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니엘. 배우가 된 지는 6년 됐다. 유난스럽거나 소란스럽 진 않아도 촘촘하고 침착하게 필모그래피를 축척하는 중이 다. 형의 이름은 최성우지만 자기 이름은 최다니엘이고, AB형 물고기자리라고 소개했다. 얼마 전 개봉한 <치외법권>에서 벌거벗은 채 찍은 액션 장면은 자신이 즉흥적으로 결정했지 만, 운동이라곤 동네에서 조깅을 하거나 가끔 아령을 드는 게 전부다. 실수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바로 용서를 구하는 성격. 최근 가장 큰 지출은 리클라이너 소파와 스테이크용 고기를 두드릴 때 쓰는 망치 그리고 속 깊은 냄비였다. <렛미인>에 나온 클로에 모레츠를 두고,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귀여울 수 있는지에 관해 조목조목 말했는데,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제 대로 소통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이제 to 부정 사를 배울 차례라고 했다.
옷이 희한했어요.
어떤 게요? 도포 같은 거 있잖아요. 노란색. 그걸 떼면 재킷이 되는 것 같은 코트 말이에요. 만들어보고 싶어요.
손재주가 좋은가 봐요? 손으로 하는 건 잘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오락이나 요리 같은 거. 퍼즐도 끝내주게 맞추죠.
그건 손이 아니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게 아닐까요? 그런가요? 손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거겠죠.
코트를 좋아해요? 아까 입은 것 중 코트처럼 긴 프라다 셔츠 있었죠? 그런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요. 무난하게 입을 수 있으니까. 울 코트도 좋아하고, 짧은 것보단 긴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검정색이나 회색처럼 무채색을 많이 입고, 더블 버튼으로 된 코트는 없어요. 그건 좀 답답하거든요.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가 훨씬 따뜻하잖아요. 그래도 답답한건 싫어요. 그리고 한겨울엔 코트만 입고 살 수 없어요. 알잖아요. 우리나라 겨울의 기온. 그럴 땐 패딩을 입어야죠.
옷은 어디서 사요? 잘 사지 않아요. 지금 입은 청바지는 협찬사에서 선물로 줬고, 이 티셔츠는 제가 사긴 했는데,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는 거예요. 아무 무늬도 없는 걸로 회색이나 흰색, 세 개씩 묶어서 파는 그런 티셔츠 있죠? 참 쌌어요.
그런데 지금 신고 있는 슬리퍼에 잔디가 깔렸네요. 일본 팬이 준 거예요. 되게 폭신폭신해요.
진짜 잔디예요? 인조 잔디죠. 쿠사 플립플롭이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나와요. 쿠사가 일본어로 풀이란 뜻이에요.
일본에도 팬이 있는 줄 몰랐어요. 몰라도 되죠. 그런 걸 드러내는 건 좀 부끄러워요. 가끔 팬미팅도 해요.
전 <지붕 뚫고 하이킥>은 몇 편 못 봤는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첫 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그 드라마에서 최다니엘이란 이름을 처음 기억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얘기해요. 데뷔하고 이런저런 단역과 액스트라를 하던 중이었는데, SK텔레콤 광고에서 표민수 감독님이 절 알아봐줬죠. 그때 자극적인 드라마가 참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요.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런 유형의 드라마는 아니어서 시청률이 잘 나오진 않았어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기억해요.
꾸준하게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라디오든. 뭐라도 하고 있는 내가 좋아요. 카메라 앞에 서면 ‘내가 누군가에게 잘 쓰여지는구나’, ‘내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소심한 사람들에겐 그게 중요해요.
스스로 소심하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대개 소심한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는 아껴뒀던 에너지를 신나게 발휘하죠.
왜 배우들은 다 그렇게 얘기할까요? 평소엔 내성적이지만 카메라 앞에 서면 달라진다. 혹은 이 직업이 아니면 대체 뭘 하고 살았을까. 맞아요. 저도 그래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회사를 다니는 제 친구들은 평소엔 차분하게 조직 생활을 잘하지만, 회식 자리나 노래방에 가서 엄청난 끼를 발휘해요. 사람들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흥이 있어요. 그 친구들은 회식 자리에서 흥을 발휘하는 거고, 저흰 일에 흥을 내는 거니까 평소엔 조용히 있고 싶은 거예요.
왜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나는 왜 태어났을까가 참 궁금했고, 별로 꿈이 없었어요. 아르바이트는 많이 했는데, 그러다 배우를 뽑는 전단지를 보고 이 길로 들어섰죠. 그 다음엔 이것밖에 할 게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내 직업이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힘들어도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요.
재미를 찾는 것조차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잖아요. 전 ‘스트레스를 받는 게 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스트레스 받을 때 뭘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곤란해요.
스트레스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아뇨. 그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가 얼마큼이어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는지를 모르겠단 얘기예요. 예를 들어 얼마나 아파야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거지,라는 것과 같아요. 정말 화가 나서 화내는 것 말고, 스트레스를 드러내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뭐든 해소하고 싶을 때는 뭘 해요? 게임, 당구, 커피.
그거면 해결이 된다고요? 술은 잘 못 마셔요. 예전에는 호가 든을 많이 마셨죠. 소주 몇 잔이면 금방 취하고, 취하면 자요. 그렇지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술자리에서 나누는 낯간 지러운 얘길 못 견디는 건 아니에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어떻게든 재미를 찾는다? 그럼요. 방법은 많아요. 만약 술자리에서 게임을 한다 치면 진짜 그 게임의 승자가 되려고 집중한다거나, 나의 한계는 어디인가를 실험해본다거나, 이런 게 재미있지 않아요?
그래도 새로운 일을 정할 땐 재미만으론 안 되겠죠?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볼 땐,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해요. 마치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과 같아요. 남들이 이상하다고 해도 내 눈에 예쁘면 그만이잖아요. 좋은 걸 하면 힘들어도 생기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남들 얘기도 좀 들어보려 노력해요. 영화도 많이 봐요. 어젠 <돈존>을 봤어요. 그거 봤어요?
네. 조셉 고든 레빗이 나오고 직접 감독도 한 거요? 맞아요. 의외로 흥미로웠어요. 배우가 감독이라 그런지 현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어떤 세부가 있더라고요. 뭔가 B급 영화 같아요.
조셉 고든 레빗을 좋아하나요? 그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를 좋아해요. 이 두 배우는 역할에 충실해요. 적어도 알코올중독자로 나오는데 몸부터 키우는 배우들은 아니죠. 이들이 나오는 영화는 꼭 보고, 코엔 형제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도 꼭 챙겨 봐요. 학창 시절에는 주성치, 성룡 영화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땐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접했던 것 같아요. 딱지 치고 팽이 돌리고 놀았는데 말이예요.
팽이를 돌리고 놀았다고요? 86년생 아니에요? 맞아요. 민속팽이 말고, 줄로 감아서 돌리는 팽이요.
민속 팽이는 생각도 못했어요. 래퍼가 꿈이었다면서요? 원래 어린 남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래퍼를 꿈꿔요.
지금 읽는 책이 있나요? 예전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책을 많이 읽었어요. 파울로 코엘료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요. 그런데 최근엔 성경을 읽기 시작했어요. 종교적인 이유는 없어요. 성경에 삶의 희로애락이 다 있더라고요.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요즘은. 그런데 <지큐>와 <지큐 스타일>은 뭐가 다르죠?
<지큐 스타일>은 패션 그리고 패션에 관한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어 그럼 인터뷰 다시 시작할까요? 제 스타일은 말이에요, 평소엔 루스한 핏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시스루 그리고 아방가르드….
- 에디터
- 김경민
- 포토그래퍼
- 정재환
- 그루머
- 이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