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도의 주먹은 여전히 매섭다. 이미 8편까지 제작을 확정 지은 <범죄도시>가 건강한 시리즈로 기록되기 위해 날려야 할 잽은 무엇일까?
글 / 임수연(<씨네21> 기자)
<범죄도시> 시리즈가 ‘또’ 천만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5월 11일 자정 기준 <범죄 도시4> 관객 수가 9백12만 명이니 아마 이 칼럼이 실릴 쯤이면 천만 고지를 넘어설 것이다.(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 <서울의 봄> 추이보다 빠르다.) 이로써 <범죄도시> 프랜차이즈는 한국영화 시리즈 세 편 연속 천만 돌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공교롭게도 <범죄도시4>는 역대 시리즈 중 일반 관객 모니터링 시사회 점수는 가장 높고 <씨네21> 전문가 별점은 가장 낮았기 때문에 개봉 전까지 많은 이견이 있었다. 개봉 후 실제 관람객의 반응을 보여주는 CGV 에그지수 역시 전편보다 낮고, 영화계 내부에서 82퍼센트에 다다르는 상영 점유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하지만 대중은 이번에도 마석도 형사를 선택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부산행> 이전부터 영화 제작과 할리우드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마동석이 실제 형사를 취재해 오랫동안 개발한 아이템이다. 시리즈 네 편 중 세 편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성을 갖고 있으리라 예상한 영화계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요즘 이런 범죄물은 먹히지 않는다, 마동석이 주연으로는 너무 약하다, 거기에 신인 감독(강윤성)이 붙는 건 불안하다···. 마동석이 <범죄도시> 시나리오를 함께 개발한 강윤석 감독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좀 더 유명한 감독이 연출하면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범죄도시>는 몇 년 동안 표류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장첸 역에 윤계상이 낙점되기까지 빌런 캐스팅도 난항이었다. 많은 배우가 “내가 마동석을 서포트해야겠냐”며 캐스팅을 고사했고, “내가 마석도를 연기하고 마동석이 빌런을 연기하면 출연하겠다”고 역제안한 배우도 있었다.(심지어 1편이 흥행에 성공한 뒤에도 2, 3, 4편의 빌런 역시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범죄도시>는 2004년 가리봉동 인근에서 벌어진 조선족 조직의 충격적인 범죄를 재구성한 소재를 배우 마동석의 가장 큰 무기, 액션과 유머를 극대화한 마석도 캐릭터를 통해 풀어낸다. 이 골자는 2, 3, 4편 역시 그대로 간다. 해당 편의 빌런 캐릭터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묘사한 오프닝 시퀀스, 나쁜 녀석들을 응징하기 위해 나타나는 마동석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주인공 등장 신, 여러 범죄 조직 묘사, 마석도와 강력계 형사, 범죄 관계자들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유머들이 ‘잽’처럼 쏟아지고 결국 마동석이 승리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특정 범죄의 양상을 설명하는 순간 몰입도를 가져오듯 <범죄도시> 시리즈가 소재로 삼은 범죄 및 수사 과정의 디테일 역시 상업 오락영화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주말 프라임 시간대 극장에서 <범죄도시> 시리즈를 함께 감상하면 한국에서 가장 호감도 높은 배우 마동석의 유머를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아는 맛이 제일 맛있다’는 마음으로 이른바 ‘김치찌개’ 같은 마동석 주먹이 주는 쾌감을 대중은 기꺼이 사랑한다. 그 힘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구성이 너무 단조롭다거나 자기복제가 심하다, 폭력성 묘사가 지나치다는 등의 비판을 뚫고 관객의 선택을 받을 만큼 강력하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미 한국에서 <다이하드>와 <존 윅>, 어쩌면 장기 시리즈화된 <미션 임파서블>, <007> 같은 프랜차이즈의 자리에 올랐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2편 개봉 당시 이미 3, 4편 동시 제작에 들어가는 승부수를 뒀다. 때문에 2022년부터 매해 시리즈로 개봉할 수 있었다. <범죄도시> 기획자이자 제작자, 주연 배우인 마동석은 “1편에서 4편까지가 <범죄도시>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고, “현재 시나리오를 개발 중인 5, 6, 7, 8편은 글로벌 범죄 등 다른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터뷰로 몇 번 만난, 그리고 많은 영화계 관계자들에게서 들은 마동석은 한국에서 가장 영리한 영화인 중 하나다. 그는 <범죄도시> 시리즈가 지금 같은 패턴으로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마지노선은 4편까지라고 정확히 예측한 사람처럼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미 10편이 넘는 할리우드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고 그중 <악인전> 리메이크의 경우 실베스터 스탤론과 공동 주연 및 제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마동석이라면, 해외 유명 배우를 빌런 역으로 캐스팅하는 그림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다만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 시리즈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것은 대중 심리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팬데믹과 OTT의 번성 이후 극장 영화는 더 이상 가성비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가 생활이 아니게 됐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주변 친구들 내지는 커뮤니티나 SNS에서 떠들 수 있는, 확실한 ‘와우 포인트’가 있어야 그만한 지출을 감수할 유인이 생긴다. 이를테면 전두X을 삼킨 듯한 황정민의 연기(<서울의 봄>)라든지 컨버스 신고 굿하는 무당(<파묘>) 같은. <범죄도시 4>가 천만 관객을 넘보고 있는 데 반해 (개봉 즈음 모 엔터사 레이블 대표의 기자회견이 모든 화제성을 집어삼킨 점을 고려한다 해도) 전편과 달리 영화 외적인 유행이나 밈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3편 개봉 이후 흘러나올 비판을 모두 예상했다”는 마동석이라면 지금의 반응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범죄도시>가 개봉 당시 <킹스맨: 골든 서클>과 <남한산성> 같은 경쟁작을 누르고 역주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전에 본 적 없는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다. 마동석의 유머와 육체성을 곧 캐릭터화한 마석도, 잔혹한 표현 수위와 사실적인 액션, 장첸이라는 기념비적인 빌런, 수년간의 성실한 취재에서 나온 디테일 등을 놓고 보면 당시 미지근했던 전문가 평이 오히려 ‘과소 평가’에 가깝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네 번 반복된 <범죄 도시>의 패턴은 더 이상 전에 본 적 없는 작품일 수 없다. 이를테면 <범죄도시> 시리즈가 아예 여성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여성 혐오의 혐의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가장 단순하게 제기할 수 있을 법한 한계다. 동남아시아로 무대를 확장해 안전하게 폭력을 소비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드는 패턴 역시 개발도상국을 타자화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마석도의 주먹이 계속해서 그들을 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징후를 낳을 것인가. 이미 제작을 논의 중인 <범죄도시> 5, 6, 7, 8편이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장첸’ 같은 충격이 더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악행의 수위를 높이는 방식이 아닌, 오락영화 본질의 엔터테이닝을 진화시키는 도전에 가까워야 할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톰 크루즈의 스턴트 연기를 중심으로 했다는 점에서 마동석의 캐릭터에 기대는 <범죄도시> 시리즈와 어떤 점에서 닮았다. 원래 <미션 임파서블>은 지금 같은 지속 가능성을 지닌 상품이 아니었다. 특히 2편의 연출을 맡은 오우삼 감독은 쌍권총을 쏘게 하는 등 관객이 톰 크루즈의 첩보물에 기대하지 않는 무리수를 두어 비판을 받았다. 이 프랜차이즈가 다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서부터다. 신냉전 시대 미국과 중동의 군비 경쟁을 오락영화 문법으로 풀어내고, 벤지 던(사이먼 페그) 등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으로 팀플레이 성격을 강화했으며, ‘떡밥’을 통해 후속 편에 대한 기대를 고취시켰다. <범죄도시> 1, 2편의 전일만 반장(최귀화)과 마석도의 케미스트리가 주목받았듯 <범죄도시> 후속 편 역시 주변부 캐릭터를 통해 팀플레이의 매력을 살린다거나 프랜차이즈를 서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영화가 재현하는 범죄가 무엇을 겨냥하고 마동석의 주먹이 주는 쾌감의 원천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반추하며 앞으로 나올 시리즈가 건강한 오락이 되기 위해 필요한 쇄신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범죄도시> 후속 편을 기다리는 관객도, 슬슬 패턴이 질린다고 불만하는 관객도 수년 후 다시 마석도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동석의 호감도와 <범죄도시>의 이름값이라면 과감한 도전을 해볼 수 있다고, 지금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제작자 중 하나가 곧 주연 배우인 시리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