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비범한 소설처럼, 룩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는 이런 신발.
캐시미어 코트를 새로 사고 때마침 멋진 코듀로이 팬츠도 한 벌 구했건만 어쩐지 최근의 룩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신발을 의심해야 한다. 단지 그걸 신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할 게 분명한 무겁고 투박한 겨울 부츠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매일 밤, 눈보라를 뚫고 적진을 기습해야 하는 상황인가? 밤 골목에서 누군가에게 돌려차기 한 방을 날릴 계획이 있나? 그게 아니라면 이제 공룡 같은 부츠는 필요 없다. 신발이 그렇게까지 용감무쌍해 보일 필요가 있을까? 대신에 모처럼 눈에 들어오는 이런 신발이 있다. 귀엽기가 털이 곱슬하고 눈이 좀 슬픈 강아지 못지않다. 발목 길이는 앵클부츠치고는 약간 애매한 데 그게 오히려 괜찮다. 팬츠 밑단이 주글주글해지지 않고 신경 써서 신은 양말도 잘 보인다. 또, 신고 벗기 아주 편한 데다 버클이니 지퍼니 거추장스러운 장식도 없다. 얼른 신고 이리저리 걸어보면 양털 카펫을 밟는 듯 부드럽다. 이런 신발을 신으면 쿵쿵대는 발자국 소리 없이 어디든 나타나고 사라질 수 있다. 조용히 살고 싶을 때, 이만한 작전도 없다.
- 에디터
- 강지영
- 포토그래퍼
- 정우영
- 어시스턴트
- 김찬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