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는 모든 시계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현존하는 ‘시계 업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전설 장 클로드 비버가 선택한 시계들.
오데마 피게, 오메가, 그리고 블랑팡
1949년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나 10살 때 스위스로 이주한 그는 로잔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오데마 피게의 유럽권 영업 매니저로 일했던 그는 오메가로 이직한 뒤, 1981년 세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시계 브랜드 블랑팡의 상표권을 샀다. 현재 블랑팡의 위치를 감안하면 ‘개인이 블랑팡의 상표권을 사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당시 스위스의 고급 시계 제조사들은 값싼 일본 쿼츠 시계에 밀려 도산하거나 경영난에 허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회사 운영은 처음인데다 아직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장 클로드 비버였지만, 천재적인 사업 감각을 발휘해 단숨에 블랑팡을 5천만 스위스 프랑(한화 약 800억)대의 매출을 달성하는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1992년 스와치 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당시 SMH 그룹이 블랑팡의 가능성을 보고 비버로부터 6천만 스위스 프랑에 상표권을 사들였지만, 2003년까지 그를 CEO자리에서 일하게 했다.
오메가의 재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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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 그룹 산하 블랑팡의 CEO 시절, 그는 오메가를 재건하는 책임자까지 겸했다. 오메가는 당시에도 스위스 워치 메이킹을 대표하는 브랜드임에 틀림없었지만, 판매 촉진을 위해 저가형 시계를 양산하기도 하는 등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비버가 <007> 시리즈에 제임스 본드의 시계로 오메가 씨마스터를 채우고,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마이클 슈마허, 신디 크로포드 등을 앰버서더로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며, 저가형 시계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행보로 오메가의 체질을 개선했다. 그가 앞장섰던 모든 마케팅은 대성공했으며, 오메가의 매출은 3배가 뛰었다.
위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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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클로드 비버의 브랜드’로 가장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브랜드는 위블로다. 위블로는 1980년 카를로 크로코라는 인물이 설립한 신생 브랜드로 고급 시계임에도 불구하고 러버 스트랩을 사용한 파격으로 흥미를 끌었다. 이러한 개성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비버는 2004년 위블로의 CEO로 합류해 2008년 LVMH 그룹에 브랜드를 팔기까지 매출을 5배나 끌어올렸다.
LVMH 시계 부문 회장과 그의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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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 그룹에 위블로를 판매하고도 블랑팡과 그랬던 것처럼 위블로를 떠나지 않고 LVMH 그룹 시계 부문 회장으로 취임했다. 따라서 제니스, 태그호이어 등의 브랜드를 휘하에 거느리게 되었고, 제니스와 태그호이어의 브랜드 전개와 시계 디자인도 좀 더 진보적으로 변경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8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은퇴를 선언하며 긴 시간 부업 삼아 해 오던 치즈 생산에 몰두하며 시골에서 생활을 이어왔다. 202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가장 권위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는 LVMH 그룹에서 일하며 프랑스 럭셔리 산업을 성장시킨 주역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아들과 함께 만드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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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에서 치즈만 만들며 살기에 43년간 시계업계에 몸 담았던 세월이 아까워서였을까? 아니면 자연 속의 생활이 그의 건강을 회복시켰기 때문이었을까? 2023년 비버는 막내 아들 피에르와 함께 JC 비버라는 새 브랜드를 론칭했다.
매뉴팩처는 비버의 농가 주택에 있으며, 매우 높은 사양으로 극소량의 시계를 생산하고 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계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가족과의 마지막 브랜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