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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사랑한 한글 단어 18

2024.01.04조서형

‘우유’를 사랑한 핀란드 사람은 이 단어가 들판에 서 있는 두 마리 젖소 같다고 했고, ‘반찬’이라는 단어를 좋아한 미국인은 고양이 이름을 반찬이라 지었다. 열여덟 명의 외국인이 답한 가장 좋아하는 우리말 단어.

나비

한국 사람이 고양이를 “나비야”라고 부르는 게 좋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길고양이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다르다. 스트리트 캣을 연약하지만 강인한 꼬마 모험가로 생각하는 것 같아 낭만적이다. 나비는 발음도 쉽다.
🇺🇸 Derek Henry, 33, 마케터, @de.henry

반찬

나는 미국에서도 매년 김치를 담글 정도로 한국 음식을 사랑한다. 처음 한국 음식을 알게 되어 먹기 시작했을 때 반찬은 친절함의 상징이었고 음식의 풍족함을 나타냈다. 한국 음식은 늘 다양하고 맛있게 내 건강에 신경을 써줬다. 나는 매일 스스로 3~4개의 반찬을 만들어 음식을 대접한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한때 같이 살던 고양이 이름도 ‘반찬’이었다. 다시 들어도 정말 귀엽고 따뜻한 단어다.
🇺🇸 Benjamin Baker, 시니어 디자인 프로젝트 매니저, @gentlemynmyles

괜찮아

말과 뜻이 모두 좋다. “괜찮아”라고 말할 땐 정말 괜찮아지는 기분이 든다.
🇯🇵 Kento Imamura, 38, 도시재생 기획자, @kentomura

우유

마트에서 처음 이 글씨를 보자마자 귀엽다고 생각했다. 들판에 서 있는 두 마리 젖소 같기도 하고 손을 잡고 서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말을 배우기 전에 배웠던 다른 외국어는 알파벳을 사용했기에 한글의 생김새에 더욱 관심이 갔다. 새로운 글씨를 배우는 건 어렵고 재밌었는데 그중에서도 우유는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줬다. 입을 모아서 발음할 수 있고 받침이 없어 아기도 말할 수 있다. “우유”
🇫🇮 Helen, 35, 간호사

막걸리

먹고 마시는 일을 워낙 좋아해서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에 관심이 많다. 막걸리는 발음이 굴러가듯 부드럽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좋은 막걸리를 닮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막걸리를 정말 자주 마셨다. 막걸리로 만든 막걸리 술빵도 많이 먹었다. 술빵은 정말 부드럽고 달콤하며 포근한 웰 메이드 빵이다.
🇫🇷 Romain Clement, 41, 자전거 프레임 빌더 @el.picaro

왔다갔다

이 단어는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다. 머릿속에 지그재그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 MJ, 31, IT 종사자 @emay.jota

아직 멀었어요 

한국말을 처음 배울 때 한국 사람들은 내게 꼭 “한국말 잘하네요”라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내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짧은 말을 할 때도 꼭 칭찬을 해줬다. 그때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한국말이 모국어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뭐라고 표현하는지 궁금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아직 멀었어요”라고 한다. 그때부터 아직 멀었다는 겸손의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훨씬 한국말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누군가 내게 말을 잘한다고 칭찬하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아유, 아직 멀었어요”
🇬🇧Marcus Gomersall, 초등학교 선생님, @probably_riding

메롱

정확히 다른 외국어로 대체되지 않는 한국어라 좋다. 혀를 내밀며 동시에 말할 수 있다는 점도 재밌고 혀로 입천장을 치며 발음하는 일도 즐겁다. 글씨로 써놓은 것만 봐도 약이 오르고 귀엽다.
🇺🇸 Nolan Cobin, 29, 자전거 메신저, @nolleepollee

너무 맛있어요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과 프랑스 혼혈이다. 한국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익숙하진 않아 새로 공부해야 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즐겨 사용한 말은 “너무 맛있어요” 다양한 음식을 고민하고 선택한 다음 그에 따른 결과물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기도 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이 말을 할 때는 ‘너무’를 길고 크게 강조해서 말하는 게 좋다. 대체로 맛있다는 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Anne, 33, 무역업, @tip.top.tip.top

내가 이해한 바로 정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어디에서든 한국인의 환대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주의가 지배적인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종종 나도 정을 더 배우고 실천할 수 있었으면 바란다. 한국을 떠올리면 나는 이제 이 단어가 떠오른다 ‘정’
🇺🇸 Taylor Walls, 29, 국립 공원 관리원, @taylor.wabe

파이팅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일명 콩글리시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파이팅’만큼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파이팅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를 가장 긍정적으로 유형화한다. 많은 맥락을 세 글자에 간단하게 넣은 표현으로 당면한 과제를 인내하고 극복할 힘과 의지를 준다.
산길을 따라 하이킹을 하거나 긴 자전거 코스에서 파이팅이 울리는 것을 자주 들었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을 막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얼어붙은 1월의 아침에도 나와 친구들은 ‘파이팅’을 나누며 서핑을 나간다. 따뜻한 침대에 남아 있는 대신 겨울 바다에서 패들링을 하고 파도를 타며 계절을 즐길 용기가 생긴다.
올림픽 역도에서도 ‘파이팅’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 선수가 다음 리프트에 도전하기 전에 동료 선수들이 일제히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지지하는 힘에 서양 온라인 매체가 주목한 바 있다. 한 주의 일을 앞둔 월요일에 나는 사람들에게 그 주를 힘차게 극복할 수 있도록 파이팅을 외친다. 친구들이 출장을 가거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을 때도 파이팅을 전한다. 내가 여기 응원하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 Sam Bristow, 35, 건축가, 영어 강사 @your__incrediblygoodfriend_sam

배고파

학교를 다닐 때 한국 친구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 너무 자주 들어서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입술을 오므렸다 여는 ‘ㅂ’,’ㅍ’ 발음이 많아 재미있다. 비슷한 말로 “배고파 죽겠어”도 있다.
🇨🇳 Chen, 42, 투자 전문가

숭배

숭배는 선배와 비슷하게 들린다. 선배는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숭배는 높은 사람을 우러러 공경하는 말이라서 좋다. 내 여자 친구는 나의 선배이고 나는 그를 숭배한다. I like it because I worship my BAE.
🇨🇦 Oli, 29, 과학 교사, @zhao_olivine

어이없어

처음 한국에 와서 근사하고 멋진 걸 볼 때마다 “와, 예쁘다”라고 말했다. 부정확한 발음과 부족한 한국어 공부로 그게 “어이없어”라고 들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한국 친구가 알려줬다. 길을 돌아다니며 어이없다고 말한 나를 생각하니 진짜 어이가 없다. 어이없던그때 실수가 이젠 추억이 되어 가장 아끼는 한글 단어로 남았다.
🇫🇷 Farah Kheli, 30, 호스피탈리티 매니저, @farah_kheli

이런 말은 영어에 없다. 사랑이나 애정, 호감으로 번역될 수 없는 한국만의 단어다.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정에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렵지 한국에서 정을 느끼는 일은 매우 쉽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서울에 살면서 친한 친구들 뿐 아니라 낯선 사람과도 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12년 동안 계속 살고 있다.
🇬🇧 Jenny, 44, 베이커, @lark_seoul

아이씨

한국 사람들이 이 말을 나쁜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내겐 전혀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무해하고 귀엽게 느껴진다.
🇮🇩 Dhenaldi Ferdinand, 29, 학생, @ddhenfferd

반찬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거의 가장 처음 외운 단어다. 한국에서 식탁을 가득 채운 반찬은 나의 큰 기쁨이었다. 접시를 채운 반찬마다 맛이 다르고 가게마다 또 그 맛이 달라 식사 시간이 기다려졌다. 발음이 귀엽고 재밌어서 자꾸 말하고 싶은 단어다. 반찬, 좋아요!
🇺🇸 River Murdock, 26, 자전거 기술자 @river_murdock

멋있어

쿨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칭찬하기에 가장 좋은 단어다. 여자, 남자, 물건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 ‘맛있어’와 비슷하단 점도 마음에 든다. 둘 모두 긍정적인 단어라 더 자주 말할수록 더 기분이 좋다.
🇫🇷 Baptiste, 32, 해방촌 카페 ‘TOUSKI’ 운영, DJ, @ohh.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