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국내 첫 미술관 전시이기도 한 <가을 Herbst>은 오스트리아 시인 릴케의 시를 오마주한다.
지난해 59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유럽 간 봉쇄가 해제되고 여행이 활기를 되찾은 봄, 문을 열었다. 수많은 관광객과 예술 관련 종사자들은 기꺼이 베네치아를 찾았고, 거리에 붙은 전시 포스터를 이정표 삼아 대형 작가의 전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인생에 다시 없을 독창적인 전시를 본다 함은 미를 좇는 이들에겐 엄청난 행운을 뜻한다. 아니쉬 카푸어, 우고 론디노네, 박서보 등 현존하는 거장들의 전시 사이에서 가장 긴 줄을 세운 건 어느 독일 예술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젤름 키퍼의 특별전이 열리는 곳은 두칼레 궁전이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내부와 1600년 베네치아의 유구한 역사를 품은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명소. 그곳에서 독일인 안젤름 키퍼는 이탈리아 장식 예술의 기세를 완전히 눌러버렸다. 벽에 걸린 작품들은 벽보다 더 장엄한 기운을 내뿜었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찬 높이의 회화가 방의 사면을 둘러쌌다. 안젤름 키퍼가 베네치아에 헌정하는 회화로, 이 대형 작품들은 방에 들어서는 이들을 단번에 압도했다. 인생의 쓸쓸함을 그린 그림이었음에도 금빛 물감과 야성적 붓질은 두칼레의 신성한 공기 사이로 휘황찬란하게 번득였다. 그의 작품은 마구잡이로 널린 황무지에서 생명의 싹 하나를 찾아내 인간사 어둠에 불을 밝히는 영웅 같았다.
올 3월 개관한 대전의 복합 문화 공간 헤레디움의 전시에도 이런 야심이 깃든 듯하다. 9월 8일 오픈한 안젤름 키퍼의 전시 <가을 Herbst> 역시 꺼져가는 황량한 가을 들녘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말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세 편의 가을 시에서 표현의 모티프를 얻었다. 작가는 인간의 기질적 고독과 허무를 계절적 언어를 사용해 ‘매혹적 폐허’의 이미지로 완성하는 데 주력했다. 만물이 흙으로 돌아가도 이상치 않은 이 계절, 가을이란 시간을 통해 폐허의 상태를 서정적인 감성으로 전한다.
“폐허는 곧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키퍼의 평소 예술 철학이 헤레디움의 가을 산책을 이끈다. 가장 먼저 마주치는 그림은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 (2021-2023)’이었다. 릴케의 시 ‘가을날’ 마지막 연에서 제목을 따온 작품으로 샛노란 하늘과 낙엽과 꽃잎이 흩뿌려진 땅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수확의 풍요로움과 쇠퇴라는 시간의 흐름이 대치를 이루며 한 캔버스 안에 존재한다. ‘잎사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멀리 떨어진 정원이 하늘에서 시든 것처럼 느껴집니다(1995-2021)’는 셀락, 납, 숯 등 비 회화적 재료를 사용해 공허함을 묘사한다. 평면적 색채감에 이질적 물질의 병치가 한층 더 거칠고 황폐한 가을을 그린다. 주목할 부분은 두꺼운 물감에 금박과 납을 얹어 입체적으로 묘사한 나뭇잎. 납은 금속 중 가장 취약한 재료다. 이는 나약하고 작은 인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불완전하고 불순하지만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작가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꺼놓지 않는다.
이내 전시장 한가운데 버려진 듯 자리한 낯선 벽돌에 시선이 간다. 폐허 속에 피어오르는 순환의 진리, 인간 존재의 고독에 대한 탐구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2022)’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전쟁 중 태어난 성장 배경으로 인해 벽돌은 키퍼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오브제다. 키퍼에게 무너진 벽돌은 전쟁의 상처인 동시에 놀이터를 뜻한다. 모든 게 파괴됐지만 그러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 창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작가가 비극적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태도는 헤레디움의 탄생과 닮아 있다.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 지점으로 운영되던 곳은 동시대 예술적 영감을 전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과거 수탈의 아픔을 딛고 창조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역사적 가치와 재생의 의미를 가진 헤레디움의 공간에서 키퍼의 통찰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산책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인생의 허무에서 꽃피는 삶이라는 예술을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