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이라는 설경 안에.
GQ 날씨가 부쩍 추워졌어요.
JM 맞아요. 그런데 올해 제가 촬영할 때 보니까 벚꽃이 필 때도 너무 더웠어요. 한 3월부터. 9월 초까지도 땀 흘리면서 촬영했거든요. 이번 여름이 너무 길다 보니 찬바람이 불어오니까 반가운 거예요. 이번 겨울이 유독 더 반가워요.
GQ 아까 영상 인터뷰 때도 눈이 많이 오는 데를 좋아한다고 그랬죠.
JM 어릴 때부터 눈 내리는 것도 너무 예쁘고 겨울이면 옛날로 돌아간 느낌? 동심이 생기는 느낌이어서 겨울을 좋아해요.
GQ 올겨울에 어딘가로 떠날 계획인가요?
JM 언니가 호주에 사는데 겨울에 거긴 여름방학이다 보니 이때 한국에 조카들이랑 들어와요. 그래서 12월에 외국에 나간 적은 거의 없고 항상 가족들과 스키장에 가는 정도? 스키장만 가도 좋아요. 눈이 많으니까.
GQ 역시나 조카 이름 딴 SNS 아이디 따라 ‘로마 이모’다운. 겨울을 가족에게 온전히 바치는 편이네요.
JM 어릴 때부터 겨울이라 하면 겨울방학 때 다 같이 모여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명동 가고, 그리고 <가요대상> 이런 연말 시상식 보는 게 저희 집 풍경이었거든요. 그래서 가족들이랑 보내는 그 느낌이 저한테는 많이 남아 있나 봐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 선물도 엄청 기다렸어요. 한번은 할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랑 소주 한잔했어” 그러시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항상 새벽에 일어나셨거든요. 우리가 왜 안 깨웠냐고 했더니 산타가 깨우지 말라고 그랬다고, “그럼 할아버지 뭐 했어!” 그랬더니 소주 한잔하셨다고.
GQ 그 말을 믿었어요?
JM 네! 할아버지가 거짓말할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순수했죠. 저는 그때가 좋아요. ‘언제가 좋았지?’라고 생각해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다 계시고, 별거 아닌 그냥 일상적인 일요일의 풍경이 생각나요. 그때가 제일 그리워요. <사랑이 뭐길래> 같은 주말 드라마, <짝> 이런 일요일에만 하는 드라마 다 같이 모여서 보고. 으하하하. 저 너무 옛날 사람이죠. 다 같이 모여서 깔깔거리면서 보던 기억이 너무 행복해요. 항상 그리워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이잖아요. 저는 아날로그적인 걸 더 좋아하고, 스마트폰보다 편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지금 이 시대를 쫓아갈 수가 없어요. 너무 빨라. 저는 면대면이 좋아요.
GQ 인사 겸 이리저리 안부를 물어봤어요. 새 드라마 <(가제)인사하는 사이>를 빌미로요.(인터뷰 후 <나의 완벽한 비서>로 제목이 확정됐다.)
JM 좋아요. 인사 건네는 것 자체를 저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현장 가면 저 멀리서부터 제가 오는 게 느껴진대요. 마주하는 사람들이랑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 열 번 정도 해야 도착해서 저 멀리서부터 시끌벅적하게 “안녕하세요” 소리 들리면 ‘아, 지민이 왔나 보다’ 알아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사실 기자님이랑도 저희가 이렇게 만나는 기회가 또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 번 딱 만났다 헤어지는 인연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첫인상과 끝 인상이 인사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끝인사를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처럼 남다 보니까.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해요, 인사를.
GQ 실은 우리 첫인사가 아니에요.
JM 진짜요? 저 원래 기억 잘하는데, 언제 뵀어요?
GQ 10년도 전에 노희경 작가님과 어떤 행사 자리에서요. 제가 ‘안녕’ 손을 흔들었는데 어떻게 했게요?
JM (같이 환하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GQ 정확해요.
JM 하하하하하, 그랬을 것 같아요.
GQ 어쩌면 무례일 수도 있는데, 나는 한지민이라는 인물을 알아도 지민 씨에게는 초면인 사람이잖아요.
JM 아니요? 저는 저 보고 반갑게 인사해주면 너무 좋아요. 기차를 타잖아요. 기차가 지나가면 저는 무조건 손 흔들어 인사해요. 저한테 인사 안 해줘도. 너무 재밌잖아요. 저 사람은 어디서 왔고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 잠깐이 반갑잖아요. 그래서 인사 엄청 많이 해요. 손 많이 흔들어요.
GQ 그 초롱초롱한 눈빛과 해맑게 인사해주던 얼굴이 늘 선명했어요.
JM 너무 좋네요. 그때 인사 안 하고 “음?” 이랬으면 어쨌어. 제가 배우가 아닐 때, 어느 날 엄마랑 시장에 갔는데 어떤 배우 선생님과 마주친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너무 아는 사람처럼 “안녕하세요” 해서 제가 “엄마, 누군지 알고 인사했어?” 그랬더니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인데” 갸웃거리시길래 “엄마, TV에 나온 탤런트잖아” 그랬거든요. 그 정도로 우리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인사하는 사이라는 게 반갑고 좋아요.
GQ 아까 연말에 가족끼리 모여서 시상식 보던 풍경을 얘기하셨죠?
JM 너무 좋아했어요. 그때 한참 아이돌들이 막 나오고 그랬어요. 저희 언니가 서태지와 아이들 완전 팬이어서 그 무대 보고 좋아하고 그랬던 것들이 재밌어요. 그리고···, 그러고 보니까 <연기대상>에 제가 나가는 사람이 됐네요? 제 생각을 못 했네.
GQ 그러니까요. 왜 남 얘기하듯 하지 했어요.
JM 맞다. <연기대상>에 내가 나오는구나. 히히히. 시청자로서 보고 싶나 봐요. 참석하는 것보다 다 같이 보는 게 좋나 봐요. 시상식 너무 힘들어요. 보는 건 좋은데. 되게 예쁘게 세팅하고 앉아 있으면 배도 고프고 오랜 시간 다 같이 어색한 데 앉아 있는 걸 대부분 다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물론 참석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한데 거기서 약간은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으며) 이렇게 내숭으로 앉아 있는 게···, 흐하하하하. 쉽지 않아요.
GQ 이제는 진행도 해야 하잖아요. <청룡영화상>.
JM 그러게요, 어떡하나. (갑자기 이마를 감싸며)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제가 마음이 편치 않아요. 정말이에요. 진짜예요.
GQ 제안받았을 때 어땠어요?
JM 믿기지 않았고 “오 마이 갓! 아니요? 오 마이 갓! 나 진짜 못 해요, 진짜 못 해요” 막 이랬어요. 밥 먹으러 나가기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밥도 안 넘어가고 정말 못 하겠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혜수)선배님이 진행자로 서시는 마지막 청룡 때 제가 함께 자리하고 싶어서 시상자로 참석하겠다고 바로 응했어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선배님 인사하는 것까지 다 보고 돌아왔는데, 선배님의 그 긴 인사가 저한테 여운이 엄청 길어서 집에 와서 혼자 다시 유튜브로도 찾아보고, 혼자 맥주 마시면서 눈물도 좀 흘리고 이러면서 새벽에 제가 문자를 남겼어요. 왜냐하면 한 다리 건너 옆에서 볼 수 있었어요. 두 달 전부터 어디도 안 가시고 작품, 배우분들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가면서 다 보시고 직접 대본 의견을 내시고 정말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선배님의 그 마지막 장면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울지도 않으시고, 안 우실 것 같긴 했는데, 마무리를 너무 성대하게 잘하셔서 다음 분은 누가 하지?, ”선배님 다음 분한테 사과하셔야 돼요” 막 이랬어요. 그런데 제가 감히? 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기쁨이 전혀 없고, 이게 왜 저한테···. 주변에서는 다 해봐야 한다,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냐, 역사적인 순간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다 이러셨는데···.
GQ 하지만 하기로 결정내렸네요.
JM 네. 한 일주일 지나서 대답을 하게 됐어요. 선배님이랑 통화도 했고. 그런데 선배님께서 “지민 씨 무조건 해” 이렇게는 안 하셨어요. 지민 씨 나름의 것으로 하면 되는데 대중들의 포커스가 되는 게 무게일 수 있고 부담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그 한 해 한 해 하셨기 때문에. 쉬운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아시기 때문에. 그래서 고민을 좀 오래 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느 순간 그게 떠오르더라고요. 청룡에서 저도 딱 한 번 상을 받아봤는데 너무 무거운 거예요, 그 상이. 전혀 예상도 못 했고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있던 작품으로 상을 받으니까, 다음에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상을 떠올려서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던 게 떠올라서 ‘그 용기를 내보자. 어떻게든 내 나름의 최선으로 해보자. 조금 미숙하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결정하게 됐죠.
GQ 30년간 이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JM 개운치 않아요. 작품이 끝났는데도 뭣도 못 하겠고, 다들 “너무 축하해요. 너무 축하해. 근데 진짜 부담되겠다” 이렇게 한 말씀 덧붙이시는 거예요, 흐하하하하. 그런데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기사 나기 전에 제일 먼저 김혜수 선배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너무 잘 결정했다고 해주시고 팁도 알려주셨어요. “실수하면 환하게 웃어. 지민 씨 환하게 웃으면 돼 무조건. 환하게 웃는 사람한테 어떻게 할 수 없다.” 하하하하. 제가 환하게 웃으면 ‘실수했나 보다’ 생각하시면 돼요. 준비를 잘해야 하는데. 그래서 요즘 계속 영화를 보고 있어요. 못 봤던 영화들을.
GQ 딱 한 번 청룡에서 상을 받아봤다던 때가 2018년이죠. 영화 <미쓰백>으로 여우주연상. 그때 많이 울었잖아요.
JM 진짜로. 저한테는 너무나 저를 괴롭혀가며 끄집어낸 캐릭터였고 매일 붙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 배우가 안 해본 역에 도전도 해보는 거지. 나는 욕먹어도 들을 준비가 돼 있어.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했는데 믿기지 않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GQ 왜 욕먹을 거라 생각했어요?
JM 연기 못한다고. 일단 <미쓰백>이 담배 피우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간 쌓아온 캐릭터로 인해 구축된 저의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대중이 보시는 한지민일 텐데 정반대 캐릭터를 하다 보니까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감이 잘 안 섰고, 그런데 담배 피우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것부터 어색하면 사람들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잖아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였는데 내가 그걸 해내지 못하면···. 그런 두려움이 엄청 있었어요.
GQ 잘 해냈다고 이입한 관객 중 한 사람이에요. 버석버석한 모습이 분명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았어요.
JM 많은 것이, 우주의 기운이 몰렸었나 봐요. 사회적으로 아동 학대 이야기가 수면으로 올라올 때이기도 했고, 그래서 관객분들도 ‘영혼 보내기’라고 하시면서 저희 영화가 곧 내릴 것 같을 때마다 보러 가지 않으셔도 표를 많이 사서 한 달 넘게 상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본인들 것을 낮춰가면서 서로 열심히 이 작품에 동참해주신 스태프들의 힘도 컸고 여러 가지로. 그 스태프분들이 딴 데 가서 “저 <미쓰백> 했어요”라고 자신의 리스트에 넣을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아서 그게 제일 기분이 좋았어요.
GQ 그간 기록되어 온 배우 한지민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느껴졌어요.
JM 그건 아마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었을 것 같아요. <아는 와이프> 때 초반에 제가 육아에 지친 주부로 나오는데, 그때 담당해주셨던 매니저분은 “이거 아줌마 캐릭터라 좀···” 그러셨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해보고 싶은 거예요. 드라마의 패턴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데, 예전에는 엄청 수동적이었어요. 아주 당찬 캐릭터가 사랑만 시작하면 자꾸 울고 슬퍼하고 갑자기 다른 느낌처럼 변하는 게 항상 답답했어요. 그 캐릭터를 잃는 것이. 그래서 그런 갈증이 늘 있었어요. 그런데 <봄밤> 이정인은 끝까지 잘 끌고 갈 수 있었던 캐릭터였어요. 이후에 <우리들의 블루스> 영옥이도 그렇고. 이제는 시대가 좀 바뀌었어요. 남자가 멋있게 다 해주고 이런 것들에서 이제 시대가 바뀐 거죠. 당시에는 ‘나는 지금 다른 작품을 하고 있는데 왜 그때랑 똑같은 걸 하고 있는 것 같지?’ 이럴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GQ 그런 캐릭터들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를 연기해야 하는 한지민이란 사람에게는 수긍이 되지 않았단 거잖아요.
JM 네. 그리고 너무 많이 봤던 뻔한 패턴들 있잖아요. 티격태격했다가 정들어서 사랑하고 그런 것들이 예전에 본 건데, 그럼 또 똑같이 연기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싫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것들에 갈증이 많았어요. 요즘에는 그래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GQ 주체성이라는 것은 중요하죠.
JM 맞아요. <미쓰백>으로 상을 받은 이후 상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면 제가 다른 걸 할 때 자유롭지 못할 것 같은 거예요. ‘더 잘 해내야지. 잘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번에 못했다는 소리 들으면 어떡하지?’ 이런 것들이 생길 것 같은 거예요. 상을 받고 그런 게 안 생겼다면 거짓말 같아요. 청룡 진행자 제안도 그래서 주저했던 것 같아요. 너무 무섭다. 그런데 무서운 것도 내 솔직한 심정이고 잘 해내고 싶은 것도 내 솔직한 심정이니까 용기를 내보자. <미쓰백> 이후로 도전하는 데 있어서 ‘일단 해보지, 뭐’ 이런 것들이 더 생겼어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겪고 나서 영화 편수가 확 줄어들고,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데 기회도 줄어들다 보니까···(입꼬리가 내려간다). 그런데 그때와 같은 마음이긴 해요.
GQ 지금 마음을 다잡고 있는 <청룡영화상> 외에 최근 인간 한지민으로서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또 맞닥뜨린 순간이 있다면요?
JM 그냥 인간 한지민으로서, 배우이기 전에 한지민으로서는 용기···, 용기 낸 지는 진짜 오래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배우로서의 관심이 개인적인 생활을 하는 데 불편해지는 시기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이. 그 관심은 배우한테는 너무나 중요하고 감사한 일인데 그 때문에 내가 나의 일상의 삶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나이 들어서 너무 후회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작품 할 때는 직장에 출근하는 마음으로 해야겠다, 그 이외의 것들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잘 즐겨보자. 용기까지도 아닌 것 같아, 그냥 마음을 그렇게 가지니까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졌어요. 20대 때는 배우여서 뭘 안 했던 건 아니고 성격적으로 원래 집에만 있었어요. 이제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사람 많은 곳도 노하우 있게 잘 가요.
GQ 아까 영상 인터뷰 때도 무슨 떡볶이집이었죠? 배달이 안 돼서 지하철 타고 사러 간다고.
JM 서대문구 철길떡볶이. 배달 안 돼요. 가서 먹어야 해요. 지하철 진짜 좋아해요. 빨리 가서. 저 길 막히고 차에 오래 앉아 있는 거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물론 그때 내가 음악 듣고 대본 보고 그러면 좋은데 아닐 때는 지하철을 선호해요. 그리고 지하철 타면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스마트폰을 봐요. 저는 사람들 구경해요. 서서도 게임을 잘하시는구나. 이 시간대 풍경은 이렇구나.
GQ ‘여전히 지하철을 탄다고?’ 생각하다가도 연예인도 직업인인데 새삼스러워할 일인가 싶어져요.
JM 맞아요. 그리고 그 삶을 누가 되돌려주지 않잖아요, 저한테.
GQ 한지민에게 안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JM 안녕하다는 건, 오늘 별일 없었다. 그래도 무사했다. 이게 안녕 같아요. 대단히 좋은 일이 없는 게 저는 편하고 좋은 상태예요. 지금 청룡 때문에 제 심장이 안녕하지 못한데(웃음),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것처럼 저의 뇌 구조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래도 언젠가 돌아보면 아주 강렬하게 남을 수 있는 감정들일 것 같긴 해요.
GQ 다른 반쪽은 안녕하신가요?
JM 네, 안녕해요. 저는 주변 사람의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아요. 가족이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큰일이 없는 게 너무 안녕한 것 같은데, 개인적인 얘기지만 언니가 조금 아팠어요. 이제 괜찮아지는 시기가 온 거예요. 조카들도 학교 잘 다니고, 형부가 하는 일도 안정됐고, 언니가 편안해 보이니까 제 마음이 편해요. 엄마 아빠도 이제 조금 편안해 보이니까 저도 편하고.
GQ 오롯이 한지민으로서는요?
JM 오롯이 저로서의 편안함? 저는 일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작업하는 동안 내내 편안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 촬영은 다 마무리가 됐으니까 안녕의 선상에 들어온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음···, 사람이 아니어도 강아지한테도 정을 많이 느끼고, 헤어짐이라는 것 자체를 되게 힘들어해요. 그래서 조카들이 한 달 있다 갈 때도 가기 전부터 너무 싫어요. 그런데 한번 저희 친할머니, 제일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니까 표현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또 맞이할 순간인데 그때 후회할 것들을 남기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게 돼요. 엄마랑 투닥거려도 사과하고, 매일 애정 표현하고, 사랑 표현하고.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해요. 어쩌면 그게 가족에게 하기 제일 어려운 일 같아서. 그래서 제일 많이 하려고 해요.
GQ 뭐랄까, 한지민 씨가 남겨온 지난 이야기들을 읽으며 갈증과 함께 느껴진 감정은 외로움이었어요. 어딘가 외로운 사람 같다.
JM 외로움 많이 타는 사람이에요. 맞아요. 그러니까 혼자 있는 것보다 북적북적 내 곁에 누군가가 있는 걸 좋아하고, 옛날도 자꾸 그리워하나봐요.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저를 외로움, 우울감, 이런 게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GQ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아니지, 극복이 아니지.
JM 견디는 거? 잘 못해요. 하하하하. 알려주세요. 외로움 견디는 거. 그렇다고 나가서 친구들 만난다고 그 외로움이 채워지는 건 아니거든요. 가족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외로움도 당연히 있는 거고,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로울 때는 외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저와 함께 늘 같이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의 외로움이에요. 예전에는 그 외로움이 ‘싫어, 안 외롭고 싶어’였으면 지금은 ‘나에게 외로움은 늘 있지. 같이 가는 거야’, 이렇게 친구처럼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나이도 찼고, 그러다 보니까 아, 내가 내면에 그런 게 있는 사람이구나, 바라봐주는 거죠. 인정을 하는 거죠. 그걸 ‘채워서 없애야지’ 하기보다는. 즐기게 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인정하게 됐어요.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