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디저트 먹기.
이럴 작정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1천6백 평에 이르는 공간, 국내외 불문 43개 브랜드, 15년 만의 리뉴얼을 단행하며 마련한 국내 최대 규모의 디저트 전문관이라는 휘황한 소개문에 이끌려, 이 새로운 꿈과 사랑의 세계에서는 어떤 맛이 날지 궁금했을 뿐이다. 마침 건넛동네에서는 이미 2022년부터 2천1백60여 평, 축구장 2개를 합친 규모보다 크다는 공간에 당시 기준 한국 최대 글로벌 식품관을 꾸리고 그중 30~40퍼센트를 디저트와 카페로 채워온 참이었다. 줄서기로 유명한 디저트 인기 가게들을 주기적으로 팝업 스토어로 끌어오는 이곳은 여전히, 특히 휴일이면 조기축구회가 열린 운동장마냥 활기로 그득하다.
대체 무슨 맛일까. 대지를 채운 달고 짜고 시고 고소한 맛의 향연은 과연 어떠할까. 유용하고 때때로 무용할지라도 멋있고 아름다운 온갖 대상을 집약해놓은 현대 사회의 오프라인 공간은 왜 디저트를 집대성하나. 어떠한 명성, 소문, 후기 같은 포장지는 벗겨두고 그 속내, 디저트 본연의 맛을 음미해보고 싶었다. 하여 개최한 <지큐> 배 블라인드 테스트, 일명 ‘눈 감고 디저트 먹기’다.(엄밀히는 ‘브랜드 가리고 디저트 먹기’. 시각도 미감에 관여한다고 여기기에 물리적으로 눈을 가리는 대신 모든 상표를 가렸다.)
시식위원은 세 명. 에디터 본인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입맛을 따라 숭늉을 좋아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육류와 매운맛을 찾는 단순하고 본능적인 미각이기에 시식 주관자로서만 자리하기로 한다. 첫 번째로 모실 위원은 이용재 음식평론가.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외식의 품격> 같이 음식과 문화, 참맛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이자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 <실버스푼>을 한글로 선보인 번역가다. 그리고 박예나 셰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새로운 디저트에 대한 갈증으로 서울에서 디저트 부티크 숍을 운영한 지 12년 차, 한국 디저트 신 흐름과 궤를 함께해온 오너 셰프다. 다음으로, 평론가, 셰프에 이어 꼭짓점을 찍자면 대중적 입맛을 대변하면서도 경험치가 풍성하기를 바랐다. 와중에 <도쿄 디저트 여행> 김소정 작가가 도드라졌다. 2023년에만 1백 곳이 넘는 일본 디저트 숍을 탐방한 미식 여행기가 출판사 눈에 띄어 출간까지 하게 된 디저트 애호가다.
마지막으로 모실 대상은 오늘의 주인공, 디저트다. 정석으로 말하면 디저트란 양식에서 식사 끝에 나오는 과자나 과일 같은 후식이다. 그러나 본 디저트 블라인드 테스트의 주무대가 된 양대 산맥 ‘디저트 식품관’에는 맘모스빵, 찐빵 같은 ‘K’ 패치가 붙은 베이커리 종류도 포함돼 있다. 과연 어디까지 디저트라 할 수 있을지 난감할 때, “삼겹살 구운 후 먹는 볶음밥도 K-디저트라 불리는 요즘, 폭넓게 즐겨봐도 좋겠다”는 박예나 셰프의 도움말을 참고해 고전에서 벗어나는 디저트일지라도 포함시켰다. 시식 디저트는 손님으로 각 브랜드에 방문 시 시그니처, 가장 인기 많은 메뉴를 물어 선택했다. 그러한 분별이 따로 없는 경우 가장 클래식한 맛으로 골랐다. 물론 모든 디저트는 어떠한 협찬, 광고, 사전 협조 요청 없이 일반 고객과 동일하게 구매했다.
이리하여 57개 디저트, 57가지 맛이 한데 모였다. 1피스씩일 때 기준 총 39만7천6백원, 2024년 최저임금 9천8백60원 대비 40.3시간 노동어치다. “귀엽네요.” 그래, 이것이 디저트가 주는 기쁨이지. 시식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곰돌이 쿠키에 짓는 시식위원들의 미소가 굳이 짚자면 나의 작정에 가까웠다. 특정 답을 바라고 시작한 테스트는 아니지만 시식회 준비로 돌아다니는 내내, 예쁘게 진열된 한 입 거리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얼굴과 스쳤다. 그 잔잔한 행복감을 지나칠 때면 자연히 ‘맛있었으면, 제발 맛있었으면’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처참합니다.” 그 바람은 곧 냉엄하고 이성적인 미각들에 완전히 해부되고 말았으나.
시작은 갓 불에 올린 찻물마냥 고요했다. 시식위원들은 평가표를 들고 각기 자유로이 디저트를 맛보았다. 허허, 흠, 음···, 별 5개를 만점으로 두고 고심의 소리가 꿈틀거린다. 이내 질문이 열렸다. “혹시 이건 피스타치오인가요? 맛과 향은 전혀 없네요.”, “0점을 줘도 되나요? 미안하다, 넌 안 되겠다.”, “2024년에 이것을 만들어 팔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시식이 시작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절반도 테이스팅되지 않은 지점에서 이미 치솟는 당 수치 따라 혈압이 높아지는 신호가 들려온다. 가만, 만약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맛보았다면 보다 유연했을까?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저희는 먹으면서 자동으로 이거 좀 아쉽다, 이거 되게 좋다, 이렇게 돼요. 저는 사적으로 S사 본점이 동네에 있어서 갔는데 먹으면서 자연히 (케이크)시트가 가볍다, 이가 없는 할머니도 드시기 좋겠다, 동시에 크림은 내 간하고 너무 안 맞아서 아쉽다 생각했거든요.” 박예나 셰프가 일컫는 “저희”란 디저트를 직접 만들거나 조예가 깊은 이들이겠지만, 생각해보면 여러분이나 나, “우리”라고 치환해도 크게 어긋나는 것 같지 않다. 시식 초반 김소정 작가가 던진 물음표에 그 근거가 있다. “가격을 배제해야 하나요? 소비자에겐 맛을 떠나 가격도 중요한 부분 같아서요.” 그렇다. 디저트 맛을 표현하는 데는 달콤하다, 녹아내린다, 여러 묘사가 있겠지만 이런 직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돈 주고 이걸 먹는다고?
본 테스트 현장에서는 가격 역시 비공개로 진행했지만 현실에서 디저트를 맞닥뜨릴 시 금액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소비한 재화는 물론 이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 여기까지 이동한 거리, 들인 시간, 소요한 체력, 전부 금덩어리나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가장 엄격하고도 분명한 잣대를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2024년 지금의 디저트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고질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시식 도중 하차를 선언했다가 “조금만 더 먹어보자” 스스로를 독려하며 포크를 쥐고 있던 이용재 평론가가 국내 식문화를 짚었다. “백화점이 왜 이렇게 디저트 편집 공간을 만들었을까요? 채울 만한 신선식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자만 해도 삶는 용, 굽는 용, 조림용, 단단하거나 푹신하게 제각각 생긴 페루 어느 채소 시장을 떠올려보면 “신선식품이 없다”는 시선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다. “디저트는 밀가루, 설탕, 지방 등으로 형태를 조형하는 음식이고 그 자리에서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현장에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그럴싸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는 최적의 아이템이죠.”
채울 만한 신선식품이 없다는 전제에 대해서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때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이 한국의 토종 먹거리 종자마저 씨를 말리거나 단순 개량시킨 여파도 들여다봐야 하기에 훗날 더 깊게 논의해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현시점 대형 백화점들이 앞다퉈 개혁하고 있는 ‘1층’ 혹은 ‘식품관’이라는 공간은 분명 폭발적으로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박예나 셰프는 상상한다. “여기서 디저트를 사서 전국 방방곡곡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나눠 먹겠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3.1절 전날 왔을 때 어린 친구들이 집에 가려고 바리바리 싼 짐과 함께 손에 디저트 하나씩 다 들고 다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큰 영광이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디저트를 매개로 나누는 기쁨, 아름다운 맛을 공유하는 추억. “그런데···.”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껏 침울해진 김소정 작가의 표정처럼 말이다. “이건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매장(본점)에서 먹어봤을 때는 너무 맛있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구워서 내주는 방식인데, 지금은 왜 이렇게 식어 있고 질긴지. 원래 맛을 아니까 혼란스러워요.”
나 역시 혼란스럽다. 김소정 작가가 짚은 C사 매대에는 분명 제품을 구워내는 틀이 있었다. 다만 열기 없이 작동이 멈춘 채였고, 어쩌면 오픈 시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했기에 준비가 덜 된 상태였나, 우리는 질긴 밀가루 반죽을 질겅거리며 이해를 도모해보았다. “이래서 저는 입점 제안들에 응하지 않아요.” 박예나 셰프가 씹다 지쳤는지 질긴 조각을 내려놓았다. “백화점에 입점하면 본점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어려워요. 수수료도 높고, 직원 몇 명 이상을 상주시켜야 하는 조건에 인건비도 추가되고, 그렇다고 그 직원이 디저트를 만들 줄 아느냐? 아니죠. 잘 보면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설비가 있는 곳은 소수예요. 만들 공간이 없어요.”
그 작은 요인들이 모여 얼마나 크게 맛의 편차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는 에디터 역시 체험했다. 심지어 결제 대기 줄 따로, 제품 수령 줄 따로일 정도로 기다려야 하고 가격은 무척 비싸며, 비둘기가 와서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노천 벤치풍 좌석일지라도 북적거리는 매장 풍경에 대체 이게 다 뭔가 어리둥절한 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인정. 그 인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심 이것은 높은 점수가 나오겠지 싶었으나 글쎄, 오늘 시식회를 위해 구매한 것은 쓴맛과 탄 맛이 뒤덮은 것이 아닌가. “매장 관리가 안 된다는 거예요.” 박예나 셰프 역시 지난번에는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은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곳인데 이 경우는 만드는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이라고 짚었다. “공정이 세밀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는 거죠.”
“문제는 이다음이겠죠. 이 공간과 디저트의 인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습니다.” 이용재 평론가의 말마따나 박예나 셰프 역시 화려한 디저트 파티 뒤 그렇지 못한 실상을 매만진다. “지금 디저트 업계는 많이 안 좋아요. 일단 재료비가 너무 많이 올랐거든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모든 게 다 올랐어요. 지금 디저트 신이 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다고 봐요. 제 주변에는 문 닫는 숍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대적으로 디저트를 조명하는 지금 이 기회가 참 잘됐으면 좋겠는데 여로모로 악순환인 거죠. 지금은 무조건 물량으로 미는 느낌이라서. 퀄리티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말이에요.” 태운 설탕의 쓴맛이 혀 끝에 맴돈다.
“혹시 디저트 숍 이름도 공개하나요?” 포크를 내려놓은 김소정 작가가 운을 띄웠다. 처음에는 그럴 계획이었다. 이 아름다운 디저트들을 여러분도 널리널리 맛보세요, 그런 마음으로. 그러나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정은 미뤄두었다. “그래주시면 좋겠어요. 왜냐면 지금 여기 나온 상품들 말고 다른 맛있는 것들도 있거든요. 이 집은 슈거 도넛이 더 부드럽고, 이 집은 크루아상이 진짜 맛있어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까, 대표 메뉴나 인기 메뉴가 아니라 각자가 맛있는 맛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맛있는 디저트가 정말 많거든요.”
“저는 한국 사회가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봅니다.” 이용재 평론가의 첨언이다. “남들 하는 거 안 하면 불안해지는 거죠. 비교적 싸고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특히 음식에서 포모가 극심하고, 이를 이용해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디저트 편집 공간은 포모의 집대성이라 봐요.”
황량해진 테이블 위에는 “그저 남과 다른 것을 하기 위한 다름”, 트렌드라는 파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사공들, 산으로 간 맛과 질, 어느 한 점이라 칭할 수 없는 얼룩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결국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게 필요해요.” 장렬하게 헤집은 디저트 잔해를 뒤로하고 박예나 셰프가 일어선다. “소비자들은 현명하게 소비해야 하고, 판매자들은 양심을 지켜서 만들어야 하고, 플랫폼으로서 백화점은 장소 제공하고 수익만 좇을 게 아니라 든든한 지원자가 돼줘야 해요.”
블라인드 테스트는 막을 내렸다. 기름진 포크들을 치우며 나는 개인 문서 속 각 디저트 숍의 이름을 지웠다.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퀄리티, 그 저하된 질은 그들만의 이름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제 진정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감은 두 눈을 뜨고 세상의 단맛, 신맛, 쓴맛, 고소한 맛을 구원해줄 이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