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이나 칵테일로 만들 필요없다. 니트로 마셔도 충분히 흥을 돋울 수 있는 위스키.
글렌그란트 – 10년
사실 니트로 위스키를 마시는 것보다 하이볼이나 칵테일로 만들어야 더 흥겹게 느껴지는 건 위스키의 높은 알코올 성분 탓이 크다.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같더라도 위스키를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 느낄 수 있다. 그래서 7~8% 넘게 차이나는 게 아닌 이상 함량보다 표현력이 실제로는 더 중요하다.
글렌그란트 10은 스카치 위스키로는 허용 가능한 가장 낮은 알코올 함량 40%다. 하지만 정말 많은 위스키가 40%이므로 이것만으로 알코올이 덜 느껴질 거라 말할 수 없다. 이 위스키의 지배적인 캐릭터는 ‘청사과’로 알려져 있다. 잔에 따르고 코만 가까이 갖다 대어도 상쾌한 과일향이 시원하게 퍼진다. 확실히 밤보다는 밝은 낮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입에 머금었을 때도 청사과처럼 아주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고, 알코올은 도수가 절반도 안되는 소주보다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밍밍하다’라는 이유로 이 술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산뜻하고 가벼울 뿐 밍밍하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칵테일 새우나 비프 카르파치오를 올린 카나페와도 잘 어울린다.
글렌모렌지 – 넥타도르
글렌모렌지는 증류기의 목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긴 것으로 유명해 증류소를 상징하는 동물이 기린이다. 증류기의 목이 길면 묵직한 맛을 내는 성분들이 탈락하며, 가볍고 섬세한 스피릿만이 담긴다. 게다가 버번 캐스크를 사용해 숙성하기 때문에 바닐라 풍미를 지니는 특징이 있다. 이 원액을 세계 최고의 디저트 와인으로 꼽히는 보르도 소테른 와인을 숙성시켰던 캐스크에서 추가 숙성해 디저트 와인의 풍미까지 느낄 수 있는 라벨이 넥타도르다. 소테른 와인은 기분을 한껏 끌어올려주는 복숭아와 시트러스 풍미를 가득 담고 있기에 넥타도르에서도 이러한 향과 더불어 오렌지 마멀레이드, 바닐라, 초콜릿의 아로마가 느껴진다. 꿀, 오렌지 필을 비롯한 복잡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아까 알코올 함량이 7~8% 넘게 차이나는 게 아닌 이상 함량보다 표현력이 실제로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 거 기억이 나는가? 넥타도르는 46%이지만, 부드럽고 화사하기 그지없다. 과일 타르트, 케이크 등과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참고로 넥타도르는 단종되었고 여기에 헝가리산 디저트 와인인 토카이 숙성에 쓴 캐스크까지 피니시를 더한 ‘글렌모렌지 – 16년’으로 새로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주라 – 10년
파티를 준비하는 호스트로서 멤버 중에 한 명이 ‘피트충’인데다 나머지 멤버들이 특별히 위스키를 좋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떻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때 가장 완벽한 답을 주는 술이 주라 10년이다. 주라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주라섬에 위치한 지역 유일의 증류소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글렌모렌지 다음으로 목이 긴 증류기를 갖고 있다는 것. 그래서 글렌모렌지처럼 가볍고 섬세한 위스키를 만들지만, 피트 위스키를 만들지 않는 글렌모렌지와 달리 피티드 위스키 라인업과 논 피티드 라인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10년 라벨에는 피트가 함유되어 있지만, 피트가 어떤 맛과 향을 내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반 피트파’ 멤버가 아니라면 모르고 지나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버번 캐스크에서 10년 숙성시킨 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처리해 과일과 견과류 맛이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알코올 함량도 40%로 낮다.
피티드 위스키를 좋아하는 친구 한 명에게만 “너 평소에 이 정도 피트는 약해서 안 사마셨을 것 같아서 일부러 골랐어”라고 얘기하면 파티가 끝날 무렵 “피트는 많이 부족했는데, 오랜만에 셰리 위스키 마시니까 괜찮더라. 신경 써줘서 고마워”라는 인사를 받을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