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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손흥민, 류현진 같은 엘리트 선수들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2024.07.03김은희

파리 올림픽에 한국 국가대표는 최소 인원 참가가 유력해졌다. 48년 만의 일이다. 왜, 어째서, 그래서? 해답은 문제에 있다.

글 / 김현수(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

엘리트 Elite. 한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각자의 직군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거나 그럴 준비가 된 사람을 우리는 ‘엘리트’라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난 엘리트 출신입니다”라고 말하는 곳이 있다. 성과와 무관하게 그 시스템 안에서 복무한 사람을 엘리트라고 부르는 곳, 다름 아닌 스포츠계다.
한국 사회에서 과거 운동선수는 조기 발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대개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부라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남성이 군대에 입대하듯 큰 결심이 필요했다. 사실상 공부는 접어야 하고, 일 년 열두 달 합숙 훈련을 하며, 지금의 감수성이라면 아동 학대라고 할 만한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스포츠 선수 저변이랄 게 없던 시절, 소수의 선수만으로 ‘국위선양’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수 정예의 엘리트 스포츠 선수로 불렸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의 탄생
이 엘리트들이 그 혹독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당근’이 있다. 국가가 주도해서 만든 시스템은 ‘국위선양’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이른바 ‘팔자’를 고칠 당근이 수두룩했다. 아파트에, 연금에, 유학은 물론 여기저기서 취업도 알선되었다. 어디 식당이라도 가면 스포츠 영웅이 된 그들에게 서로 밥값을 내겠다고 줄을 서던 시절이었다. 이 엘리트 스포츠 프로젝트는 1972년 체육특기자 제도가 도입된 이후 유지되어 오다, 개발도상국으로서 ‘체육입국 體育立國’을 꿈꾸던 ‘스포츠 대통령’ 전두환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88 서울 올림픽이 남의 잔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선진국은 스포츠 클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넓은 저변에서 각 수준별 우수 선수를 단계별로 선발해 최종 국가대표를 만드는 방식을 쓰지만, 한국 사회는 그럴 저변도, 시간도 없었다. 스포츠 꿈나무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통제하기에 가장 편한 곳이라 할 수 있는 학교를 ‘선수 양성소’로 택했다. 체육특기자를 선발해 학교에서 먹이고 재우며 운동 기계로 만들던, 지극히 효율성에 의존한 한국형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이 꽃피운 순간이다.

엘리트의 성과
‘당근’이 워낙 크게 걸려 있다 보니 이 프로젝트는 즉각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냈다. 1984년 LA 올림픽이 그 시작이었는데, 금메달 6개로 세계 10위를 달성한 것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국뽕’의 최전성기를 열었다. 이 빈약한 저변에 연이은 세계 10위권의 성적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이 이 효율성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군대식’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들에게는 도저히 따라 하기 어려운 ‘효율성’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지만 말이다.
한국이 주로 메달을 생산하던 종목은 넓은 저변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세밀한 기술 종목보다는 태권도, 유도, 레슬링, 권투 등 강한 체력을 기반으로 하는 투기 종목이었는데, 이른바 통제된 가운데 혹사에 가까운 훈련을 통해 성과를 내는 투기 종목의 강세는 우연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의 혹사, (성)폭력, 사생활 통제 등과 같은 인권 침해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히 나왔지만, 운동선수라면 이겨내야 할 과제쯤으로 여겨졌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여지도 없었다. 오히려 국가 세금으로 ‘국위선양’ 임무를 달성해야 할 엘리트들이 불만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며 지탄받을 일에 가까웠다. 더구나 훈련이라는 것이 반복 훈련이 많아 엄격한 상명하복은 물론이고 창의성 말살, 승부에 대한 중압감, 재미 요소 감소 등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흥미를 잃은 선수들이 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없는 선수들을 어떻게든 붙잡아둬야 하는 일까지 지도자의 몫이 되어버린 상황···. 스포츠의 국가 경쟁력은 천천히 시들고 있었다.

엘리트의 몰락
현대 스포츠는 결코 개인의 경쟁이 아니라 집단 역량의 총량을 겨루는 첨예한 경쟁으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개인의 희생과 혹사의 감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뉴미디어를 통한 훈련 지식의 공개, 폐쇄된 운동 문화의 해체, 그리고 높아진 인권 감수성은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훈련을 더는 두고 보지 않았고, 저변이 무너진 종목들은 단계별 경쟁이라는 역량 강화 요소를 쌓을 길이 없었기에 국제무대에 나가면 금방 밑천이 드러났다.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여자 농구는 최근 일본과의 대학 선발 경기에서 85점 차 대패라는 수모를 당했고, ‘지면 죽는다’던 축구 한일전은 최근 각 연령별 경기를 통틀어 일본에 뒤지는 모습이 확연하다. 뿐만 아니라 코앞으로 다가온 파리 올림픽은 48년 만에 올림픽 최소 인원 참가가 유력한데, 그 내용을 보면 여자 핸드볼 외 모든 구기 종목 탈락, 남자 축구의 10회 연속 출전 실패, 남자 체조의 9회 연속 출전 실패, 메달밭이던 투기 종목의 뚜렷한 하향세 등 갈 길을 잃고 있다. 이런 징후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종합 16위로 2004년 이후 유지하던 올림픽 10위권을 37년 만에 벗어났다.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유지되어야 하나?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버린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폐기되어 마땅하지만, 그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체육인 리더는 여전히 많다. 대한체육회장은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밭이던 투기 종목이 부진하자 한국으로 돌아가 청문회를 열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비록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김연경의 여자 배구나 우상혁의 남자 높이뛰기 등 선수들의 최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던 국민들의 바뀐 눈높이를 전혀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정신력을 문제 삼으며 해병대에 캠프까지 차렸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성과를 내겠다며 스위스에 대한체육회 출장소를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런 처참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회장직을 연임하기 위한 정관 개정까지 했다. 체육계 리더들의 관심은 스포츠 저변 확대와 같은 장기 과제보다 여전히 자기 밥그릇과 혹사에 기반한 과거의 성과 창출 방식, 즉 ‘단타’에만 머물러 있다.

그럼, 엘리트의 미래는?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말 그대로 타인의 인정이 바탕이 되는 개념에 부합하지 못했다. 국위선양 추종자들에 의해 버틸 만큼 버틴 이 시스템은 이제는 더 유지할 수도, 유지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청소년 신체활동 지수는 만년 최하위다. 꿈을 위해 상시 합숙을 하며 스파르타식으로 해야 성공한다고 꼬드겨도 손흥민, 류현진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부모나 선수들은 다 안다. 그런 상황에 아직도 운동장에서 삭발을 하고, 쌍욕을 날리며, 선수의 미래보다는 이기는 법만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리더들은 여전히 소수 정예를 외치고, 그 엘리트들의 정신력 부족을 탓하며 해병대 캠프에 간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 볼 경기가 없다는 국민들의 푸념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앞으로 ‘볼 경기’는 더 없을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나가던 월드컵도 탈락할
수 있고, 대규모 선수단을 꾸리던 올림픽도 더 초라해질지 모른다. 저변이 없는 종목들은 급격히 소멸할 것이고, 그나마 축구처럼 저변이 있는 종목도 변하지 않으면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월드컵에 못 나가는 한국 축구를 상상해보라.)
이제 선수들을 구석으로 내몰아 짜내던 방식으로는 택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신력 운운하며, 그런 생각에 매몰된 스포츠 리더들이 있다. 그들은 시급히 이 바닥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부터 나서서 국가 수준에서의 스포츠 패러다임을 ‘보는’ 것으로부터 직접 ‘하는’ 것으로 바꿔놔야 한다는 것이다. 저변이 없는 스포츠는 살아낼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