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판단 때문에 경찰이 총을 못 쏜다, 면책권을 강화해야 해결된다”라는 문제의식만 부각되는 건 다소 우려스럽다.
박수지<한겨레>사회부 기자
원인을 알면 막연히 불안하지 않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그것을 원한, 치정, 보복 범죄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안심한다. 납득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대낮 번화가에서 벌어진 무차별 흉기 난동, 평범한 둘레길에서 불특정 대상에 대한 성폭행과 살인이 잇따라 발생하면 ‘집단 패닉’에 빠진다. 인과(로 해석할 수) 없는 세계는, 압도하는 공포 그 자체인 탓이다. 정부가 적합한 대책을 내놓기도 어렵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지원, 정신 질환자의 관리, 사회 경제적 문제의 구조적 해결 등은 시민들에겐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오답’일 뿐이다. 이런 난세는 영웅을 소환한다. 문제는 현실의 우리에겐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없다. 국가는 경찰을 ‘유사 영웅’으로 만들며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려고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8월 4일 “흉기 난동 범죄에 총기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유다. 여기서 잠깐. 잇단 무차별 범죄가 경찰이 범인을 적극적으로 총을 쏘지 못해 발생했던가, 아니면 경찰이 마땅히 총격으로 대응했어야 할 사건들이었나? 두 사건 모두 112 신고 후 몇 분 만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상황 종료’인 상태였다. 경찰을 50미터 간격으로 거리 곳곳에 깔아놓지 않는 한, 예고 없는 무차별 범죄에 대한 1백 퍼센트 대응은 불가능하다. 평소 영웅이라 하기엔 미덥지 못한 경찰에게 ‘적극적인 총기 사용’이라는 극단의 공권력을 부여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자 하는 그 마음만이 이 대책의 유일한 동력이자 근거다. 다소 논리가 정연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덜어내고, 잠재적 범죄자에게 강력한 대응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면 강력 대책이 크게 대수일까. 문제는 경찰의 ‘강력한 공권력 행사’라는 집단적인 열망이 이끄는 방향이다.
잠시 2년 전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2021년 11월엔 ‘인천 층간 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빌라에서 층간 소음 갈등으로 이웃이 위협한다는 112 신고를 받고, 경력 20년이 넘는 경위(49)는 임용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수습 단계의 20대 순경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눈앞에서 칼부림을 목격한 순경은 현장에서 ‘멘붕’이 와 금세 빠져나왔다. 베테랑 경위는 1층에서 피해자 남편과 비명을 듣고 현장으로 가다가 계단을 내려오던 순경을 만나 빌라에서 함께 벗어났다. 당시 경위는 실탄 권총과 삼단 봉을, 순경은 테이저 건을 갖고 있었다. 두 경찰관은 결국 해임됐다. 직무유기 혐의로 재판도 받고 있다. 이제는 전직 경위가 된 한 명은 지난 7월 형사 법정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유능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했을 텐데, 뼈저리게 후회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당시 “어떻게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며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현장 경찰들의 빈약한 교육 실태가 드러났다. 사건 직후 일선 경찰관들은 신참부터 경력자들까지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총을 제대로 쏠 자신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알려진 지구대·파출소 경찰 및 형사 등 외근 경찰관 7만 명의 ‘현장 대응력 교육’ 현실은, 모자란 예산 탓에 테이저 건을 1년에 한 명당 한 발씩도 채 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신임 순경을 교육하는 중앙경찰학교에서 테이저 건 실습조차 해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총기 훈련도 마찬가지. 범죄 현장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정작 경찰들은 고요한 사격 훈련장에서 표적을 맞히는 훈련만 했다. 이를 계기로 경찰이 물리력 훈련을 강화한 것은 자연스럽다. 경찰청은 올해부터 흉기 난동 상황 등 시뮬레이션 훈련을 포함한 총기 훈련을 일 년에 두 차례씩 진행하기로 했다. 중앙경찰학교의 교육 기간도 4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비싸서 못 쓰던 테이저 건 예산도 단숨에 2.5배 늘어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경찰은 조직 차원의 ‘보상’도 받았다. 흉기 난동이 벌어진 가운데 경찰관 2명이 현장을 도망쳐 회피할 수 없는 잘못을 했지만, 일각에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호응을 얻게 되면서다. 현장 경찰이 총이나 테이저 건 등을 잘못 사용하면 소송에 시달리고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는데 그 누가 쉽게 총기를 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것”이라는 경찰의 유구한 자조적 반응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대응에 실패한 경찰관 당사자조차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하고 참회했지만, 경찰 지휘부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지난해 1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경찰관이 직무 수행을 하다가 피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 책임을 감경·면제한다는 규정을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신설한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경찰의 핵심 업무를 회피했을 때 당사자는 처벌받지만, 조직은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국회가 공인해준 셈이다. 만약 인천 흉기 난동 현장에 ‘유능한’ 경찰이 있었더라면, 서둘러 개정될 법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다시 최근 상황으로 돌아와보면, 2년 전보다 분위기는 훨씬 노골적이다. 시민들의 집단 패닉이 절대적으로 강력한 경찰을 열망하고, 영화 <범죄 도시>의 마석도처럼 시민을 때려잡는 경찰을 ‘참된 경찰’로 보면서다. 이런 분위기에 경찰은 물론 국회도 거들고 나섰다. 경찰청은 개별 경찰관이 관련 소송을 당할 때 ‘고의’더라도 ‘정상 참작’이 되면 변호사 비용 지원 등을 해주기로 했다. 정상 참작에는 ‘비난 가능성’이 있다. 객관적으로 과잉 진압이 되더라도 여론이 지지하면 소송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뜻이다. 지난 8월 말 국민의힘 의원들은 직무 수행을 하다가 무려 경찰이 ‘고의’로 피해를 발생시켜도 형사책임을 면책해줘야 한다는 법안을 냈다. 중과실도 아니고 경찰이 ‘고의’로 시민의 피해를 발생시켜도 봐주자는 논리는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경찰 국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 같아 섬뜩하다. 경찰관직무집행법 1조. 경찰관은 물리력을 포함한 직권을 ‘필요한 최소 한도에서’ 행사하고 남용해선 안 된다. 법적으로 민간인에 대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인 만큼 물리력 행사에 대한 고도의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풀어서 말하면, 맨손으로 난동을 벌이는 범인에 대한 대응과 흉기를 든 채 인질을 붙잡는 범인에 대한 물리력 행사는 구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원칙은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의 안전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시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그런 점에서 경찰 일선의 “법원의 판단 때문에 경찰이 총을 못 쏜다, 면책권을 강화해야 해결된다”라는 문제의식만 부각되는 건 다소 우려스럽다. 2년 전 문제가 된 경찰의 ‘유능함’ 문제는 그새 해결되고, 법원의 판단만 문제인 걸까. 실제 일선 경찰관이 익명 커뮤니티에서 “경찰은 더는 버틸 수 없으니 국민이 각자 도생하라”며 거론한 ‘문제적’ 판례 8건 중 경찰관 개인이 배상한 사건은 ‘0건’이었다. 심지어 경찰 개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정된 사안에서도 경찰청은 “고의가 아니었다”라며 구상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미 형사적으로도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면책받고 있다. 달리 말하면, 더는 면책해줄 여지조차 없는 셈이다.
이런 취지의 기사를 쓰자 한 현직 경찰관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기자님, 결론적으로 무죄가 나더라도 소송에 시달릴 때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정중히 답장했다. “저희도 기사를 쓰고 늘 소송 위험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소송을 완전히 회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때 방법은 개개인이 오롯이 직무를 하다가 당한 소송을 책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일 겁니다.”
직업 윤리에 대해 생각한다. 성실히 훈련해 어렵고도 까다로운 상황에 알맞은 대처 능력을 키운 경찰관과, 그저 나쁜 놈만 있으면 총이나 테이저 건부터 쏘는 경찰관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과실은 물론 고의 피해까지 경찰의 직무 집행을 면책해주자는 건, 도리어 어떤 경찰들에게는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슈퍼히어로 경찰을 바라지 말자. 기자이자 시민으로서 직업적으로 유능한 경찰 조직이 되기를 지지하고 감시하자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