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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의 주인공 박정현, 최정윤 셰프

2023.12.07전희란

파이돈의 첫 번째 코리안 쿡북 시리즈.

왼쪽부터 박정현, 최정윤 셰프

GQ 무려 책 이름이 <The Korean Cookbook 한식>입니다. 부담은 없었나요?
JH 확실히 있었죠. 이 책은 지금, 한국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에 대한 책이에요. 최고의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한국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 김치찌개는 이런 음식이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통로 같은 책이었으면 해요. 우리 모두를 위한 아주 평범한 책.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온도의 언어로 써나가고 싶었고, 그러면서 부담을 좀 덜어낼 수 있었어요.
JY 요리로 돈을 번 지 26년이 되었고, 그중 13년은 요리 테크닉에 집중했어요. 10년 넘게 해외에서 이 책의 독자가 될 만한 이들과 직접 만나 소통해왔고요. 자만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하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던 시점에 공교롭게 이 책에 대한 제안을 받았어요. 덕분에 길게 고민하지 않았죠.
GQ 왜 지금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JH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되게 높잖아요. 음악으로 시작해 관심이 음식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음식에서 영화로 가기도 하고, 상호작용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렇게 관심이 높을 때 한국 음식에 대해 정리를 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심만 있고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로만 소비되면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배제된 채 유행이 끝날 수도 있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전달된다면, 그 이상의 콘텐츠가 더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이라고 생각했죠.
GQ 이 책에 반드시 담고 싶었던 건요?
JY 이 책을 쓰는 3년 동안 아주 많은 고민을 했어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방향이 가리키는 건 결국 ‘요리라는 게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었어요. 요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궁리하다 보니, 결국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더라고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지금 사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 즐기는 음식을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저희 집에 4대가 같이 사는데, 하나의 밥상을 공유하면서도 각자 태어난 나라가 달라요. 할머니가 태어나셨을 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어머니가 태어나셨을 때는 나라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저는 운 좋게도 좋은 시기에 태어났죠. 저희 조카가 태어난 지금의 한국은 선진국이고요. 태어나자마자 ‘투뿔’ 한우 곰탕 이유식을 먹고 포도 대신 샤인머스캣을 먹잖아요. 지금의 밥상을 보면 할머니와 아빠가 좋아하신 이북식 가지찜도 있고, 조카가 좋아하는 양념 치킨도 있고, 추억의 도시락에 있던 카레라이스도 있어요. 이 책에도 머물러 있는 한 시점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즐기는 한식, 지역도 북한부터 제주까지 아울렀어요.

왼쪽부터 최정윤 , 박정현 셰프

GQ 미쉐린 스타 셰프, 연구원 셰프가 만나서 더 팬시한 책이 되려나 예상했어요.
JH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고, 만드는 방법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야 보는 사람이 집에서 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길 것 같았어요. 대부분은 30분 내로 끝날 수 있는 레시피로 채우고, 재료도 대여섯 가지가 딱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어려워서 포기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JY 처음에는 둘 다 요리사인데 테크닉에 대해 더 담아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가장 중요한 것만 담으면 되겠더라고요. 정말 필요한 거 아니면 넣지 말자, 힘을 빼자. 그것이 사실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GQ 350개의 요리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겠어요.
JY 처음엔 400개도 넘었어요. 많이 줄였죠. 줄이는 기준은 꽤 명확했어요. 동시대에 많이 즐기는 음식인가가 첫 번째였고, 각 요리의 주재료가 많이 겹치지 않는 것도 중요했죠.
GQ 재료를 다양하게 두려고 한 까닭은요?
JH 해외에서 볼 때 한국은 이런 재료도 쓰는구나, 이런 재료도 먹는구나를 전달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똑같은 재료의 반복보다는 다양한 재료를 균형 있게 다루려고 했죠. 더 나아가서는 꼭 책에 나온 재료가 아니라도 각자의 문화에서 흔히 먹는 재료를 활용해서 응용해볼 수 있었으면 했어요. 가령 아스파라거스로 나물을 한다든지, 브로콜리로 한국적인 볶음을 만든다든지, 튀겨서 한국식 비건 강정을 만들 수도 있고요. ‘아, 이 재료가 없어서 안 되겠네’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고 싶었어요.
JY 350개 중 150개 정도가 채소 요리, 나물, 김치 같은 채식 요리예요. 지금 전 세계 식문화 상황을 보면 한때 육식에 치우쳤다가 요즘은 극단적으로 비건으로 가고 있어요. 어떤 분야든 지속 가능하려면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궁극적인 밸런스가 이미 한식에는 담겨 있어요. 한국인의 밥상을 보면 동물성과 식물성의 비율이 7:3 정도 돼요. 나물, 장아찌, 김치 등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지혜롭게 발달했죠. 지금 한식이 전 세계 식문화에 도움될 수 있는 역할은 저는 균형이라고 봐요.

GQ 이 책의 요리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섹시한 한식을 담고 싶었다”고 했죠. 한식의 어떤 점이 섹시하다고 생각해요?
JH 밸런스의 미학이 있어요. 균형감. 한국이란 나라는 무언가를 심었다 하면 잘 자라는 굉장히 비옥한 땅과 환경을 가진 건 아니에요. 주어진 환경을 받아 들이면서 너무 재촉하거나 멀리 가지 않고, 그 안에서 맛있게 요리해 먹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익힌 것 같아요. 그 점이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하는 고민에 여러 대답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JY 저는 섹시하다는 표현이 곧 ‘멋’이라고 봐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그러니까 가장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한국 음식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때는 되게 화려해 보이면서도 어떤 때는 굉장히 수수하고, 어떤 때는 무척 세련되죠. 좋아하는 음식 중에 ‘백화반’이 있는데, 숙주, 청포묵, 무, 더덕 등 하얀 채소와 나물로 만든 하얀 비빔밥이에요. 그 요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얀색에도 스펙트럼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걸 깨달아요. 자연이 만들어낸 하얀색을 그대로 담는 거죠.
GQ 이 책이 상상하지도 못한 어딘가에 꽂힌다면, 그곳이 어디였으면 해요?
JY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도서관?
JH 청와대 책장요. 정부에서도 한식의 가치와 가능성에 관심 가져주었으면 해요.
GQ 누구에게든 선물할 수 있다면, 누구였으면 해요?
JH 이 책에 담긴 명인분들 모두에게 전하고 싶어요.
JY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요. (별안간 코끝이 빨갛게 익는다.) 아빠가 나에게 알려준 언어가 마침내 사람들에게 퍼질 수 있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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