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시지 않고 명상을 즐기는, 40대에 접어든 토비 맥과이어를 만났다. < 스파이더맨 >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토비 맥과이어가 테슬라를 타고 베벌리힐스의 촬영장에 도착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뷔페를 둘러봤다. “아직까지 배가 고프진 않아요. 그렇지만 이따 제가 뭘 먹을 수 있는지 아는 건 참 좋네요.” 곧 그는 촬영장의 친숙한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뒤, 그들과 명상을 비롯한 여러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옷장에는 밀라노와 뉴욕에서 날아온 화려한 의상들이 걸려 있었다. 파리에서 공수한, 세관에 잠시 묶여 있던 옷이 가까스로 촬영 시간에 맞춰 막 도착한 터. 맥과이어는 일단 가죽 재킷과 거기에 어울리는 신발을 그 더미에서 빼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그는 동물성 소재로 만든 의상을 기피한다. 그러고는 남은 옷들 중에서, 입고 싶은 옷을 세심하게 골랐다. 그의 선택은 크리스토프 슈망과 협업한 프라다의 2016 F/W 컬렉션 셔츠. “흥미로운 디자인인데요? 그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옷을 처음부터 탈락시키진 않아요. 이것저것 입어보며 잘 맞는 것들을 선별하는 일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죠. 그래야 내가 어떤 옷을 입었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요.”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사진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 시간이 다가왔다. 맥과이어는 테라스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쑥 입을 열었다. “명상이 없는 제 삶은 상상할 수 없어요. 정말 완벽한 순간이죠.”
어떤 순간에 가장 살아 있다고 느끼나? 역시나 명상을 할 때인가? 글쎄. 대체로 사소한 순간들. 이를테면 아이들과 놀아줄 때, 친구들과 같이 운동을 할 때, 가끔은 일할 때.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동시에 걱정이나 잡념에 휩싸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연경관이 근사한 곳이라면 더 쉽겠지만, 내 집 정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전화가 옆에 있는데도 그렇게 할 수 있나? 물론이다. 모든 종류의 푸시 알람을 꺼 놓으면 된다. 가족들만 제외하고. 나머지 메시지는 시간을 정해놓고 몰아서 읽는다.
SNS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나? 나를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는지 알기 위해. 그 부분이야말로 SNS를 이용하며 얻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혜택일 테고. SNS의 출현으로 기업과 정부가 더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비밀을 감추기 어려워졌다. 정보가 정말 빨리 퍼지니까.
마찬가지로 유명인들에게도 반가운 일은 아닐 텐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SNS는 내 정확한 입장을 드러낼 채널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엔 모든 게 삽시간에 달라져요.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니 역시 한 가지 이미지를 고수하려 하지 않아요. 변화는 좋은 거니까.”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으며 얻은 유명세가 불편하진 않나? 정말로 이상한 시간이었다. 연기를 통해 성공을 거두고 유명세를 타는 기쁨을 얻으면, 통제를 잃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평범한 배경에, 전통적 연기 교육을 받지 않고도 할리우드의 정상까지 올랐다. 어떤 요소가 그 바탕이 되었다고 보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 얼마나 혹독한 일을 마주하건, 언론이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든.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지를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결국 제 길을 찾아 흐르는 물”에 비유한 적이 있다. 맞다. 여전히 매일 그 얘기를 한다. 흐르는 물은 고이는 법이 없다. 멈추지 않고 우아하게 움직인다. 누군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을 취해도, 그를 존중하려 노력한다.
일하며 초조함이나 위협을 느낄 땐 어떻게 하나? 그걸 기꺼이 감수하나? 혹은 회피하는 요령이 있다거나. 배우로서의 삶은, 리스크를 관리하는 금융 업무와 다를 바가 없다. 특정 상황에 정확히 어떤 불안을 느끼는지 규명하고 적절히 반응해야 한다. 단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긴장하고 있는 게 아닌지 수시로 살펴봐야 한달까. 대담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십 대 중반부터 내 의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규칙은 따르지 않았다. 맹목적으로 순응하기보다는 내 결정을 믿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인 동시에, 꽤 현명한 전략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할리우드 내에서는. 내가 정통한 분야나 친숙한 상황에서라면 맞는 것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면을 꼼꼼히 살피는 데 시간을 충분히 할애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그래도 버거운 순간이 있나? 완벽히 마무리 짓지 못한 여러 프로젝트를 오갈 때. 그러면 그중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상황 아닌가? 지금 무려 18편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수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다만 촬영에 돌입하고 나서는 맘이 편안해진다. 상황이 어떻든 그 순간에는 한 가지에 명확하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올해 개봉한 < 세기의 매치 >에서는 실존 인물인 미국인 체스 챔피언 바비 피셔 역을 맡았다. 포커 애호가인데 체스에도 흥미가 있나? 말을 어떻게 움직이는 정도는 알지만,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촬영을 준비하며 훌륭한 체스 기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알았다. 지난 경기를 복기하는 것은 물론, 상대의 주요 경기를 낱낱이 분석해야 한다. 피셔는 하루 평균 14시간 정도를 훈련했다고 한다. 정말 깜짝 놀랐다.
영화에서 그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신동으로, 모차르트와 비교되기도 한다. 극중 바비 피셔는 종종 터무니없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과한 편집증을 비롯한 여러 문제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눈부신 업적마저 저평가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배우로서, 언제나 맡은 캐릭터의 감정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려 애쓴다. 제아무리 그 배역의 캐릭터가 별날지라도.
만약 오직 세 가지 감정만 느낄 수 있다면, 어떤 걸 고르고 싶나? 고르지 않은 나머지 감정이 없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답하기 쉽지 않다. 모든 건 이어져 있으니까. 슬픔 없이 과연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까? 굳이 골라야 한다면 그래도 긍정적인 감정을 골라야겠지. 부정적인 기분 없이 살 경우, 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심리학에도 좀 관심이 있나? 바비 피셔 역을 맡으며, 정신적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단순히 누군가를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이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열아홉 살 때부터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내면의 악랄한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나? 내 안의 악마는 계속 멈추지 않고 활동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꽤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을 섣불리 판단하기 전, 우리는 누구나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런 얘기들은 더욱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총기 소지가 완전히 규제되지 않은 미국에서는 더더욱.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구매 시 신상 조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 밖에도 눈여겨보는 사회 문제가 있나? 많다. 무엇보다 환경 문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지금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야 한다.
무지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일 것이다. 특히 인종차별 같은 문제라면 더욱. 사실 누군가를 제대로 알고 나면, 차별할 이유가 생기지도 않는다. 몰라서 그러는 거다. 또한 개인이 아닌 어떤 집단으로서 소속감을 느낄 때 (인종 차별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생긴다. 나는 어린 세대에 희망을 품고 있다. 집에서도 아홉 살 난 딸 루비에게 반복해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르치려 한다.
토비 맥과이어의 아이들은 다른가? 우리 아이들의 방에는 전형적인 남자 색깔의 옷, 여자 색깔의 옷이 없다. 옷 색깔이 어떻게 성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나? 어떤 경우에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은 앞으로 더 희미해질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은 개성에 따라 옷을 입을 뿐이다.
그래도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땐 생 로랑 수트를 입지 않나? 난 패션보다는 오히려 건축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면 좋은 디자인이란 뭘까? 미와 실용성이 완벽히 어우러지는 것. 건축이나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패션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참 보고 있어야 비로소 디테일이 보이는 독특한 물건들을 좋아한다.
입고 있는 옷, 갖고 있는 물건을 통해 어떤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영화 제작 중 의상과 세트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위대한 개츠비 >의 의상과 세트를 맡은 캐서린 마틴과 그녀의 팀은 정말 완벽했다. 시대와 인물을 철저히 분석한 뒤, 고증이 완벽한 의상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서로 잘 어울리는지 확인한 뒤에야, 이른바 예술적 감각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 위대한 개츠비 >는 내 시각적 지평을 넓혀준 작품이다.
만으로 마흔 살. 90년대, 20대의 토비 맥과이어는 어린 나이에도 꽤 남성적 인상의 배우로 손꼽히곤 했다. 그때와 지금, 당신은 어떻게 달라졌나? 모든 수식어는 서서히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엔 모든 게 삽시간에 달라진다.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나 역시 한 가지 이미지를 고수하려 하지 않는다. 변화는 좋은 거니까.
- 에디터
- ESMA ANNEMON DIL
- 포토그래퍼
- TOM MUN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