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박병은 “다시 제 심장이 뛰는 것 같았어요”

2025.04.25.전희란

박병은이라는 물의 형태.

블랙 코트, YCH. 셔츠, 세비지. 팬츠, 아미. 슈즈,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GQ 호텔에서 낚시는 처음이죠?
BE 아유 그럼, 말도 안 되지.
GQ 만족하셨습니까?
BE 재밌었어요. 이런 작업이면 매일 할 수도 있어요. 맨날 스튜디오에서 찍다가 밖에 나오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수영장 물도 어찌나 따뜻한지, 발 한번 담가봐요. 닥터 피시가 뜯어먹을 거 같아.
GQ 그렇게 물을 좋아하신다기에 이번에는 작정하고 물가로 모시고 싶었어요. 물을 좋아하는 건 천성이에요?
BE 어렸을 때부터 물을 보면 설렜어요. 다들 그렇지 않아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에 있던 조그만 웅덩이에 스티로폼으로 배 만들어서 띄워 놀기도 하고, 조금 더 커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저 멀리 저수지가 보이면 차 세우고 걸어가보기도 하고요. 정글 숲을 막 헤치면서 갔는데, 그게 물이 아니었어. 비닐하우스였어.
GQ 이런.
BE 저랑 친한 형들만 알고 있는 소류지라는 조그만 옹달샘도 있었거든요. 그 소류지로 가려면 비포장 도로로 된 산을 타고 올라가야 해서 사륜 자동차로만 닿을 수 있었는데, 4박 5일 동안 먹을 거 싸가지고 가서 놀다 오고 그랬어요. 비밀스러운 장소가 곳곳에 있었어요. 예전에는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죠. 이제는 위성 지도로 다 찾으니까 원, 낭만이 없어.

화이트 베스트,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안경은 박병은의 것.

GQ 물의 어떤 속성이 박병은을 설레게 하는 것 같아요?
BE 바닷물이나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요. 지금도 새로운 동네에 가면 저수지 근처 가서 차 세우고 가만히 보다가 와요. 또 한동안은 거대한 댐에 꽂힌 적도 있어요. 미국에 보면 63빌딩만 한 높이의 댐이 있는데 거기서 오는 압박감이···, 경외심이 느껴지더라고요.
GQ 흐르는 대로, 그저 순리대로···. 그런 물의 속성이 박병은이라는 사람과도 닮은 것처럼 느꼈어요.
BE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순리대로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 순리에서 조금 더 옳게 가는 방향이 뭘까 고민하려고 해요. 하나뿐인 인생인데 순리대로만 살다가 그냥 흘러가버릴 수도 있잖아요. 순리대로 살아야 할 때가 있고, 순리 안에서 나에게 도움될 것을 더 챙기는 과정도 있어야겠죠. 나중에 더 나이 들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은 젊고 일할 때니까요. 제게 도움되는 것을 더 찾아내고 붙이면서 나아가야죠.

블랙 재킷, 베스트, 팬츠, 모두 트란퀼하우스. 슈즈, 프라다. 안경은 박병은의 것.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원래는 작품이 끝나면 인물을 빠르게 잘 떠나보내는 편이라고 했어요. 그럼에도 계속 마음 쓰이는 인물 있어요?
BE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마상구. 저는 마상구가 되게 웃겨요. 되게 좋아했고, 자유롭게 연기했어요. 그 역할을 소환해서 시즌 2처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무빙>에서도 제 이름이 마상구였거든요? 같은 이름인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는 코믹하고 멜로 캐릭터, <무빙>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 같은 요원이었죠. 그 이름이 거기도 여기도 어울리는 거예요. 왜 마상구예요? 강풀 작가님한테 물었더니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너무 잘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GQ 자유롭게 연기했다라. 어떤 현장에서 연기할 때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BE 우선은 연출자가 중요해요. 연출자의 태도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거든요. 어떤 현장은 시종 딱딱하고 화가 나 있기도 하고, 어떤 현장은 너무 웃음이 과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밸런스를 잘 맞추는 분들이 있죠. 즐거운 걸 찍을 땐 즐겁게 해주고, 배우가 감정 신에 집중해야 할 때는 자중하면서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그런데 배우, 연출자 성향이 모두 다르니까 자기랑 잘 맞는 연출자를 만나는 것도 복인 것 같아요.
GQ 자유롭게 연기할 때 더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BE 그럼요. 연출자랑 잘 맞을 때 마음이 릴랙스되면서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게 되고, 그 상상이 하나둘씩 맞아가며 더 큰 것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연기를 하면 몰랐던 감정이 현장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도 해요. 분명 ‘이 장면에선 눈물 흘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마음먹고 현장에 갔는데, 갑자기 내 안에서 ‘아니야, 더 냉철하게, 냉소적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기적 같은 순간에 배우들은 쾌감을 느끼거든요. 물론 액션 신처럼 바짝 긴장해야 하는 신도 있지만.

스트라이프 울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그레이 셔츠, 팬츠, 레더 타이,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안경은 박병은의 것.

GQ 저는 종종 <인간실격> 속 정수의 안부를 묻곤 합니다.
BE 맞아요, 정수. 신경 쓰이는 녀석이죠. 그때 연기가 저는 너무너무 좋았어요. 감정이, 캐릭터가, 감정에 대한 표현 모두 좋았어요. 도연 누나랑 차 타고 가면서 유산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아직도 너무 마음에 남아요.
GQ 그 현장은 무엇이 달랐나요?
BE 허진호 감독님이 현장에서 배우들을 무척 편안하게 해주셨어요. 한 번도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셨죠. 이렇게 따뜻하게 미소 지어주는 형님, 큰 형님이 모니터 속의 나를, 정수를 바라보고 있겠구나, 그런 믿음이 내 속마음을 연기로 표출해도 되겠다는 힘이 되어 주었어요.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믿고 싶은 분, 인자한 분, 따뜻한 분, 다 이해해주실 분···. 이게 바로 아까 이야기한 연출자가 배우에게 미치는 영향인 것 같아요.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GQ 연출자를 향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좋은 연기로 이어진 거군요.
BE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드렸는데 다시 불러주질 않으시네. 헣.
GQ 그래도 꾸준히 다작하고 있잖아요?
BE 씨제스에 들어와서 10년 동안 1년에 세 작품은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5개월 동안 놀고 있어요. 지금 업계가 상당히 안 좋아서 제작 편수가 적거든요. 작년에 10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는데, 레드 카펫에 서고 영화의 전당에 앉아 영화가 여러 편 나오는 걸 보는데 약간 소름이 돋더라고요. 맞다, 나 영화배우였지? 너무 잊고 살았네. 다시 제 심장이 뛰는 것 같았어요. 목 디스크 때문에 하마터면 못 갈 뻔했는데 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GQ 지금 <로비>로 한참 열혈 홍보 중이고요.
BE 주변 형들이 뭐 하냐고 물어보면 “무대 인사 가요”라고 하는데, 이렇게 답이 와요. “요즘 영화 개봉하는 배우가 진짜 영화 배우다”라고. 헣.

재킷, 팬츠, 이너 모두 질 샌더. 슈즈, 프라다.

GQ 하정우를 배우 대 감독으로 만난 경험은 어땠어요?
BE 정우가 영화를 진짜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구나, 배우들과 함께 어울려서 결과물 만드는 작업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느꼈어요. 감독하면서 힘들어하는 표정도 많이 봤고요. 아유, 저는 절대 못 하겠더라고요. 그리고 감독이자 배우이기도 해서 배우의 감정이나 기분을 너무 잘 파악해요. 모니터링하다가 딱 멈추고 그러죠. “저기요, 의성이 형 식사 안 하셨나 봐”.
GQ 곧 넷플릭스에서 <탄금>이라는 사극을 오픈하죠. <킹덤>의 민치록이 그랬듯,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움을 보게 될까요?
BE 미스터리 멜로 사극인데 와, 대본이 너무 재밌었어요. 조선 최고 부자의 아들이 실종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예요. <킹덤: 아신전> 때의 심현섭 의상감독님이 의상을 해주셨는데, 그게 또 기가 막혀요. 한복을 완전히 이해하고 만드시는 분은 확실히 디테일이 달라요. 버선부터 두루마기 안쪽 옷, 옷고름까지 철저하게 고증을 해서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여태 한복에서 보지 못한 색감들을 과감하게 표현하셨어요.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완성한 걸 보고 너무 놀랐어요. 배우에게는 의상이 정말 중요한데, 그렇게 공들인 옷을 딱 입으면 연기에 적어도 20퍼센트, 30퍼센트는 분명히 도움돼요.
GQ 4년 전 인터뷰와 동일한 질문으로 이 인터뷰의 떡밥을 회수해보려 합니다. 다음 낚시는 언제입니까?
BE 내일이요. 그때도 그랬어요? 지금 두 가지 중 고민 중인데, 하나는 인천에서 봄주꾸미 낚시, 또 하나는 붕어 낚시. 후자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긴 했어요. 계획이요? 물가에 차를 대고 낚싯대 내려놓은 다음 근처 한 바퀴 뛰고, 소머리국밥 잘하는 데서 밥 먹고 돌아와 커피 한 잔 딱 내려 마시는 거예요.
GQ 완벽한 하루네요.
BE 눈이 더 빨개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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