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개되는 작품은 1할. 9할은 수장고라 불리는 예술의 방에 묵고 있다. 그 방의 수호자들에게 물었다. 겨울잠 깨워 손잡아 내보이고픈 빛.
생산적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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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성 작가가 2018년 제18회 송은미술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송은문화재단의 소장품으로 귀속된 설치 작업 및 벽화 드로잉 작품이다. 예술 창작 과정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탐구하고, 예술과 노동의 경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흑연 가루로 직접 만든 곡괭이를 활용해 마치 채광 작업을 하듯 벽면에 돌덩어리를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흑연 가루를 다시 모아 곡괭이 머리로 재활용한다. 이러한 순환적 구조는 예술적 생산과 소비를 물질적 차원에서 연결하며 노동의 가시성과 예술의 창조적 과정을 교차시킨다. 흑연의 채굴 및 연필심 제작 과정을 곡괭이 제작과 드로잉 행위에 대입함으로써 작가는 예술 창작 과정에서도 노동이 필연적으로 수반됨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작품을 넘어 노동과 예술, 생산과 소비라는 이중적 관계를 시각화한다. ‘생산적인 드로잉’은 정신적 창조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 물리적이고도 육체적인 노동의 결과임을 보여주며 예술 노동의 가치를 가시화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사회적 가치 체계까지도 반문하며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제시한다. 이 작품을 선정한 개인적 이유는 이의성의 철학과 접근 방식이 예술적 노동 그리고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재고해보도록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BBC Four에서 2013년부터 방영 중인 다큐멘터리 시리즈 를 즐겨 본다. 이 다큐멘터리는 저명한 예술가와 동행해 일상을 촬영하고 작업 생활과 창작 과정을 보다 통찰력 있게 조명한다. 이의성의 작업은 어찌 보면 이 다큐멘터리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스크린 속 예술가의 일상, 창작 과정은 다소 평면적이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하는 그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노동은 더욱 강렬히 체감하게 된다. 작가가 탐구해온 예술과 노동의 아이러니, 생산성에 대한 재정의는 예술이 가진 다층적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작품은 예술의 가치와 의의를 단순히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정말 무엇을 하는가?’라는 대중의 의문에 답하며 예술 창작을 둘러싼 담론을 대중과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가상의 전시를 연다면 기존 빌딩을 허물고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인 ST송은 빌딩을 짓기 전 2017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그 공간에서 잠시 수장고로 탈바꿈해 <송은수장고: Not Your Ordinary Art Storage>라는 제목으로 보이는 수장고처럼 송은미술대상 귀속작을 포함한 송은문화재단의 소장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본 전시는 수장고의 전형적인 개념인 보관·보존을 넘어 수장고에 있던 작품들이 전시 형식으로 대중들과 마주하며 수장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 만약 언젠가 ‘생산적인 드로잉’이 포함된 전시를 기획하게 된다면, 혹은 개최되는 해를 명시하여 또 다른 송은수장고 컬렉션 전시를 선보여도 좋을 것 같다. 그때 전시에 함께 구성할 작품으로는 데미안 허스트의 ‘Lost Memories and Dreams Forgotten’(2008-2009)이 떠오른다. 앞서 이야기했듯 ‘생산적인 드로잉’은 흑연을 활용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적 노동의 가시성을 탐구하는 반면, 데미안 허스트의 ‘Lost Memories and Dreams Forgotten’은 다이아몬드가 스테인리스 스틸 캐비닛에 진열된 작품으로, 여기서 다이아몬드는 물질적 가치로 강조되며 인간의 끝없는 소비 욕망과 물질주의를 비판한다. 사실상 이의성의 작품을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허스트의 작품은 진열장에 설치되는 것 외에는 물리적 노동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이 강조됐기에 그렇게 보일 수 있으나 그의 작품은 다이아몬드를 하나씩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그 육체적 노동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두 작품은 예술적 노동의 가시성, 노동의 형태, 그리고 예술의 생산과 소비라는 주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탐구한다. 이의성의 흑연 채굴은 육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허스트는 자연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를 통해 소비와 물질의 가치를 다루며 현대 사회의 물리적, 정신적 소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노동과 생산성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두 작품이 병치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작품 곁에 예술의 정신적, 물리적 창조 행위는 그 자체로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품이 어떠한 것의 대대 對待가 된다거나, 누군가가 꼭 봐주길 희망하거나, 무언가와 함께하기보다는 그저 누구든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예술로 존재했으면 한다. 만약 전시가 실제로 개최되어 오프닝에 특정 콘셉트 혹은 드레스 코드가 부여된다면, 아마 드레스 코드는 작품과 같은 맥락에서 엄청난 노동의 결과물, 즉 장인정신이 깃든 옷으로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로렌시나 화란트-리 | 송은 관장 · 아티스틱 디렉터
그림자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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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얼굴을 찍지만 더 예쁘거나 웃기거나 다른 모습들로 포장한 후 SNS에 올리곤 한다. 실상 그러한 이미지들이 우리 본모습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 우리 마음속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가? 오늘날 무한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사유를 다지고,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천성명 작가가 2008년 개인전에 ‘그림자를 삼키다’를 출품할 때 같이 소개한 자작시는 이러하다.
이름 없는 숲
비린내를 피해 길게 널어진
나무 그림자에 사내가 걸려 넘어지고
이내 어둠이 시작된다.
그리고 비린내가 고이는 곳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개들이 찾아온다.
어둠 속에서 들개들은 사내를 타고 올라,
사지를 찢고 살점을 갈라 부실한 뼈를 부숴내어
한때 뜨거웠던 기억을 채 버리지 못한 질퍽한
핏덩이를 꽂아 불꽃으로 태워낸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름 없는 숲은 고요하고
새들은 침묵한다.
별빛도 달빛도 없는 어둠이 이어지고
핏덩이를 태우는 비릿한 불꽃을
바라보던 침묵하는 새들은 눈멀었다.
······
이름 없는 숲에는 더 이상 허공을 나는
새와 맑은 이슬은 없다.
새들의 썩어가는 고깃덩이에서 한 땀 한 땀 추락하는 윤기 없는 깃털과
그것에 헐어버린 밤이 있을 뿐이다.
아직, 새벽은 오지 않는다.
작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해 분열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 인간은 이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듯 보이나 그 기저에는 소외, 자학, 연민 등 여러 가지 가변적인 감정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동시대 인간의 본질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이 작가 자신의 얼굴이다. 일종의 자화상인 것이다.
가상의 전시를 연다면 전시 타이틀 <자화상>. 미술에서는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예술가가 자화상을 제작했다. ‘어떤 인물을 다룰 것인가’의 고민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의 시작은 예술가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동경미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자화상을 제출해야 했기에 많은 식민지 조선 유학생들 역시 자신의 모습을 그렸고, 그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 고희동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도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다루지 않기도 한다. 조각가 권진규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 작업실에서 음악을 늘상 들었지만 상당한 수의 자소상에는 귀가 없다. 간혹 귀를 붙인 경우라도 비례감을 전혀 맞추지 않은 채 크게 만들었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수집 시 자화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수집하려고 노력해왔다. 국내외 많은 유명 미술가가 자신의 모습을 다루었으나 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앤디 워홀, 이쾌대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자화상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고 싶은 희망이 있다.
작품 곁에 전시장에 천성명 작가의 자작시 ‘이름 없는 숲’과 더불어 이상과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함께 놓고 싶다. 공간 한쪽에서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 ‘Self-Portrait’(1996)가 가끔 들렸으면 한다. 자화상 전시라면 흔히 거울을 비치하려고 할 테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거나 혹은 바라는 모습이 아니므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메모지와 필기도구를 준비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나다운 모습과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건 어떠할지 상상해본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라는 어지러운 질문이 아니라 “나는 __다”라고 서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류지연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운영부장
NOBODY’S PERFECT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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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타계한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의 거장 가에타노 페세의 ‘Buffet, Nobody’s Perfect Series’ 중 2007년 작품으로 유연한 폴리우레탄 수지로 만든 희귀작이다. 프랑스 스타일의 사이드보드인 이 작품은 급진적인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완벽한 예라고 본다. 예술가의 가치가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에 있다면, 가에타노 페세는 시대의 요구를 편향적으로 수용해 그만의 독창적 시각으로 표현한 작가다. 이 작품은 이함캠퍼스 이사장이 우연히 소장했다가 페세의 혁신적이고 미래적인 시각에 매료되어 이후 50여 점을 모은 컬렉션의 계기이기도 하다.
가상의 전시를 연다면 가에타노 페세의 작품은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퍼포먼스이기도 한데, 그의 즉흥적인 제작 방식은 디자인을 넘어 라이브 공연을 연상시키고 관람객에게 돌발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런 차원에서 즉흥 연주 음악, 독특한 형태의 변주가 어우러지는 라이브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세상에 필요한 건 네 안에 있는 거야’라는 주제를 걸고 좌대 위 작품이 아닌 라이브로 즐기는 전시를 꿈꾼다. 그 공연장에서 아마 이 작품은 생동하는 무대를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더블베이스 역할을 잠연히 해낼 것 같다.
작품 곁에 화가 김종학 선생님의 그림 ‘여름설악’을 이 작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 두 작품이 처음 만나는 순간 동서양 각자의 독창성에 서로 매료되어 절친이 되지 않을까. 박은지 | 이함캠퍼스 학예사
인장 印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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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연구실장박물관 소장품 중 출처가 분명히 새겨진 인장들이 있다. 괴혈석으로 만든 인장 뒷면에는 ‘성재작 惺齋作’이라고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전각가 성재 김태석(惺齋 金台錫, 1874-1951)의 호가 새겨져 있으며, 인장 바닥에는 소식(蘇軾, 1037-1101)의 <후적벽부 後赤壁賦> 중 한 구절 “산고월소 山高月小, 수락석출 水落石出”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흔히 노래했던 구절 중 하나로 “산이 높고 달이 작으며 수위가 낮아져 돌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서양 문화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사라진 우리의 고유한 문화 중 하나는 인장 문화라고 생각한다. 최근 사인으로 대체하며 도장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어졌고, 막상 급하게 도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근처 문구점에서 값싼 가격에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인장은 그렇지 않았다. 실용적 목적도 있었지만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예술 작품이었다. 돌이나 금속, 나무 등 재질이 갖는 다양한 색채와 조형감을 살려 아름다운 시구절이나 각자 좋아하는 문구를 이름 대신 다양한 서체로 균형 있게 새겨 넣었다. 언젠가는 조선시대의 가장 낭만적인 물건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인장들을 소개하고 싶다. 나아가 만약 나의 인장을 만든다면 잠언27:21을 새길 것이다. 내게 도장의 추억은 “참 잘했어요” 같은 선생님의 칭찬이다. 선생님의 칭찬 도장을 받기 위해 무언가 열심히 노력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어떤 날은 선생님이 도장 아래 격려의 글을 써주시곤 했다. 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따듯한 마음이 감사하다. 잠언27:21은 이러하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연단하듯, 사람은 칭찬을 통해 성장한다.”
가상의 전시를 연다면 <인장 印章: 당신의 취향을 담은 가장 사적인 물건은 무엇인가요?>.
작품 곁에 조선시대 사랑방 앞에 심어놓았다고 전해지는 금목서의 향을 전시 공간에 은은하게 퍼뜨려놓고, 물과 돌, 나무, 식물을 함께 두고 싶다. 한국적인 멋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요하고 따듯하고 평안함이 담긴 자연스러움 같다. 장인기 | 온양민속박물관
THE CRUSH IN THE CONSTELLATION OF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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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부터 짐 호지스는 연약함, 일시성, 사랑과 죽음 등 보편적이면서도 심오한 주제를 독창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탐구해왔다. 그의 작품은 레디메이드 오브제부터 흑연, 잉크, 금박, 거울 등 다양한 전통 매체를 넘나들고, 드로잉과 조각을 융합하는 등 매체적 전환을 통해 관객에게 미묘한 감각적 자극을 선사한다. 2024년 글래드스톤 갤러리 뉴욕에서 열린 그의 전시는 ‘볼더 Boulder’ 시리즈의 신작 조각들을 비롯해 설치, 드로잉, 회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이고 협업, 물질성, 경험 사이의 연금술적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퍼포먼스도 소개했는데, 호지스의 매체적·실천적 접근은 미술사적 맥락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리움, 상실, 사랑, 실존적 성찰이라는 주제를 한층 더 예민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24K 금처럼 값지고 섬세한 재료는 호지스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재료 본연의 정교함과 찰나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작품의 신비로운 재료와 주제는 감성적인 제목과 결합되어 관객을 사색과 명상의 여정으로 이끈다. 그 가운데 페인팅 작품 ‘the crush in the constellation of now’는 AI와 자동화 출현으로 급박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강박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와중에 내게 마음의 중심을 잡아준다. 삶이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그 속에서 진정으로 느껴야 할 인간의 감정과 감수성에 점점 무감각해져 가는 것 같다. 호지스의 작업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즉 궁극적으로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인류가 지향하는 미래와 인간이 추구해야 할 태도 사이 간극이 커지는 지금, 이 작품은 온전한 삶의 소중함을 시적이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 뉴욕을 포함한 세계 무대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인 데 비해 국내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소개할 기회가 없었기에 소소한 사심을 담아서도 알리고 싶다.
가상의 전시를 연다면 ‘영원함 Eternity’을 주제로 한 전시 . ‘사라져가는 것들은 남는다’는 뜻이 담긴 제목은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담고 있으며, 일시적이라고 여겨지는 인간의 감정이 사실은 얼마나 보편적이고 중요한 것인지 상징한다. 호지스는 작품에서 덧없는 순간을 다루면서도, 그 순간이 남기는 영구적인 흔적에 집중하기에 이러한 전시 주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그림과 호지스의 1995년 설치 작품 ‘Every Touch’를 마주하는 형태로 기획하고 싶다. ‘Every Touch’는 실크로 만든 조화를 거즈에 꿰매 완성한 작품으로, 제목에서 암시하듯 실제로 작품에 손을 댄 수많은 사람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꽃을 제작한 노동자들, 섬세하게 수작업을 진행한 다양한 협업자가 포함된다. 작품의 맥락은 집단적 서사로 다시 기술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존재의 연약함과 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작가의 초기작과 최근작을 한 전시장 공간 안에서 마주 보게 하여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유기적인 동시에 직관적으로 발전해왔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미술사적인 관점에서도, 시기와 매체가 다른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대면시키는 방식은 작가의 예술적 진화를 조망하는 데 효과적이라 판단한다. 개인적으로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사물이나 개념을 다시금 되새길 때 느끼는 감동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좋은 작품을 결정짓는 한 축도 사실 ‘사소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에 있다고 믿는다. 이는 내게 큰 영감을 준다. 전시 를 통해 관람객들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의 덧없음과 덧없다고 치부했던 것들의 영원함을 발견함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지금껏 밟아온 흔적을 되돌아보게 되길 바란다. 그 여정에서 우리 존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작품 곁에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 Officine Universelle Buly의 워터 베이스 향수 ‘페루 헬리오트로프’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전시 공간을 상상한다. 이 향수는 오래 지속되기보다 잔잔하게 체취에 스며드는 편인데, 짐 호지스의 작품처럼 강렬하게 몰아치기보다 섬세하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초대 손님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그리고 의 저자 로런 엘킨이 떠오른다. 인간의 나약함과 아름다움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글을 써온 이들이기에, 호지스의 작업을 마주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하다. 무엇보다 전시장에서는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대화까지 여러 감각이 어우러지길 희망한다. 미술사에서 ‘종합적 감각의 경험’이 늘 중요하듯, 관람객들이 작가의 메시지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정지웅 | 글래드스톤 갤러리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