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아우디 A8을 타고 오스트리아로 가서,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참가했다.
매년 7월 말부터 40일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선 음악 축제가 열린다.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잘츠부르크로 모여든다. 올해로 91년째다. 아우디가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의 공식 후원자로 참여해온 건 올해로 16년째로, 지난 199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올해는 뉴 아우디 A8 1백여 대가 행사에 참여하는 VIP들을 위한 의전차로 제공됐다.
8년 전의 모차르트 생가엔 그가 살아 있을 때의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포스터가 전시돼 있었다. “모차르트가 연주하는 피가로의 결혼! 7월 31일 오후 7시!”지산 록페스티벌에 매시브 어택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흥분과, 모차르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잘츠부르크 사람들의 쾌락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우디 코리아가 VIP를 초청해 음악축제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006년부터였다. 올해는 공식 딜러의 대표와 몇 명의 기자, 가수 이현우가 참가했다. 모두 검정색 수트와 드레스를 입었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 가수들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일말의 예의로. 7월 31일의 잘츠부르크 시내의 흥분은 20세기 초 그 골목과 닮아 있었다.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열리는 극장 앞에 있는 도로를 기준으로, 현지 분위기는 미묘하게 갈렸다. 이날 공연은 VIP들을 위한 일종의 시사회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극장 입구 앞 도로는 자연스럽게 경계선이 되었다. 극장 쪽으로, 검정색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청중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를 초대했거나, 초대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첼로의 가장 두꺼운 현만 켜서 내는 소리 같았다.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총총히 걸어가는 단발머리 여자가 안나 윈투어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을까? 건너편에는 편한 복장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풍경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명망 있는 연예인, 기업인들이 속속 도착해 A8에서 내렸다.
최초의 오페라는 159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들어졌다. 초기의 지향점은 지금보다 문학적이었다. 그리스 비극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곧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무대 예술이 등장했다. 오페라는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문학을 한꺼번에 흡수했다. 당시의 청중은 파리넬리 같은 스타에 열광했다. 그들은 상위문화의 정점에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오페라는 여흥의 정점으로서 명확했다.
그 날 아침, 뮌헨에서 오스트리아까진 뉴 A8의 뒷좌석에 앉아서 이동했다. 운전은 검정색 수트를 입은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의 진행 요원이 했다. 덩치가 강호동 같은 금발 곱슬머리 청년이었다. 나는 조수석 뒷자리 상석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시트는 비즈니스 클래스의 의자처럼 모든 각도로 조절할 수 있었다. 마사지 버튼을 눌렀을 땐 등 뒤가 간질간질했다. 몸이 느끼는 감각은 그게 전부였다. 어떤 길을 지나고 있었을까?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을까? 이제 막 방학이 시작된 뮌헨의 고속도로엔 짐을 가득 실은 차들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럴 때의 지루한 정체는 인식하지 못한 채 다만 눈을 감았다.
4.2리터 FSI 엔진이 들어가는 아우디 A8의 최대출력은 372마력이다. 제로백은 5.7초, 최고속도는 시속 210킬로미터로 제한돼 있다. 차체는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SF)’이라는 이름의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경량화가 핵심이다.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사용으로 차체의 무게는 6.5킬로그램 가벼워졌다.
이런 수치들이, 어쩌면 자동차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도 있다. 공학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뒷좌석에서 눈을 감았을 때의 안락, 늘어뜨린 오른손에 느껴지는 가죽의 감촉, 손가락 끝에 닿은 스티치의 섬세함, 눈 감기 전에 설정해놓은 온도 그대로 솔솔 나오는 찬바람이 한 데 모였을 때의 풍만함을 온전히 설명하진 못할 것이다.
모든 비싼 차들이 일관적으로 이런 느낌을 주진 않는다. 운전석이 아니면 탈 이유가 없는 차가 있다. 한국에선 뒷좌석에 타는 게 당연한 차지만, 반드시 운전을 해봐야 하는 차도 있다. 굳이 운전대를 잡을 이유가 없는 차도 물론 있다. 모든 건 운전석과 뒷좌석에서 각각 느낄 수 있는 쾌락의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아우디의 기함 A8의 지위는 독특하다. 운전석과 뒷좌석에서의 쾌락은 정확히 같은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날 오페라의 반주를 담당했던 빈 필하모닉 오케트라의 지휘자가 느끼는 쾌감과, 객석에 앉은 예민한 청중의 쾌감을 수치로 갈음할 수 있을까? 아우디는 누구도 보채지 않는다. A8은 그중 의연하다. 뒷좌석에선 물색없이 운전석을 욕망할 필요가 없다. 운전석에선 뒷좌석의 안락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결국 차 안에 앉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상황에 집중하게 된다. 어디서나, 같은 정도로 즐겁기 때문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도, 곱슬머리 청년이 운전했다. 나는 조수석에서 그를 채근했다. 더 빨리 달려보라고, 스포츠모드로 밟아보라고, 가장 빠르게 코너를 꺾어보라고. 결국, 남은 길은 내가 운전하겠다고. 청년은 운전석을 순순히 내주지 않았다. 손님의 제안때문에,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착까지 20분 남짓 남았을 때, 핸들을 잡을 수 있었다. 50마일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트와 사이드미러, 백미러를 조절하고 엔진을 껐다가 곧 다시 걸었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로운 오스트리아 지방도로를 달렸다. 한 번만 시동을 걸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던 일곱 살, 평행주차에 절절 매던 스무 살, 지휘자의 눈주름까지 세세하게 보이는 귀빈석에서 오페라를 감상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지금이 그 짧은 밤 길에 다 있었다. 8단 자동변속기의 변속 충격은 느끼지도 못한 채, 바다에 누워 둥둥 뜬 것처럼. 아우디 뉴 A8은 그런 감각의 자동차였다. 선망과 절제 사이에서 더 빠를 수 있는 힘을 감춘 채 안락했다.
갑자기 핸들이 진동했을 때 정신을 차렸다. A8엔 ‘레인 어시스트’ 라는 기능이 있다. 속도가 시속 65킬로미터 이상일 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이탈하면 핸들이 휴대전화처럼 진동한다. 동남아 스콜처럼 소나기가 내렸던 한국의 여름밤, 중앙선도 잘 안 보이는 밤이라면 다만 조금 더 자동차를 믿고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응형 크루즈 콘트롤은 다른 방식의 편안함을 준다. 시속 210킬로미터 내에서 앞 차와의 거리와 속도를 알아서 조절한다. 완전히 정차한 상태에서 다시 출발할 때도, 앞차가 움직이면 A8도 알아서 출발한다.
호텔이 가까워졌을 때, 곱슬머리 청년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서 다시 바꿔야 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제가 정말 곤란해져요.”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이번엔 다시, 뒷좌석에서 눈을 감았다. 음악축제에서 오페라를 감상한 날은 일정의 셋째 날이었다. 둘째 날은 독일 뮌헨 북쪽 도시 잉골슈타트에 있는 아우디 박물관에 들렀다. 지금까지 아우디가 만들어온 모든 역사적인 차들이 전시돼 있었다. 지난1936년, 이탈리아 고속도로 아우토 스트라다에서 시속 320킬로미터를 기록했던 아우토 유니온 타입 C 스트림 라이너의 실물도, 영화 <아이, 로봇>에서 윌 스미스가 타고 다녔던 자동차도, 아우디 A1도 있었다.
박물관 앞에 있는 넓은 발코니에선 자동차를 수령하기 위해 공장을 찾은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독일에선 가족을 들이는 마음으로 자동차를 받으러 공장으로 간다. 역사를 전시하는 자동차 회사, 그것을 존중하는 소비자, 아버지가 차를 사는 마음을 지켜보는 아들이 잉골슈타트 아우디 박물관 안 마당에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차를 만드니까, 비싸서 부담스러운 대신 조금 더 이해하는 마음으로 타게 된다. 뉴 아우디 A8은 11월 출시 예정이다. 가격은 미정.
-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