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 작은 빛일지라도.
기술보다 스타일이 빛나는 프리 서퍼
마이클 페브러리 Michael February는 곱슬머리에 큰 미소를 가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출신의 흑인 서퍼다. 그는 경쟁이 아닌 자유로운 서핑을 즐긴다. 페브러리의 서핑을 보고 있자면 파도타기는 기술이 아닌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6피트의 짧은 보드 위에서도 스텝을 밟는 그의 모습은 재즈의 선율에 그루브를 타는 댄서 같다. 그의 서핑이 WSL 우승자들보다 내게 더 많은 영감을 주는 이유다. 이재위, 디지털 디렉터
위스키를 뛰어넘는 데킬라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까지 미국 시장을 강타한 건 다름 아닌 프리미엄 데킬라였으리라. 지난여름, 좋은 기회로 프리미엄 데킬라 브랜드, 클라세 아줄 Clase Azul의 7가지 라인업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중 한국에 아직 출시 전인 ‘클라세 아줄 울트라 Clase Azul Ultra’가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아, 셰리 위스키가 필요 없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데킬라의 스펙트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정도로 셰리 향, 자두, 시나몬, 바닐라 향이 혀에 녹진하게 남아 코로 올라왔는데 줄어드는 게 아쉬워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며 아껴 마셨다. 이날 이후로 위스키만 즐겨 마시던 내게, 아직 메인 스트림의 주류는 아니지만 마음속 1등은 프리미엄 데킬라, 클라세 아줄이 됐다. 구보람, 브랜드 매니저
Simply Good
화이트 티셔츠는 나에게 속옷과도 같다. 한여름이고 한겨울이고 계절과 관계없이 매일 갈아입기 때문. 슈프림과 헤인즈가 컬래버레이션한 이 화이트 티셔츠는 부들부들한 소재, 적당히 비치는 두께, 살짝 파인 네크라인, 내 몸에 딱 맞는 사이즈, 눈에 띄지 않는 로고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든다. 한 팩에 3장. 심지어 가격도 착해서 주기적으로 새 제품으로 교체하며 입기에 좋다. 박스째 옷장에 쟁여두고 싶은 내 마음속 1등 티셔츠! 신혜지, 패션 에디터
교자, 딤섬이 울려 퍼질 때 끝까지 외쳐보는 근본 만두
‘홍참만’이라고 불리는 진득한 맛집이 있다. 많은 만두 주류 집이 생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근본을 깨부순 집은 감히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서울 이수의 ‘홍콩참치만두’는 다르다. 저녁 시간대면 늘 웨이팅이 길었는데 새 단장을 마쳐서 이제는 퇴근하고 ‘혼맥’도 가능하다. 운영하시는 이들은 중국, 홍콩 분들로 근본을 맛볼 수 있으며 소통도 문제없다. 거를 타선은 없지만 히든 메뉴는 계란볶음밥, 배추만두. 오연경, 디지털 에디터
먹방 중의 먹방, 삼신할머니의 좌표 설정 오류 – 한식 사랑 일본 아재
‘Mukbang’의 종주국인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최애 먹방 채널은 일본에 사는 일본 아재의 한식 브이로그 <강효TV>다. 일단 이건 이렇게 먹으라고 간섭하는 먹스플레인에 대응해 “조언하지마 지적하지마”를 부제로 내건 것부터 속 시원하다. ‘Japanese Ahjussi’를 자처하는 야스타카 씨의 한식 사랑은 베란다에서 솥뚜껑 삼겹살을 먹는 정도는 귀여운 경지에 이르렀는데, 마당에는 한국 고깃집의 깡통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으며, 부산 해녀촌식 성게김밥 한 상 차림을 차려 집 근처 강가에 영도를 소환하기도 한다. 집에서 직접 백숙을 푹 고고 옛날 통닭을 튀기고 간장게장을 담가 먹는 식단은 전생이 의심될 정도. 무엇보다도 이 채널의 매력은 대부분의 일상이 90대 ‘할매’의 식사를 챙겨드리는 효심이라는 점. ‘이상한데 효자’인 일본 아재의 영상을 보다 보면, 먹방이 주는 대리만족은 둘째치고 일본 할머니가 생긴 기분이 든다. 하예진, 디지털 에디터
창작의 놀이터
수많은 AI 툴이 나와 있지만 프롬프트를 생각하기 어려워 이를 위한 책까지 발매되고 있는 상황에, Labs.Google은 AI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연구하고 신기술을 보여준다. 사람의 생각을 입력하는 과정에서의 고민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해 연구한 흔적이 느껴지고, 결과물도 Midjourney나 Dall-e보다 트렌디하다. 기술적으로 훌륭하기보다 감각적으로 훌륭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여주어 디자이너인 내겐 실용성 있는 툴이었다. 특히 Labs.Google의 TextFX는 단어 하나만 입력하면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 단어와 문장을 생성해내 아이디어를 얻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그냥 가지고 놀면 작품 하나가 나온다. 사람은 그저 생각을 탄생시키기만 하면 된다. 선종민, 아트 디렉터
Classic Is Classy, Condesa Gin Clásica
니트로 마시는 진 한 잔은 대체 불가한 행복이다. 콘데사 진 Condesa Gin은 멕시코시티의 가로수 울창한 지역에서 이름을 땄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보태니컬 풍미와 이국의 풍경. 팔로 산토, 세이지, 엘더 플라워 등 원초적인 허브 향들이 독특해 마음에 들었다. 위스키가 가고 데킬라가 오는 요즘, 난 묵묵히 진의 길을 간다. 임채원, 디지털 에디터
나만 아는 낙원이 내게, 쇼난 비치 FM 78.9
쇼난 비치 FM 78.9는 가나가와현의 지역 라디오 방송이다. 쇼난은 서핑, <바닷마을 다이어리>, <슬램덩크>의 배경으로도 유명하지만, 북적이는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돈은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가게들과 (대체로 그곳의 단골인) 남들 좋다는 것엔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쇼난 비치 FM은 꼭 이 지역의 풍경 같아서 하와이풍 오코노미야키 같은 맛이 난다. 적당히 촌스럽고 퍽 멋진 퓨전의 맛. 플레이리스트는 주로 재즈, 힙합, 밴드 음악이다. 78.9에 주파수를 맞추고 쇼난 비-루를 마시면 나만 아는 낙원이 내게 온다. 전희란, 피처 에디터
레이트 어답터의 일레트로닉
애플 뮤직에서 ‘쉐어 플레이’라는 신기한 기능을 발견했다. iOS 15.1부터 지원한 한 서비스로, 애플 뮤직 사용자끼리 재생 노래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다. 얼마 전 우연히 접한(고백하건대 에디터는 내로라하는 ‘레이트 어답터’다) 쉐어 플레이는 신세계를 열어줬고, 짝꿍과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는 간지러운 취미가 생겼다. 그 덕에 알게 된 ‘폴로 앤 판 Polo & Pan’은 요즘 내 마음속 1등 아티스트. 몽환적인 프렌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묵은 피로를 눈 녹듯 씻어준다. 가끔 허무맹랑한 공상에 빠지기도 하는데, 복잡했던 머리가 순간적으로 정리되고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찾아온다. 정유진, 패션 에디터
딸의 사생활
2023년 9월, 딸이 태어났다.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른다. 똑같은 장소에 표정만 다른 사진이 수두룩하다. 디자이너 팬 림은 가족과의 풍경, 소리, 냄새 등의 경험을 하나로 모은 <러비시 팸진 Rubbish Famzine>을 2011년 창간해 10호까지 만들었다. 장인 수준의 품질과 생동감-구겨짐-이 느껴지는 수작업 잡지다. 매 호 주제에 맞는 패키지, 스탬프, 스티커, 포스트잇, 인화된 사진, 집게 제본 등 일반적인 매거진에서 인쇄만으로는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겼다. 사진은 여러 장이지만, 딸은 오직 하나고, 그 마음을 이제 알 것 같다. 이달 마감이 끝나면 기획 회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임태호, 아트 디자이너
모두가 가벼운 트레일 러닝화로 갈아타도 포기할 수 없는
산에 가면 러닝화를 신은 사람들이 보인다. 외형이 날렵하고 바닥이 푹신한 트레일 러닝화 사이에 나의 무거운 중등산화가 있다. 아웃도어 매체에서 일을 시작하던 때 무리해서 사 신은 대너 라이트다. 이 신발을 신을 땐 손에 힘을 주어 끈을 최대한 조인다. 흐물흐물 굽어 있던 허리와 고개까지 꼿꼿하게 펴진다. 험준한 길을 아무리 걸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시장에 아무리 가볍고 산뜻한 새 신발이 나와도 이 우직함은 이길 수 없다. 조서형, 디지털 에디터
나만 알고 싶은 레트로 아티스트
사우스빅 Southbig은 픽셀아트, 옛날 포스터와 같은 레트로한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 작가다. 그렇다고 작업물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최근 작업물에서는 AI를 활용해 올드 매킨토시 Macintosh와 486 컴퓨터 같은 옛날 기기에 인터랙티브한 요소를 도입해 작품을 구현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디지털과 실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실험적 시도들을 보면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다. 유준희, 디지털 에디터
그들의 모습이 예뻐 보여서
나도 처음엔 그랬다. 제목을 듣고 경계했고, 포스터를 보고는 되물었다. “이거 맞아?” 감독은 고봉수.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는 대체로 같아서 나 같은 팬들은 이들을 한데 묶어 ‘고봉수 사단’이라 부른다. 이들이 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보 같은 열정’, ‘순수한 용기’, ‘(정)답 없는 돌진’ 같은 짠내 나는 모습들이다. 동경은 가질 수 없음에서 출발한다 했나. 우당탕탕 이들의 모습이 예뻐 보이는 건 나는 그럴 수 없어서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들이 만든 영화를 좋아하는 건 기꺼이 그럴 수 있는 이들을 한가득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봉수 만세! 신기호, 피처 디렉터
모두가 이마세를 들을 때 듣는 나만의 J-Pop
‘Comedy’, 국민 MC 유재석을 닮아 호시노 재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호시노 겐의 곡이다. 우연히 콘서트 라이브 영상을 보고 알게 된 곡이자, 유명 애니 <스파이패밀리>의 엔딩곡이기도 하다. 출근할 때, 공부할 때, 산책하러 갈 때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곡. 장난스러우면서도 다정한 가사가 맘에 든다. 음원도 좋지만, 호시노 겐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있는 요코하마 아레나 라이브 영상을 추천한다. 라이브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호시노 재석, 아니 호시노 겐이 잘생겨 보인다. 조승언, 디지털 에디터
오타니 말고 소이치로
작년 월드 베이스볼에서 모두가 오타니를 외칠 때 선수단 속에서 발견한 보석, 일본 리그의 오릭스 버팔로즈의 야마자키 소이치로.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 나무위키 정독부터 시작해서 신인 시절 인터뷰, 최근 근황 등을 하루 종일 서치한 뒤 더 좋아할 것인가 그만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장장 일주일 밤을 소이치로로 보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있어 영어 기사로 곧잘 접할 수 있는데 소이치로는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어 서치가 더디다. 그 이유로 오랜만에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다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박지윤, 디지털 에디터
구글맵에 별 10개 찍고 싶은 숙소, 코무네 리조트&비치 클럽 발리
문득 일상에 지칠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다. 발리에서도 한가롭고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지역이지만 거친 파도를 찾아 서퍼들이 모여드는 곳. 그래서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객실에 들어선 순간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자유로운 분위기, 수영장 안 스툴에 앉아 거친 파도에 날렵하게 몸을 싣는 서퍼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평화로워지는 매력 가득한 호텔이다. 내 발리 여행의 기억이 이 리조트가 전부일 만큼. 오영주, 아트 디자이너
최악의 경차라고 불리지만 내겐 최고의 경차
‘최악의 경차’로 손꼽히는 피아트 500. 경차라고 불리지만 국내에서는 경차 규격을 초과해 소형차로 분류됐다. 고로 톨게이트에서 경차 할인은 물론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도로 위 ‘예쁜 쓰레기’다. 더군다나 잔고장이 잦아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가 기피하는 차종. 그 차주가 바로 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시길. 잔고장은 커녕 작은 접촉사고에도 상처 하나 생기지 않는다. 안정성은 물론 탄탄한 내구성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감성에 타는 차라고 일컫는 만큼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 차체 전체에서 느껴지는 클래식함과 피아트만이 가지고 있는 색감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 폐차할 때까지 모시고 다닐 귀여운 존재, 내 마음속 1등 차종이다. 김지현, 디지털 에디터
랭페라트리스 Lʼimpératrice, 이상한 푸른색
내 마음속의 1등이라기보다 나만 알고 싶은 밴드라고나 할까? 폭력적인 햇볕을 피해 우연히 들어간 LP 숍에서 들려온 말랑말랑한 디스코 사운드에 반한 것이 그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오래된 프랑스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사운드트랙과 신스팝의 향연에 취해 잠시나마 더위를 잊었던 기억. ‘Anomalie Bleue’ 이라는 제목도, 에르메스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우고 비엔비누가 그린 재치 있는 커버도 몽땅 마음에 들어 바로 구매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푸른 여름밤이 찾아오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LP는 이 앨범임에 틀림없다. 김성지, 패션 에디터
3분 21초만 내어주세요
세상엔 같은 제목을 가진 수많은 러브 송이 있지만,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 곡이다. 박태원의 ‘Love Song’.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졌으면 하는 바람. 노래가 끝나면 안부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으면 한다. “어 엄마, 밥은 먹었어?” 김아람, 아트 디자이너
나도 유럽의 지중해
발렌시아에서 시작해 생트로페를 거쳐 카프리까지. 화려함과 방탕함, 교만으로 가득한 유럽의 지중해 남부는 여름이면 빛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요란하게 반짝이는 곳이다. 거기서 비행기로 1시간 즈음 거리에 몰타섬이 있다. 할리우드 스타와 마주칠 기회도, 3스타 미쉐린 식당도 없지만 몰타에는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건축물과 보쌈이 기가 막힌 한식당이 있다. 여기에 유로와 영어가 통용되는 편리함과 소박한 물가는 이방인도 익숙하게 만든다. 고개만 숙여도 와락 눈물이 쏟아지는 시기에 찾은 몰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울퉁불퉁했던 마음이 그새 펴졌다. 함께 간 친구는 몰타라는 이름을 몸에 새기고, 나는 몰타라는 이름의 작은 곰인형을 데려왔다. 유난히 반짝인 여름이었다. 박나나, 패션 디렉터
해금과 아쟁과 지휘자
스타인웨이와 야마하 피아노의 차이를 알아채는 데만 골똘했지 해금과 아쟁 소리는 어떠한지 관심 밖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닿기 전까지는. 클래식을 이끄는 서양식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국내에는 해금, 아쟁, 피리, 운라 같은 전통 악기를 중심으로 국악을 행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있다. 저마다 다른 악기 음색을 조율해 선율로 끌어올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국악 무대에도 필요하고, ‘지휘자 프로젝트’는 이에 차세대 지휘자를 발굴하려는 시도다. 짙게 현을 눌러 낸 거문고 소리와 먹먹한 북소리, 호를 그려 버무르는 지휘자의 손끝에 굵은 빗방울이 맺히는 듯한 ‘빗소리’ 같은 무대를 보노라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 멀리 있지 않다. 김은희,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