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맛, 서울의 카페를 생각하는 두 가지 키워드.
옥인동에 있는 노멀사이클코페는 간판도, 정해진 운영 시간도 없다. 그저 노멀사이클코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대외적인 활동이라곤 인스타그램을 통해 운영 시간을 알리는 게 전부다. 처음 방문한 손님은 좀 모호해진다. 여느 카페와 달리 약간 행동 제약을 받는 탓이다. 주인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을 것, 주인이 준비가 되었을 때 커피를 주문할 것, 큰 목소리로 떠들지 말 것. 처음부터 정한 규율이 아니다. 오랜 시간 손님들이 주인의 성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노멀사이클코페의 진가는 커피에 있다. 시커멓게 탄 가정용 통돌이 로스터로 직접 볶은 원두를 가장 마시기 좋을 시점에 제공하는 주인의 정성 때문이다. 주인은 이곳에서 농부처럼 부지런하게 커피를 볶고 내린다. 문을 연 지 4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다. “온전히 커피 한잔하러 오는 장소예요.”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마음도 한결같다. 이것이야말로 카페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카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소 또한 이곳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생기기까지는 변화가 필요했다. 서울의 카페가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선 건, 디자인 열풍과 궤를 같이한다. 2007년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서울의 인테리어 시장을 잠식했을 당시, 서울의 카페는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거친 날 것의 멋을 내기 시작했다. 카페 운영자들은 의도적으로 건물 천장과 벽면의 콘크리트를 노출했다. 대표적인 예로 홍대에 자리한 ‘aA 디자인 뮤지엄’을 들 수 있다. aA 디자인 뮤지엄에 가면 1800년대 영국 성공회 성당의 대리석 제단과 1850년대 프랑스에서 사용한 목재 대문, 같은 해 영국 템스 강에 서 있던 가로등, 1900년대 영국의 공장에서 사용한 창틀로 채워진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카페지만 특정 시대를 박제해 전시한 뮤지엄이기도 하다. 공간에 놓인 가구 또한 작품에 가까웠다. 톰 딕슨, 피에르 폴랭, 아르네 야콥센, 프리츠 한센 등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오리지널 가구를 아무렇지 않게 카페 테이블과 의자로 사용했다. 당시 aA 디자인 뮤지엄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가장 대중적인 공간인 카페를 통해 완벽하게 정의했다. 그 시대에 생긴 카페가 모두 화려했던 건 아니다. 창성동 mk2는 좀 더 얌전한 방식으로 20세기 디자인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디자이너의 가구를 알렸다. mk2의 가구 컬렉션은 독일 바우하우스 출신 디자이너의 가구가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mk2는 독일 특유의 냉정하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비례와 균형미를 느낄 수 있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품는 공간이 됐다.
두 카페의 등장 이후 서울의 카페는 디자인이 있는 공간이 됐다. 자연스레 카페를 찾는 이유에 멋과 취향이란 요소가 더해졌고, 지속해서 달라진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카페 또한 새로운 옷을 입었다. 이후 ‘시크하다’, ‘쿨하다’라는 용어로 귀결되는 새로운 현장은 카페를 통해서 선보였다. 카페 운영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공간에 담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파상적으로 좇던 소비자는 카페의 새로운 시도에 반응했다. 아쉬운 건 당시에 마신 커피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카페에 가기 위해 늘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잡은 일이 떠오른다면 조금 우스워 보일까? 그땐 그랬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향한 게 아니라, 지금 서울의 음악이, 지금 서울의 디자인이, 지금 서울의 패션이 궁금해 카페로 향했다. 혹자는 서울의 카페에 대해 ‘컨템포러리(동시대의)’함과 동시에 ‘템포러리(일시적인)’하다고 정의했다. 맞는 말이다. 서울의 카페는 동시대의 최전선에 있는 문화가 활개 치는 공간이자, 가장 트렌디한 젊은이들이 문화를 누리는 쉼터로서 역할을 한다.
한데 여기엔 오류가 있다. ‘템포러리’하다는 걸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에선, 이내 모든 것이 촌스러워지는 법이다. 특히 시각적 자극이 큰 공간이라면 더 그렇다. 서울의 속도는 사람의 마음도 조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2010년으로 접어들면서 서울의 카페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공간에서 맛으로의 전환이다. 좋은 곳에 갔으니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건 당연한 순리다. 때마침 커피 신에 ‘스페셜티 커피’가 주요한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이후 급격하게 서울의 모든 카페에선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커피 리브레’가 시동을 걸었고, 이후 ‘프츠커피컴퍼니’와 ‘펠트’ 등 직접 커피 농가를 찾아 양질의 원두를 수입하는 카페가 등장했다.
“어느 카페에 갈래?”란 질문은 “어느 카페의 커피가 맛있니?”로 대체됐고, 카페들은 완벽한 커피 맛을 내기 위해 손님이 사용할 테이블을 줄이고, 하이앤드 커피 머신과 커피 바를 설치했다. 커피 바의 특이점은 커피의 양과 물의 온도, 핸드 드립할 때의 물 떨어지는 속도 등을 잴 수 있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스페셜티 커피가 도입되면서 커피를 만드는 데 레시피가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이를 위해 하이앤드 커피 머신과 정확한 레시피를 지킬 수 있는 장비에 좀 더 큰 투자를 하는 것이죠.” 스페셜티 커피의 선두주자인 프츠커피컴퍼니의 공동대표인 김병기 바리스타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페셜티 커피의 목적은 철저하게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에 있다. 뭐든 휘황찬란한 시대에 담백함만을 남기고, 커피 자체로 승부를 거는 셈이다.
물론 맛에도 트렌드가 있고, 서울의 카페는 여전히 트렌드를 따른다. 느닷없이 카페에 ‘롱 블랙’, ‘플랫 화이트’ 등의 낯선 메뉴가 생겼음에도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반감 없이 받아들이는 식이다. 롱 블랙과 플랫 화이트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짐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들 마시니 나도 한잔 마신다는 풍토는 여전하다. 커피의 맛에 대해 말하는 애호가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약배전의 산미가 강한 맛만이 올바른 커피 맛이라 여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서울에선 강배전으로 볶아 내린 묵직하고 강렬한 맛의 커피를 마셨단 걸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억지로 맛을 강요하는 카페 또한 생겼다. 바리스타가 자신의 기호에 맞는 맛을 권할 수는 있다. 한데 그 맛이 옳다고 말하는 건 도대체 어디에서 온 태도일까?
서울의 카페는 여전히 순황 중이다. 공간을 앞세운 곳도, 맛을 앞세운 곳도 흐트러짐 없이 발전해오고 있다. 거짓 정보도 판을 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서울의 카페에 긍정의 평가를 하고 있다. 문화의 중심에 선 카페와 커피, 좋고 나쁨을 떠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커피 문화가 주목받는 건 좋은 일이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솔직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10년이란 짧은 시간에 서울엔 전 세계에서 한 번쯤 시도할 만한 카페의 형태가 모두 공존하고 있다. 다양한 카페가 많다는 건, 결국 그만큼 커피에 관한 관심이 많다는 반증이다. 이런 관심은 아예 전통적인 맛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스페셜티 커피의 맛에 길든 탓에 새로운 커피 맛을 느끼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올드스쿨이’란 이름으로 ‘학림다방’과 ‘보해미안’ 같은 오래된 카페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서울엔 정말 많은 카페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커피가 아닌 공간에 집중하는 곳이 더 많습니다. 어떤 과시욕, 으레 무게를 잡는 형식으로 카페가 운영되고 있지요. 그런 관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커피의 맛을 찾기 위해 공방을 닮은 카페를 열었습니다.” 4년 전 노멀사이클코페의 주인이 건넨 말이다. 좋은 카페에 대한 정답은 없다. 오늘도, 내일도, 인스타그램엔 여전히 아름다운 카페가 올라오고, 트렌드라는 명목 아래 새로운 메뉴가 소비될 게 뻔하다. 그래도 서울의 카페가 전진하고 있다는 데 의심도 없다. 10년 동안 일종의 안티 테제로서 새로운 대안이 꾸준히 생겨났기 때문이다. 서울의 급속한 변화는 이럴 땐 긍정의 이미지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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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 피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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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서재우(매거진 'B'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