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의 인기를 견인하는 부르고뉴의 하이엔드 내추럴 와인 생산자 얀 뒤리유(Yann Durieux)의 화이트 와인 ‘DH 블랑(DH Blanc) 2014’를 마셔봤다. 그 역사와 시음평, 어울리는 음식, 단점까지 전문가의 오감이 분석한 후기를 전달한다.
❶ 역사
와인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내추럴 와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멘 프리외르 로크”라고 답할 거다. 프리외르 로크는 부르고뉴 최고의 와이너리로 꼽히는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의 패밀리 일원으로 부르고뉴 내추럴 와인 메이킹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다수의 부르고뉴 일류 도멘들과 마찬가지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고수하는 로마네 꽁띠의 혈통답게 프리외르 로크는 자연주의 와인만을 생산했는데, 그곳에서 10년간 와인메이커로 일했던 사람이 바로 얀 뒤리유다.
얀은 부르고뉴 뉘 생 조르주에서 4대째 와인메이커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3세에 첫 와인을 생산해냈다는 신화적인 성장 스토리까지 지닌 인물이다. 2010년 독립해 자신의 와이너리를 설립한 그는 처음엔 오뜨 꼬뜨 드 뉘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했다. 이후 수요의 증가 덕택에 밭을 확장할 수 있었고, 계약된 포도밭을 통해 네고시앙 와인까지 선보이며 현재에 이르렀다. 피노누아, 샤르도네, 알리고떼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는 그의 와인들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주의 농법으로 재배한 평균 수령 50년의 나무에서 얻은 포도를 홀 클러스터(줄기까지 모두 와인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로 양조하며 야생 효모를 사용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가파르게 가격이 상승하는 생산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인 프리외르 로크의 와인에 비하면 훨씬 싸서 최고급 부르고뉴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마셔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와인으로는 여전히 유효하다.
❷ 시음
이 와인은 본 로마네에서 재배된 샤르도네로 만든다. 본 로마네는 부르고뉴에서도 손꼽히는 최상급 피노누아 와인을 생산하는 마을이다. 이곳의 샤르도네 와인을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이 와인을 생산하는 밭은 본 로마네 최고의 밭인 로마네 꽁띠와 인접해 있다.
살구, 브리오슈, 크림 브륄레, 요거트 등의 캐릭터가 지배적이다. 특히 살구 껍질을 씹을 때 느껴지는 타닌감을 지닌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10년의 세월을 버텨오면서 다른 샤르도네 내추럴 와인들과 달리 조금의 기분 나쁜 발효취도 없다는 것이 놀랍다. 이것이 하이엔드급 도멘의 역량 아닐까? 마치 약 배전으로 신선함을 살린 원두를 잡미 없이 완전한 클린 컵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이 와인에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개성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자연주의 와인과 방치된 밭에서 아마추어가 양조한 내추럴 와인을 구분하는 기준일 것이다.
❸ 어울리는 음식
전형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의 문어 감자 샐러드와 함께 맛봤다. 먹으면서 어떤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찾지 못할 만큼 완벽한 페어링이라고 느꼈다. 로티세리 치킨이나 크림 소스를 곁들은 닭요리, 살구 타르트 등과도 분명 좋은 궁합을 보여줄 거라 짐작한다.
❹ 단점
사실 고급 와인들이 지닌 가장 큰 공통점 중 하나는 시간을 들여 마시면 변화하는 풍미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이 와인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산화 등의 이유로 좋은 풍미가 감소되어 ‘꺾였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와인도 많은데, 이 와인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2시간여 마시는 동안 ‘꺾이는 현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만원대의 와인이다보니 그 한결같음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