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또 무엇을 태워 빛으로 만들었나.
GQ 대뜸 묻습니다. 왜 좀처럼 화보에서는 만날 수 없었는지.
NG 그래요? 왜? 예전에 작품 활동이 너무 몰릴 땐 스케줄 빼기가 진짜 어려웠던 것 같긴해요. 그래서 그랬겠지. 응, 그래서 그랬을거야. 왜 화보에서 만큼은 새로운 모습들 좀 보여드리고 싶은데, 홍보 시즌 때 막 몰아서 찍게 되면 다 똑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은 거죠. 아무튼. 지금은 많이 찍고 싶어요. 뭐든지.
GQ 저, 여기 <도적: 칼의 소리> 예고편 보며 왔어요. 댓글들 반응이 상당해요.
NG 아마 소재에 대한 신선함이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소재에 대한 반가움도 있고. 우리나라의 시대극을 ‘웨스턴 장르’로 풀어냈다는 거. 거기에 대한 기대가 좀 있는 것 같아요.
GQ 이런 기대들 앞에 섰을 때, 주연 배우로서 어떤가요?
NG 저는 사실 우려가 많아요. 아주 솔직히요. 우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들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우리 연기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결국 대중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같은.
GQ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죠. 연기한 ‘이윤’은 어땠어요?
NG 개인적으로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 중 가장 뭐랄까, 답답했던 캐릭터였어요. 아무래도 리더니까요. 무거운 감정도 많고, 호흡도 깊고. 또 되게 FM 성향도 짙고. 진중한 캐릭터라서 연기할 때 좀 재미가 없었던 부분이 몇몇 존재하지 않았나싶어요. 물론 작품 전체를 보면 너무 재밌죠. 재밌는 캐릭터도 많고.
GQ 예고편에서 이호정 배우가 이렇게 말하죠. “서로 잘하는 거 하자.” 이 대사를 질문으로 바꿔볼게요. 남길 씨가 잘할 수 있었던 건 뭐였어요?
NG 연기한 ‘이윤’은 리더잖아요. 굉장히 책임감 있는 리더로 등장해요. 어쩌면 그 에게 전부와도 같은 그 ‘책임감’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되레 그게 자신 있었어요.
GQ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귀한 장르니까, 참고한 이미지가 많았을 것 같아요.
NG 웬만한 서부극은 전부 본 것 같아요.<장고>는 여러 번 봤고요. 특히 총 다루는 장면들. 그때는 자동 소총이 아니니까, 한 발 한 발 장전하는 모습들을 굉장히 유심히 봤어요. 이게 시대극이기도 해서 예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도 찾아서 봤고요. 와, 새삼 선배님들 연기가, 크~, 대단해요.
GQ 올해로 데뷔 24년 차! 출연한 작품 수는 영화 기준, 무려 25편이에요.
NG 1년에 한 편씩 한건가? 아, 필모가 너무 부족해.GQ 에? 많은 거 아니고요?NG 에이, 부족하죠. 이런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더 많이 해야겠다. 아직 멀었다.
GQ 왜요?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NG 예전 연기 보면 죽겠더라고요 진짜.(웃음) 보면서 ‘그래도 조금씩 발전해왔구나’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러면서 좀 더 많은 작품에서 더 많은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러면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지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래서 필모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GQ 배우들은 연기의 무게를 필모의 양에 두기도 하고, 번쩍했던 대표작에 두기도 하잖아요. 어느 쪽?
NG 맞아요. 그런 맥락에서 봐도 저는 더 해야 돼요. 필모는 배우를 짐작해볼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니까. 그런 지표로 바라봐도 제 필모는 아직 좀 허술한 것 같아요. ‘김남길은 어떤 배우다’라는거. 아직 필모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같거든요. 최소한 30~40편 사이는 했어야 돼. 부족해, 부족해.(절레절레)
GQ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장르로.
NG 멜로요. 요즘 멜로가 그렇게 하고 싶어요. 사람 냄새나는 멜로.
GQ <무뢰한>도 멜로적 성격이 있는 작품이잖아요. 그런 찐득한 멜로, 한번 더 찍어달라는 댓글도 많이 봤어요.
NG 그런데 그런 거칠고 컴컴한 멜로보단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멜로. 그런거 해보고 싶단 생각이 부쩍 많이 들어요.
GQ 얘기가 나온 김에, <무뢰한>은 어떤 작품이었어요?
NG 저는 <무뢰한>이 배우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터닝 포인트였어요. <무뢰한>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에요. 요즘도 이런 생각해요. 차라리 지금,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지금 <무뢰한>을 다시 찍으면 연기가 다르지 않을까. 다시 찍을 기회가 오면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GQ 김남길의 ‘인생캐’로 <해적 : 바다로 간 산적>과 <무뢰한>, 이 두 작품이 많이 거론되는 거 알고 있나요?
NG 그렇더라고요. 하나는 완전히 대중적인 작품이고, <무뢰한>도 대중성을 생각 하고 찍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마니아층이 두껍게 형성된 작품이고. 또 숫자로만 보면 하나는 성공했고, 하나는 ‘망했다’고 할 수 있고. 그런데 두 작품 모두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면,좋은 영화다, 아니다를 꼭 한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할 순 없겠구나 싶어요.
GQ 대중에게 선택된 두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보면요?
NG 굉장히 어려웠던 작품, 고민이 많았다는 거? 확실히 많은 고민을 했던 작품은 그만큼 좀 더 알아봐 주시는 것 같기도 해요. ‘해적’은 다들 그랬어요. “그거 그냥 남길이랑 하면 돼”, “장사정 그건 그냥 김남길이야”. 그런데 전 되게 힘들었 거든요. ‘코미디’라는 장르가 굉장히 어렵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작품이었어요.
GQ 당연히 <무뢰한>도 어려웠겠고요.
NG ‘해적’이 답을 물어가며 촬영했다면, <무뢰한>은 답을 찾아가며 촬영한 작품. 그래서 <무뢰한> 이후부터는 연기가 재밌어졌어요. “요즘 연기 재밌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다닐 정도로요.
GQ <무뢰한>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얻어낸 자의적 터닝 포인트였다면, 강우석 감독의 제안은 타의적 터닝 포인트 아닌가요? 예명 대신 본명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요.
NG 맞아요. ‘이한’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강철중 : 공공의 적 1-1> 같이하자고 제안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근데 이한, 그거 배우 이름 같지가 않다”라고. 그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어느 날 PD가 전화를 주셨어요. 영화 크레디트 작업 중인데 강우석 감독님이 한 번만 더 물어보라고 하셨다고. 본인은 김남길로 내보냈으면 좋겠다며, 어떡할지 선택하라고.
GQ 그래서 그때부터 김남길로?
NG 맞아요. 그때부터 김남길로. 나중에 다시 물어봤을 때도 똑같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냥 배우 이름 같지가 않았다고.
GQ 6년 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티가 잘 안나는 배우다.”
NG 티? 근데 난 정말 티가 없어요. 난 ENFJ거든. 티가 없지. 그때도 있을 수 없지.
GQ 아?
NG (호도도 정리하듯) 아무튼. 옛날엔 이게 서운했거든요. ‘왜 나는 아무도 성대 모사를 안 하지?’,‘ 내가 특색이 없나? ’배우가 티 나지 않는다는 거, 초반엔 단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를 좀 더 해보니까 장점이더라고요. 각인이 잘 안 되니까, 배우로서 이 옷 저 옷 입혀볼 수 있는거죠. 연출자 입장에서.
GQ 그럼 지금 ‘길스토리이엔티’의 대표 입장은 어때요?
NG (당황) 응? 갑자기 그런 질문을 왜···. 아, 목이 아프다. 뒷목이 아파요.
GQ (웃음) 왜 직접 회사를 차리게 됐는지 궁금했거든요.
NG 흠, 이유는 두 가지 정도 있었어요.줄줄이 설명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니까 짧게 말하면,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전적으로 배우, 아티스트 입장에서 매니지먼트가 운영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려면 세분화돼야 한 다는 생각. 그런데 아직 그런 회사가 없다는 생각. 그럼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
GQ 그럼 다른 하나는요?
NG 다른 하나는 배우가 어떤 회사의 관계에 의해서 출연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전적으로 배우의 의지로 출연이 결정돼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만 된다면 배우에게 좋은 회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GQ 배우와 대표를 병행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NG 왜요, 어렵죠. 계속하게 되면 ‘아마 둘 중 하나가 잡아 먹히겠다’라는 생각은 해요. 그래서 균형을 찾으려고 해요. 하는데, 어렵죠.
GQ 주변, 꽤 친하다는 이들은 ‘김남길’이라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표현하던가요?
NG 어릴 땐 ‘착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그거 되게 싫었어요. ‘뭐야? 난 배우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데, 그냥 착하다가 끝? ’그땐 그 말이 되게 밋밋하게 느껴졌거든요. 이 말도 많이 들어요. “미친놈인데 책임감은 있어”, “싸가지 없는데 되게 착해” 이런 말들. 그땐 이중적이라서 무슨 말이야 싶었는데, 많이 듣다보니까 내가 그런가 보다 싶어요. 그냥 앞뒤 없이 ‘착해’보단 훨씬 낫죠.
GQ 칭찬이죠.
NG 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미친놈’이라는 거, 그거 배우한테 되레 칭찬이죠. 연기에 미쳐 있든, 작품에 미쳐 있든. 배우가 적어도 ‘미친놈’ 소리 한 번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임감도 제가 맡은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미친놈인데 책임감 있어” 이 말, 너무 칭찬이죠.
GQ 스스로 보기엔 어떤 것 같아요? ‘김남길’이라는 사람이.
NG 그러게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예나 지금이나 연기를 하면서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건 변함없어요. 그런 놈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