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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너머 살펴봐야 할 이야기

2023.12.13김은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 한 문장으로 분쟁을 정리하기엔 이들 사이 얽힌 실이 붉고 굵다.

글 / 이승원(<바이든 플랜> 저자, OBS <이승원의 월드시사W> 진행자)

“A World at War”.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관계 평론지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에 10월 30일 실린 글의 제목이다. 저자들은 전 세계가 최악의 분쟁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슬로 평화연구소의 ‘웁살라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분쟁의 수, 강도, 기간이 냉전 종식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2022년에 55건의 분쟁이 발생했고 평균 분쟁의 지속 기간은 약 8~11년으로, 10년 전 평균 7년간 지속된 33건과 비교할 때 크게 증가했다. 2023년 초 기준, 전 세계 강제 이주자 수는 1억 8천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7일 발발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그저 ‘여러 분쟁 중 하나’로 보기는 매우 힘들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너무나 오랜 그리고 뒤틀린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이 아닌 ‘봉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오히려 문제를 증폭시켜 더 큰,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동시대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극
“6407명 vs. 308명”. 유엔난민기구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다. 팔레스타인 측 6천4백7명, 이스라엘 측 3백8명으로 20배가 넘는 사망자가 팔레스타인에서 나왔다. 특히 사망자의 20퍼센트 이상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이였다. 인간의 목숨을 숫자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누적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이스라엘의 수십 배에 달한다. 국내 언론에서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이슈를 잘 다루지 않지만 끊임없는 분쟁과 살육이 있었다. 다만 팔레스타인인들 수백 명이 죽어갈 때 국내외 언론은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문제다. 총과 돌멩이의 싸움에서 팔레스타인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와중에 지난해 재집권한 극우파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서안지구마저 이스라엘 영토에 병합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협박해왔다.(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자치정부가,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다.) 손에 쥔 마지막 빵 조각마저 누군가가 빼앗겠다고 죽이고 때리고 협박할 경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종종 최악을 선택한다. 지난 10월의 비극적인 하마스 공격처럼.

#역사
지도를 보면 사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들의 비극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영국으로부터 시작됐다. 약 2000년 전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세계 각지로 흩어졌고, 이 기간 동안 아랍인들은 이 땅에 자리 잡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내 아랍인들의 군사 협력을 얻기 위해 그들의 독립을 약속한다.(1915년 후세인·맥마흔 서한.) 그러나 전쟁 비용 등 유대인들의 힘도 필요했던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라는 또 다른 약속을 한다.(1917년 밸푸어 선언.) 지킬 수 없는 이중 계약을 한 셈이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했고, 결국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영토의 약 56퍼센트를 유대 국가에, 약 43퍼센트를 아랍 국가에 할당하라고 결정한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영토 대부분(약 87퍼센트)을 소유하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극히 일부(약 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반면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유엔 결정을 환영하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한다. 다음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 전쟁(일명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은 유엔에서 승인한 영토를 넘어 이웃 아랍 국가들의 영토까지 점령한다. 이집트 북부 시나이 반도, 지중해 해변 가자지구, 시리아 접경 부근 골란 고원 등을 점령하며 주변 모두를 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유엔은 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제242조)을 통해 이스라엘에 점령지 영토 반환을 명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유엔 결정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오히려 불법으로 점령한 곳에 정착촌을 건설한다. 내쫓긴 팔레스타인인들이 반발하면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살했다. 저항이 계속되자 이스라엘은 2007년 장벽을 치고 물과 전기, 식료품 등 기본적인 생필품마저 차단하며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을 만들었다. 하마스가 터를 잡고 있는 가자지구가 그곳이다.

#네타냐후
하마스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판 ‘9.11’로 불린다. 미국의 9.11 테러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 사실이다. 힘을 바탕으로 한 우위를 자랑해온 이스라엘은 모사드와 같은 우수한 정보력, 아이언돔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주변국을 압도해왔다. 이에 비해 하마스의 무기는 말 그대로 초라하다. 이번 공격에 사용한 까삼 로켓은 설탕 등을 조합해서 만든 재래식 무기로, 파괴력도 사거리도 이스라엘의 무기와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럼에도 가자지구의 지방정부이자 무장정파인 하마스는 무모한 공격을 감행했다. 원인을 찾자면 다시 이스라엘, 특히 네타냐후를 봐야 한다. 1996년 처음 총리가 된 네타냐후는 2022년 12월 무려 세 번째 총리직에 복귀해 집권하면서 극우파들과 연정을 이루고 있다. 2019년 이스라엘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강경책을 고수해왔고,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일명 ‘사법개혁’을 밀어붙여 자국민 30만 명이 연일 시위를 벌이는 상황을 초래한 인물이기도 하다. 집권 이후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확대, 극우파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동 예루살렘 이슬람 성지 방문 강행 등 극우 정책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무엇보다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더욱 축적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 모든 비극은 정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 저 옛날 이중 플레이를 한 제국주의 영국부터 무심했던 국제사회, 현재의 네타냐후까지 모두가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소용돌이
‘10.7 하마스 공격’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전쟁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변할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바이든 정부가 백방으로 뛰고 있는 모습만 봐도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지, 중동을 넘어 세계 질서의 미래 모습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말해준다. 지난 2월 미국 외교협회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포린 어페어스>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위험한 상황이 수렴되고 있으며, 2023년의 전망은 암울해 보인다”라는 글을 썼던 조지타운 대학 다니엘 바이먼 교수는 이번 전쟁을 보며 “절망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결론, 즉 세 번째 인티파다(Intifada, 민중 봉기)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라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자지구 주민 다수가 비록 하마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이 격해질수록 결집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영토를 넘어서는 확전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0년 만에 겨우 발을 빼고 중국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려는 미국으로서는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든 것이다. 중동이라는 화약고가 불타오를수록 가장 깊게 개입할 수밖에 없는 곳은 미국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로감이 쌓인 상황에서 이-팔 전쟁은 더욱 깊은 수렁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까지 신경 써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정말 피하고 싶은 숙제들이다.

평화를 지키려면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 절망에 빠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절규와 반발은 정치, 외교, 대화, 전략이 빠진 강경 일변도의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힘만을 강조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이스라엘이 수십 년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교한 정책과 끊임없는 대화, 그리고 협상이 필요한 이유다. 북한과 적대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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