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한국 바의 최전선, 제스트의 바텐더 김도형.
GQ ‘World’s 50 Best Bars 2024’에서 9위에 올랐습니다. 한국 최초이자, 최고예요.
DH 이번에는 유독 마음이 안 좋았어요. 순위가 뚝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올라갈 때의 초조함과 내려올 때의 아쉬움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작년 순위(18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풀렸죠.
GQ 올해 더 의미있었던 까닭이 있죠?
DH 우리가 고생한 걸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고, 나아가 아시아 전체에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월드 톱 10에 아시아 바가 3개나 오른 건 처음이에요. 저희가 좋은 결과를 얻은 건 기존 업계에 계시던 분들이 해온 것들이 쌓여 저희에게 좋은 타이밍이 온 거니까요. 앞으로는 이 이상의 무언가를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GQ 그런가 하면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는 2위를 했죠. 사실 1위할 거라는 소문도 있었고요.
DH 1등했으면 더 빨리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웃음)
GQ 오, 안 돼요. 4년 전 오픈 때가 기억나요?
DH 월드 50 베스트에 들 거라곤 생각조차도 안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세계의 벽이 너무 높게 느껴졌거든요. 벽이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지면서 저희의 꿈도 점점 커졌어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업계가 계속 빠르게 변하니까, 처음 바텐더 일을 할 때와 지금 상황이 너무 달라요. 쉴 틈 없이 재밌어요.
GQ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화두임은 알았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 우려도 되었어요. 지속 가능성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DH 처음엔 쉽지 않았죠. 버려지는 식자재를 이용해 칵테일을 만든다고 하면 ‘돈 내고 쓰레기를 먹어야 돼?’라고 받아들일까 봐 두려웠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인식이 앞선 소비자가 많았고, 저희가 제시하는 주제에 대해 관심도 높았어요. 많은 분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환경에 관심을 두는 분들, 브랜드, 생산자들과 계속된 협업을 하고 한국적인 부분이 무기가 되어 제스트를 소개할 때 특별함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GQ 고비는 없었어요?
DH 초창기에만 잠깐. 그 뒤론 계속 좋아졌어요. 코로나 시기에 어쩔 수 없이 낮에 오픈해야 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낮에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낮 3시에 오픈하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주말에는 3시에 문을 열어요.
GQ 김도형을 필두로 4명이 제스트를 공동 창업한 뒤로 창업자가 바뀐 적이 없죠. 팀의 지속성 역시 지속 가능성의 주요한 화두잖아요.
DH 우선 그 친구들이 저를 굉장히 많이 존중해줘요. 많이 따라주고, 제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요.
GQ 부드러운 리더처럼 보이지만, 고집도 있죠?
DH 제일 기본적인 것, 우리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려요. 진정성. 무언가를 줄인다, 버리지 않는다는 저희의 철학을 지켜나가야 하니까요. 가령 대형 주류 회사에서 플라스틱으로 제스트 칵테일을 편의점에 출시하겠다고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더라도 과감하게 포기해요. 작은 공간이지만 브랜드 가치는 저희가 지켜야 하니까요. 또 음료는 플라스틱으로 마시면 맛이 없어요. 바텐더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GQ 초창기부터 내세웠던 ‘파인 드링크’에 대한 개념을 제스트의 언어로 들려줄래요?
DH 가격을 떠나 바텐더로서 소비자에게 좋은 것을 추천해주고 소개해주자는 거예요. 똑같은 칵테일이라도 더 좋고 의미 있는 재료를 쓰고, 가치 있는 음료를 만드는 거죠. 보다 나은 것을 드실 수 있게끔요. 같은 가격, 같은 퀄리티의 모히토라도 아침에 농장에 가서 직접 사온 민트를 사용하고, 갓 가져와 신선하고 중간 과정을 줄여 포장지 배출도 되지 않고, 캔 사용을 줄이기 위해 소다도 직접 만들어요.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는 모히토입니다”라고 설명드리며 칵테일을 내는 것과 아닌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GQ 메시지를 전하는 게 중요한 까닭은요?
DH 제스트를 오픈할 때 바 신은 전 세계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었고, 소비자 인식도 높아져 있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치’였어요. 단순히 맛있고 멋스러운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이 칵테일을 왜 마셔야 하고,
왜 이 공간에서 마셔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GQ 왜 지금 세계의 바 신이 한국을 주목할까요?
DH 과거에는 한국에서 바텐더라는 타이틀이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큼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잠재력이 있었는데, 이제 와 압축적으로 터진 게 아닌가 싶어요. 한국, 태국, 대만처럼 바 신이 진화하는 나라들에는 로컬리티가 있어요. 지금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본인 것들을 찾아 넥스트 레벨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GQ 인식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 어떻게 바텐더를 꿈꾸게 되었어요?
DH 남들처럼 수능 보고 별다른 꿈 없이 학교 다니는 평범한 공학도였어요.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 자퇴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드라마 <커피프린스>가 히트를 쳤어요. 커피나 배워볼까? 해서 상경해 전문 학교에 갔는데, 칵테일 동아리에 들어가서 커피 배우는 시간에도 샤케라토 만들고 그랬요.(웃음)
GQ 그때 바텐더로서 재능이 있다고 느낀 거예요?
DH 글쎄요. 어릴 때부터 ‘개코’이긴 했는데.(킁킁)
GQ 좋은 바텐더란 뭐라고 생각해요?
DH 안정적이고, 실수를 덜 하는 사람, 꾸준히 안정적인 사람. 그게 가장 기본인 것 같아요.
GQ 요즘 가장 영감이 되는 바나 바텐더가 있어요?
DH 저소득층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콜롬비아의 ‘알키미코 Alquimico’, 요리와 바텐딩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차린 아르헨티나의 ‘트레스 모노스 Tres Monos’.
GQ 늘 궁금해요. 결국, 칵테일이란 뭘까요?
DH 이야기가 있는 칵테일요. 요즘 바텐더들끼리는 “저 바텐더 칵테일 잘 만들어” 같은 말은 잘 안 해요. 왜 그 칵테일을 만들어? 그 칵테일에 어떤 이야기가 있어? 왜 우리가 이 칵테일을 만드는지가 지금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GQ 너무 뻔한 질문이지만, 아들 바보이니까. 아들이 바텐더 하겠다고 하면 지지하실 건가요?
DH 좋아요. 제게 목표가 더 생기는 거거든요. 업계를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요.
GQ 만화 <바텐더>에 이런 말이 나와요. “바텐더는 바텐더라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바텐더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DH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칵테일을 만드는 그 자체보다 다른 일이 더 많아요. 새로운 길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중에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 그게 바텐더의 삶인 것 같아요. 남들과 반대되는 시간을 사는 직업인데 마냥 그 시간대에만 살 수는 없거든요. 음료의 균형을 잡듯이 낮과 밤, 그 반대 시간과의 균형을 계속해서 잡아나가고, 그러면서 삶을 섞는 사람, 그것이 바텐더의 삶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