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을 24차례나 달성한 노박 조코비치는 지난여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테니스계에서 마지막 남은 과제를 해결했다. 건강, 정치, 역사, 인류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에너지가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그 향방이 당신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코토르만의 반짝이는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몬테네그로의 어느 아침, 노박 조코비치 Novak Djokovic는 흰색 라코스테 티셔츠에 파란색 반바지, 고무 소재 샌들, 파란색 틴트가 들어간 모스콧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서른일곱 살인 노박 조코비치의 어쩌면 가장 여유로운 모습일 것이다.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피할 수 없는 결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래도 한 시즌 이상의 슬램이 남아 있다는 자신감은 새로울 뿐 아니라 약간 무섭기도 하다. 그가 캔버스, 가죽, 윔블던 퍼플과 윔블던 그린 컬러로 이루어진 윔블던 가방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거 마음에 드네요.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뭘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군요.”
30분처럼 느껴지는 3분 동안 조코비치는 세르비아어로 적힌 아침 메뉴 속 모든 음식의 구체적인 재료에 대해 꼼꼼하게 캐물었다. 뉴욕에서 열린 US 오픈 전에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세심함이 결코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음식에 관해서라면요, 전 상당히 종교적인 편입니다. 깨끗하고 신선하게 준비된 음식을 좋아합니다. 탐험가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죠. 특히 토너먼트 중에는 더욱 그렇습니다.”(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때는 아이스크림이 그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과 와인.)
조코비치는 여전히 주소지상으로는 모나코에 거주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 여러 집을 두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고국인 세르비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어릴 적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곤 했던 몬테네그로에서도 지내고 있다. 몬테네그로는 과거 세르비아와 한 나라였다. 지금의 그는 매우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공기 중에는 무언가 치명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조코비치가 나를 향해 걸어오다 그 모습을 발견했다. 완벽하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반가운 광경이지만, 유리 벽에 투명한 환영을 만들기 때문에 새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누군가는 새들이 파리처럼 떨어졌다고 말했다. 불길하군. 하지만 조코비치와 그의 어린 두 자녀가 이 사건을 해결했다. 그들은 설탕물을 먹이고 휴식을 취하게 해주기 위해 새를 상자에 담아 집 안으로 데려갔다.
조코비치 역시, 회복 중이다. 무릎 부상으로 2005년 이후 ATP 투어 타이틀 하나 없이 보낸 첫 시즌이었지만, 그는 방금 구해준 새처럼 자기는 여전히 여기 있고 아직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론 아마 그 반대일 것이다. 긴 목과 허리를 그 어느 때보다 곧게 세우고 우리와 함께 앉아 있던 그는 2024 파리 올림픽 금메달의 번쩍이는 후광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왠지 더 커 보였다. 호주 오픈 10회, 프랑스 오픈 3회, 윔블던 7회, US 오픈 4회 등 총 24회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며 남자 테니스 선수 중 가장 많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보유한 조코비치가 지난 16년 동안 다섯 번의 도전 만에 달성한 올림픽 금메달은 그가 그때까지 이루지 못했던 유일한 업적이었다. 조코비치에게 올림픽 금메달이란, 설령 슬램에 비하면 명성은 떨어질지라도, 다른 테니스 선수들에 비해 그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평생을 고국의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사람에게 영광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달까. 조코비치 개인으로서의 우승은 이미 많이 이루었지만 세르비아로서의 우승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테니스라는 게임에서 승리한 걸까? 나는 물었다. 마지막 레벨, 즉 최종 보스를 깬 것일까? 그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았기에 웃으면서도 굉장히 고심해서 대답했다. “네, 그리고 아니요.” 그는 선수로서의 권리 향상부터 기업가적 설계(“테니스는 여전히 세계를 향한 나의 가장 큰 확성기다”)에 이르기까지 스포츠계의 원로라 할 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아직도 이뤄야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한 후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제가 이룬 업적과 경기 자체의 완성도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네’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런 다음 그는 웃고 또 웃었다.

코트에서의 마지막 업적에 이어, 그는 사람들이 테니스 선수로서의 자신에 대한 부고 기사를 준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디어. 팬들. 조코비치가 다시 말을 잇는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아버지가 좋아하실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말할게요. 모든 건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아버지는 지금 저를 은퇴시키려고 하시거든요.” 나는 웃었다. “아니요, 진짜로요. 하지만 강요하시진 않았어요. 계속하겠다는 제 결정을 존중했고요. 물론 제가 왜 계속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시지만, 이렇게 묻더군요. 더 이루고 싶은 게 뭐야?”
“아버지는 외부로부터의 압박과 긴장의 총량과 그 강도, 그게 제 건강과 신체에 주는 스트레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버지 당신을 포함한 제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들아, 끝이 어때야 하는지 슬슬 생각해봐라.’”
토너먼트에 참가하러 가는 길을 조코비치는 가족을 두고 전쟁터로 떠나는 일에 빗대 설명한다. 차에 짐을 싸 넣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호텔에서 첫 며칠이 특히 고되다. “48시간까지가 슬픔, 이별, 후회,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엄청난 욕구가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때”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강한 감정은 이내 사라지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면서 나머지 가족 모두가 마침내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고 그는 농담한다. US 오픈 2주 차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불운을 겪은 딸의 생일을 제외하면 그는 모든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몬테네그로 길거리에서 그의 열 살 난 아들 스테판은 셀틱스 유니폼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세르비아어와 영어로 새는 살았는데, 덤불에서 새를 공격한 고양이로부터 새를 지키려다가 정작 자기가 다쳤다고 설명했다. “오, 스테판, 스테판, 스테판.” 조코비치가 스테판을 안아주면서 말했다.
“하지만”, 조코비치가 얼마나 더 할 수 있겠냐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끝내고 싶고 언제 끝내고 싶은지는 늘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 이 말은 취소할게요. 저는 언제보다는 어떻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치열하게 생각해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요. 어떻게, 어떻게 끝내고 싶냐면, 더 많이 지기 시작하고 격차가 벌어지고 빅 슬램 경기에서 큰 고비를 극복해야 할 때 더 고전하기 시작하면, 아마 그날이 이제 접어야 할 때겠죠. 하지만 현재로선 아직 괜찮으니 계속 도전할 생각입니다.”
물론 스포츠 업계나 팬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제가 계속 활동하기 위해서는 출전하는 토너먼트 수를 줄이고 일부 대회에만 집중해야겠죠”라고 그는 말한다. 이론적으로 2025년 스케줄을 짜보자. “슬램과 데이비스컵 4개 경기에만 출전할 것 같지는 않아요. 적어도 슬램 전에 한두 번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토너먼트에 출전할 것 같아요. 특히 클레이에서요.” 하지만 ATP 마스터스 1000, ATP 500, ATP 250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글로벌 대진 그리고 상위권 선수에게만 해당 이벤트에 몇 회까지 출전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제한적인 요건, 이런 것들은 커리어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노박 조코비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ATP 1000 상위권 선수들이 받는 포인트 페널티를 감수할 것이다. 그 결과로 조코비치의 ATP 랭킹은 기꺼이 급락하게 될 것이다.(희한한 랭킹 시스템 덕분에 슬램 대회 초반에 터무니없이 낮은 시드를 가졌지만 조코비치와 맞붙어야 하는 유망주가 불쌍할 따름이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조코비치 스토리의 영화 버전이 있다고 할 때, 금메달을 따는 장면에서 대본은 끝나지 않을까. 국민 영웅이 된 한 남자가 올림픽 선수촌에서 조국의 팀 동료들과 축하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왜 계속하려는 걸까?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최선이라고들 말하죠. 저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요. 하지만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그가 말한다. “내가 아직 신체적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여전히 그랜드슬램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고 느낀다면, 왜 지금 멈춰야 하지?”

지난가을에 언급했던 것처럼, 조코비치가 25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1월 호주 오픈에서 찾아올 것만 같았다. 멜버른의 밝고 푸른 하드 코트보다 더 편안한 곳이 없을 정도인 조코비치는 이 대회 남자부 최고의 챔피언이 아니라 이 대회 사상 가장 희한한 사건을 남긴 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테니스를 좋아하지 않거나 조코비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2022년 호주 오픈을 앞두고 벌어진 백신 접종 논란은 알고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조코비치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모든 국민과 방문객에게 엄격한 예방 접종 요건을 적용하던 시기에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멜버른에 도착했다. 1월 6일 자정이 조금 넘긴 시각, 조코비치는 공항에서 국경 수비대 직원에게 질문을 받았다. 조코비치는 담당관에게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지만 최근 코로나19에 걸렸던 적이 있으며, 빅토리아주 보건부가 지정한 독립 패널로 오스트레일리아 방문과 오픈 대회 출전을 위한 의료 면제를 받았다고 말했다.
거기서 상황은 매우 복잡해졌다. 담당자와 조코비치는 몇 시간 동안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조코비치는 담당자가 접종 면제를 허가한 사람에게 전화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밤중이었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았다. 담당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구금 시설로 사용하는 호텔로 이송되어 항소를 기다렸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 터진 이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코트 속 테니스 이야기를 넘어 전혀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조코비치가 법 위에 군림하거나 대회 또는 국가의 요구 사항을 회피하려 한다고 해석했고, 조코비치를 향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진화했을까? 구금 호텔에서 대기하는 사이 그는 칫솔, 치약, 물, 음식 등 100여 가지가 넘는 품목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저는 거기 있는 네모에 표시를 할 수 있는데, 각 품목마다 일정 포인트가 매겨져 있었고, 제가 쓸 수 있는 점수는 60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59인가 60점어치를 선택해서 돌려줬죠. 20분 정도 후에 그들이 다시 와서는, 무언가 착오가 있었고, 제가 쓸 수 있는 점수가 60점이 아니라 30점이라는 거예요. 저는, 지금 농담하는 거냐고 그랬죠.”
여전히, 그는 대회 준비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조코비치는 자신의 짐 가방과 분리된 채로 한동안 보냈기 때문에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제자리 뛰기 등 맨몸 운동만 할 수 있었다. 음식에 까다로운 조코비치를 위해 준비된 유일한 먹을거리는 시설에서 제공한 것뿐이었다. “40일 정도 격리되었던 다른 선수들도 방에 갇혀 있었잖아요.” 조코비치는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그들은 감옥 같은 곳에 있었던 건 아니고, 저는 그랬다는 겁니다.”
수요일 밤에 멜버른에 도착해 목요일이 되었다. 이후 그는 주말 내내 호텔에 있었다. 월요일에 열린 법원 소송 건에서 그의 신분에 대해 처음 판결대로 비자가 회복되었다.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야 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가 말한다. “이걸 자유라고 부른다면, 자유로워야 하잖아요. 하지만 제가 빌린 주택 근처 가는 곳마다 경찰이 따라다녔고, 훈련하는 센터 코트 주변에는 헬리콥터가 맴돌았어요. 로커룸, 메인 로커룸에도 들어갈 수 없었죠. 그래서 제가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할 수 있는 다른 로커룸을 찾아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했어요. 말하자면 저는 도망자 신세나 다름없었어요.”
며칠 후, 대회 시작 직전 조코비치의 비자는 다시 취소됐고 결국 조코비치는 “공공의 위협”이라는 명목으로 추방당했다. 당시 호주에서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정서가 커지고 있었던 상황이라 조코비치는 “영웅”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제가 호주에서 추방된 진짜 이유”라고 그가 말한다. “결국 세 명의 연방 판사도 그렇게 판결했습니다. 그들의 판결은 [이민국] 장관의 재량권에 의문을 제기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정치적이었어요. 코로나나 백신 혹은 다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냥 정치적인 문제였어요. 정치인들은 제가 그곳에 있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저를 추방하는 것이 저를 계속 그곳에 두는 것보다 피해가 적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백신 접종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대중에게 알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타국에 몰래 들어가거나 규정을 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라고 말이다. 그는 익명으로 신청했고 익명으로 면제를 받았다고 했다. 세계 랭킹 1위 선수였기 때문에 받은 면제가 아니었다. 조코비치는 이미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항체가 생겼기 때문에 허가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해 말, 조코비치는 예방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미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CDC 규정으로 인해 US 오픈에 참가할 수 없었다. “호주에서의 상황으로 인해 저는 세계 최악의 악당으로 공표되었죠.” 그가 말한다. “지금도 99퍼센트의 사람들은 제가 호주에서 추방된 이유를 모릅니다. 무슨 근거로요. 사람들은 제가 백신을 맞지 않아서 호주에서 추방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고 억지로 호주에 입국하려 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제 입장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저는 백신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백신에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나와 내 몸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지합니다. 따라서 누군가 내 몸을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할지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에서 추방된 조코비치는 가족이 머물고 있는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 탑승했다. 가던 길에 그들은 세르비아로 경로를 틀었다고 했다. “왜냐고요? 변호사를 통해 스페인에 도착하면 호주에서와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은 대신 세르비아에서 만났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건강상의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그리고 멜버른의 그 호텔에서 먹은 음식 중 뭔가에 중독되었던 것 같아요.”
잠깐, 무슨 소리인가?
“세르비아로 돌아왔을 때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제 몸에 중금속 수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중금속, 납, 수은 수치가 매우 높았어요.”
지금, 음식이라든지 뭐 그런 것 때문이란 말인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게 유일한 (유입)경로였으니까요.” (이에 대해 의견을 묻자 호주 내무부 대변인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내무부는 개별 사례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전했다.)
유럽으로 돌아갈 때 몸이 많이 아팠나?
“네, 아주 아팠어요. 독감과 비슷했어요, 보통 독감처럼. 하지만 며칠 후 단순한 독감이라기엔 너무 힘들었어요.” 그는 집에서 응급 의료팀의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에 독성학(검사)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도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다는 말일까?
“안 받았어요.” 그가 말한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게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건강한 사람이고, 제 몸을 관리하고, 필요한 건강을 챙기는 프로 운동선수입니다. 프로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섭취하는 음식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정기적인 검사, 혈액 검사 등 모든 종류의 검사를 받고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죠. 그래서 굳이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제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렇지 않으니까요. 항체가 있기 때문이죠.”
그 모든 일을 고려할 때, 올해 다시 호주로 돌아온 조코비치에게 그 일들은 이미 다 지난 일일까?
“제 아내와 부모님,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호주 사람들에게 원망을 품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호주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만난 많은 호주 사람이 제게 다가와서 당시 자국 정부가 한 일들이 부끄럽다며 제가 받은 대우에 대해 사과하곤 했어요. 그리고 정부가 바뀌면서 제 비자를 복원해주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총리와 새로운 장관들,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원한은 전혀 없어요. 전 호주에 머무는 걸 좋아해요. 제 결과가 테니스를 하는 것과 그 나라에 있는 것에 대한 제 감정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일 년 내내 그 나라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스포츠 열기, 특히 그 달의 테니스 열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빨리 돌아가고 싶고요. 전 다 떠나보냈어요. 솔직히 저는 완전히 다 잊었습니다. 몇 해 전에 저를 추방한 사람들을 다시 볼 순 없었어요.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요.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기꺼이 악수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백신 접종 정책으로 인해 출전할 수 없었던 2022년 호주 오픈과 2022년 US 오픈을 떠올려보면, 그 두 대회는 그가 25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에 다가갈 수 있었던 최고의 기회 중 하나였다. 그때를 떠올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정말 아쉬운 기회를 놓쳤다고. “그렇게 생각하다면···.” 그가 말한다. “또 후회하게 될 거라 그러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덕분에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죠.”

코토르만은 여러 갈래로 뻗은 수역으로 원한다면 몇 시간 동안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저속 기어로 달릴 수 있는 곳이다. 조코비치가 어린 시절 자주 놀던 해안가보다 더 조용한 만이다. 조코비치는 남부 쪽의 아만 스베티 스테판 Aman Sveti Stefan 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북쪽은 가족을 위한 터전이자 삶의 이유다. 조코비치는 마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당이 타고 나올 법한 보트를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날엔 그걸 타고 나간다. 조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나 1990년대에 발칸 반도를 휩쓴 길디길고 혼돈으로 가득한 파괴적인 전쟁을 겪으며 살아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코소보와 보이보디나 포함), 슬로베니아의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단일 국가였던 유고 슬라비아는 2차 세계 대전 말부터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 때까지 공산주의 국가들의 연방 공화국으로서 암묵적으로 공존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무너진 후, 그 공백은 무척이나 혐오스러웠고 10년간의 끝없는 분쟁으로 채워졌다.
여기부터는 신중하게 다뤄야만 한다. 도서관은 이 지역과 그 내부 사정에 관한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1990년대 전쟁의 목격자이자 베오그라드의 탕아, 그리고 현재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현역인 동시에 세르비아인인 노박 조코비치는 세르비아뿐 아니라 이 지역의 모든 국가와 민족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르비아인이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을 죽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던 내전의 시대에 자랐지만, 점차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그가 바라보는 프로젝트는 “우리 쪽 사람”과 다른 쪽의 차이보다는 동질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는 언제나 이 지역의 모든 민족과 국가들을 향한 접근 방식과 행동 면에서 매우 평화주의적인 태도를 취해왔어요. 우리는 한때 같은 나라였으니까요. 어머니의 가족은 모두 크로아티아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크로아티아인이죠. 아버지 쪽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저는 세르비아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합니다. 우리는 한때 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성, 전통적 동질성, 언어 등등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왜 그런 것은 간과하느냐는 방식으로 이 사안에 접근하고 있죠.”
어린 시절 조코비치는 코파아닉 Kopaonik 스키 리조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부모님은 그곳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했다. 그런데 마치 운명처럼, 리조트는 말 그대로 그의 발치에 테니스 코트를 지었다.(조코비치는 당시 건설 노동자들에게 맥주를 배달하곤 했다.) 그는 테니스에 푹 빠져들어 그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그 대신 다른 호기심에 빠질 기회는 놓쳤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에게 테니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충격을 주었고 비슷한 강도로 추구하려 했을지 모르는 무언가가 혹시 있었는지 물었다.
“물론이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글루텐 프리 빵 한 조각을 잘게 썬 아보카도와 함께 씹으며 대답했다. “몇 가지가 더 있었어요.” 그러고는 언어학(그는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최소 6개 국어를 더 구사할 수 있다), 고고학, 역사에 대한 자신의 관심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계사보다는 발칸 반도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수년 동안 그는 개인 교사를 고용했다. 독서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었다. 그는 역사, 고고학, 그리고 고대 문명에 대한 학문을 탐구하며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이런 면에서 조코비치가 매일 생각하는 ‘나만의 로마 제국’은 실제 로마 제국이다.)
이러한 독학 정신이 조코비치를 영양학, 피트니스, 나아가 의학까지 포함한 웰니스 전반에 집착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남들이 어느 한쪽으로 갈 때 그는 언제나 반대 방향을 택하는 성향을 보여왔다는 점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고려할 때, 그가 학문의 모든 영역에 대한 접근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전쟁, 정치, 스포츠, 무엇이건 간에 가장 쉬운 길은 그저 흐름을 따라가는 거예요. 주류를 따르는 것이죠. 일종의 군중 심리랄까요? ‘다들 하니까 나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항상 주류에 반대하는 사람이냐 하면 아닙니다. 저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어떤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다면, 당연히 그것을 따르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저는 그것과 맞서겠죠.”
공식 기록에 관해서라면, 조코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배우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100퍼센트 진실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두 가지 주요 문제가 있다. 첫째, 이 역사는 한 세기를 거쳐온 세르비아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는 점을 언급하며 조코비치는 세르비아는 많은 것을 잃어왔다고 덧붙인다. “수많은 역사가 전쟁 속에서 파괴되었습니다. 도서관이 불탔습니다. 도서관이 타버리고, 역사가 사라지며, 결국 그 민족의 뿌리도 함께 불에 타서 없어지는 거죠.” 둘째, 이 역사는 이 지역 모든 국가 사이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한다는 것. 적어도 지난 두 세기 동안은 종교적 노선을 따라 분열되어 왔다. “공식적인 버전의 역사가 있고요.” 조코비치는 말한다. “그리고 숨겨진 역사, 어쩌면 억압된 역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진실을 파헤치고 싶습니다.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에요. 지난 20년 동안 배운 것들 때문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신학적 유적지를 방문하고, 또 수십 년간 이 분야에 몸담아 온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얻은 깨달음이에요.”

조코비치가 인용하고 함께 연구하며 자금을 지원하는 전문가 중에는 보스니아의 사업가이자 작가인 세미르 오스마나기치 Semir Osmanagić가 있다. 그는 비정통적인 역사적 주장으로 수십 년에 걸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보스니아의 일부 언덕이 자연 지형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피라미드라고 주장하며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설득해왔다는 것이다. 조코비치는 이 모든 연구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두 나라가 공식적으로 다시 합치고 싶다는 건 아니어도, 최소한 서로를 적으로 여기기보다는 더 가깝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비교적 무해한 스포츠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2018년 월드컵 당시 조코비치는 크로아티아를 공개적으로 응원했다가 세르비아인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저는 조국으로부터 꽤 큰 비난을 받았고, 최고위 정부 관계자들조차 저를 비판했습니다.” 그가 말한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주 단순한 거였어요. 첫째, 저는 크로아티아에 가족이 있습니다. 둘째, 그게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보다, 가족적 유대 이상의 수많은 공통점을 가진 가까운 이웃을 응원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건 부분적으로 분리된 과거보다 공통된 과거가 더 많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시사한다는 것인가?
“100퍼센트죠. 그 개념이 이 프로젝트의 전부입니다. 보세요, 지금 현대 사회에서 우린 서로가 다른 국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다시 하나의 국가로 뭉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은 국가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더 문화적인 의미인 걸까?
“제 말은, 그러니까 가장 이상적으로 상상해보면, 왜 안 되겠어요? 안 될 것도 없잖아요.” 그의 말이 이어진다. “우리가 같은 언어, 또는 매우 매우 비슷한 언어를 쓴다고 가정한다면–그는 나를 위해 각 언어 간의 미세한 차이점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의 전통 의상, 민속 복장, 음악, 춤, 음식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완전히 똑같습니다! 표현하는 단어만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하나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뿌리,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같은 부족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를 촉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는 그가 이야기하는 ‘유고슬라비아의 통일’이라는 주제의 무게만큼이나 신중하게 해석하려 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 될 것 같습니다.”(세르비아는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권력의 중심지이자 전쟁의 주요 침략국으로 여겨지므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세르비아에서는 (통일이 매우 주목받고 있지만 다른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이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지역에서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이죠. 협력적으로요. 매년 여름 전쟁이 일어났던 날짜가 다가오면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언론과 정치권은 매년 더 강하게, 매년 더 강하게 그것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그러면 당연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점점 더 멀어질 뿐이죠. 사람들이 잊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잊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희생자들은 항상 기억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조코비치는 드물게도 자국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도 될 만한 운동선수다. 정치적 야망에 대해 물으면 그가 항상 재빨리 일축하기 때문에 나는 약간 다른 질문을 던졌다. 노박 조코비치가 국가와 지역을 위해 갖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정치권 안에 있는 것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일까, 아니면 정치권 밖에서 더 효과적일까?
“지금 제가 보는 관점은, 정치권 밖입니다.” 그는 말한다. “일단 많은 사람이 제가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 정치인이 되고 싶은지 굉장히 많이 물어보셔서 이 말을 꼭 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지역의 정치 현장이나 정치 환경이 전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거친 표현을 쓰긴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나라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국가에 되돌려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뭐랄까···, 조작되지 않은 방식으로요. 지금은 온갖 조작이 넘쳐서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정치에 뛰어든다 해도···, 그리고 이 점을 강조해야겠지만 저는 정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혹시 생각이 있다면 먼저 교육을 받는 과정부터 거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아무 교육 없이 당장 그런 환경에 뛰어들어 제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프로 무대에 입성했을 때, 조코비치는 로저 페더러 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 Rafael Nadal이라는 성스러운 듀오 사이에 난입한 불청객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징적인 3인방으로서 점차 로커룸의 리더이자 팬들이 응원할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다. 하지만 페더러가 2022년에 은퇴하고, 앤디 머레이 Andy Murray도 (지난여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고–놀랍게도 호주 오픈까지 조코비치의 코치를 맡기로 했다–, 이어 나달 또한 지난 11월 데이비스컵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조코비치는 거의 모든 선수를 이길 수 있는 실력으로 정상에 홀로 서 있지만, 조코비치를 포함해 페더러와 나달이 20년 동안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민첩성, 지구력, 독창성 면에서는 차세대 유망주인 야닉 시너 Jannik Sinner(23세)와 카를로스 알카라스 Carlos Alcaraz(21세)에게 추월당한 상태다.
나는 그에게 각 선수의 이름을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로저 페더러: 우아함.
라파엘 나달: 끈기.
카를로스 알카라스: 카리스마.
야닉 시너: 스키.
꽤 흥미로운 비유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이자 기계처럼 끊임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능력 면에서 유일하게 조코비치를 능가하는 선수인 야닉 시너를 조코비치의 머릿속에서는 그저 돌로미티에서 자란 이탈리아인이 잘하는 또 다른 스포츠 종목 정도로 납작하게 표현한 것이다.

조코비치는 투어에서 새로운 스타들을 위해 뭘 해줬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항상 “양팔 벌려” 젊은 세대를 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디미트로프 Dimitrov, 치치파스 Tsitsipas, 메드베데프 Medvedev, 루블레프 Rublev, 즈베레프 Zverev, 팀 Thiem. 물론 알카라스와 시너까지. 그는 10대였던 시너와 함께 훈련하며, 시너가 조코비치는 자신의 팀과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지켜볼 기회를 줬다. “우리는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함께 웃었어요.” 그가 말한다. “전 좋았던 것 같아요. 톱 레벨에서는 일정 이상으로 깊이 교류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선배 선수로서 도움을 주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다. “너무 많은 걸 공유하고 싶지 않기도 해요. 저 역시 아직 정상에 있기 때문이죠.”
나는 그에게 그들의 메이저 대회 최종 우승 횟수를 예측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눈이 커졌다. “아직은 너무 이르죠. 사람들이 제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거라고 하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카를로스가 벌써 다음 차례일 수도 있고, 야닉일 수도 있죠. 몸을 잘 관리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훈련하며, 장기적인 커리어에 긴 안목으로 집중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스물한 살에 벌써 메이저 대회 4회 우승을 기록한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떠올리며 조코비치가 덧붙인다. “카를로스는 그 나이에 역사상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뤘어요. 확률적으로 그가 유리하죠. 그는 머지않아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겁니다.”
조코비치는 잠시 숨을 골랐고, 나는 그의 눈빛 속에서 신중한 조언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자기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는 역사를 만들고 싶어 해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죠. ‘보세요, 난 그럴 자질이 있어요’ 같은 마인드는 존중하지만, 그가 역사를 논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을지도요.”
오랫동안 조코비치를 둘러싼 많은 대화가 그래왔듯이, 우리도 역시 결국 그의 삶의 거대한 두 개의 행성인 나달과 페더러에게로 향하게 된다. 나는 그에게 경기 전이나 경기 도중 가장 위축되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아마도 한 1분 정도(어쩌면 20년 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는 경기 전에 좁은 로커룸에서 광적으로 전력 질주하던 나달과 함께 있었을 때의 느낌을 설명한다. “가장 위협적인 사람? 그건 바로 나달이죠. 확실히 그였어요. 물론 로저에게도 엄청난 아우라가 있어요. 로저와 붙기 전부터 그게 느껴져요. 하지만 나달은 더 우아하게 해냈다고 생각해요. 하여간 나달은, 우리가 로커룸을 같이 썼기 때문에 워밍업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어요.”
듣기론, 나달의 헤드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하지만 사실 그가 어디선가 질문을 받았을 때 ‘아니요, 기선 제압하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그는 로커룸의 작은 복도를 전력 질주하며 말 그대로 사람들을 쓰러뜨릴 정도였어요. 왜,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잖아요. 아시죠? 물리적으로요. 나 여기 있어, 막 점프를 하면서. 난 싸울 준비가 됐어. 시작부터 당신을 격하게 대할 거야. 처음부터 내가 그르렁대는 소리를 듣게 될 거야. 이건 많은 플레이어에게 굉장히 위협적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고, 처음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게임 전략이 없다면, 그는 당신을 산 채로 잡아먹을 거예요.”
방금 그 장면, 기억을 되살려 떠오른 그 그림이 롤랑 가로스에서 조코비치와 나달이 처음 대면한 장면이려나?
조코비치가 말한다. “많은 일이 있었죠. 나달은 제가 가장 많이 상대한 선수지만 롤랑 가로스에서의 만남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2006년이었던가? 우리가 아직 10대였을 때였어요.(그 당시 나달은 대회를 치르던 사이 스무 살 생일을 맞았다.) 그는 이미 그때도 롤랑 가로스의 디펜딩 챔피언이자 슈퍼스타였어요.”
세 사람은 항상 함께 자주 언급되곤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글쎄요, 만나진 않아요. 자주 보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 셋이 가졌던 라이벌 의식은 영원할 것 같아요. 이 스포츠에 엄청난 흔적과 유산을 남겼으니까요. 영원히 지속될 뭔가라고 할까요. 그들 중 일원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그들은 제 성공과 스포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들과의 라이벌 관계는 제 커리어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테니스 면에서요.”
“개인적인 관계로는 기복이 있다고 할까요. 저는 항상 코트 밖에서는 그들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코트에 나갔을 때의 저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승리를 원한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 아마 초기에는 두 사람이 그 점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대부분의 선수가 그들과 맞붙을 때 이기려고 작정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고, 아마 그 때문에 두 사람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메시지를 이해했어요. 즉, 우리는 라이벌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죠. 솔직히 말해서 투어에서 친구가 되기는 매우 어려워요. 만약 서로가 최고의 라이벌이고, 계속해서 경쟁하며 세계 랭킹 1, 2, 3위를 다투는 상황이라면요. 그런 관계에서 친밀해지고, 함께 저녁을 먹거나 가족 여행을 간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들은 사실상 리더십의 삼위일체 시스템 지도부처럼 필요할 때만큼은 잘 협력했다고 그는 말한다. 중요한 순간마다 중요한 결정을 위해서는 전화 통화를 하곤 했다.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테니스와 관련된 협력은 언제나 강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우리 각자는 각자의 삶과 여정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로저와는 최근 몇 번 만났을 때 가족과 투어 생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솔직히 그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더 깊은 정도로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어요. 그들도 저와 같은 바람이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화씨 72도, 섭씨 22도의 쾌적한 공기를 걸친 듯이 이 바닷가에서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던 그가 갑자기 그렇게 집중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막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몇 시간 내내 이어진 대화 중 처음으로 할 말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지켜봐야죠. 인생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지, 우리 모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테니스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 것 같아요. 아마도 테니스는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우리를 엮어줄 것 같아요.” 아마도 5년에서 10년 후쯤이면, 세 사람이 저기 보트를 함께 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흥미를 보이며 말한다. “저는 분명 두 사람에게 초대장을 보낼 겁니다. 함께 편하게 쉬고 즐기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자리로요.”
세계 남자 테니스 역사상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도, 당신들이 이룬 업적을 경험한 사람도 오직 이 세 명뿐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들 각자가 이 특별하고 진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코비치는 “저도 사실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당신과 완전히 똑같이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과 술도 한두 잔 하면서 마음을 열고 당시 저 때문에 짜증났던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그는 이 말을 하면서 벌써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이어 말했다. 아니면 그 반대로 제가 그들에게 짜증났던 것들일 수도, 아니 그냥 뭐든 상관없이 속 시원히 털어내고 싶어요. 그리고 선수들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코트에서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어깨를 짓누르는 세상의 압박감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싶어요. 그들이 수년 동안 저를 관찰했듯이 저도 그들을 관찰했기 때문에 저도 나름의 분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언젠가는 정말 편안한 환경에서 우리 모두가 마음을 열고 지난날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좋을 거예요. 하지만 테니스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우리 셋이 함께 모였다는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 한 척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느긋하게 전진하며 지나갔다. 좋은 구도 아닌가. 스위스인, 스페인인, 세르비아인이 슬로베니아 와인 한 병을 들고 보트에 오른다···. 조코비치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을 뿐이고 은퇴를 하지 않은 상태지만, 이미 저 너머를 슬쩍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이 대화들을 몰래 엿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