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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비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언제나 1번이에요”

2023.09.28전희란

이유비의 1번.

원피스, 바브즈. 부츠, 지안비토로시. 네크리스, 투웬티원어거스트.

GQ 골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
YB 1년 반 정도 됐어요. 주변에 골프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코로나19 때 스크린 연습장에서 골프를 시작했고, 필드에는 딱 한 번 나갔어요. 그러곤 바로 <7인의 탈출> 촬영에 들어가서 지금은 못 하고 있어요.
GQ 첫 라운딩의 스코어는요?
YB 밝힐 수 없어요.
GQ 그래도 퍽 잘하는 것 같아요? 촬영 중에 얼핏 “나 원래 잘 쳐”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YB 저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처음이 중요해요. 처음에 곧잘 해야 금방 재미를 붙이는데, 어떤 운동이든 처음에 곧잘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골프는 제가 잘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만 해도 뭐가 재미있는지 잘 몰랐어요. 필드에 한 번 나가보니 알겠더라고요. 이 맛에 하는 거구나.
GQ 무슨 맛이던가요?
YB 자연 속에 파묻혀 잔디 위를 걸으면서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여유를 즐기게 되더라고요. 서핑이나 보드도 좋아하지만 제가 자주 하는 건 주로 필라테스, 수영, 헬스 같은 실내 운동이었거든요. 골프는 좀 특별한 것 같아요.
GQ 얼른 나가고 싶은 표정이네요.
YB <7인의 탈출>에서 ‘탈출’해야 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촬영 종료를 저희끼리 농담 삼아 부르는 말이에요. 시즌 1 촬영이 끝나자마자 곧 바로 시즌 2 촬영을 하고 있어요. 내년 초까지는 계속 시즌 2 촬영에 몰두할 것 같아요.

원피스, 신스덴. 골프백, 크리브나인.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김순옥 작가, 주동민 감독과의 만남은 어땠어요? <펜트하우스 3> 특별 출연이 인연이었죠?
YB <펜트하우스> 1, 2를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시즌 3에 특별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내가? 정말로? 그 <펜트하우스>에? 당시는 <유미의 세포들> 시즌 2를 찍고 있을 때인데, 둘의 촬영장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기가 팽팽한 현장에 압도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에너제틱한 촬영 현장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고 주동민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유비 씨, 잘해주어서 고마워요. 다음에 연락 드릴 일이 있을 것 같아요”라고. 그때는 인사로 칭찬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펜트하우스> 끝나자마자 바로 연락을 주셨어요. 김순옥 작가님은 이번 작품하면서 처음 뵀어요. 말씀도 재밌게 하시고, 무척 귀엽고 발랄하신 분이에요. 골프도 굉장히 잘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라운딩요? 그분과 나가기엔 아직 제 실력이 민폐죠.(웃음)
GQ 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한모네가 되어보겠습니다”라고 했죠. 어떤 역할을 맡으면 완전히 그 사람이 되려고 해요?
YB 20대 때는 나만의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스물>이나 <피노키오> 같은 작품에서는 제 색깔을 많이 투영했어요. 그런데 활동을 하면서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그 편이 더 좋겠다고도 생각했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한모네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었어요. 한모네는 저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도무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죠. 잘됐다, 이번을 계기로 나를 완전히 버리고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보자. 그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요즘 현장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이 “너 정말 한모네 같아”라는 말이에요.
GQ 악역을 맡은 배우에게 시청자들의 미움만큼 큰 칭찬도 없다고 하던데요. 미움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어요?
YB “쟤 장난 아니다”라는 말 듣고 싶어요. “쟤 보통이 아니네”라는 말 들으면 성공한 거 아닐까요?
GQ 평소의 이유비도 ‘보오통’은 아닐 것 같은걸요. 좋은 의미에서요.
YB 저 굉장히 보통인데.(웃음)

재킷, 비비안 웨스트우드. 네크리스, 투웬티원어거스트.

GQ 늘 자신을 솔직한 사람이라고 표현해왔죠.
YB 저는 감정이 투명해요. 기분이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기분이 나쁘면 우울해져요. 아주 분명하죠. 촬영 전에 막 웃고 있다가 “액션” 하면 바로 우시는 배우분들, 얌전하게 있다가 갑자기 불같이 화내는 연기를 하는 분들 보면 정말 신기해요. 저는 우울한 연기를 해야 하면 일단 밥을 안 먹어요. 밥을 먹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지거든요. 화내는 신을 찍을 때도 진짜로 화가 나지 않으면 에너지가 잘 끓어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화를 끓어올리려고 자꾸 시동을 걸죠.
GQ 솔직함 때문에 “나는 호불호가 갈리는 배우”라고 말한 적도 있더라고요.
YB 맞아요. 예전에는 주의를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감정을 잘 드러내고 솔직하면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어디 가서 쉽게 감정 드러내지 마라”라고요. 저는 숨기지 못해요. 안 그런데 그런 척, 아닌 척은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때는 연예인과는 맞지 않는 성격인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죠.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는 않았어요. 나랑 잘 맞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는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것도 벌써 10년 전쯤 얘기예요. 요즘은 오히려 솔직한 면을 좋게 봐주시기도 하는 것 같아요.
GQ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너를 바꿔야 한다”는 말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어요?
YB 멘털이 되게 강한 편이지만, 저도 약해질 때는 어쩔 도리 없이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게 돼요. 그럼에도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게 1번이었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 나는 나 하나니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릴 때 굉장히 궁금해하잖아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고, 내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이 시간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고 흘러간다는 걸 느끼게 된 순간 자연스럽게 깨우친것 같아요.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GQ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YB 사람요. 내 사람이 제일 중요해요.

톱, 오스모스. 슬랙스, 딘트. 힐, 골프 클럽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7인의 탈출>에서 탈출하면 어떤 사람과 라운딩 나가고 싶어요?
YB 골프 잘하는 사람요. 저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랑 가면 골프의 재미를 빨리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가 제발 나 좀 도와줘!
GQ 아무리 ‘골린이’라도 레슨을 받다 보면 알게 되잖아요. 나는 골프에서 무엇에 강하고, 무엇이 약한지. 골퍼 이유비는 어떻던가요?
YB 레슨 받을 때 줄곧 들은 이야기가 “자세는 좋은데 힘이 없다”라는 거였어요. 힘이 없어서 공이 많이 안 나간다고요. 스크린 연습장에서 배울 때 양발의 힘을 측정하면 오차가 없이 거의 똑같아요. 그래서 균형 있게 자세는 잘 잡히는데 힘이 없어서 팔이 흐물흐물하더라고요.
GQ ‘골린이’야말로 라운딩 패션에 진심이기도 하죠. 한때 브랜드 대상 뷰티 아이콘으로 꼽히기도 했으니, 골프장 스타일링을 제안해준다면요?
YB 요즘은 바지도 많이 입더라고요. 바지로 예쁘게 스타일링해보고 싶어요. 솔직히 치마는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바람 불면 뒤집어질까 봐 은근히 신경 쓰이잖아요. 요즘은 예쁜 골프복이 많아서 바지로도 충분히 멋지게 스타일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화이트로 입어도 멋질 것 같아요.
GQ 올 화이트는 이유비의 평소 스타일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YB 올 화이트를 아주 좋아하는데 못 입는 이유가 있어요. 먹을 때마다 자꾸 흘리거든요.
GQ 아뿔싸.
YB (빙긋)

원피스, 비뮈에트. 모자, 브라운 햇. 펌프스 힐, 모두 찰스앤키스. 네크리스, 젤라시. 골프 장갑, 유타. 골프공, 볼빅.

GQ 골프의 원 포인트 레슨처럼 인생에도 원 포인트 레슨이란 게 있다면, 무엇을 묻고 싶어요?
YB 제가 하는 일에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레슨을 받고 싶어요. 살아가면서 언제든 약해질 수 있고, 흔들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요.
GQ 지금 가장 단단하다는 말로 들리네요.
YB 단단해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제 삶에서 지금이 가장 단단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도 쌓이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차츰 단단해진 것 같아요. 저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기분이 좋아요. 나 이번 계기로 또 한 번 성장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오기도 하고, 또 반드시 그렇지 않더라도 그로부터 좋은 영향이 올 수도 있다고 믿어요. 어릴 때는 실패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원래 그렇게 되려고 했던 거야’ 하고 덤덤하게 흘려보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느끼는 건 그 속에 더 좋은 무언가가 있다는 거예요. 배움이나 성숙함 같은 것. 그러니까 나쁜 일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포토그래퍼
이용희
스타일리스트
정다정
헤어
고수운 at 하츠
메이크업
손유민 at 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