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해법은 자기 안에 있나? 혼자 있는 시간을 제대로 보내면 꿈이 이뤄질까? 우리는 지금 베스트셀러와 뉴스의 거대한 균열 사이에서 진짜 중요한 걸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점에서 ‘아들러’라는 이름이 들리기 시작한 건 몇 개월 전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는 한 가족이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여자가 물었다. “아들러?” 남자가 대답했다. “응, 심리학자. 이게 요즘 그렇게…. 살까?” 제목은 <미움 받을 용기>였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 대해 깊이 연구한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같이 쓴 책이 었다. 2015년 8월 기준 이미 45쇄를 찍었다. 그 옆에는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이 있었다. 역시 다른 분야의 1 위. 일본 메이지 대학 교수 사이토 다카시가 쓴 책이었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이렇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10년의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들고 걷는 사람을 여럿 봤다. 보기엔 호젓한 풍경, 사실은 좀 절박한 얘기.
이번엔 좀 무서운 얘기다.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었다. 그날을 전후로, 9월 7일 부터 11일까지 5일간 각기 다른 언론사에서 쓴 세 꼭지의 기사는 정확한 맥락에서 서로 이어져 있었다. 지적은 정확했고 해법은 안 보였다.
“돈 없고 몸 아프고 공부 못해서…. 자살율 1위 한국의 슬픈 현실.” 세계자살예방의 날 이틀 전이었던 9월 8일, <머니투데이>가 쓴 기사 의 제목이다.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한 건 지난 2004년부터. 벌써 11 년이 됐다. 기사는 모든 세대가 각기 다른 이유 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2012년 기 준, 9세~24세 청소년의 가장 큰 사망 이유는 바로 자살이었다. 김종훈 기자는 자살이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보다 많았다고 썼다. 한편 청년은 돈과 직업이 없어서, 노인은 신체와 정신의 질환과 생활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9월 7일 <헤럴드 경제>는 “스트레스 사회… 묻지마 범죄 늘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정보공개청구로 경찰서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것이었다. 기사는 정신분열증을 앓던 중국 국적 26세 김 모 씨가 길을 가던 18 세 A군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은 사례로 시작했다. 두 번째 사례는 성북구 주택가에서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여자였다. 이지웅 기자는 이렇게 썼다. “전문가들은 스트레 스에 취약한 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네 가지 원인을 더 제시했다. 1. 사회가 개인을 압박하는 스트레스의 전반적인 증가. 2. 보살핌 없이 혼자 지내는 등 가족 시스템의 붕괴. 3. 당국의 지원 미비 등 사회적 지지 체계 부실. 4. 관리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보건의료체계 미비.
1번과 2번은 개인과 사회가 맺은 관계 불화 에서 찾은 원인. 3번과 4번은 사회가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시스템의 헛점에 대한 지적이었다.
마지막 기사, 9월 11일 <동아일보>는 귀향 버스가 사라진 대학교 소식을 담았다. 추석이지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 취업 스터디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었다는 얘기다. “취업을 걱정하는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어차피 취업이 안 된 마당에 명절 분위기도 안 난다”는 23세 취업 준비생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귀향 버스는 주로 학생회 차원에서 지역별로 버스를 대절해 학생들에게 버스표를 제공한, 일종의 복지 사업이었다. 직접 사는 것보다 저렴했고 굳이 터미널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이제 다 옛날 얘기가 됐다. 지금 대학은 고향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혼자가 되는 것이 다수인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대체 지금 한국에서는 몇 개의 세계가 충돌하고 있는 걸까? 20대는, 어쩌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직업을 갖고 있는 30대는 차마 짐작할 수도 없을 세계. 취업이야말로 지상 목표가 됐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해야 하는 세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한 디자인 회사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는 말했다. “취업? 정말 진심 어려워요. 저 다 떨어졌어요. 이거 인턴 일하면서 진짜 많이 넣었어요. 근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누굴 별로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스펙’의 소유자였다. 유학 생활이 길어서 영어가 유창한데 정작 그게 결격 사유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웃었다.
“제가 한국 조직 생활에 잘 안 맞을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몰라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나 봐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 ‘그렇다면 취업 말고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을 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는 것 정도는 알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은 적도, 하고 싶은 일이란 대체 어떤 건지에 대한 기준을 배운 적도 없어서다. 지금 취업 시장은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고 버텨왔던 모든 것이 모조리 무용해지는 판, 잘돼도 안 돼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시장이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엘 리스>에선 14개의 자격증도 소용없었다. 영화 밖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30대는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린 왜 전문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냥 전문가 말고,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전문가 있잖아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거나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일의 전문가. 나이들면 해고당하는 전문 가 말고, 경험이 쌓일수록 실력이 느는 분야의 전문가.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도 언어만 해결 되면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 국제기 관의 공보관으로 일하고 있는 36세 남자가 한 말이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 하는 직업을 가지 고 있다. 안정적인 신분과 수입도 보장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불안이야말로 평등하니까….
얼마 전 대기업 과장으로 승진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결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자식? 어떻게 키우지? 돈이 없어. 정말 싫은 게 뭔지 알아? 나 요즘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면 자는 시간만 남아. 그런데도 자신이 없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하지 않은 30대에게도 가족과 명절은 스트레스다. 부모님 세대는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시대를 또한 최선을 다해 관통해왔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거나 다하고 있는데 빠짐없이 불안하고 지쳐 있다.
이러니 정치인들이 2만 불 시대니 3만 불 시대니 하는 말이야말로 헛것에 가깝다. 국민 소득은 국민총소득 GNP를 인구로 나눈 수치다. 그게 2만 불이면 한 명이 1년에 2천3백72만 원 정도를 벌어야 한다는 뜻이다. 맞벌이 부부라면 그 두 배, 자식이 한 명 있다면 그 세 배의 소득으로 계산해야 맞다. 한국의 2014년 국민 소득은 2만8천 달러, 약 3천3백20만원이었다. 4인 가족이라면 1년에 약 1억3천만원이상을 벌 어야 맞다. 언젠가 희망제작소 이원재 소장이 지적한 것도 정확히 같은 얘기였다.
그럼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하면 한국은 선진국일까? 우리는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그런데 어쩌지? 국민소득이 얼마 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우리는 조금씩 더 가난해지는 것 같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국민소득 3만 불, 선진국 대열” 같은 말이 내 주머니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사실만은 이제 안다.
사회를 이루는 모든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진단도 이제 낯설지 않다. 공동체나 시민 사회 같은 단어는 거의 생소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가족은 그 모든 고리의 최소 단위여야 옳지 않나? 안도의 근원이자 최후의 도피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대가 없이 의지할 수 있는 보루. 하 지만 그마저도 사치가 됐다. 가족이 해체됐다는 진단, 사람이 진짜로 혼자된다는 게 그렇게 무섭다. 생명이 걸려 있다. 진짜 공포의 시작이 다. 모든 걸 개인이 떠안고 사회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바로 지금 같은 상태.
이럴 때 아들러 심리학이 말하는 용기는 어떻게 읽힐까? 철저히 혼자서 보낸 10년 동안 공부에 몰입해서 많은 걸 이뤄냈다는 경험담은? 책의 쓸모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두 권의 책에서 찾을 수 있는 개선과 위로의 가능성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다만 우리의 피로와 불안은 이미 개인적 혁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든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은 더 이상 허무가 아니다. 세상엔 혼자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고, 그건 마냥 개인 탓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권의 베스트셀러야말로 절박해 보 인다. 지금, 여기서 춤추듯 산다고 끊긴 사회가 회복되는 건 아니라서. 진짜 혁명은 서로 손을 잡은 후에야 겨우 가능하기 때문이다.
- 에디터
- 정우성
- 일러스트
- 문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