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숱한 곳들 중에서.
스코틀랜드
THE MACALLAN, AND MORE
“Absolutely!” 증류소에서 마시는 위스키는 같은 위스키라도 더 맛있느냐는 에디터의 엉뚱한 질문에 얼마 전 인터뷰로 만난 맥캘란 북아시아 지사장 하이메 마틴은 조금도 주저 않고 대답했다. 물론! 일찌감치 증류소 방문을 하나의 여행으로 제시한 맥캘란 증류소라면, 스페이사이드에서도 견학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이곳이라면 그럴 만하다. 스페이강 River Spey 근처에 자리 잡고 스페이강의 많은 구역을 소유한 증류소는 방문 그 자체가 자연 속으로 파묻히는 경험이다.(그렇다고 들었다.) 도로에서는 증류소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풍경 속에 녹아 있는데, 그 속살로 들어가면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로저스 스틱 하버 앤드 파트너스가 쌓아 올린 건물이 예술적 체험을 허락한다. 거기다 엘 셀러 데 칸 로카 El Celler de Can Roca의 셰프인 로카 형제와의 협력을 통해 완성한 새로운 레스토랑은 위스키와 요리 페어링의 새로운 세계를 연다. 맛볼 기회가 상당히 드문 맥캘란 런던 에디션을 비롯해 위스키, 미식,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허락하는 곳. 그나저나 정말로 여기서 마시는 위스키는 더 맛있을까? 얼른 그 진위를 파헤치러 가야겠다.
📍 LOCATION Easter Elchies, Aberlour AB38 9RX, Scotland
인천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타고 에버딘으로 이동, 차를 타고 스페이사이드로 향한다.
✔ CHECK POINT
맥캘란 증류소 내 다이닝, 맥캘란 바, 맥캘란 체험존, 맥캘란 부티크는 모두 별도로 예약해야 한다.
ROAD TO WILD, BALVENIE DISTILLERY
만나본 적 없는 꽃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거기에 매료되는 기이한 경험. 몇 년 전 발베니 증류소를 둘러싼 야생화 헤더 Heather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발베니 스토리 에디션 론칭 행사에서 앰배서더가 한 말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마치 눈동자로 향을 내뿜듯, 헤더 고원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아득하게 풍경을 묘사했다. 그동안 ‘장인’이라는 키워드로만 각인되었던 발베니 증류소가 또 다른 의미로 낭만적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단지 스토리 에디션뿐 아니라 발베니의 여러 제품에서 느낀 헤더의 뉘앙스를 늘 좋아해왔기에, 어쩌면 만난 적 없는 이 꽃과 나는 이미 사랑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보다 더 전에 발베니 증류소에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발베니의 정체성인 ‘장인’이다. 증류소 앞에서 재배하는 보리밭에서 보리를 감상하고, 몰팅 플로어, 쿠퍼링 등 모든 장인적 공정, 그들의 정신과 철학이 담기는 증류소는 발베니만 한 곳이 없다. 효율만을 따르는 세상에서 다른 길을 걷는 장인들의 삶의 조각을 엿보는 것만으로 여행의 임무는 충분히 수행되지 않을까.
📍 LOCATION Dufftown, Keith AB55 4BB, Scotland
런던에서 엘긴역을 거쳐 증류소행 36번 버스를 타면 가는 길이 즐겁다.
✔ CHECK POINT
발베니 증류소와 글렌피딕 증류소는 도보 30분 거리로, 둘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VERY BEST GREEN
“달모어 증류소 VIP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샘플실에는 지금의 달모어를 있게 한 다양한 캐스크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의 흔적이 묻어나요. 여러 샘플 중 르판토 브랜디 캐스크에서 숙성한 달모어 위스키 원액, 샤토 디켐 캐스크에서 숙성한 위스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굉장히 상큼하면서 달콤한 맛이 인상적이었어요.” 얼마 전 증류소를 직접 다녀온 브랜드 매니저의 이야기는 그 어떤 위스키 콘텐츠보다 흥미진진하게 들렸다.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위스키 마스터 디스틸러 리처드 패터슨이 바로 달모어의 소속이다.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위스키 숙성 창고의 한 형태인 ‘더니지 웨어하우스’는 위스키를 오랜 시간 숙성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숙성의 시간과 공간에 특히 집중하는 달모어의 창고 안에서는 원액이 오랜 시간 천천히 숙성되면서 깊이와 복합미를 더해간다. 킹 알렉산더 III 같은 프리미엄 위스키가 익어가는 공간에 몸을 적시면 절로 오크통 앞에서 성호를 긋고 싶어질 것 같다.
📍 LOCATION Alness IV17 0UT, Scotland
‘푸른 목초지’라는 뜻의 달모어 증류소 지역에 다다르면 그야말로 푸르름이 펼쳐진다.
✔ CHECK POINT
팬데믹 이후 달모어는 증류소 공식 투어 프로그램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JURA, JURA
조지 오웰이 칩거하며 <1984>를 탈고한 섬. 아일라섬에서도 페리를 타고 한 번 더 이동해야 하는 작은 섬 ‘주라 Jura’는 하루키의 <1Q84>에도 매혹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오래된 증류소가 하나 있고, 근처에 아주 맑은 샘이 있는데, 그 물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더군요. 주라 싱글 몰트를 그 샘에서 막 길어온 차가운 물에 섞어 마시면 매우 훌륭한 맛이 나요. 그야말로 그 섬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맛이죠.” 사람보다 사슴 수가 수십 배 많은 섬은 개체 수 조절,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사냥 제도를 운영하는데, 사냥 허가 기간 (수사슴 7~10월, 암사슴 10~2월)에는 증류소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한다. 은은한 피트 뉘앙스와 과일 향, 오일리한 질감의 주라를 홀짝이며 조지 오웰을 읽는, 완벽한 칩거를 꿈꾼다.
📍 LOCATION Craighouse, Isle of Jura PA60 7XT, Scotland
한 섬에 증류소가 오직 하나뿐인, 증류소 자체가 목적지인 주라.
✔ CHECK POINT
가장 기본적인 투어는 15파운드, 특별한 싱글 캐스크를 맛볼 수 있는 숙성고 투어는 50파운드.
일본
DREAM OF YAMAZAKI
“죽기 직전 다시 재생하고 싶은 위스키는 무엇인가요?” 야마자키, 히비키, 하쿠슈 등 산토리의 모든 위스키를 총괄하는 치프 마스터 블렌더 신지 후쿠요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일어난 기적을 들려주었다. “어느 날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아름다운 위스키를 만난 기억이 있어요. 2013년 즈음, 야마자키 블렌드실에서 만난 위스키였죠. 놀라울 만큼 탁월한 트로피컬, 프루티 향에 아주 깜짝 놀란 기억이 있어요.” 그 순간, 위스키에 평생을 바친 장인으로부터 청춘처럼 반짝이는 눈빛을 보았다. 야마자키 증류소를 멀리 아껴두고 싶은 목적지로 새긴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물맛 좋은 교토 인근의 증류소는 애호가가 아니라도 인기가 높아서 모 여행사에서는 증류소 견학을 위한 투어까지 마련해두었다. 야마자키, 히비키 특유의 캐릭터를 빚는 미즈나라 오크가 더니지 방식으로 쌓여 있는 숙성고에 들어서는 상상을 하면 절로 숨을 깊이 들이쉬게 된다. 숙성고 앞 초록 연못 사진을 보면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어쩐지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진다. 설레는 이 마음을 숙성이라도 시키고 싶은 걸까.
📍 LOCATION 5-2-1 Yamazaki, Shimamoto, Mishima District, Osaka, Japan
오사카에서 기차로 1시간, 야마자키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 CHECK POINT
80분, 120분으로 나누어 운영하는 숙성고 투어는 사전 예약 및 추첨 방식으로 진행한다.
대만
TASTE OF KAVALAN
“카발란을 사랑해서 대만에 갔고, 좋은 대만 친구도 만났죠.“ 여행의 방아쇠는 때로 말 한마디에서 당겨진다. 지금은 문을 닫은 ‘EP Coffee & Bar’의 대표가 카발란 증류소에서 만든 DIY 위스키에 대해 군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마치 갓 낳은 아이라도 된 양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위스키를 어루만지던 그는 그 보틀을 영원히 열지 않을 것 같았지만, EP의 마지막 영업을 준비하면서 오랜 단골과 함께 나누어 마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위스키가 지닌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 마시면 사라지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카발란 증류소는 스노이 마운틴, 센트럴 마운틴이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을 뿜어내는 대만의 이란현에 숨 쉬고 있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쏘 셰리를 즐겨 마신 <헤어질 결심>의 기도수가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반드시 이곳에 갔겠지? 송서래의 몸에 새긴 자신의 이니셜을 담은 DIY 보틀도 만들었을까? 엉뚱한 상상이 꼬리를 문다. ‘반드시 자국에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마침내 꽃을 피운 창립자의 오랜 꿈은 이렇게 많은 위스키 애호가에게 또 다른 꿈의 꽃을 피운다.
📍 LOCATION No. 326, Section 2, Yuanshan Rd, Yuanshan Township, Yilan County Taipei
산 좋고 물 좋은 이란현은 은퇴 후에 살고 싶은 지역으로 흔히 거론된다.
✔ CHECK POINT
나만의 DIY 블렌딩 위스키를 만들려면 투어와 별개로 예약해야 한다. 300밀리리터 기준 1,800대만 달러.
미국
MAKER’S MARK DISTILLERY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칵테일요? 지난주 증류소에서 칵테일 큐레이터가 만들어준 ‘블랙베리 올드패션드’요.” 메이커스 마크의 CEO 롭 새뮤얼즈와의 대화는 반 이상이 ‘증류소’ 얘기였다. ‘B코퍼레이션’ 인증을 받은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로, 재생 농법을 통해 곡물을 확보하고 물은 오로지 증류소 안의 수자원을 활용하며, 모든 공정을 증류소 안에서 해결한다. 증류소 면적은 무려 축구장 570개 규모에 달한다. 증류소 부지의 단 5퍼센트만 증류소 시설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된 곳에서 맛있고 가치 있는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 남겨둔다. 1974년에는 ‘미국 국립사적지’로, 1980년에는 ‘미국 국립역사기념물’로 지정된 역사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오직 증류소 안에서 난 신선한 재료들로 빚는 인생 최고의 버번 칵테일을 만날 수 있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강렬하게 이곳을 원한다.
📍 LOCATION Star Hill Farm 3350 Burks Spring Rd Loretto, KY, USA
아쉽지만 켄터키로 가는 직항이 없어 뉴욕, 애틀랜타 등에서 경유해야 한다.
✔ CHECK POINT
기본 투어 외에도 팜 투어, 워킹 투어, 레이크 사이드 요가 및 사운드 배스 프로그램까지 아주 다양하다.
WOODFORD TIME
1838년 우드포드 리저브 증류소에서 개발한 ‘사워 매시 공법’을 여전히 계승 중인 우드포드 리저브 증류소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버번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우드포드 리저브를 활용한 각종 칵테일을 맛볼 수 있는 증류소 웰컴센터 내 칵테일 라운지에서는 금주법 이전 창고의 매혹적인 전경을 감상하는 일이 필수라고 들었다. 여러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데, 에디터가 특히 궁금한 건 위스키 숙성, 마무리 숙성의 과학을 탐구하는 ‘Barrel to Bottle’, 마스터 디스틸러가 설계한 푸드 페어링을 즐길 수 있는 ‘Spectacle for the Senses Tasting’, 우드포드의 진정한 애호가를 위한 ‘VIP Master Distiller Tour Experience’까지 선택지도 다양하다. VIP 투어의 말미에는 한정판 보틀도 ‘겟’할 수 있다.
📍 LOCATION 7785 McCracken Pike, Versailles, KY, USA
루이빌 공항에서 차로 1시간이면 우드포드 리저브 증류소에 마무리 숙성의 과학을 탐구하는 ‘Barrel to 닿을 수 있다.
✔ CHECK POINT
켄터키 더비 시즌에 가면 151병뿐인 더비 한정판 보틀도 구경하고, 축제 현장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