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크로우는 모든 것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두었다.
러셀 크로우는 바쁘다. 그가 소속된 밴드의 공연은 매일 밤 만석을 이루고,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작품을 소화하고 있으며, 쉬는 날엔 바티칸에서 프라이빗 투어를 즐긴다.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전설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대체 어떤 비결을 언제부터 알았던 걸까?
지난겨울 부다페스트에 머물며 영화를 찍은 러셀 크로우는 숙소로 임대한 집에서 촬영장까지 매일 자전거로 이동했다. 두꺼운 타이어가 장착된 MTB에 올라 일부러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해 달렸고, 정해진 거리를 주파하는 데 걸린 시간을 SNS에 기록하며 최단 기록 갱신을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집에서 스튜디오까지 걸린 시간은 매번 45분 내외였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전거를 타기 전에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어야 했어요”라고 말한다. 코스의 가장 높은 지점은 고도 166미터에 달했고 가장 힘든 구간은 쓰레기장이었으며, 비라도 내리는 날엔 쓰레기 더미 사이로 흐르는 구정물이 바퀴를 타고 입 안으로 튀었다. 머드가드를 달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지만, 부다페스트 거리의 오물을 뒤집어쓴 채 메이크업을 받으러 간 날은 그 후로도 이따금 있었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탄 건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말한다.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게 해준 한 가지는 정점을 찍은 뒤 길게 이어진 언덕을 따라 내려가는 구간이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간 뒤 슝 내려가기만 하면 될 때의 환상적인 기분이 있어요.” 그는 말했다.
크로우가 머문 부다페스트의 집은 오히려 로스앤젤레스에서 볼 법한 스타일이었다. 전체적으로 밋밋한 데다 입구 쪽 면은 브루탈리즘 양식이었고 인테리어는 반짝거리는 모양새가 이웃한 전통적인 스타일의 건물들과 대조되었다. 집을 방문하기 전 그와 만난 곳도 길모퉁이의 그런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은 카페였다. 헝가리 여성들이 운영하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크로우가 머물고 있던 집은 정원의 잔디 상태가 완벽해 인조잔디라 해도 믿을 정도였고, 토피어리는 무슨 이유에선지 버트 플러그를 닮은 생김새였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유럽 마약상이 운영하는 매음굴이라고 소개하곤 하죠”라고 그는 웃으며 해명하듯 말한다.
그가 나치 전범 헤르만 괴링으로 출연하는 <뉘른베르크>의 촬영 기간 동안 숙소로 사용한 곳이 바로 이 집이다. <더 엑소시즘>, <슬리핑 독스>, 그리고 소니에서 제작한 슈퍼 빌런 영화로 공개를 앞둔 <크레이븐 더 헌터> 등을 포함해 올해 공개된 작품만 다섯 편이 될 정도로 크로우는 최근 정신없이 활동해왔고,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 바로 <뉘른베르크>다. 촬영이 끝나면 그는 가족과 220마리 소가 기다리는 호주 시골의 목장으로 돌아갈 테지만, 그가 소속된 밴드 인도어 가든 파티의 유럽 투어를 위해 다시 집을 떠나게 될 것이다.(그의 밴드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호주 스킨헤드에서 로마 검투사까지 다양한 인물의 내면을 담아내던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전에 없던 지친 기색이 서린 듯하다.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본인의 맨얼굴을 본 기분이 어떤지 묻자, “제임스 카메론이 마리아나 해구 아래를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신 적 있나요?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가 등장하잖아요. 딱 그런 생물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잔주름들이 펴져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며칠이나 걸렸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간 길러온 수염을 <뉘른베르크> 촬영 때문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밀었던 것이다.
GQ 다음 주면 예순 살이 되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RC 실감이 나지 않아요. 적어도 머리로는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고요. 하지만 저는 온몸 곳곳에 부상을 많이 입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여파가 느껴지죠.
GQ 어떤 부상들이죠?
RC 우선 엄지발가락은 연골이 아예 닳아서 없어요. 제가 했던 스포츠는 모두 측면 이동의 비중이 높은 종목이었거든요. 테니스, 럭비, 크리켓 모두 순간적으로 뛰쳐나가는 동작이 필요하잖아요. 전투 장면을 촬영할 때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으면 굉장히 급격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기도 했고요.(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지금껏 입은 부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족저근막염, 정강이에는 신스프린트가 있죠. 양쪽 무릎 아래에는 골수부종, 허리 쪽으로 가면 셀 수 없이 많은 문제가 있어요. 압력을 크게 받으면 갈비뼈가 떨어져 나가죠. 왼쪽 어깨는 수술을 두 번 받았는데 관절염이 너무 심해서 뭘 해도 불편하기만 하고, 결국 상완골두를 아예 들어내 반으로 쪼갠 뒤 탄소섬유를 채워 다시 집어넣고 봉합하기도 했어요. 회복에 11개월이나 걸렸죠. 제기랄.(웃음)
RC 이 모든 부상이 촬영장에서 일어난 사고와 관련되어 있고, 몸에 난 흉터 중 영화와 무관하게 생긴 건 하나밖에 없어요. 열네 살 때였나, 담장을 뛰어넘었는데 하필 바닥에 누군가 던져 깨진 콜라병이 있었던 거죠. 그 위에 착지하는 바람에 상처를 꿰매야 했어요.
GQ 영화를 위해 얻은 부상들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RC 그렇죠. 그게 제가 영화를 찍는 방식이었으니까요. 1990년대 초 있었던 일인데, 저보다 나이가 많은 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누군가 “저기에 당신과 완전히 똑같은 의상을 입은 사람 보이나요? 당신이 매일 예닐곱 시간씩 흙밭에 뒹굴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니까 제가 직접 흙밭에서 뒹굴 거예요”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며 깨닫게 된 사실이 있어요. 저와 얘기를 나누던 그 사람들은 그저 어쩌면 힘줄이 끊어지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힘줄이 끊어지면 삶이 그만큼 어려워지더라고요.
GQ 촬영장에서 완벽주의자로 알려졌는데, 그 말에 동의하시나요?
RC 그건 조금 웃긴 말이에요. 왜냐하면 완벽주의자는 어떠한 것도 성에 차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마는 경향이 있거든요. 촬영장에 카메라가 있고 조명도 설치되어 있고 스태프도 수백 명이나 있는 상황이라면, 뭐든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것이 저의 입장이에요. 전혀 비이성적인 얘기는 아닐 거예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게 해준 말이 있어요. 우리가 같이 작품을 하기도 전의 일인데, “당신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뭔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거나 문제점을 발견한다면 곧바로 말해줘야 해요. 미루다가 후반 작업 들어가서야 말한다면 평생 증오할 거예요”라는 얘기였죠.(웃음)
GQ 저도 호주 출신이라 드리는 질문인데, 일종의 문화 충격으로 인해 완벽주의자라는 평판을 얻은 것일 수도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호주 사람들 특유의 직설적인 방식을 약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RC 그런 면이 분명 꽤 작용했죠. 저의 자기 비하 농담들도 한몫했고요. 사캐즘과 자기 비하는 종종 액면 그대로만 본다면 서로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고, 그래서 저는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누군가 칭찬을 했는데 속뜻을 모르는 채 잘못 대꾸해버리면 상대의 거짓된 아첨에 대한 응수가 아닌 그저 자기 얘기를 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GQ 그리고 미국에서는 호주에서처럼 ‘컨트’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도 없죠.
RC 활용도가 가장 높은 단어들 중 하나인데 말이죠!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에요.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다른 점이 많아요. <매드 맥스>를 미국에서 개봉하기 위해 더빙을 다시 해야 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어떤 이름 모를 미국 배우를 섭외해 맥스의 대사를 더빙했죠. 호주 사람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업계에서 너무나도 이상하고 기이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던 거예요.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분위기였어요. 당시 주디 데이비스가 활발히 활동할 때였는데, 주변에서 저에게 차세대 멜 깁슨이냐고 묻는 사람이 꽤 많았고 그때마다 저는 “저는 차세대 주디 데이비스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어요.(웃음) 문제는 제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스스로 게이라고 고백하는 건가?!”라고 의아해할 뿐이었죠.
GQ 하지만 주디 데이비스는 엄청난 배우죠.
RC 맞아요! 주디 데이비스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저토록 유능하고 열정적이며 강렬한 연기를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런데 제가 미팅에 들어갈 때마다 다들 저한테 대중의 호감을 사고 싶다면 모국어 억양을 버리는 편이 좋겠다는 식의 말이나 하고 있었던 거죠.
GQ 미리 털어놓자면, 이 인터뷰는 당신이 행복하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한 거예요. SNS에서 보면 진심으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RC 저는 지금껏 인생 대부분을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하게 지내왔어요. 그런 저를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제 알 바가 아니에요. 저는 창작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벌써 거의 35년째 추구해왔고 언제나 당당했어요. 저의 선택들은 매번 사람들을 경악시키죠. 제가 2011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우탱클랜의 RZA가 감독한 <철권을 가진 사나이>를 찍었을 때도 다들 “대체 이유가 뭐야?”라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저는 RZA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가 영화를 이해하며 영화 연출에 필요한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제가 언제 또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보겠어요. 어느 시대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하이 한구석의 욕조에 잠겨 타인의 엉덩이에서 애널 비즈를 뽑아내는 연기를 해볼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러셀 크로우 주연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연출한) 피터 위어 감독님은 제게 그런 배역을 안 주셨거든요.(웃음)
GQ 그래서인지 당신이 10대 시절에 쓴 곡 ‘I Just Want to Be Like Marlon Brando(나는 그냥 말론 브란도처럼 되고 싶어)’의 제목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말론 브란도는 연기 인생 후반에 정말 형편없는 영화들을 하기도 했잖아요.
RC 하지만 그 형편없는 영화들에 그의 최고의 연기가 담겨 있기도 하죠.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저는 배우로서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찾아내야 해요. 제가 언제까지나 버드 화이트(<LA 컨피덴셜>)나 막시무스(<글래디에이터>) 같은 캐릭터만 반복해서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그런 배역들에는 일단 아무런 흥미도 없어요. 저는 뭐든 새로운 걸 해보고 싶고, 그렇기에 지금은 부다페스트에 와서 헤르만 괴링을 연기하고 있는 거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역사적인 인물이면서도 수수께끼에 싸인 괴링이란 인간을 이해하고, 철저하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에 약간이나마 인간성을 부여해볼 기회가 주어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매일 촬영장에 얼굴을 내밀고 라미 말렉, 마이클 섀넌, 리처드 E. 그랜트 등과 함께 영화를 만들죠. 다들 엄청난 배우들이고 그 사이에서 저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러셀 크로우는 10대 시절부터 음악을 해왔고, 1980년대 후반 시드니에 잠시 살던 시절에는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월세와 식비를 전부 해결하기도 했다. 1970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타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작곡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저 남이 만든 노래나 따라 부르려고 기타를 원했던 게 아니에요. 제 자신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타를 갖고 싶었던 거죠. 그때 제가 여섯 살 어린애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웃긴 얘기이긴 해요”라고 크로우는 설명한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어떤 한 순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면 마침 딱 그 주제에 관한 노래가 있다는 대답이 종종 돌아오곤 한다.
그의 백 카탈로그에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노래가 있다. 노스 퀸즐랜드에서 온 나이 든 사탕수수 농부에 대한 노래를 예로 들자면, 그는 밭에서 일하는 동안 사탕수수를 씹는 버릇 탓에 치아가 썩어버렸는데 우연히 시드니의 한 델리 앞에서 크로우와 마주친 날 때마침 새로 맞춘 가짜 이빨을 끼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 노래가 있고 인생의 조언을 전하는 노래가 있으며 슬픔에 관한 노래가 있다. 익살스런 면도 물론 있다. 크로우가 활동한 예전 밴드 30 오드 풋 오브 그런츠(30 Odd Foot of G runt s)는 단어들의 첫 글자를 딴 TOFOG로 더 잘 알려졌기에, 2003년 밴드 해산 이후 그는 새 밴드의 이름도 두 문자어가 동일하도록 일부러 디 오디너리 피어 오브 갓(The Ordinary Fear of God)으로 지었다. 이미 TOFOG라고 새긴 악기와 장비 케이스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주변에서는 제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를 인색한 놈이라고 욕했지요!”)
현재 밴드인 인도어 가든 파티는 연내에 새 앨범 <Prose and Cons>발매를 앞두고 있고, 크로우가 나를 집까지 초대한 목적 중 하나는 신곡을 몇 개 들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만지작거리더니 그의 스마트폰에 연결해 신곡을 들려줬는데, 음량이 어찌나 큰지 일평생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GQ 카메라 앞에 선 배우가 아닌 무대에 선 음악가로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요?
RC 원점으로 돌아가 균형을 다시 잡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어요. 무대에 오른다는 건 어느 정도 무질서를 동반하기 마련이거든요. 공연을 하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미리 세트리스트를 짜고 멘트를 정하는 등 나름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무대를 시작하겠지만, 관객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어떤 곡에 호응하는지에 따라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공연을 하고 나면 다시 지극히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돼요.
GQ SNS 등장 이전 시대의 음악이라는 것은 간섭 없이 대중과 직접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을까요?
RC 저는 저의 인터뷰보다 제가 부르는 노래 가사에 저에 대한 얘기가 더 많이 담겼다는 말을 오랫동안 해왔어요. 노래는 어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삶을 가사로 풀어내곤 해요. 또는 반대로 노래의 가사를 따라 삶이 나아가는 경우도 있고요. 무언가에 대한 곡을 쓴다면, 그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인생에 진실로 자리 잡게 돼요. 크로우는 ‘Stronger Than Stone’이라는 제목이 붙은 곡을 재생한다. 두 아들에게 인생의 조언을 전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설명한다. “제가 아들들을 위해 인생에 대해 조언을 남기려 한다는 것 자체가 꽤 웃기죠. 그 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려는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해 오만하게 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이 곡을 만들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언젠간 저도 세상을 떠날 테고, 그때가 온다면 마치 저세상에서 제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을까요?”
GQ 곡에서 아들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뭔가요?
RC 제목 그대로 물이 돌보다 강하다는 거죠. 돌을 조각하면 영구적으로 그 형태가 남겠지만 때로는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울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고자 한 말의 핵심은 곡의 브리지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흐른다는 것이 핵심이거든요. 각자가 스스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존재이며,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할지는 본인에게 달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GQ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옆으로 돌아서 흐르기도 하지요.
RC 또는 뚫고 지나가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 저는 대학에 가서 역사를 공부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게 제 꿈이고 열정이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거예요. 1년 반이나 실직 상태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서는 제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일자리를 구해 가계에 보탬이 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했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뛰어든 이유도 우리 가족의 처지를 바꾸는 데는 그게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저의 두 아들에게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아도 되는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게 되었죠. 오늘날 저의 가족은 모두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제가 어느 시점엔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어요.
GQ 당신이 꽤 어린 시절에 만든 말론 브란도 곡에 “내가 터프한 영화배우가 될 수는 없겠지. 그건 누가 봐도 알 거야. 내게 맞는 건 조용한 삶이야”라는 가사가 등장해요. 그 나이대에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RC 그런 식으로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아마 끝이 없을 거예요. 제가 한 예술 형식을 빌려 다른 형식의 활동을 논한 사례는 정말 많거든요. 1995년쯤에는 ‘The Photograph Kills’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그건 장편영화를 찍을 때 생성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프레임들 중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들을 삭제하는 행위에 관한 노래였어요.
GQ 하지만 그런 내용으로 들리지 않던데요.
RC 맞아요. 노래는 어떻게 들리는가에 따라 가사의 의미가 이해되죠. 그 곡을 만들고 몇 년 지난 시점으로 이동해볼까요? 어딜 가도 저를 찍어대는 카메라들로부터 숨거나 피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호텔의 방에서 나갈 수도 없어요. 창가에 다가가기만 해도···.(플래시가 펑펑 터지는 소리를 흉내 낸다.)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아직 갓난아기였던 아들들을 데리고 있었는데도 저를 추격하듯 따라오며 사진을 찍었죠. 그때 우리는 어떤 아동복 상점에 있었는데 문 앞에 파파라치가 35명이나 진을 치고 기다리는 바람에 안에 갇혀 있다시피 했어요. 차량을 불러야 했고, 보안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사람들을 밀치고 길을 만든 뒤에야 간신히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탈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은 세계 어느 도시에 가든 마찬가지예요. 마드리드, 파리, 로마 어디에 가든 똑같은 일이 벌어지죠. 누군가 저를 따라다닌다는 사실은 상수처럼 존재하는 조건이에요.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뭐랄까 위협적인 자세를 조금 풀게 되는 듯하고, 그렇기에 이제는 제가 하려는 말을 사람들이 들어줄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해요. 음악도 마찬가지겠죠.
GQ 조용한 삶을 선호하나요?
RC 실제로도 조용한 삶을 살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일이 있으면 일터에 나가서 일을 하고, 촬영이 없을 때는 혼자서 들판에 나가 시간을 보내요. 소 몇 마리와 강아지들, 그리고 말들과 닭들이 있는 드넓은 장소죠. 그렇게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그런 고요한 명상의 시간이 있기에 촬영장으로 되돌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거리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제정신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바로 그런 조용한 시간들이고요. 어제는 비엔나에 다녀왔는데, 슬슬 사람들이 제 주위로 몰려들겠다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평소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모든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아주면서도 걸음은 계속했어요. 그들이 원하는 건 자리를 피해 도망치는 저를 추격해 찍는 사진들이었고, 그렇기에 몇 분 지나지 않아 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죠. 저는 텅 빈 골목에 홀로 남겨졌고 길을 헤맬 일도 없이 거리를 즐겁게 걸어 다닐 수 있었어요. 물론 애초에 제가 어딘가에 가기로 정해져 있었고 그 사실을 제가 공개한 거라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만족할 수 있도록 사진에 찍힐 용의가 있어요. 해야 할 땐 저도 한다는 거죠. 그리고 요리조리 피해서 달아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 그렇게 하겠죠. 물은 돌보다 강한 거잖아요. 목장으로 우편물이 격주로 한 번씩 배달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매번 커다란 보따리에 팬레터가 가득 담겨 왔고, 전부 읽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어요. 저는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조카에게 “내가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책상 위에 올려줘”라고 부탁해 조금씩 읽고 답장을 써서 조카에게 보내달라고 해요. 아마 팬레터를 보낸 지 10년이나 지나서 답장을 받은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과거의 팬레터들에 대한 답장을 모두 보냈고, 이제는 새로 오는 것들에만 회신하고 있지요.
GQ 주로 <글래디에이터>를 보고 보내는 팬레터들인가요?
RC 작품을 가리지 않고 팬레터가 와요. 이따금 저에게 상당히 불친절한 기자들이 “사실 당신은 그냥 흥행작 하나뿐인 커리어를 갖고 있잖아요”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물론 지금 당신이 그랬다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우선 제가 늘 언급하는 <LA 컨피덴셜>이 있어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그 영화를 완벽한 장편영화로 꼽죠. <인사이더>도 대단했고 <뷰티플 마인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시간이 지나며 인기가 계속 늘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여성 관객들이 특히 좋아하더군요.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저에게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해요. 아마도 작품에서 묘사된 남성성이 명예와 신의 그리고 책임감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해롭지 않은 종류의 남성성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GQ 유능한 지휘관 특유의 매력이 있죠.
RC 그런가 하면 <나이스 가이즈> 같은 영화가 있죠. 호응이 굉장했어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작업한 작품인데, 촬영할 때 라이언 고슬링 때문에 고생을 엄청 한 작품이기도 해요. 저는 원래 연기할 때 완벽한 몰입감을 유지하는 걸로 유명해요. 리들리 스콧 감독이 그런 저를 두고 놀릴 정도였어요. 제 등 뒤에서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상황이 온다 해도 저는 배역에 충실하게 연기를 하고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면 웃어서는 안 되는 순간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잖아요? 라이언 고슬링이 매번 저를 웃기는 바람에 몰입이 깨져서 고생이었죠.
GQ 이탈리아와의 연결점은 <글래디에이터> 덕분인가요, 아니면 조상 대에 이탈리아와의 접점이 있었던 건가요?
RC 친척들 각자가 우리 집안과 이탈리아와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스토리를 하나씩 갖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진짜 정보는 알고 있지 않았어요. 그러다 누군가 단서를 짜맞춰 답을 찾아냈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진실이 밝혀지고 말았죠. 정확히는 올해 들어 몇 차례에 걸쳐 해답을 찾아가게 된 거였는데, 발단은 우리 집안의 가계에 대한 조카의 호기심이었어요. 친척 중에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분이 있어 그분을 따라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 1800년대 이탈리아까지 도달한 거예요. 제가 우리 가족의 역사에 대해 평생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올해 전부 알게 되었어요. 재미있는 얘긴데, <글래디에이터> 덕에 제가 이탈리아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이게 된 것도 맞아요. 영화를 본 후 이탈리아와 로마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많았거든요.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지만요. 어쨌든 최근 누가 저에게 얼마나 자주 로마 제국에 대해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상대에게 당신은 짐작도 못 할 거라고 대답해줬죠.(웃음)
부다페스트에서 가진 첫 만남으로부터 2주일 뒤 런던 도체스터 호텔에서 크로우와 재회했다. 자리를 잡았으나 프릴로 장식된 의자가 과할 정도로 푹신했던 탓에 우리는 뒤집힌 거북이처럼 팔을 휘휘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의자가 정말 엉망이네요”라는 그의 웃음 섞인 말에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2주일은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기간이다. 그사이에 크로우는 부다페스트 촬영을 마쳤고 수염을 다시 기르기 시작했으며 60세가 되었다.(촬영에 대해서는 꽤 신이 난듯했다. 좋은 작품이 기대된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불과 4일 전에 헤어졌다. 인생이 뒤바뀔 정도의 비밀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이후에 등장할 크로우가 쓴 노래 가사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GQ 부다페스트에서 신곡 중 하나인 ‘Michelangelo’s God’을 들려주셨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설명했어요. 2022년 부친 작고 후 로마를 방문했을 때 스위스 근위대 악단이 근처에서 연습하는 중이었는데 원래 교회 음악만 연주하는 그들이 어째선지 (아일랜드 민요인) ‘Danny Boy’를 연주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 곡은 부친 장례식장에서 연주된 곡이었다고 했어요. 내세를 믿나요?
RC (긴 침묵) 모르겠어요. 물론 각자 원하는 바는 있겠지만요.(웃음) 내세에 관한 얘기는 늘 조금 까다로워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하기가 너무 쉬운 탓이겠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후 새가 되어 찾아오겠다고 어머니에게 항상 말씀하시곤 했어요. 장례식 마치고 며칠 후에 일어난 일인데, 제가 아침 일찍 일어나 서재에 앉아 해가 뜨는 걸 바라보고 있었어요. 저는 목장에 머물 때는 아직 깜깜한 시간에 일어나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창 밖으로 검은 코카투 무리가 문 앞의 나무에 앉아 있는 게 보였어요. 45마리였는지 47마리였는지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어요. 새들이 계속 움직여서 숫자를 세다 포기했거든요. 저는 깜짝 놀랐죠. 그렇게 많은 검은 코카투가 모여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원래는 혼자 혹은 두세 마리씩 다니는 새란 말이에요.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 그들을 바라보았죠. 어쩌면 그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다 시선을 아래로 돌렸는데 문 앞에 풍나무 씨앗 열매가 놓여 있는 거예요.
GQ 코카투가 선물을 주기도 하나요? 런던에서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준 적이 있는데 저한테 이것저것 갖다주더라고요.
RC 까마귀들은 그렇죠. 코카투가 선물을 준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검은 코카투는 원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상징 같은 존재예요.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 사실을 알고 검은 코카투가 나타난다고 하죠. 호주 원주민 문화의 민간 전승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경험을 제가 실제로 한 거잖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알고 40여 마리나 되는 검은 코카투가 찾아온 것 아니겠어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내세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거의 확신해요.
GQ 당신은 스토리텔러잖아요. 대본이나 책을 쓸 계획은 없나요?
RC 생각보다 많은 글을 쓰고 있어요. 저는 아무래도 배우이기 때문에 제가 글을 쓴다고 꼭 인정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지금 제가 하는 일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해요. 지금만 해도 대본을 두세 개 쓰고 있고 이미 완성된 대본도 몇 개 있어요. 다만 저에게 작가로 활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이고, 현재로서는 안 그래도 연기 일과 음악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에요.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뒤 남는 아주 작은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쓸 수밖에 없죠. 저는 2년이나 3년에 하나씩 작품을 찍는 사람들과 달라요. 일 욕심이 엄청나거든요.(웃음)
GQ 언젠가 소설을 써볼 생각도 있나요?
RC 중편 길이의 짧은 소설을 써본 적은 있어요. 다만 장편소설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제 머리가 돌아가는 방식이 소설 쓰기에 적합한지 확실치 않아요. 전기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전기가 범죄라고 한 오스카 와일드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거든요. 전기를 쓰는 자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남겼죠 아마? (와일드가 남긴 말은 “지금 시대에 위대한 이들은 누구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 사람의 전기를 쓰는 건 언제나 유다와 같은 자이다”였다.) 하지만 자서전의 경우에는 저자의 선택으로 그때까지 남겨진 기억들이 담긴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워요. 저는 자서전을 읽을 때 주인공이 드디어 대중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면 책을 덮어버리죠. 제가 궁금한 건 초기의 이야기들이거든요. 어쨌든 자서전을 쓰려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 할 텐데 저는 제 인생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기엔 아직 젊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제가 자서전을 쓴다면 책에 언급될 인물들 중 소송을 걸 사람이 꽤 많이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웃음)
GQ 연기자로서 본인이 아닌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RC 그건 제가 상당히 밋밋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아이스크림으로 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랄까요. 흥미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맛을 첨가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배역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거죠. 실제로 저라는 사람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거나 흥미롭지 않아요.
GQ 다코타 존슨이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그녀는 <마담 웹>을 촬영하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대형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사실상 “제작위원회가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여지가 있다는 말도 했죠. 당신의 경험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RC 다른 사람의 발언이나 경험에 제가 말을 얹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도 저의 짓궂은 유머감각을 발휘할 수밖에 없겠네요.(웃음) 일단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세계관을 가진 마블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해놓고 작품 전반에 페이소스가 부족했다고 불평하겠다는 건가요? 뭘 어떻게 더 해줘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요. 대규모 영화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장 같은 시스템이잖아요.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저도 잭 스나이더 감독과 함께 <맨 오 브 스틸>을 찍으며 DC 유니버스에 발을 들여봤고, 마블 쪽으로는 디즈니가 제작한 <토르: 러브 앤 썬더>도 해봤죠. 심지어 <크레이븐 더 헌터>로 (소니
가 판권을 가진)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도 경험해봤어요. 그리고 이것들은 그냥 직업일 뿐이에요. 주어진 배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는 게 전부란 말이죠. 인생의 전환점이 될 계기를 기대한 거라면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것뿐이에요. 물론 계속 블루스크린 앞에서 촬영하는 게 어려울 수는 있어요.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단순히 캐릭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해요. 저는 다코타 존슨을 직접 알지 못하고 그녀가 어떤 상황들을 겪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꼭 그녀를 겨냥해서 하는 말은 아닌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이고 어떤 작품이 정말 안 좋은 경험으로 남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마블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잘못되었냐고 묻는다면 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는 나쁜 경험을 하지 않았거든요. (토르의 경우) 물론 전형적인 마블 영화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타이카 와이티티가 구축한 세계였고, 많이 웃으며 정말 재미있게 촬영한 작품이었어요. J.C. 챈더 감독의 <크레이븐 더 헌터>에서 저의 역할은 영화에 약간의 무게감을 주는 것이었고, 젊은 배우들에게 의견이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어요. 챈더 감독과 같이 일하는 건 꽤 즐거웠어요. 많은 영화감독이 다들 어떤 경지에 오른, 천재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구성, 구도, 색감, 음악, 그리고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수많은 요소까지 감안하면 그들이 그토록 뛰어나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나요? 리들리 스콧이든 (<프루프>를 찍은) 조셀린 무어하우스든 마찬가지예요. 다들 천재죠.
GQ 출연을 고사한 것이 후회되는 작품이 있나요?
RC 사실 딱 하나 있어요. 제가 사양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수익을 거둔 영화들도 있는데 그건 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아쉬워하겠죠. 그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해서 그 영화를 제게 가져온 것이었을 테니까요. 제가 평소 너무나도 좋아했던 뮤지션의 전기영화를 거절한 적이 있는데, 저 또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정당하게 얻지 않은 위치에 오른다는 것이 조금 떳떳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다만 이제는 그 감독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고, 그때 그와 함께 음악에 둘러싸여 영화를 찍었다면 환상적인 경험이 되었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GQ 그 감독이 누군지 알려주지 않을 건가요?
RC 네. 왜냐하면 저는 요즘 “후회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들거든요. ‘진짜? 살면서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확실해? 너 정말 완벽한 인간이네’라는 식으로 반응하게 되죠. 저는 후회가 넘쳐나거든요. 홧김에 한 말, 과했던 반응,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친 것 등 엄청 많아요. 하지만 반대로 제가 잘한 것도 많으니 저의 모든 후회는 결국 상대적인 것 아닐까 싶어요. 따라서 제게 후회란 명예로운 훈장 같은 거예요. 그렇게 내적 성찰을 하고 “어제의 나는 최악이었어. 그러니 다시는 그런 식으로 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GQ 후회는 감정에 남는 흉터와도 같죠. 또는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고요.
RC 맞아요. 그리고 밑거름이기도 해요.
GQ 후회가 있기에 좋은 곡이 탄생하기도 하죠?
RC 그렇죠. 흙에 약간의 재를 뿌려주는 거죠.
GQ 지난번에 만났을 때 러셀 크로우라는 사람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만든 노래들을 듣는 거라고 얘기하셨죠. 그래서 찾아서 들어봤는데, 아들들을 위해 쓴 곡인 ‘This Is How Life Is’에 대해 궁금한 게 생겼어요. 가사가 “누구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아 / 누구도 계획대로 나아가지 않아”라고 시작하고, “친구들은 어려울 때 너의 곁을 떠나 / 그러니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을 찾아 떠나”라는 구절도 등장하죠. 인생을 꽤 우울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RC 그것이 인생의 진실한 모습이죠. 우울함이나 슬픔과는 전혀 무관한 곡이에요.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 위한 거예요. 거짓말과 헛소리는 인간의 본성이잖아요. 그러니 누군가 그렇게 굴더라도 너무 충격받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거짓말과 헛소리 대목에서 나는 전 남자친구로 인해 내가 겪고 있는 감정적 상태를 모조리 털어놔버렸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다. 가족들에게는 말하기도 전인데 러셀 크로우 앞에서 울먹이는 내 모습이라니. 세상에.
그 남자 최악이네요. 많이 힘들겠어요. 맙소사···. 스콘 좀 드셔야겠어요.
크로우는 내 팔을 꾸욱 한 번 쥐어주더니 웨이터를 찾았다.
GQ 모든 게 잘못되고 무너져내리는 순간에도 너무 놀라지 말라는 얘기인 거죠? 게다가 그런 순간이 찾아올 가능성이 꽤 높다는 것이고요?
RC 확실해요. 애정을 갖고 좇는 일이 있다면 더더욱 그런 순간이 찾아올 거예요. 어떻게 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미리 담보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포기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면 계속 그렇게 나아가는 수밖에 없죠. 이건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얘기죠. 어떤 대단하고 절대적인 철학을 저한테 기대해서는 안 돼요.
GQ 제가 당신의 연약한 면에 관해 묻자 저한테 들어보라고 권한 곡은 ‘Disappeared’였죠. 가사에 “나는 모두에게 어떠한 것이든 되어줄 수 있지만 / 단 한 명에게도 진실되지 못했다 / 당신에게는 한두 번 진실했을 수 있겠으나 / 그것을 말로 표현하진 못했다”라는 구절이 등장해요. 어쩌면 저의 최근 상황 때문에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정확히 어떤 뜻으로 지은 가사인가요?
RC 당신이 겪은 일은 굉장히 슬픈 일이고···, 저와 그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그 상황에 대해서 당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오늘 제게 당신이란 사람의 끝내주게 용감한 일면을 보여주었어요. 너무나도 용감했어요. 저는 그걸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그러니 저도 진실을 하나 알려줄게요. ‘Disappeared’가 수록된 앨범은 전부 제가 당시 제 아내에게 전하는 메시지들로 채워졌어요. “우리가 이혼할 수는 없잖아.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담은 앨범이었죠. 수록된 곡들 ‘Too Far Gone’, ‘Sadness of a Woman’, ‘Love is Impossible’, ‘Disappeared’ 등 모두 그 당시 저의 결혼생활에 관한 노래들이고, 제 아내에게 그 노래들을 불러보게 한다면 어쩌면 제가 전하고자 하는 뜻이 그녀에게 닿지 않을까 생각했어요.(크로우가 언급한 <The Crowe/Doyle Songbook Vol III>앨범 는 2011년에 공개되었고, 2012년 말에 둘의 이혼이 발표되었으며 이혼 절차는 2018년에 마무리되었다.)
GQ 말로 전할 수 없었기에 노래 가사에 담기로 했던 건가요?
RC 대화든 뭐든 이미 다 해본 상황으니까요. 다만 아무리 대화를 시도한다 해도 이성적으로 판단해봤을 때 저의 진심 어린 말들이 상대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는 결론이 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필요 없어지는 거죠. 어차피 상대방은 듣지 않을 테니까요. 닫힌 마음을 열 마법 같은 말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시는 일반적인 언어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죠. 지금의 저는 그런 자기 성찰적 러브송을 만들던 시기에서 확실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어요. 더 이상 구석에 앉아 ‘극심한 비애’에 잠겨 있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또한 ‘난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식의 자신감 넘치는 시기도 지나갔어요. 오히려 이제는 “그거 알아? 인생은 끝내주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무슨 얘기냐면, 저는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입어왔잖아요? 이혼도 해봤고 이런저런 일을 모두 겪어봤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결국 인생은 엄청 멋져요.(이어서 크로우는 자식을 아끼는, 그러나 엄격한 아버지처럼 안경 위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물론 안 좋은 날도 있겠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