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짙은 어둠을 원했고, 빛과 함께 걸었다.

생 로랑 맨즈 윈터 2025 컬렉션, 당일 공개된 티저는 청년의 무아지경 댄스였다. 윗옷을 벗은 날씬한 남자가 춤을 추는 동안 젊은 근육과 등 뒤 옅은 전구만 점멸하듯 나타나고 사라졌다. 셔츠를 벗어젖힌 남자의 몸은 의당 굵은 땀과 잔뜩 펌핑된 축축한 가슴이 핵심이건만, 이렇게 매트하고 창백한 춤사위라니. 청초한 금발 남자애가 등장해 “나는 춤출 뿐. 설명은 생략한다” 가 티저의 전부였어도 짧은 영상 안에 힌트는 있었다. 쾌락 또는 금욕, 유혹하거나 되레 매혹당하거나. 분명 사람을 홀리는 뭔가가 나오리라고 믿었다. 쇼장은 이제 안토니오 바카렐로의 응접실처럼 느껴지는 파리 피노 컬렉션 미술관. 들어서자마자 고아한 마룻바닥 위에 커다란 샹들리에를 무작정 내려놓은 호기부터 눈에 들어왔다. 천장이 아닌 바닥에 떨어진 빛들은 기이한 감각을 깨웠다. 커다란 뿔이 솟은 사슴, 되돌아온 편지,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목소리처럼 아름답고 슬펐다. 동시에, 이 우아한 공간에서 잔인한 무슨 일이 어서 벌어졌으면 하는 욕망이 샹들리에의 뜨거운 전구처럼 번졌다. 극단적으로 예쁜 건 때론 불길함을 동반한다. 앰버와 머스크 향이 얼핏 스치는 것 같았고 새카만 암전, 곧 샹들리에만 오롯이 켜진 채 쇼가 시작되었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이번 컬렉션의 키워드를 대립, 긴장, 이중성, 양극성 등으로 표현했고 실제로 쇼는 그가 말한 단어들이 나란히 모인 완성형 문장이었다. 금욕적인 더블 브레스트 수트와 탐욕적인 가죽 부츠, 부드러운 캐시미어 니트와 단단한 발마칸 코트, 예리한 싱글 재킷과 풍성한 트렌치. 가죽 장갑을 낀 손을 팬츠 주머니에 감춘 모델들의 태도 역시 ‘누구도, 무엇도 만지지 않겠다’는 투여서 더 야하게 느껴졌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최근 수트에 새삼 매료된 듯 보였고, 이번에도 메인 아이템은 수트였다. 다만 수트의 젠틀함이나 댄디함보다는 섹시함에 집중했다. 꼭 채운 청결한 셔츠와 바짝 당겨 맨 타이가 흐트러진 어떤 룩보다 진하고 독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데 가죽 부츠는 ‘샷추가’의 역할을 톡톡히 했고. 쇼 후반에 등장한 페더 장식 코트는 새들이 지나간 자리에 갑자기 매가 출몰한 듯한 강렬함을 남겼다. 쇼 음악은 레너드 코헨의 시 낭송 같은 노래,‘You want it darker’. “그대가 어둠을 원한다면, 모든 불꽃을 사라지게 할게요.” 얘기는 그랬지만, 빛 가까이 갈수록 블랙은 더 어둡고 훨씬 까맣게 보였다. 이것이 바카렐로식의 이중이고 양극이라면, 그에게 백합 같은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