빗대자면 <엔진을 켜둘게>는 어떤 분위기인가요?
YJ 리듬이 좀 있어야겠지. 리듬은 좀 있어야 해요. 무의식 속에서 계속 흘러가는 플로는 모델로서는 가능하고, 연기도 그렇게 하려는 건데 아직은 잘 안 되는 거고. 제가 옆에서 연기하는 분들을 보니까 무의식 속에서 막 대사가 나오고 생각하지 않게 흘러가는 게 있더라고요. 그걸 믿기도 하고.
GQ 본능적으로 나오는. 계산되지 않은.
YJ 응, 동물적으로. 그런데 나도 충분히 동물적인 사람이거든. 그건 알고 있거든요. 이성적이거나 계산하면서 모델 활동을 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계산적으로 해보려고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베스트 컷은 안 나왔던 것 같아. 아무튼 여러 기술적인 것에도 이해가 있어야 하겠지만, 장르로 치자면 재즈처럼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변주가 계속 이어지는 안에서도 분명한 리듬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