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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의 총아,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데뷔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 4

2024.04.23김창규

<워치스 앤 원더스 2024>를 통해 데뷔한 각 브랜드의 복잡한 기계식 시계들.

❶ IWC – 포르투기저 이터널캘린더

30일과 31일의 구분은 물론 2월 말일과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으로 인한 날짜 조정까지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는 날짜 표시 기능 중 가장 정밀하고 복잡한 기술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현재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은 천체의 정확한 움직임(365일 5시간 48분 46.08초)에 맞춰 날짜를 보정하기 위해 100년마다 하루를 삭제하고, 400년마다 하루를 추가해 왔다. 그래서 100단위인 2100년이 되면 모든 기계식 퍼페추얼 캘린더는 수동으로 날짜 수정을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최초로 4자리 연도 표기 인디케이터를 퍼페추얼 캘린더에 적용했을 정도로 이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 온 IWC는 100년, 400년마다 적용되는 규칙까지 모두 입력한 새로운 메커니즘 ‘이터널 캘린더’로 위대한 도약을 이뤄냈다.

이 시계의 문페이즈는 4천5백만 년간 오차 없이 달의 삭망월을 표기하기에 ‘이터널 캘린더’라는 거창한 이름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참고로 인류의 출현이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 년 전의 일이고, 영장류의 출현이 6천5백만 년 전이니, 이 시계의 문페이즈에 오류가 생기는 시점에 인류는 물론 달까지 존재 여부를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른 미래인 서기 4000년이 되면 수동으로 날짜 보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 해를 윤년으로 할지 인류가 아직 정해두지 않아서다. 삼체 외계 문명의 침공으로 인류가 소멸했을지도 모르니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는 시기다. 시계 역사에 방점을 찍을 명작답게 지름 44.4mm의 케이스 소재는 플래티넘이다. 다이얼도 한쪽 면만 화이트 래커로 칠한 글라스 소재여서 신비로움을 더한다.

❷ 랑에 운트 죄네다토그래프 퍼페추얼 투르비옹 허니골드루멘

다토그래프는 랑에 운트 죄네의 상징적인 크로노그래프다. 허니골드는 특정 스페셜 버전에만 허락하는 브랜드만의 유니크한 골드 소재. “루멘”이라는 명칭은 다이얼을 반투명하게 만들어 야광 인덱스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드러나는 사양을 뜻한다. 여기에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옹까지 모델명에서 쉽게 기능을 연상할 수 있다. 이 시계는 미니트 리피터까지 합쳐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사양이지만 모델명에서 이 기능을 뺀 것은 ‘너무 길어서 읽기 어렵기 때문에 베푼 친절’이 아닐지 추측한다. 크로노그래프는 플라이백 사양이기까지 하다. 투르비옹은 일반적으로 동력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멈추지 않지만, 이 시계에서는 언제든 멈추는 게 가능하다. 기계식 시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기능을 하나의 시계에서 구현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동력 제어의 문제 가능성에 의문점을 갖게 될 거다. 그러나 랑에 운트 죄네는 특유의 커다란 디지털 인디케이터를 적용한 모델을 밥 먹듯이 만든다. 자이트베르크처럼 매분 단위로 안정적인 토크에 태클을 걸 가능성이 높은 시계가 컬렉션 단위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랑에의 인디케이터가 발생시킬 수 있는 시간의 오차에 대해 시장에서 그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이렇듯 토크의 균일함에 대해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매뉴팩처이기에 괴물 같은 시계를 50점 규모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탑재된 수동 칼리버 L952.4는 684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5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지닌다. 2.5Hz의 진동수는 크로노그래프 워치치고는 이례적으로 느린 것이고, 투르비옹으로 치면 일반적인 속도에 해당한다. 투르비옹 케이지가 무브먼트 반지름을 가득 채우는 사이즈이기에 더 빠르면 미학적으로 망측할 거다. 역시 랑에는 우아함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나처럼 겸손을 모른다면 이 시계의 이름은 ‘다토그래프 플라이백 그랑 컴플리케이션 스톱 세컨드 투르비옹 미니트 리피터 허니골드 “루멘”’이 됐을 거다. 그러나 랑에 운트 죄네는 무브먼트 플레이트로 사용하는 저먼 실버의 빛처럼 쿨하게 이름을 붙였다.

바쉐론 콘스탄틴캐비노티에버클리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바쉐론 콘스탄틴은 2015년에 발표한 Ref. 57260 회중시계로 <역사상 가장 복잡한 기계식 시계>의 기록을 세웠다. 시계에는 57가지 기능이 담겼다. 기계식 시계의 모든 기능을 망라해 봤자 57개씩이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리고 올해 자신의 기록을 다시 깼다. 63개 기능이 담긴 지름 90.8mm, 두께 50.55mm의 햄버거만 한 18K 화이트골드 회중시계로 말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세상에 1점만 존재하는 이 시계는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윌리엄 버클리’씨가 주문했다. 그는 보험 지주 회사의 오너이자 뉴욕 대학교 이사회 의장이라고 한다. Ref. 57260도 그가 주문해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너무 기능이 많아 일일이 설명하면 책을 한 권 집필하게 될 것 같아 새롭게 추가된 가장 대표적인 기능 하나만 소개한다. 바로 중국 퍼페추얼 캘린더다. 중국의 음력과 양력은 19년에 한 번만 동기화될 정도로 불규칙해서 이를 기계식 시계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바쉐론 콘스탄틴은 여기에 중국 농업 달력과 태양의 주기, 계절, 동지, 춘분까지 모두 포함해 2200년까지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동 달력을 완성했다. 이 기능 때문에 ‘윌리엄 버클리’씨가 중국인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계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식 시계>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새로운 기능에 대한 도전을 한 것뿐이라고 한다. 시계는 파워리저브 60시간의 수동 와인딩 사양이다. 아마 이틀에 한 번씩 와인딩을 하러 오는 직원을 고용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 그 사람 연봉이 나보다 높을 것 같다. 너무 적게 주면 앙심을 품고 훔쳐 갈 수도 있으니까.

예거 르쿨트르듀오미터 헬리오투르비옹 퍼페추얼

투르비옹은 기계식 시계의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부품인 밸런스를 하나의 케이지에 가둔 채 끊임없이 회전시킴으로써 고정된 상태일 때보다 중력의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하는 장치다. 하이엔드 무브먼트 제조에 있어 단연 가장 큰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예거 르쿨트르는 이미 2004년 자이로 투르비옹이라는 다축 투르비옹을 개발해 일반적인 투르비옹보다 훨씬 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메커니즘을 선보인 바 있다. 올해 발표한 헬리오투르비옹은 기존 2개였던 자이로 투르비옹보다 축이 하나 더 많은 3축 설계로 팽이처럼 회전하기에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회전한다. 소재 역시 타타늄과 세라믹을 사용해 내구성이 높고 가볍다. 여기에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까지 더해졌다. 각 인디케이터들의 분할이 세련된 레이아웃으로 완성해 극도로 복잡한 첫인상과 달리 가독성이 높다.

일반적인 퍼페추얼 캘린더는 사용자가 잘못 조작하면 수백만 원을 내고 AS 센터에서 시계를 분해하는 수리까지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시계는 안전장치가 있어 실수를 하더라도 간단히 날짜를 재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수동 와인딩에 파워리저브 46시간이라는 사양이 부족하게 와닿지 않는다. 듀오미터이기에 시간과 컴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 배럴과 기어 트레인 자체가 분리되어 있어 토크의 불안정 요소도 말끔히 제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