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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 “과거를 되돌아봤어요”

2024.11.25신기호

크러쉬, 지난 일 년은 어땠나요?

선글라스, 미우미우.

GQ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꼭 이맘때 <지큐>와 만났어요.
CR 오, 의도한 건 아닌데. 정규 2집도 12월에 나왔고, 정규 3집은 11월 중순이었으니까 정말 꼭 그랬네요.
GQ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CR 앨범 내고 연말 콘서트까지 잘 마쳤죠. 여행도 잠깐 다녀왔고요. 그러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어요. 실은 허리가 계속 안 좋긴 했고요. 콘서트 당일에도 주사 맞고 공연하고 그랬거든요.
GQ 수술은 그럼 봄 공연 끝내고 한 거죠?
CR 맞아요. 수술하고 한두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그 뒤로는 재활, 재활, 재활. 지금은 괜찮아요. (두 팔 번쩍!) 이보다 좋을 순 없을 정도로 좋아요.

니트,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 네크리스,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한번 아프고 나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고들 하잖아요. 두 달이면 꽤 긴 시간인데, 크러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요?
CR 음, 값지게요. 제가 과거에 집착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니 싫어해요. 그래서 잘 돌아보는 성격이 아닌데, 그런데 돌아봤어요.
GQ 변했군요.
CR 그땐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또 그렇진 않고요. 아무튼. 그때 되돌아봤어요. 내가 어떤 음악들을 해왔고, 과정은 어땠고, 어떤 작업들을 좋아했고, 이런 모든 거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반성할 것도, 감사할 일도 굉장히 많았어요. 여러 감정을 만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GQ 반성과 감사. 모두 성찰적이네요.
CR 맞아요. 두 가지 마음이 들게 된 건 사실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거였어요. ‘내가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을까, 다시 음악을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을까?’ 같은 불안에서요. 누워 있으면서 계속 떠올렸죠. 내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많은 걸 누리고 있었고, 내 음악을 들어주는 팬분들 덕분에 내 음악적 목표들을 함께 만들어올 수 있었고···.

티셔츠, 발망. 재킷, 팬츠, 슈즈, 모두 베르사체. 네크리스, 비비안웨스트우드.

GQ 제가 아는 크러쉬라면 이런 감사함을 새삼 느끼게 된 건 결코 아닐 것 같고요.
CR 그럼요. 물론 아프기 전에도 잘 알고 있었던 것들인데 더 선명하게 올라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팬분들의 사랑을 계속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GQ 반성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CR 너무, 너무너무 내 몸을 막 썼다는 거요. 사람이 아프면 정말 이기적으로 변하거든요. 스스로 채찍질을 너무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GQ 아파서 이기적으로 변하는 마음이 몸을 쉬고, 놓게 하는 나태가 아니고, 되레 더 밀어붙이게 만드는 열정이었다니. 저도 지금 반성합니다.
CR (웃음) 그땐 그랬어요. 채찍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목표로 둔 일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적어도 이 정도, 이만큼은 뽑혀야 한다는 나름의 완성도를 알고 있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주변도 살피고, 다른 상황도 보고 그래야 했는데 오직 작업, 작업밖에 안 보인 거죠. 그래서 막상 수술까지 하고 나니까 그제야 든 생각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좀 적당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죠. 예정 돼 있던 작업들이 밀리기도 했고요.

티셔츠, 발망. 재킷, 팬츠, 슈즈, 모두 베르사체. 네크리스, 비비안웨스트우드.

GQ 지난 인터뷰로 크러쉬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더 성실하다는 거. 그래서 계속 달리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 정도 활동했으면 공백기를 좀 두고 쉬어갈 만도 한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늘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거죠.
CR 맞아요. 사실 어느 정도냐면, 2022년 9월에 제대했는데 9월 22일에 앨범을 냈어요. 또 그 이후로 수술하기 전날까지도 계속 달렸고요. 아, 여행 잠깐 다녀온 며칠은 빼고요. (옆에 있던 담당자 “입대 3~4일 전에도 <지큐> 화보 찍고 그랬고요.”)
GQ 군대와 입원을 제외하곤 정말 계속 달려왔네요. 강제되는 무엇이 아니면 쭉.
CR 네, 그래서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집으로 왔을 때, 그때 되게 좋았어요. ‘그래 이건 정말 합법적으로 쉬는 거다, 내 기준에서도 허용할 수밖에 없는 휴식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니까 정말 마음이 너무 편한 거죠.
GQ 오, 다음이 제일 기대돼. 그래서 뭐부터 했나요.(웃음)
CR 일단 누웠어요. 침대에 누워서 뭐부터 할까, 고민은 짧게 했어요. 시간 아까우니까. 크크. 그러다 ‘그래, 안 하던 걸 해보자!’ 싶어서 플스4를 샀어요. 그리고 GTA를 시작했죠.
GQ 아, 그거 위험한 조합이죠.
CR 크크크, 맞아요. 제가 LA를 좋아하거든요? GTA로 막 LA 누비고 그랬어요. 한 3~4일 잠도 안 자고요. 도파민으로 충만한 며칠을 보낸 거죠. 이런 게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게임을 오랫동안 해본 것도, 잠도 안 자고 밥도 잘 안 먹고 루틴 없이 생활하는 것도요. 그래서 그런지 한 4일 정도 지나니까 약간 ‘이러면 좀 안 될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턴 게임 끄고 책을 읽기 시작했죠.

셔츠, 타이, 재킷, 글러브, 팬츠,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GQ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CR 그런가 봐요. 이것도 한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너무 좋은데 계속 이렇게 지내게 되는 거 아니야?’ 마음은 이제 일어나야 될 것 같은데 아직 통증이 있어서 또 마음껏 움직이지도 못하고요. 불안이 점점 커질 때쯤 어느 정도 회복이 돼서 걷기 시작했어요. 3주 정도 지나고부턴 계속 걸었죠. 걷고 눕고, 걷고 눕고. 나중엔 좀 우울해지더라고요.
GQ 마음과 몸이 같질 않으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CR 네,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스케줄들이 있었는데 취소할 수밖에 없고. 죄송하고, 불안하고. 이런 생각들이 점점 올라오면서 감정이 좀 많이 내려갔어요. 그러다 움직이자, 이렇게 있지 말자 싶어서 수영을 하기 시작했고, 체력이 좀 회복되면서 재활 운동까지 하게 됐어요. 지금도 매일 해요.
GQ 원치 않았지만, 그 시간들을 마주하고 통과하면서 얻은 것도 분명 있겠죠.
CR 기립근? 푸하하하! 아니, 저 진짜 맨날 만져봐요. 허리 디스크가 심한 사람들은 이 기립근이 없거든요. 근데 이제 있어요. 이거 생긴 거예요.(뿌듯)
GQ 이거 진짜 큰 결실이죠.
CR 그럼요. 중독 비슷하게 운동을 하게 됐어요. 걷고 수영하고 재활하고. 지금은 추워져서 좀 덜 뛰는데 최근에는 러닝도 꾸준히 했어요. 아침에 수영하고 밤에 뛰고. 당연한 건데, 운동을 하니까 확실히 몸이 좋아지더라고요.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로에베. 벨트, 친다운.

GQ 잘 회복한 덕분에 크러쉬를 올해 연말에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콘서트 키워드가 ‘O’, 동그라미라고요.
CR 네, 실은 누워 있던 시간 동안 느끼고, 떠올렸던 모든 것이 깔때기처럼 모아지면서 나온 키워드인 것 같아요. 처음엔 ‘마음’에 대한 노래들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김창환 선생님 말씀대로 동그라미를 여럿 그려보면 모양이 전부 달라도 동그라미인 것처럼 마음도 그렇더라고요. 저마다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있잖아요. 그 마음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하고요. 어느 순간엔 저마다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룹 loop’, 순환의 키워드까지 접근하기도 했어요. 결국 동그라미와 룹은 어떤 의미에선 또 닮아 있다고 느꼈고···. 뭐,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동그라미’로 결정했어요.
GQ 잠깐 상상해보면 어때요? 소망하는 콘서트 장면이 있어요?
CR 좀 어려 장면들이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이거요. 콘서트 때 기억에 남는 장면 딱 하나를 떠올리라고 하면 전 관객과 교감하는 순간인데, 사실 그 순간이 정말 영화 같고 마법 같거든요. 어느 순간 무대 주변이 싹 지워지면서 저랑 객석의 한 분 한 분하고 둘만 있는 장소로 남겨진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을 꼭 다시 만나고 싶죠.
GQ 선물도 준비 중이라고요.
CR 작은 앨범을 하나 만들었어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작업했는데, 그때 만든 곡들. 7곡 정도 돼요. 복대 차고 만들고 그랬어요.(웃음) 고민은 이전처럼 음원 릴리즈보다 다른 의미 있는 형태로 전해드리고 싶은데 그 방법은 아직 안 정해졌고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니트, 코트, 팬츠, 슈즈, 모두 베르사체.

GQ 이야길 나누다 보니 저는 크러쉬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는데요?
CR 변하긴 한 것 같아요. 정말 예전엔 작업, 작업,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작업이 안 될 땐 다른 것도 좀 해보고 그래요. 제 생활 전체를 보면 여전히 결국 작업, 작업, 작업이긴 한데, 환기할 정도의 틈은 만들어뒀다, 이제 그 정도 창은 열어둘 수 있다, 싶죠. 정말 예전엔 너무 예민해서 탄수화물을 못 먹었거든요. 소화가 안 돼서요. 그런데 지금은 못 먹는 게 어딨어. 누가 말려야 할 정도로 잘 먹어요. 이거 봐, 이것만 봐도 제가 변하긴 했죠.(웃음)
GQ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도 분명 있겠고요.
CR 음, 그건 본심이요. 초심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본심은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엔 그게 진정성이 아닐까 싶고요.
GQ 본심 플러스 기립근은 어때요?
CR 푸하하하! 너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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