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입고’ 싶은 남자는 멋진 헤드폰을 산다.
헤드폰을 ‘패션’ 아이템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폰트 사이즈가 족히 70 포인트는 넘을 만한 로고를 박은 헤드폰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비웃었다. 헤드폰을 살 때 고려해야 할 건 오직 ‘성능’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을 버린 건, WeSC 헤드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기능이라곤 소리를 내는 것뿐인 그 헤드폰을 애지중지하는 건, 헤드폰은 성능만으로 골라야 한다는 명제를 뒤집는다. WeSC의 이 헤드폰은 사진가 리키 파월과 함께 만든 것이다. 옆면에 리키 파월이 찍은 시베리안 허스키 사진을 새겼고, 다른 기계에서는 본 적 없는 매력적인 팥죽색을 입었다. 금색 단추를 단 남색 울 블레이저를 입고 겨자색 벅스를 신은 남자에게 이것만큼 절묘한 헤드폰도 없다. 멕시코 칸쿤 해변에서 전신 수영복을 입고 다이빙하는 게 코미디인 것처럼, 멋지다 싶으면 그냥 사면 된다. 크리스마스엔 모든 게 용서될 것 같으니까.
- 에디터
- 박태일
- 포토그래퍼
- 이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