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선수들이 팟캐스트로 모이고 있다. 단순한 일탈인가, 코트 밖 새로운 플레이의 등장인가.
글 / 이동환(<루키>기자, NBA 전문 칼럼니스트)
NBA는 선수들이 코트 안팎에서 모두 목소리를 내는 무대다. 코트 안에서는 당연히 동료, 코칭 스태프들을 향한 목소리가 주류다. 선수들은 수시로 동료들과 소통하고, 코칭스태프에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코칭스태프 역시 경기 중에도 선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슈퍼스타들은 작전타임 중에 아예 감독을 대신해 직접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스테픈 커리 같은 선수들이그렇다. 나아가 선수들의 목소리는 코트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코트 밖에서는 비디오 미팅을 통해 전략, 전술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팀이 위기에 빠지면 선수들끼리 만남을 가지며 분위기를 다잡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각팀은 이렇게 목소리를 더 높여가고 팀을 아우르는 선수를 리더와 스타로 인정한다. 물론 이들은 팬들과도 꽤 가까이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NBA에 선수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곳이 하나 더 늘었다. 팟캐스트다. 전문 미디어인들의 전유물 같은 팟캐스트가 몇 년 전부터 선수들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겨가더니, 근래에는 현역 선수 혹은 은퇴한 선수들이 제작하는 형태로 NBA 미디어의 주류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팟캐스트가 기자, 방송인들이 취재를 통해 찾아낸 뒷이야기를 ‘전해 듣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선수들이 직접 NBA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낸다. 더 생생한 ‘진짜’ 이야기인 것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훨씬 더 생생하고 풍성한 코트 안팎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고,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팟캐스트가 큰 인기를 끌며 화제성도 갖추게 됐다.
팟캐스트에 채널을 개설한 대표적인 선수로는 드레이먼드 그린, 폴 조지, JJ 레딕,르브론 제임스 등이다. 은퇴 선수인 레딕은 이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라고 할 만하다. 소설 제목 <노인과 바다>를 딴 자신의 팟캐스트 <노인과 3점(The Old Man and the Three)>은 어느덧 1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초대형 채널이 됐고, 꾸준히 NBA의 이슈를 짚는 동시에 선수와 관계자들을 게스트로 초청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낸다. 레딕의 깔끔하고 센스 있는 진행 속에 NBA의 다양한 주제가 다뤄지고, 현역 선수들도 이 같은 레딕의 방송에 참여하는 걸. 꺼리지 않는다. 특히 기성 미디어에 대해 불만과 불신이 많은 선수들은 NBA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며, 누구보다 선수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레딕의 방송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더 선호하는 눈치다. 이것이 레딕의 팟캐스트가 가진 최대 강점이다. 레딕은 농구에 대한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팟캐스트 채널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ESPN 해설이라는 새로운 위치도 얻었다. 선수 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3점 슈터였던 레딕이, 이제는 리그를 대표하는 방송인이 된 것이다.
더 흥미로은 점은 레딕처럼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인물뿐만 아니라 폴 조지, 드레이먼드 그린, 르브론 제임스 같은 현역 선수들이, 그것도 시즌 중에 팟캐스트 방송을 만드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즌 중에도 여력이 되는 시기에는 팟캐스트 방송을 촬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내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NBA를 대표하는 악동 드레이먼드 그린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더 볼륨 스포츠>를 통해 과감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재미와 논란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 플레이오프 기간에는 다른 팀들의 맞대결 결과를 예상하기도 하고, 골든스테이트 팀 동료들이나 다른 선수들 에 대해 직설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날것 그대로의 방송인 셈이다. 선수 출신 혹은 선수가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듣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뿐인가. 팀 동료 조던 풀과 주먹질을 해 큰 논란을 일으킨 후 현역 선수 패트릭 베벌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나는 사람을 이유 없이 때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코트에서 잦은 폭력적인 행위가 잦아 징계를 받은 후에는 징계 당시의 상황과 심정, 스티브커 감독과의 일화에 대해 직접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기도 했다. 결국 그린은 지난 1월 <더 볼륨 스포츠>와 재계약을 맺고 ‘더 드레이먼드 그린 쇼’라는 방송을 새롭게 론칭했고, TNT 방송에 도 출연하면서 ‘방송인 겸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르브론 제임스는 최근 아예 마음을 먹고 방송을 론칭했다. 앞서 언급한 JJ 레딕과 함께 <마인드 더 게임 팟(Mind the Game Pod)>이라는 방송을 만든 것이다. 최근 4화까지 에피소드가 공개된 이 방송은 앞서 언급한 다른 선수들의 팟캐스트 방송과는 결이 꽤 다르다. 다른 선수들의 방송이 자신의 경험담을 푸는 쪽이라면, 르브론 제임스는 거기에 제대로 된 한 큰술을 더 얹는다. 바로 농구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다.
르브론은 NBA 역사상 가장 지능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농구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호하기로 유명하다. 르브론은 지난 3월 19일 공개된 첫에피소드에서 “양대지구 파이널에 간팀 정도면 농구 지능이 떨어지는 팀은 없다고 봐도 된다”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선수 개개인이 재능이 충분하다는걸 전제로 농구 지능을 갖춘 팀은 강팀일 수밖에 없다”라는 ‘농구지능 신봉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르브론은 이 방송을 통해 경기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다양한 작전명을 소개하고, 그 작전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막기 어려운 전술로 골든스테이트의 인바운드 패스 패턴을 설명하 기도 하고, 자신과 오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스테픈 커리가 왜 대단한 선수인지 농구의 본질을 꿰뚫는 설명을 통해 이야기한다.
NBA 최고 슈퍼스타인 르브론이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하는 발언은 ESPN 같은 기성 언론의 방송 주제가 되기도 한다. 주제를 새로 기획해야 하는 방송국에서 되레 팟캐스트에서 나온 이야기를 주제로 삼다니, 조금 과장하자면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다. 최근 르브론은 팟캐스트에서 “내가 NBA에 데뷔한 이래 리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수는 앨런 아이버슨과 스테픈 커리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이야기가 큰 화제를 모으자 ESPN은 같은 주제로 ‘르브론의 발언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를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르브론, 드레이먼드 그린, 폴 조지 같은 현역 선수들의 시즌 중 방송 활동은 “선수라면 시즌 중에는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보수적인 시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현지에서조차 현역 선수들의 잦은 팟캐스트 방송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시선이 나오기도 한다. 드레이먼드 그린의 경우 플레이오프 기간 중에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면서 구단 내부적으로 “전술이 노출될 수 있으니 자제하라”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체로 경기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이 같은 선수들의 방송 활동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추세다. 선수들의 팟캐스트 활동이 자신의 생업인 농구와 무관한 주제로 이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기성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말을 미처 다 하지 못한 선수들에겐 팟캐스트가 자신의 진짜 속내를 이야기하는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방송인, 기자들이 참여하는 기존 미디어가 선수들의 입장을 균형 있게 전달하지 못하고, 논란거리 생산에 유달리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현역 선수들이 직접 팟캐스트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근래에 퍼지고 있는 현역 선수들의 팟캐스트 방송 투잡 활동은 이제 막을 수 없는흐름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NBA라는 거대시장 속 또 하나의 잭팟 머신의 등장인가, 개성 강한 선수들의 단순한 일탈인가. NBA 대표 선수들의 개인 방송 진출이 어떤 대류를 만들어낼지, 지금의 물꼬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