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캔슬 컬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혹시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에 취해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글 / 강용(심리 상담 전문가)
무조건적 가해자와 무조건적 피해자로 이분법되는 순식간의 쓰나미 상황이 나타날 때, 극단적인 상황에 호응하듯 수천, 수만의 댓글과 “캔슬”을 외치는 동안 피해자와 가해자들은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유명인이 출연하던 방송 프로그램 담당자들 역시 시청자의 눈치를 살피느라 사건을 파악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어떻게 된 거야!” 문자와 전화가 쉴 새 없이 오고, 사건이 종결되면 해당 유명인은 잠시 혹은 영원히 ‘낙인’이 찍힌 채 소문 없이 우리 곁을 떠나 잊히게 된다. 누구에게는 속이 다 후련한 권선징악일지 모르지만 어느 누군가는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일 수도 있다. 이따금 집중호우로 사망, 인명, 재산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날씨 예보를 듣는다. 한 방울, 한 방울 빗물이 모여 어느 지역에 강하게 나타날 때 ‘집중호우’가 일어나듯이, 한 개인의 온라인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모여 강한 집단을 이룰 때 그 힘은 집중호우보다 더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다.
원색적인 비난과 과거의 잘못된 사건까지 파헤치면서 사회적 나락(지옥)으로 보내고자 하는 현상을 ‘캔슬 컬처 Cancel Culture’라고 한다.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발전한 캔슬 컬처는 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인종 문제, 성차별, 소수자 혐오 문제 등을 둘러싸고 확산됐다.
최근 먹방 유튜버 쯔양 사건을 분석해보면, 첫 사건은 유튜버 쯔양이 잘되는 것을 시기해 쯔양의 학창 시절에 대해 폭로하면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사이버 렉카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문제가 커지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해리포터> 작가 롤링이 성전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성전환 인권 운동가들이 롤링의 신상을 털어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캔슬 컬처에 대한 상황이 심각해지자 싱가포르 정부는 ‘캔슬 컬처 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일반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보 진영에서는 ‘캔슬’의 범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금지법이 되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샨무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견해 때문에 공격받을까 봐 두려워 합리적인 공개 담론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러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정당성을 강조했다. 최근 캔슬 컬처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사건을 정밀하게 찾아내 융단 폭격을 하는 이른바 신상 털기. 이는 온라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 신문이 경쟁하듯이 화제 글을 인용 보도하고, 기성 언론까지 뉴스 장사에 합류해 문제를 증폭시킨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의해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 자극되고,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정의에 재판관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다 공격받던 사람이 억울한 측면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거나 혹은 단순히 해당 이슈에 질리면 금세 잊어버리고, 다른 자극적인 사건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요즘 흔히 보이는 인터넷 풍경이다. ‘책임 없는 자유와 정의에의 갈망’.
이러한 문화가 확산한 배경에는 자기주장이 강한 MZ세대의 부상이 있다. 실제로 MZ세대는 온라인상에서 거침없는 ‘손절’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 2010년대에 들어 SNS나 유튜브 등의 신흥 트렌드세터가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진 공식 매체와 언론의 트렌드세터로서의 갈증을 언론 내부에서 채워준 것이다. 이들은 외집단 동질성 편향(Outgroup Homogenity Bias)에 있다. 군중들의 강력한 저항과 판단이 대중적인 낙인 효과를 갖게 되었고, 실질적인 행동까지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캔슬 컬처는 수용에 대해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며 대규모 집단 행위를 동반하는 문화적 현상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사회적 정체성은 팔로워의 손끝에 달려 있다. 유명인과 팔로워들의 가치관이 동일하게 유지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갑자기 갈등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내부 분열이 발생한다. 이때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고 유명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캔슬 컬처다.
캔슬 컬처는 빠른 효과가 정확히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즉각적인 효과나 즉각적인 결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보통 범죄자들이 받는 형벌은 범죄 예방, 범죄자 교화 등의 목적을 가지고 법에 따라 결정하지만, 개인 또는 집단에서의 형벌은 범죄자를 잔인하게 처벌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에서 나타난다. 자신과 집단에 괴로움과 불쾌감을 준 사람을 낙인 찍고 캔슬로써 승리했다는 감정,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캔슬 컬처로 계속 카타르시스를 느낄 경우 집착하거나 중독될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문제에 과몰입하면 집착과 중독(의존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쇼츠만 과몰입하는 사람, 웹툰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의 뇌는 그것에 의존하게 만든다. 한번 의존하면 금단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신체적 반응이 강하게 나타나 계속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 상담했던 사례다. 어릴 때 가정환경이 불우했고 따돌림도 받았던 남자 청년인데, SNS에 댓글을 달면 쾌감이 느껴지고 하루에 댓글 목표량을 정해서 달성하면 엄청난 만족감이 나타난다고 했다. 문제는 댓글이 부정적이고, 왜곡되고, 비판적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성격이 너무 변했다는 것이다.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해서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상담을 신청한 것이다. 부정적인 댓글을 계속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댓글을 쓸 수 있고, 캔슬 컬처에 계속 동참하다 보면 그러한 문화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캔슬 컬처는 차별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자 사회 윤리에 대한 정의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흥분된 감정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피해를 주장하는 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SNS의 특성과 맞물려 빠르게 퍼지면서 특유의 문제점을 낳을 수도 있다. 또 한 명이 비판하기 시작하면 ‘밴드웨건 효과(편승 효과)’가 생겨 반대 의견을 주장하기가 힘들다. 캔슬 컬처의 내용이 일관성이 없고 논리적이지 못해서 당사자가 사실을 바로잡거나 해명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캔슬 컬처의 본래 취지를 잃고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거나 군중심리에 이끌려 자신의 판단이 아닌 분위기에 잘못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캔슬 컬처로 회사가 문을 닫을 만큼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나이키는 전 NFL 쿼터백 콜린 캐퍼닉을 광고 캠페인에 출연시켜 반발에 직면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정치인, 유명인, 평범한 시민들까지 캔슬 컬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증가하면서 2023년 포브스는 “캔슬 컬처에 대한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잘못을 했으면 빠르게 사과하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부정적인 평판을 밀어낼 수 있는 소셜 미디어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옳고 그름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중립적으로 사건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신상 캐기 식으로 특정인의 삶, 인생 전체를 공격하는 ‘조리돌림’은 지양해야 한다. 사법제도에 비례 원칙이라는 게 있다. 범죄와 형벌이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캔슬 컬처 군중에는 이런 비례의 원칙이 없다. 죄를 지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타인의 잘못에 합당한 책임을 물리겠다는 헛된 정의감에 사적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정말 올바른 비판을 하고 있는지, 혹은 즉흥적, 충동적, 비합리적인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