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은 금지할 수 있어도, 위대함은 결코 금지될 수 없다
만약 이 세상에 조던이 없었다면?
마이클 조던이라는 전설과 궤를 같이하며 함께 전설이 된 브랜드, 조던.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에어 조던을 기반으로한 이 위대한 브랜드가 없는 다소 끔찍한 세상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패션, 문화, 농구.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지금보다 덜 매력적일 거거든요. 이게 다 무슨 말이냐고요?
마이클 조던이 벌금을 내고서라도 신고 싶은 스니커?
에어 조던 1은 코트 위에서 정말로 사라질 뻔 했습니다. 에어 조던이 세상에 첫 숨을 내뱉던 1984년, 루키 마이클 조던은 블랙 앤 레드 컬러의 일명 ‘에어 조던 1 브레드 Bred’를 신고 코트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브레드의 강렬한 컬러웨이는 그의 화려한 플레이만큼이나 이목을 끌었죠. 물론 모두가 마이클의 스타일을 환영한 건 아니었습니다. NBA 협회 규칙 제4조 B항 3.2절 ‘유니폼 통일성의 규칙’에 따르면, 선수의 신발은 반 이상이 흰색이어야 하고 팀원들과 같은 색으로 맞춰야 했는데, 에어 조던 1의 톡톡 튀는 컬러웨이는 유니폼 규정 위반이었던 거죠.
협회는 마이클 조던이 코트 위에서 블랙 앤 레드 신발을 신는 걸 금지했고 그가 에어 조던을 신었던 모든 경기마다 벌금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나이키와 필 나이트는 벌금을 납부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경기 때마다 5천 달러를 내야 했는데도 말이죠. 환산하면 그 때 당시 한화로 약 730만 원이니, 나이키의 결정이 얼마나 대담하고 도전적인 건지 가늠이 되시나요? 에어 조던 1을 신은 마이클 조던은 프로 데뷔와 동시에 NBA를 ‘찢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어요. ‘얼마나 편하고 좋길래, 얼마나 점프력이 우수하길래 포기할 수 없는 거지?’ 에어 조던 1은 ‘마이클 조던이 벌금을 내고서라도 신고 싶은 스니커’로 인식됐죠. 마이클 조던이 높이 날면 날수록 조던 브랜드의 인기는 더 높이 날았습니다.
나이키가 벌금을 내지 않았다면?
그때 나이키가 벌금을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선, 패션계에서 빨간색은 지금처럼 멋지고 힙한 이미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스니커를 하나의 스토리이자 문화로 사랑하며 OG부터 최신 모델까지 애지중지 모든 계보를 수집하는 스니커 마니아도 지금처럼 많지 않을 거고요. 전 세계적으로 농구의 인기도 지금보단 덜할 것이며 미래의 마이클 조던을 꿈꾸며 코트 위를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없어지겠죠.
조던 브랜드는 지난 40년간의 위대함을 기념하며, 에어 조던 1의 진정한 영향력과 가치를 ‘만약 40년 전에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의 벌금을 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라는 대체 현실로 나타낸 이색적인 시각의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정반대의 이야기들이 펼쳐지죠. “1984년, 나이키는 혁신적인 에어 조던 1을 만들었습니다. 한 달 후, 에어 조던은 경기에서 금지되었습니다. 나이키는 벌금을 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필 나이트는 생각했어요. ‘경기마다 5천 달러? 안 될 일이지!’. 그 선택은 모든 걸 바꿨습니다. 에어 조던은 엄청난 실패작이 되었고, 더 이상 마이클 조던의 상징적인 시그너처 신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화계를 설레게 하는 유행도 없고, 스니커즈 마니아도 없고, 농구는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미래의 조던을 꿈꾸는 조던 키즈들도 없어졌겠죠.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운동화를 신었네요? 잭슨은 스웩이 없고, 마이클 조던의 모교 하워드 대학은 유구한 역사와 인기를 잃었습니다. 스포츠 채널도 별 볼 일 없고, 빨간색은 멋있지도 않고, 반바지 기장은 더 짧아지고, 민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흑인들은 다시 나쁜 사람처럼 보이네요.” 모든 게 나이키가 벌금을 내기 싫어서 벌어진 일입니다.멋도, 재미도, 패션도, 농구도, 문화도 없는 건조한 세상. 당신은 그런 에어 조던 없는 시간 속에 살 수 있나요?
위대함은 금지될 수 없다
세상이 내게 ‘억까’하고 금지시켜도 단 하나만은 지키고 싶은 존재, 에어 조던은 그게 무엇이든 밀어붙여 나갈 어떤 의미가 되어줍니다. ‘마이클 조던은 착용을 금지당했지만, 당신은 신을 수 있다’는 조던의 광고 문구처럼요. 지난 40년간 조던이 불어넣어 준 꿈, 사랑하게 이끈 패션과 문화, 더 뜨겁게 만든 농구와 스포츠. 그 모든 것이 있기에 조금은 더 근사한 하루. 신발은 금지되어도 그 오랜 위대함은 결코 금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설의 아이콘, 아이콘들의 아이콘, 저항의 아이콘
조던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멋없을지 체감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화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아이코닉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조던은 마이클 조던이 농구 역사의 전설을 다시 쓰는 순간마다 함께했습니다. NBA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덩크슛 명장면 중 하나를 탄생시킬 때도 그는 에어 조던 3을 신고 있었죠. 1988년 NBA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마이클은 반대편 코트 끝에서 긴 코트 위를 질주하더니 자유투 라인에서 점프해 압도적인 슬램덩크를 성공시켰습니다. 한계란 없다는 듯 자유투 라인 위에서 날아오른 그는 ‘에어 조던’ 그 자체였습니다. 그날, 조던은 다시 한번 모두의 역사가 됐고요.
두려움 없는 젊은 세대들은 조던을 ‘저항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이며 열광했습니다. NBA의 에어 조던 1 금지 사태가 발생했던 그 시기는 기성 문화에 대한 반항과 자유를 표방하는 스트리트 컬처가 조던 브랜드를 포용하는 상징적인 모멘텀이 되었고요. 당시 나이키는 TV 광고의 캐치프레이즈로 이런 문구를 내세웁니다. “마이클 조던은 못 신어도 당신은 가능합니다”. 조던 농구화는 사람들이 마이클 조던처럼 점프하게 해줄 순 없었지만, 금지와 억압에 맞서는 유스 컬쳐의 저항정신을 불 지피기엔 충분히 뜨거웠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엄청난 기세로 성장한 조던은 90년대부터는 힙합 아티스트들과 긴밀히 상징성을 스트리트 컬처를 선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힙합은 말할 것도 없고 각계각층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티스트의 발에는 늘 조던의 날개 로고가 달려있었고요. 키스 해링을 비롯한 미술가부터 메탈 밴드, 스케이트 보더, 영화배우까지, 조던은 당대의 가장 뜨거운 아이콘이 선택한 ‘아이콘의 아이콘’이였습니다. 그 영향력은 1980~90년대에 그치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습니다. 트래비스 스캇, 빌리 아일리시 등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모델을 출시하거나, 카니예 웨스트나 G-DRAGON 같은 셀럽들이 여전히 조던 시리즈의 근본인 에어 조던 1을 착용하는 모습이 속속 목격되곤 합니다. 조던은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영향을 펼쳐 나가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화의 역사가 새로고침 될 때, 그 순간엔 언제나 조던이 함께할 겁니다. 지난 40년 간 언제나 그랬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