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GQ AWARDS 올해의 수상자는?

2015.12.11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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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입간판 설현 입간판은 가게 앞을 지킨다. 하지만 설현 입간판은 함부로 내놓을 수 없었다.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가게 안으로 들였다. 설현이 TV에 나와 입간판 옆에 서서, 이것이 보정 없이 자신과 1:1 비율로 제작되었다는 걸 증명했다. 이후 포털 사이트에서 ‘설현’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로 ‘설현 입간판 구매’가 등장했다. 안타깝게도 살 수 없다. 지금 휴대전화 가게를 차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올해의 허용 너무 ‘정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던, 마냥 좋다기보단 그저 좋아 죽겠다는 감정을 이제는 마음 놓고 표현할 수 있어 너무 좋다. 마음놓고 분방할 수 없는 이 시국에 이렇게라도 하나가 허용돼 너무 좋다. 이제 인터뷰이가 “너무너무 좋았어요”라고 한 말을 그대로 옮길 수 있게 돼 너무 좋다.

올해의 망각 공중파 배신감, 추락, 몰락을 거쳤다. 한동안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젠 별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지경까지 왔다. 통틀어 공중파, 그 막강했던 영향력과 저널리즘은 거의 상실됐다.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날, 미얀마가 군부 독재에서 벗어난 날 MBC 뉴스의 머리꼭지는 “한국이 ‘봉’? 드럭스토어 화장품도 해외보다 비싸”였다. 더불어 생각나는 몇 가지 제목은 이렇다. “비오는 날은 소시지 빵”, “보수, 진보 체질 따로 있나?”, “알통 굵기 정치 신념 좌우”, “윷놀이 ‘모’ 나오는 비법 있다”…. 우리의 저녁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공중파도, 저녁도 다 망가졌다.

올해의 미각 설탕 올해, 한국은 설탕으로 부쩍 뜨거웠다. 시작은 백종원이 된장찌개에 설탕을 넣으면서부터다. 그는 요리의 원리를 간소화시킬 줄 아는 사업가다. 그 비법, 지름길, 꼼수를 ‘집밥’이라 이름 붙인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알려주는 바람에 한차례 ‘집밥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간소화의 방향과 이유를 이해했다면 설탕으로 그 길을 걸어도 좋을 테다.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자꾸만 달아지는 식당 음식과 기업 제품을 보면 이걸 그저 ‘꼼수’ 혹은 ‘인기 상품’으로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올해의 반짝 허니버터 해태 허니버터칩, 삼립 허니버터 식빵, 네스프레소 몬순 허니버터 커피, 신라명과 허니버터 카스텔라, 롯데 꼬깔콘 허니버터맛, 오!감자 허니밀크, 할리스 허니버터치즈빙수, 자가비 허니마일드, 해태 허니콘팝, 세븐일레븐 부드러운 허니크림치즈라떼, 미스터피자 허니피치포, 길림양행 허니버터아몬드, 던킨도너츠 허니버터 뉴욕파이, 삼양 허니치즈 볶음면. 허니버터는 우리 곁으로 이렇게 왔다가 갔다.

올해의 한 사람 유승민 7월, 원내대표 사퇴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 10월, JTBC <직격인터뷰>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자리든 정치를 그만두는 날, 국민한테 절망과 좌절을 주는 부조리나 불평등을 고치려 노력한 정의로운 보수, 그걸 위해 용감하게 개혁을 추진했던 정치인 유승민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정치인의 언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만큼 순진하지는 않으나, 어쩌면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진짜 보수 정치인 한 사람이 그일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있다.

올해의 두 사람 김숙, 송은이 콤비라는 말, 명콤비라는 말, 모두 제 목소리만 크게 내려는 세상에서 어딘가로 쑥 들어갔던 그 말이 새삼스럽게 올해 되살아났다. <노사연 이성미 쇼>를 들으면서 호흡이란 참 놀랍구나 했고, 김숙과 송은이의 만담에는 차라리 코미디의 역사가 다 궁금해졌다. 팟캐스트 <비밀보장>으로 시작해 공중파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를 진행하는 두 사람으로부터 주거니 받거니, 엎어치고 메치는 리듬을 한껏 느꼈다.

올해의 뉴스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 가장 치열한 사안에 대해 가차 없이 정확하다. 하지만 쉽고,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11월 13일 수능날은 보이저 1호가 보낸 지구 사진을 두고 “사진 속 지구는 외로워 보인다”며 시작하더니, 2014년 4월 16일이 아니었다면 오늘 수능을 봤을 2백50명을 말했다. 곧 “웅크린 사람은… 뛰려는 사람이다”라는 소설가 김중혁의 글을 인용하더니, ‘planet’의 그리스어의 ‘헤매는 사람’이라는 어원을 전하며 “그러므로, 고생하며 헤매며 달려왔을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당신에게 관대한 오늘 밤이 되기를 바라는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라고 마무리했다. 11월 17일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두 개의 달을 인용하면서 그날의 시위에 대해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리고 묻는다. “비극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가 몇 번이고 반복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JTBC <뉴스룸>에는 손석희가 있고, 2부는 ‘앵커 브리핑’이 연다.

올해의 사장님 윤종신 2013년 윤종신은 <GQ AWARDS>에서 ‘올해의 사장님’ 타이틀은 한번 거머쥔 바 있다. 예능의 아이콘에서 ‘사장님’으로의 변모에 박수를 보내는 의미였다. 올해, 윤종신을 다시 ‘올해의 사장님’으로 뽑는다. 2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덩치로 사업체를 키웠다. 가족액터스와 에이팝엔터테인먼트를 흡수했고, 아프리카TV와 공동출자를 통해 콘텐츠 조인트 벤처 ‘프릭’을 설립했다. 하지만 김예림, 장재인, 브라운 아이드 걸스, 박지윤, 퓨어킴 같은 가수들의 앨범은 기대보다 저조했고, 윤종신이 소속 가수 뮤지와 함께 아프리카 TV를 통해 선보인 <형만 믿어>는 첫 방송부터 정제되지 않은 방송 내용으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10일에 윤종신은 5년 넘게 유지했던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고,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비법>과 <슈퍼스타K>도 예전 같지 않다. 일본 후쿠시마 한류 공연에 소속 가수가 출연해 불똥이 튄 일도 있었다. 과연 내년의 윤종신 사장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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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장우철, 정우성,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양승철
    일러스트
    고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