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남자 장신구의 허용 범위와 관계

2012.10.01이충걸

요즘 남자는 꾸미는 게 남의 일이 아니다. 치장은 판타지이자 현실. 그러나 목걸이와 귀걸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아직, 옷은 온전한 남자의 것이 아니다. 시계는, 그렇다. 목걸이나 팔찌는… 아마 그럴 것이다. 물론, 치장이 범위 밖의 일일 수 없는 남자도 흔하다. 그 옛날 보들레르도 구체적인 예시를 보여주었다. “완벽하고 진정한 멋은 완전히 단순한 외관에서 풍긴다.”

웬만한 남자에겐 에르메스 매장에서 4천만 원을 계산대 위에 턱 내려놓으며 가죽 가방을 사는 몽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걸 죽을 때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물론 자손들이 그걸 팔 수도 있겠군.) 남자 패션엔 어마어마한 돈이 요구되는 특정 아이템이 따른다. 지위란 한 묶음에서 오는 것. 요지는, 맘만 있다면 비싼 아이템으로 꾸밀 수 있는 방법이 수백 가지라는 것이다.

모두가 알 듯이 옷과 자동차는 자전거 라이트나 비누처럼 눈에 잘 안 띄는 물건에 비해 정체성이 더 뚜렷하다. 인 도어 선글라스, 여름 스카프, 브레이크 없는 픽스드 기어 바이크, 가끔 런웨이에 등장하는, 소매 세 개인 셔츠처럼 비기능성은 상업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어떤 땐 쓸모없어 뵈는 시계도 액세서리가 된다. 시곗바늘이 하나건, 아예 없건 그 가치는 시간을 나타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기능성으로 말하자면 남자의 액세서리만큼 과녁이 애매한 것도 없다. 어떤 남자는 가꾸는 것을 한심해함으로써 더 진취적이 된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다 남세스러운데, 거기에 보석까지 세팅되어 있다면 더더구나 안 될 말. 너무나 자주 록의 전설이 아닌 뚱뚱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으로 보이는 엘튼 존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없다. 그가 친구의 생일 잔치 때, 5백만 파운드 분홍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마다 끼고 나타났단 얘기를 들었을 땐, 손가락이 부대껴서 어떻게 밥을 먹었을까, 다이아몬드를 진주처럼 녹여 잔에 담아 마실 작정이었을까, 오지랖 넓은 걱정이….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를 중세 그레고리 3세 교황보다 더 많이 가진 이라면 필경 자기가 마릴린 먼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죠.” 그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엘튼 존 말고는 드비어스나 까르띠에 사장 정도? 스무 살 시절, 여자 친구가 준 은반지 외엔 옷핀 하나 걸친 적 없는 나로선, 누가 “다이아몬드는 남자의 제일 좋은 친구죠”라고 말하면 그 자를 살려둘 것 같지 않다.

사실, 우아함과 궁색함 사이에 선을 긋지 않고 남자를 꾸미는 방법은 클래식하면서도 ‘미묘하게 남성적인’ 물건을 고르는 것이다. 커프링크스나 강건한 스틸 베젤이 번쩍거리는 시계는, 확실히 팔찌나 반지보다 더 ‘남자답다.’ 그래서 남자 잡지는 남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액세서리를 해야 하는지 권고한다. 그런데 밑에 깔린 메시지엔 종종 모순이 있다. 남자는 원하는 무엇이든 걸쳐야 한다고? 반지나 팔찌가 더 남성적이라고? 브로치를 찬 남자가 똑똑하고, 재미있고, 섹시해 보인다고? 설마? 나에게 액세서리가 어울리기나 한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도?

밀란의 몬테 나폴리오네 거리의 한 편집숍은 상점이라기보단 디스코텍 같았다. 형광 파랑 가죽 끈에 엄지발가락 만한 금색 덩어리가 매달린 목걸이를 목에 대보는데, 왕이 없는 왕좌에 앉은 느낌이랄까, 장신구의 이상한 힘이 마구 으스대고 있었다. 그런데, 금색은 모든 것을 밝게 만들지만, 이 목걸이를 하고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점원은 뭘 잘못 먹었는지 성황당에서 파는 것 같은 열쇠고리, 여우 머리가 달린 팔찌, 십자가, 닻, 샴록, 해골이 매달린 실버 펜던트를 보여 주었다.

“파티 때 하면 멋질 거예요. 이 목걸이랑 이 귀걸이랑 같이 하면 진짜 어울려요.”

어떤 금 목걸이는 하도 얇아서 신라 금관처럼 대롱대롱 목 아래께 머무를 것 같았다.

“와, 이탈리아 남자들이 이렇게 화려한지 몰랐어요.”
“이건 여자들 건데요.”

여자는 차려입으려고 사고, 남자는 간편하게 입으려고 산다. 최신 물건을 남자 고객에게 파는 건 산업의 요구를 정확히 충족시키는 일이지만, 남자가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는 게 썩 보기 좋을 건 없다. TV에서, 고대 역사에서, 다른 나라에서 누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도 만만할 리 없다. 빨간 우비 안에 금 목걸이를 차는 게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남자라도, 우간다 부족처럼 치장한 남자들이 몰려 있는 데 가면 고아처럼 얼어 붙고 말 것이다.

장신구 앞에서 남자의 독립과 보호 본능 욕망은 계속 대립한다. 할지 말지 갈등하는 것은 남자의 새로운 신용카드. 그 정교한 선을 밟고 언제까지 망설일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모를지도. 전에는 수염이나 리바이스 501, 술자리에서의 거친 정도로 그 친구의 성향을 가늠했다. 이젠 다 뒤죽박죽. 한때 믿을 만하던 지표들이 다 바뀌고 또 새로운 지표가 생겨나 스타일만으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대체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남자에겐 또 다른 시장이 준비돼 있고, 새 조류 속에서 헤엄치는 유행의 조달자, 브랜드들은 이런 식의 정보를 결코 흘려듣지 않는다.

줄 달린 지갑은 아이라이너를 그린 남자의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사고 치지 않은 품행 방정한 친구의 소품이다. 매니큐어를 한 대학생은, 여자친구가 너무 좋아해서라고 답한다. 엄지손가락 반지를 한 사진가는 눈썹링과 어울려서라고 설명한다. (심지어 포스트모던 식의 원시성을 표현하는 데다 성적으로도 흥분시킨다) 가죽 팔찌는 오토바이 족의 문장이 되었다. 이윽고 문신으로 어깨를 두른 운동선수가 변명한다. “요즘은 다들 하던데, 뭐.” 하긴,<일리아드>에선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뒤가 구부러진 핀, 접는 칼, 컵, 목걸이 를 만들어 진작에 자기의 영움됨을 실험했었지.

그런데, 보석이 장애가 되는 여자는 없다. 누구도 다이아몬드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서 거의 장애 수준이라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될 순 없지만, 강령은 분명하다.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 그 비현실적인 낙원은 무조건 두 개 이상 박혀야 한다. 하나는 몸을, 또 하나는 영혼을 위해. 그래서 어떤 땐 진짜 걱정된다. 다이아몬드가 소용돌이치며 박힌 목걸이나, 샤넬 5캐럿 계단형 반지를 껴봤으면, “색이나 모양은 상관없고 크기만 하면 돼요”라고 말해봤으면, 타원형 귀걸이 세트를 사러 스위스에 갔으면, 왼손 검지에 태양처럼 빛나는 덩어리를 한 번 매달아봤으면… 하고 꿈꾸는 여자들이 광물로 다시 태어날까 봐.

물론 용감한 녀석들도 많다. 확실히 여자건 남자건, 인간만이 0.25부터 10캐럿까지의 사이즈에 매달린다. 돈 많고 나이도 많은 한 친구가 호텔에 수영하러 간다고 할 땐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닻처럼 무거운 체인을 목에 걸고도 안 가라앉을까, 궁금했었다.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 건축가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껌 씹는 2번 타자 같았다. 그게 요즘 젊은 문화를 맹목으로 받아들여서일까? 그러나 누구라도 다이아몬드를 몸에 지닌 이상, 수요 예배나 간부 회의 중이라고 해도 뻐기고 싶을 것이다. 금 어금니를 해 넣은 깡패나, 금 십자가에 심취한 음악가의 금빛 포효는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을 설명한다. 하지만, 진짜 남자라면 어떤 분별 안에서 장신구를 걸칠 것이다.

휴대폰도 그렇고,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그렇게 많다면 시계 소비가 줄어야 할 텐데, 청년들이 엔트리로 어떤 기계식 시계를 찰지 고민하는 요즘 시장은 군웅할거,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매력적인 시계 브랜드는 찾기도 힘들다. 손목이야 말로 남자의 제대로 된 스타일을 말해주는 부위라는 걸 이젠 다들 안다. 늦었는지 늦지 않았는지만 알려주는 시계가 절대적일 리 없다. 스타일은 보수적인 시계의 다른 기능. 패션 브랜드의 시계는 후졌고, 장식이 많은 시계는 속물적이라는 식이다. 달의 변화를 알려주는 황금 라운드 버튼의 파텍 필립 크로노 그래프 칼라트라바를 사건, 어떤 장소에도 도드라지는 로즈 골드 다이얼의 빈티지 롤렉스를 사건, 숫자가 가느다란 스틸 쿼츠를 사건, 필요한 건 오직 스타일.

남자는, 변하는 삶에 대처하기 위해 에어 조던 몇 켤레보다 더 많은 구두를 가져야 한다. 안경도 그렇다. 중세 후반 책을 읽게 해주던, 부와 명예와 지성과 연륜의 상징, 안경은 이제 남자 성형의 결정적인 메스가 되었다. 조니 뎁, 이브 생 로랑, 클라크 켄트, 스파이크 리, 엄용수가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제대로 알아보기나 하겠나? 남자에게 안경은 정체성이라서 5.0 독수리 시력이건 청맹과니건, 학구적인 분위기로 갈지, 나사의 우주 과학자를 닮을지, 안색 화창한 패션 피플로 보일지 고민한다. 그렇다면, 레스토랑에서 메뉴가 가물가물 아득히 보이고, 드디어 저물어가는 인생길에 접어들었는지 다른 인생이 펼쳐졌는지 모호한 순간에도, 코 끝에 걸린 하프 렌즈 돋보기로 기필코 노년의 지혜를 취할 것이다.

어느 날, 집 한 구석에서 군대 가기 전에 만난 여자 친구가 선물해 준 은반지를 찾았다. 밭에서 오래 구른 듯 검게 변한 반지로 커피잔을 건드려 보았다. 소리는 탁하고 침울했다. 손가락에 끼고 키보드를 움직여도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지를 끼어본 건 순진한 이유 때문이었다. 스러진 감성, 과거의 훈장, 공허의 작은 요소…. 추억을 지탱하기 위해선 하나를 더 생각해야 한다. 반지를 담을 보석 상자를 살지 말지.

 

    에디터
    이충걸
    Illustrator
    Sung Hee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