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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의 ‘또’ 위대한 시즌

2024.11.05신기호

우리가 이번 시즌을 통해 배운 것은 오타니의 한계를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글 / 김형준(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100년이 지나는 동안 메이저리그에는 ‘가장 위대한 선수가 누구냐’는 고트 논쟁이 존재하지 않았다. 베이브 루스가 은퇴한 1935년 이후, 루스의 위상에 접근한 선수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18년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또 다른 분기점이 됐다. 오타니가 그해 미국으로 건너옴으로써 메이저리그도 드디어 신나는 고트 논쟁이 가능해졌다.

오타니의 지난 3년은 실로 충격이었다. 투수인데도 타격이 다른 타자들을 능가한 루스는 1918년과 1919년 2년 동안 투타 겸업을 했다.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한 루스는 1920년 양키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전업 타자가 됐다. 루스와 달리 투타 겸업이 지향점인 오타니는 2021년 최초의 40홈런 1백50탈삼진, 2022년 최초의 15승 30홈런, 2023년 최초의 10승 40홈런을 차례대로 달성했다. 루스의 2년간 기록은 13승 11홈런과 9승 29홈런이었다. 특히 2022년에 세운 규정 이닝, 규정 타석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기록이었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의 이닝 소화는 크게 줄어들어, 규정 이닝(1백62) 투수가 팀당 두 명 수준에 불과한데, 오타니는 타자로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규정 이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타니는 사상 최초로 자신이 속한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고 가장 많은 타석에 나선 선수가 됐다. 두 번의 만장일치 MVP 역시 역대 최초인 오타니는 지난해 더블헤더 1차전에서 완봉을 하고 2차전에서 홈런 두 개를 날리기도 했다. 충격의 3년이 끝나자, 오타니로 인해 놀랄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오산이었다.

2018년 메이저리그로 건너올 때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해 27팀 중 7팀을 고른 후 최종적으로 LA 에인절스를 택했던 오타니는 LA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라는 충격적인 계약을 맺었다. 더 놀라운 건 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계약 기간 10년 동안 연간 2백만 달러를 받고, 나머지 6억 8천만 달러는 계약이 끝나고 10년 동안 받겠다는 제안을 스스로 한 점이었다. 그리고 오타니는 통역인 미즈하라 잇페이가 자신의 계좌에서 빼낸 1천6백만 달러를 스포츠 도박으로 탕진하는 동안 한 번도 급여 통장을 확인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오타니의 올해는 소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타니는 지난해 10월 팔꿈치 수술을 받아 투수로 뛸 수 없었다. 3년 동안 오타니는 투타 겸업 덕분에 두 번이나 만장일치 MVP가 되고 한 번은 2위를 했지만, 지명타자만 해서는 MVP를 기대할 수 없었다. 지명타자가 MVP를 차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오타니는 통산 세 번째이자 최초의 지명타자 MVP를 앞두고 있다. 오타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야구는 철저하게 분업화된 스포츠다. 타자는 투수를 할 수 없고, 이제 투수는 타격을 하지 않는다. 가끔씩 마운드에 오르는 야수들은 팀 내 중요도가 덜한 선수들이 큰 점수 차일 때 불펜을 아끼기 위해 등장한다. 오직 오타니만이 둘을 다 하고 있다. 이 엄격한 분업의 시대에 타격과 피칭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기 때문에, 루스보다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919년까지는 도루왕이 홈런왕인 경우가 많았다. 호너스 와그너와 타이 콥으로 대표되는 당시 최고 타자들의 미덕은 정확한 타격과 빠른 발이었다. 이들이 기록한 홈런의 상당수는 빠른 발로 만들어낸 장내 홈런이었다. 1908년 와그너는 양 리그에서 홈런 1위, 도루 2위를 했는데, 도루는 54개, 홈런은 10개였다. 1909년 홈런 1위, 도루 1위를 한 콥은 도루가 78개, 홈런이 9개였다.

베이브 루스가 타격의 미덕을 홈런으로 바꾼 후 슬러거와 스틸러는 분리된다. 홈런을 치고 싶은 선수는 몸집을 키웠고, 발이 빠른 선수는 체중을 줄이고 도루에 집중했다. 한 해 도루를 130개 하는 선수가 나타나는가 하면, 73개의 홈런을 친 선수도 등장했다. 후자는 비록 약물 선수로 분류됐지만, 홈런을 30개 이상 칠 수 있으면 도루를 전혀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극소수의 사람이 가상 현실인 걸 깨닫고 기계들이 만들어준 꿈에서 깨어난다. 메이저리그에도 시뮬레이션의 경계를 넘어 40홈런과 4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5명의 모피어스가 있었다. 그중 세 명은 약물 선수였다.

2024년 오타니는 더 원(ONE), 아니 네오(NEO)가 됐다. 오타니 이전에 홈런과 도루를 같은 수로 맞춘 최고 기록은 42홈런 42도루였다. 하지만 오타니는 이를 경신해 54홈런 54도루를 만들었다. 홈런과 도루가 분리된 이래 가장 완벽한 통합을 만들어냈다. 오타니 전에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경기가 가장 많았던 선수는 전설의 대도 리키 헨더슨이었다. 헨더슨은 1986년에 이를 13회 해냈지만, 오타니는 16회로 경신했다. 오타니 이전 50홈런 선수가 도루를 가장 많이 한 기록은 1955년 윌리 메이스와 199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24개였다. 오타니는 이를 59개로 늘렸다. 과거 40-40에 도전한 선수들은 기록 달성을 위해 많은 도루 실패를 감수했다. 2006년 달성자인 알폰소 소리아노는 41도루를 하기 위해 17회의 실패를 감수했다. 도루 실패는 팀에 큰 손실을 입힌다. 반면 오타니는 59개의 도루를 하는 동안 실패가 단 4회에 그쳤다. 93.7퍼센트의 성공률이 역대 2백70명의 55도루 달성자 중 역대 1위인 오타니는 단일 시즌 4위에 해당하는 36연속 도루 성공으로 시즌을 마쳤다. 59도루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2001년 스즈키 이치로의 아시아 선수 기록(56)을 넘어선 것이었다. 오타니는 투수를 할 수 없다면 도루로 더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오프시즌 동안 하체 훈련에 집중했다. 이는 도루 수를 대폭 늘려줌은 물론 타구 속도까지 증가하도록 만들었다. 오타니가 장타 하나를 더 날렸다면, 약물 시대를 제외하고는 1948년 스탠 뮤지얼(세인트루이스) 이후 76년 만에 1백 장타 4백 루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야구에서 홈런과 도루만큼 통합이 어려운 건 타율과 홈런이다. 홈런을 노리는 타자들은 스윙을 크게 하고, 스윙이 크면 타율이 내려간다. 반대로 홈런을 포기하고 콘택트에 집중하면 타율을 올릴 수 있다. 때문에 다승 평균자책(ERA) 탈삼진에서 모두 1위를 하는 투수 트리플 크라운이 35회 나오는 동안, 타율 홈런 타점에서 모두 1위를 하는 타자 트리플 크라운은 15회에 그치고 있다. 특히 최근의 6회는 모두 아메리칸리그에서 나와, 내셔널리그는 1937년 조 메드윅(세인트루이스)이 마지막이다. 오타니는 타율 4리가 부족해 내셔널리그에서는 87년 만에 나올 수 있었던 트리플 크라운에 실패했다. 역대 최초로 3년 동안 세 팀에서 타격왕이 된 루이스 아라에즈(샌디에이고)는 오타니가 따라붙는 속도가 너무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40-40을 달성한 오타니는 최초로 50-50을 달성한 날 6타수 6안타 5장타 3홈런 10타점 2도루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어진 8경기에서 신기록을 마구 쏟아냈다. 마치 야구는, 오타니의 놀이터 같았다.

그동안 지명타자 MVP가 없었던 건 지명타자는 수비 기여가 없기 때문이다. 승리 기여도(WAR)를 계산할 때 지명타자는 같은 공격 성적을 내도 큰 감점을 받는다. 반대로 수비 부담이 큰 포수와 유격수는 가산점이 크다. 하지만 오타니는 수비 기여 없이도, 공격에서 큰 감점을 받고도, 승리 기여도에서 압도적인 내셔널리그 1위를 했다.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는 수비를 하지 않은 오타니였다. 네오가 <매트릭스> 속 가상 세계에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오타니는 야구라는 현실 세계에서 혼자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다. 매트릭스를 만든 아키텍트에 따르면, 영화 속의 네오는 여섯 번째 등장한 네오였다. 하지만 우리의 네오는 두번째, 아니 첫 번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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