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모터스포츠의 전망은 늘 암울했다.어쩌다 ‘그들만의 리그’가 됐을까.
글 / 김태영(자동차 칼럼니스트)
한국에서 모터스포츠에 대해 질문해본다면 어떨까? 글쎄. 관심이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모터스포츠는 그만큼 비인기 종목이다. 그렇다고 대중들과 접점을 이루는 이벤트의 규모나 명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모터스포츠 역사는 40년 가까이 된다. 심지어 2012년에는 세계 최정상 모터스포츠 프랜차이즈인 ‘포뮬러1 그랑프리(F1 GP)’를 개최한 이력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한국은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있는 전 세계 10여 개 국가 중 하나로,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5~6위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그리고 자국 자동차 회사가 운영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팀도 가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이나 투어링카레이스(TCR), 기타 내구레이스에 전문 팀을 만들어 수년째 출전 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차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뛰어난 운영 노하우도 갖췄다. 스포츠에서는 그게 꼭 우리 사람과 기술일 필요는 없다. 그런 가능성을 갖춘 해외 선수나 팀을 운영하는 건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다. 사실 모터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인프라나 규모도 그 어떤 사업군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크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는 자동차 경주용 공인 서킷이 4개나 있다. 이런 무대를 바탕으로 2024년 현재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에 정식 등록된 공인 자동차 경주 시리즈는 무려 7개다. 여기서 활동하는 프로와 아마추어 드라이버가 수백 명이고, 정식 레이싱 팀과 협력사, 대회 운영 관계자까지 합하면 관련 분야 종사자가 수만 명에 달한다.
한국 자동차 경주 대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슈퍼레이스’와 현대자동차 원메이크 레이스 시리즈인 ‘N 페스티벌’의 경우 매월 한 번(주말) 경기를 개최한다. 여기에 강원도 ‘인제스피디움’과 전라남도 ‘KIC’ 서킷, 일부 타이어 회사가 자체적으로 자동차 경기를 주최하면서 4월부터 11월까지 거의 모든 주말 자동차 경주가 열리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겐 모터스포츠를 즐길 만한 인프라와 지원 규모가 있고, 명분도 있다. 그런데도 모터스포츠가 지난 수십 년째 비인기 스포츠로 여겨지며 대중성과 거리가 있었던 건 왜일까. 간단하다. 관람객 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사실 모터스포츠의 원동력도 관중이어야 한다. 참여 드라이버 수나 팀을 늘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관중을 모으는 일이다. 관중을 모으려면 모터스포츠와 관중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몇몇 스타 드라이버가 관람객을 끌어오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기 자체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이 소유한 특정 자동차 브랜드나 모델을 자동차 경주에 투입하거나, 유명 인플루언서의 경쟁이 주는 흥미를 구도로 잡아도 상관없다.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는 경주 차 차종을 제한하는, 즉 원메이크 레이스에도 있다. 원메이크 레이스란 특정 브랜드 모델만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 경주 룰을 단순화시켜 한결 공정한 환경을 만들어 두고, 참여 드라이버의 경쟁을 유도한다. 이렇게 동일 차종으로 경기를 하면 팀이나 선수들 사이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관중들은 제대로 된 경쟁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에는 차종이 다양해지는 추세지만,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도 여전히 거의 모든 클래스가 단일 차종이다.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한 것이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현대와 기아, KGM 같은 국산 클래스가 대결하고 수입차 클래스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포르쉐가 싸운다면 보는 이들이 좀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적인 건 한국 모터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도는 과거에 비해 분명 엄청나게 늘고 있다. 각종 SNS 채널이나 유튜브 영상으로 자동차 경주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자동차 경주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경주차의 순위 경쟁을 제외한 흥행 요소가 없다는 뜻이다. 특정 드라이버의 삶이나 팀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고난과 갈등,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가 전달되어야 관객은 흥미를 느낀다. 그래야 호감을 가진 팀이나 드라이버가 생긴다. 그렇게 직접 응원하는 대상이 있어야 장시간 몰입해서 1년 단위로 치뤄지는 자동차 경주 관람에 참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모든 문제는 어떤 스포츠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방법을 아는데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사실 축구나 야구, e게임 같은 주요 프로 스포츠도 관람객이 크게 증가한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차이점이라면 이런 인기 스포츠의 프로팀들은 기업 후원이 빠르게 이뤄졌다. 기업이 특정 스포츠에 후원하려면 홍보 효과가 충분해야 한다. 모터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든 TV 노출이든 홍보 효과가 부족하니 후원 기업이 제한적이다. 기업 참여가 적으면 자동차 경기를 운영하는 데 자금이 부족하다. 그러면 결국 홍보나 마케팅에 다시 제한이 걸린다. 이런 과정이 수십 년간 반복됐다. 그러다 결국 한국 모터스포츠는 좋아하는 사람들만 계속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물론 이런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고,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2024 슈퍼레이스를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개막 첫날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관람객 수천 명이 현장을 찾았다. 물론 수도권(용인)에서 개최된 자동차 경기였고, 2024년 개막전이라는 특징도 있다. 또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터 스포츠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분명 분위기가 달랐다. 자동차 마니아만의 축제가 아니라 일반 대중 관람객의 비중도 컸다. 사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배경적인 이유가 있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는 CJ 대한통운은 2016년부터 8년째 해당 모터스포츠 대회의 규모를 키웠다. 덩달아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관중 수가 크게 늘었다. 2015년 2만여 명으로 집계된 관중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 직전인 2019년 18만여 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유료 관람객을 늘려가는 정책임에도 관람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1·2라운드에만 3만 명 이상의 관중이 현장을 찾았다. 강원도 인제와 전라남도 영암에서 열린 지역 경기에서도 평균 1만 6천여 명이 현장을 찾았을 만큼 흥행했다. “연평균 관람객 21퍼센트 성장”. 2023년 슈퍼레이스의 성과를 설명하는 문구다. 이런 분위기에 올해는 주관 방송사도 기본 종합 편성 채널(채널A)에서 공영방송(KBS 2TV)으로 바뀌었다. KBS가 슈퍼레이스 생중계를 하는 것은 국내외 모터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마케팅 분야에 ‘티핑 포인트’라는 말이 있다. 컵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컵 높이를 넘어서까지 장력을 이뤄 수위가 계속 높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비유한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한순간 시너지로 바뀌는 시점이다. 한국에서 모터스포츠는 여전히 비인기 스포츠로 설명되는 영역이다. 하지만 지금은 티핑 포인트를 맞이할 순간에 있다. 그래서 누구 한 명이 아니라 관계자 모두가 조금 더 밀어붙어야 한다. 여기서 성장세를 키워가지 못한다면 미래는 여전히 암울해질 테니 말이다. 뻔한 말이지만 기업의 후원을 강화하고 자동차 브랜드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 프로모션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며 몸집도 키워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에서 모터스포츠가 비인기 종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부터 향후 2~3년이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때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