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여전히 궁금하다.
GQ 처음에 디렉션이 없어서 놀라셨어요?
GS 화보마다 콘셉트가 있고, 기자분마다 스타일이 있잖아요. 말씀을 해주시겠지, 기다리다가 깨달았어요. 자유롭게 하는 거구나. 마음대로 하라는 거구나.
GQ 짓는 표정, 짓는 포즈보다는 덜어낸 것, 보지 못한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GS 저도 늘 비슷한 고민을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늘 똑같은 얼굴이잖아요. 이 얼굴을 얼마나 봐 온 거지.(웃음) 어떻게 하면, 언제쯤, 어떤 식으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자주 해요.
GQ 또 어떤 고민들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어요?
GS 소통에 대해서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누구와?) 글쎄요. 저를 기다리고 궁금해하시는 분들? SNS 소통은 제가 잘하지도 못하고,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실수할까 봐 더 시도하지 않게 되고요. 기본적으로 나를 많이 표현하거나 보여주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GQ 주변 사람들의 소통 방식은 어때요? 주변을 보면 내가 보이기도 하니까.
GS 굳이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사람의 행동이나 어떤 것들로 전달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사회는 너무 정확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 이거는 이거다, 저거는 저거다라고 정확한 정답을 찾고 요구하는 것 같아요. (긴 침묵) 매일 아침 1~2시간씩 자전거를 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자전거 바퀴가 계속 돌아가는 걸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모가 나서 부딪치거나 하지 않고 ‘Nerdy’하게, 바퀴가 그냥 막 돌잖아요. 그렇게 도는 자전거 위에 타면 마음이 편해져요.
GQ 목적지를 정해두고 가요?
GS 문밖에 나가서 정해요. 오늘은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안전한 데서 타야 하니까 가는 데가 거기서 거기지만, 늘 또 새로워요. 같은 길이라도요.
GQ 때로 안전한 길 밖으로 나서고 싶은 욕망은 없어요?
GS 20대 때는 그랬어요.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모두 비슷한 시기가 있잖아요. 그런 때는 지났죠. 배우는 촬영장, 현장에서 시선을 많이 받는데 초반에는 그게 되게 무섭다고 해야 할까, 막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느낌이 한 10년 동안 쌓인 상태였어요. 어느 날 한번 산에 올라가 봤는데, 좋더라고요. 종주하면서 비박을 하던 첫 밤에는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잔상처럼 들려서 너무 시끄러웠어요. 붕 떠 있는 기분? 부스럭거리는 소리라도 들리면 무서워서 잠에서 깨어 “누구야 나와!” 막 그랬어요.(웃음) 그렇게 계속 산에 가니까 점점 익숙해지고, 주변이 차차 조용해지더라고요.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녔죠. 당시에는 물음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 일, 돈, 사물 등에 대한 정의라고 할까···,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GQ 지금 고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GS (한참 생각하다 매니저에게 SOS를 친다) 승민아, 너무 어려워! 아하하하. 그러게요. 내가 어떤 사람일까. 늘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누굴까, 나는 왜 살아야 하나···.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무언가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 오래전에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한 3년 동안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그 ‘무언가’가 도대체 뭘까? 사람들에게 이 얘기하면 바보처럼 여길까 봐 말 못 했어요. 그런데 3년 동안 생각하니까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GQ 예전 <지큐> 인터뷰에서 2007년 언저리의 고수를 스스로 “이상한 사람”으로 표현했더라고요.
GS 그때예요. 그때 저는 위험한 사람이었어요. 지금까지도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나를 깨우는 사람들, 말, 책들이 그때 많이 제게 온 것 같아요. 그때 정립했던 것들이 제게 각인되었어요. 그래서 그때보다는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GQ 당시엔 위험했기 때문에 더 들렸던 걸까요?
GS 쉽게 말씀드리면 ‘아, 그렇구나’ 하고 쉽게 이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말 안 해주지.(익살스러운 표정) 사람이 살면서 공감하고 느껴야지, 말로 들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갈 수 있잖아요. 배우는 이과도 문과도 아니고, 사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업이니까 사람에 대해,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말로 쉽게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20대 때 방황하고 그러지 않나?
GQ 그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깊이 골몰하지 않으면 스쳐 보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 방황이 누구에게나 20대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에요.
GS 맞아요. 그래서 그 시기에 잘 취해야 하는 것 같아요.
GQ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편에 가깝죠? 좋으면 좋다, 힘들면 힘들다, 서운하면 서운하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조금 서운해하지 않아요?
GS 하, 맞아요. 공감, ‘핵 공감’.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요. 다른 배우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좋든 싫든 어떤 감정이 올라오면 이게 진짜 감정인가? 만들어진 감정인가? 한 번쯤 더듬게 돼요. 배우들이 그런 부분에서 되게 민감한 것 같아요. 작품할 때는 캐릭터의 감정을 만들어야 되잖아요. 감정을 쥐어짜고, 감정의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거기에 가까이 가닿으려고 노력을 하니까 평소에는 감정을 꺼내고 표현하는 것이 힘들어요. 평소에는 가만히 무던하게 있으려고 해요.
GQ 감정의 덩어리 자체가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
GS 그럴 수 있죠. 연기 치료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어떤 상황을 만들어서 미움, 분노 같은 걸 와라락 쏟아내고 나면 사람이 달라지잖아요. 이런 거였어? 야, 미안하다, 하면서.
GQ 악역을 하는 게 더 버겁나요?
GS 제대로 뒤통수 한번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으하하하.
GQ 선한 줄 알았는데 악한 사람. 제일 나쁘죠.
GS 그러려면 이야기가 따라와야 돼요. 오늘처럼 촬영, 인터뷰 잘 마무리한 뒤에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갔다고 쳐요. 스태프들이 “수 씨 정말 대단해, 좋은 사람이야” 하고 봤더니 제가 앉아 있던 소파가 이만큼 찢어져 있는 거예요. 와하하하핳. 이런 이야기 되게 현실성 있지 않아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욕을 아주 많이 먹지 않을까?
GQ 상상했더니 벌써 배신감이 들어요. 이야기 쓰는 데도 관심 있어요?
GS 다른 영역인 것 같은데, 늘 생각은 하죠. 예전에는 책에 있는 캐릭터의 정보를 수집해서 표현을 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인물이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해요. 늘 질문해요. 나는 누구일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나의 색깔을 입힐 수 있을까? 늘 어렵고, 숙제처럼 느껴져요.
GQ 이번 작품 <가석방 심사관 이한신>은 고수이기에 더해진 것들이 있어요?
GS 이한신이라는 인물도 나한테서 찾으려고 했어요. 그 인물과 제가 무엇이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하게 연기한 것 같아요. 그냥 편하게, 편하게. 작품에 따라서 한 인물이 끌고 가는 작품도 있고, 이번 작품처럼 다른 캐릭터와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후자예요. 아주 많은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들과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이죠. 그래서 첫 촬영 가기 전날 되게 궁금하고 떨렸어요. 다른 인물들과의 합이 어떨까?
GQ 편하게 하면 더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GS 그건 잘 모르겠어요. 작품마다 다른 것 같아요. 가공해서 만들어야 하는 캐릭터도 있고, 현실감 있게 만들어가야 하는 역할도 있고. ‘가석방 심사관’이라는 직업은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관심 갖게 되었는데, 가석방이라는 제도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좋지만 악용하려는 사람에게는 사각지대에 놓인 제도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드라마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시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GQ 제가 이해하기로, 고수는 본인이 어떻게 해야 편한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의외로 그걸 모르는 사람도 많거든요.
GS 제가요? (잠시 고뇌) 그렇죠, 맞아요. 그런데 그들도 누군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막상 물어보면 사람들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을 거예요. 방송이나 인터뷰는 어떤 말이든 꺼내야 하니까, 오늘처럼.
GQ 대답이 나올 때까지 요구하는 인터뷰 말이죠. 정확한 세상이 종종 고수를 힘들게 해요?
GS 아니요. 때로는 그 정확함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일 처리도 되고, 사회가 돌아가잖아요. 스트레스라고 표현하기는 조금 그렇고···. 아까 자전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느낀 거예요. 정확한 사회와 그저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가 상대적인 것 같다고. 좋은 운동인 것 같아요, 자전거 말이에요. 자전거 바퀴가 빙빙 돌아가는 대로 따라가야죠. 오늘은 왼쪽, 내일은 오른쪽.
GQ 그나저나 어쩌다 사과를 잘 깎게 되었어요?
GS 글쎄요. 따로 배우지는 않았는데.(미소)
GQ 소중히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걸까요?
GS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좀 그런 편이에요. ‘내 물건 소중히 하기’가 가훈이었거든요. 인사 잘하기, 내 물건 소중히 하기, 또 한 가지가 뭐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