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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딕킨슨 “삶을 알고리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2023.11.18GQ

해리스 딕킨슨은 바빠지는 가을을 맞이하기 전에 해치워야 할 일들이 있다.

글 / 이아나 머레이 (IANA MURRAY)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야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대부분 그 야망은 멈추지 않죠. 좋은 일이 일어나도 계속 나아가고 싶어 하죠. 저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는 절대 잡을 수 없는 떨림을 계속 찾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해리스 딕킨슨은 궁금하다. “강렬한 흥분이나 큰 슬픔에 빠졌을 때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런던 달스톤의 한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의 대화는 점점 실존적인 주제로 향해갔다. 배우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딕킨슨은 오스카상 수상을 꿈꿨다.(딕킨슨은 “등을 두드려주는 격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경지에 오른 사람 그 누구에게라도 이 오스카상을 줄 수 있다”고 농담을 했다.) 그는 수년 동안 그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017년 로파이 퀴어 영화 <바닷가의 쥐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후, 스물일곱 살의 이 영국 배우는 <킹스맨>에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고급 스파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극을 기만하는 중심, 탐정 추리극 <씨 하우 데이 런>에서 허우대만 멀쩡한 인물 등 그만의 감성을 불어넣어 왔다.

이 작업은 꽤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올해 초 오스카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이자 딕킨슨이 지옥 같은 호화 크루즈에서 고군분투하는 남성 모델을 연기한 계급 풍자적 영화 <슬픔의 삼각형>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꿈꿔온 오스카 무대, 돌비 극장 무대가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마치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예상보다 달지 않은 금박 장식 투성의 디저트처럼, 마침내 원하던 공간에 들어섰지만 어딘가 어색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생각만큼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딕킨슨이 커피를 홀짝였다. 그는 열두 살 때 교실에 앉아 상상하던 오스카 시상식과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 사이 인지 부조화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괜찮아요. 어떤 일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많으니까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야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대부분 그 야망은 멈추지 않죠. 좋은 일이 일어나도 계속 나아가고 싶어 하죠. 저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는 절대 잡을 수 없는 떨림을 계속 찾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아니면 그런 걸 이런 식으로 이룰 수도 있겠죠, 음···.” 그는 적절한 말을 찾는 듯 보였다. 어떤 식으로 이룰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그저 순수한 것들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음, 모르겠어요. 돌고래를 보는 것?” 그가 웃는다. “약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아주 개성 있게 살 수 있을 거에요.”

풋볼 셔츠, 커미션. 팬츠, 마린세르.

그래서일까, 최근 딕킨슨은 돌고래를 발견하는 수준의 우연한 순간을 찾으려는 듯 다시 자신을 정비하고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다양한 배역, 비평가들의 찬사, 각종 수상으로 어지러울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낸 그는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어느 날은 인디 영화에 깜짝 출연하기도, 다음 날은 멧 갈라에서 릴 나스 엑스와 화장실에서 셀피를 찍기도 하면서 말이다. “곧 킴 카다시안이 도착했어요. 전 그들이 마저 셀피를 찍게 하고 자리를 떴죠.”

달스톤 킹스랜드 지하철역 앞에서 처음 만난 딕킨슨은 매년 8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인 로카르노 영화제 토트백을 넓은 어깨에 걸친 채,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내 키보다 훌쩍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그는 오늘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날이라며 우편으로 보내야 할 택배를 팔에 끼고 있었는데, 일단은 점심 식사가 먼저다.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 질렛 광장으로 향하다 재즈 클럽 건너편에 자리 잡은 소박한 치킨 노점에 들렀다. 딕킨슨과 이곳 가게 주인은 지역사회 봉사 행사에서 만났다. 그 후로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끔씩 이곳에 들러 동네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날은 살이 부드럽고 양념이 뿌려진 치킨을 먹으면서, 동석한 식당 주인의 친구에게서 터무니없이 비싼 빈티지 상점, 개발자들이 앞다투어 매입하고 있는 사무실 공간 소식 등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과외를 받았다.

카디건, 제냐. 네크리스, 버니.

딕킨슨은 이스트 런던의 자랑이다. 이곳은 언제나 그의 고향이었다. 몇 년 동안 상류 사회 특권층 소년 역할에 빠져들어 있던 그가 이번에는 영화 <스크래퍼>란 작품을 통해 그야말로 자신의 뿌리로 돌아갔다. 샬롯 리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스크래퍼>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훔친 자전거를 전당포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나운 소녀의 마법 같은 리얼리즘이 활기를 불어넣는 영화다. 딕킨슨은 이비자에서 클럽을 운영하다 소녀의 어머니와 재결합을 꿈꾸며 돌아온, 오랫동안 사라졌던 아버지를 연기한다. 이 영화는 딕킨슨이 살던 곳에서 20분 거리인 동네에서 촬영했다.

이스트 런던에서 태어난 딕킨슨은 외곽에서 자랐다. 그의 집 앞 고속도로와 맞닿은 도로가 도둑들에게 매우 효율적인 도주 경로였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그의 유년기는 평화로웠을 것이다. “차도 몇 번 도난당했고 집에 도둑이 든 적도 있어요.” 그는 무심하게 말한다. “한번은 누군가 은행을 털고 도로를 달려와 엄마 머리에 총을 들이댄 적도 있죠.” 고속도로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만 나도 범죄의 위협이 느껴지던 환경은 파동처럼 맴돌며 그의 일상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딕킨슨은 “바이킹이 습격해 집 안 구석구석을 파괴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곤 했다.

탱크톱, 페라가모. 쇼츠, 아디다스×웨일스 보너 at 마이테레사. 시계, 스와치. 복서 브리프, 캘빈클라인. 네크리스, 버니.

딕킨슨은 열네 살 때부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이 연극 연기 과외, 카페 서빙, 결혼식 케이터링, 호텔 룸서비스 배달, 해적 테마 생일 파티 접대, 홀리스터 매장 지하에서 옷 개기, 런던 브리지에서 쓰레기 줍기 등 여러 별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중 런던 브리지에서 쓰레기를 줍던 일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일”로 꼽는다. “제가 맡은 쓰레기통이 4개나 있었죠. 그 일이 정말 좋았어요. 단순함에는 좋은 점이 있잖아요.” 싹 비운 쓰레기통, 개운한 정신 같은.

10대 시절 딕킨슨은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점점 줄어드는 전망에 낙담했고, 대신 취업 사다리에 오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무보수로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의 보조 카메라 오퍼레이터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저는 작은 DSLR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이 제게 예산과 장비 목록을 주었는데, 제 머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죠. 저는 실제 경험보다 더 경험이 많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열여섯 살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날리우드(Nollywood, 미국의 할리우드와 인도의 발리우드에 빗댄 용어로 급성장 중인 나이지리아 영화 산업을 일컫는 말) 영화에 출연할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뜯어말렸다. 영국 왕립 해병대 입대를 고려하면서 또 다른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그때는 한 선생님이 설득해 결국 드라마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저는 삶을 알고리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딕킨슨은 계속해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며, 항상 지금 이 프로젝트가 저 앞의 인생의 문을 열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 길 위에서 딕킨슨은 아트하우스부터 멀티플렉스까지 다양한 일을 해왔다. 돈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지연된 <킹스맨> 프리퀄이나 <말레피센트> 속편같이 프랜차이즈의 잠재적 성공 가능성이 발휘되지 못한(속된 말로 망한) 블록버스터에서도 간혹 그를 볼 수 있다. 다른 젊은 동료 배우들은 일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수칙, 즉 ‘마약 금지’, ‘슈퍼히어로 영화 금지’ 같은 금기를 충실히 지킨 반면 딕킨슨은 보다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해왔다.

전 ‘그건 매우 특권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경력 초창기부터 좋은 작품만 할 수 있었던 배우들을 보면 거기에는 대부분 특권이 있었고, 이는 또 다른 지원 요소를 의미하거든요.

티셔츠, 코치토피아. 팬츠, MSGM. 브레이슬릿, 네크리스, 모두 버니. 시계, 까르띠에. 선글라스, 돌체&가바나.

“언젠가 ‘모든 것을 절대적인 예술적 진실성의 위치에서만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딕킨슨은 어떤 입장이었을까? “전 ‘그건 매우 특권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경력 초창기부터 좋은 작품만 할 수 있었던 배우들을 보면 거기에는 대부분 특권이 있었고, 이는 또 다른 지원 요소를 의미하거든요.”

“하나는 그들을 위해, 하나는 나를 위해” 전략으로 주고받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는 영화 스틸 컷들과 영화 홍보물을 감각적으로 모아두는 형태로 운영 중인 그의 소셜 미디어는 변화를 한번 겪었다. 갑자기 그의 모든 면이 끔찍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시작하면서다. 딕킨슨이 회상한다. “영화 일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의 제 인스타그램을 사람들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제가 위험한 밈을 올렸다고 지적했어요. 당시 저는 해소할 창구라곤 없는 청소년처럼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었고요. 누군가는 제가 올린 밈을 보고 ‘아, 이 사람 마약 중독자군’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그는 자유로운 게시물과 순식간에 작별을 고했다.

딕킨슨은 때때로 모욕적인 업계를 헤쳐나간 이야기도 많이 가지고 있다. <슬픔의 삼각형>에서 딕킨슨이 연기한 C급 모델 칼은 자신에게 관심 없는 에이전트들의 요구에 따라 얼굴을 비틀고 고개를 숙이며 극악무도한 캐스팅 과정을 견뎌낸다. 배우 자신도 기묘할 정도로 이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캐스팅 디렉터는 안전한 분위기를 통해 배우의 불안감을 줄여줘요.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권력을 가까이에 두고 있기도 해요. 자신들에게 주어진 통제권을 즐기죠.” 딕킨슨은 열일곱 살 때 울어야 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대본에서 읽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어느 오디션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그를 빤히 쳐다보거나 무관심한 채 다른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한 명은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고, 한 명은 휴대 전화를 보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두드리는 소리와 수동적이거나 공격적인 침묵이 뒤섞인 산만한 불협화음이 가득했다. “저는 ‘죄송하지만 저와 감독님만 촬영할 수 있게 방에서 나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들은 저를 쳐다보면서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어요. ‘다시는 만나지 말자’라는 듯 말했죠.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라고.”

티셔츠, JW 앤더슨. 팬츠, 비앙카 손더스. 슈즈, 크록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캐스팅 디렉터들은 그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끝에서 살인 A Murder At The End Of The World>에서 엠마 코린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고, 왕조 폰 에리히 가문에 대한 레슬링 전기 영화 <아이언 클로 The Iron Claw>에서 금발 멀릿 헤어스타일을 선보일 예정이며, 이후에는 딕킨슨이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멋진 오마주”라 표현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제2차 세계 대전 배경 드라마 <블리츠 Blitz>에서 시얼스 로난의 상대역인 소방관 배역을 맡았다. 새로운 ‘슈퍼맨’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이나 니콜 키드먼과 함께 에로틱 스릴러에 출연한다는 루머 등에 대해선 빙그레 웃기만 할 뿐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해리스 딕킨슨이라는 존재가 떠들썩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의 해리스 딕킨슨은 속도를 늦추지는 않지만 적어도 일을 조금 더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느 순간 그는 카페의 위층을 올려다보며, 단골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곤 말했다. “실제로 무언가를 재발견하지 않는 한 그 장소에 완전히 흡수되는 건 아니죠.” 딕킨슨이 잠시 말을 멈춘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시절 발만 동동 굴렀던 때가 있어요.” 다시 그의 생각이 꿰어지기 시작한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그냥 일이 하고 싶을 뿐이잖아요. 그런데 점점 바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 일을 항상 하고 싶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불행해지기 시작했죠. 제가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딕킨슨이 자세를 고쳐 앉곤 다시 계단을 올려다본다. 마치 돌고래를 바라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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