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에 그림이 그려진 시계들이 있다. 어떤 건 에나멜링 기법으로 그렸다고 하고, 어떤 건 미니어처 페인팅, 어떤 건 포셀린이라고 한다. 이게 다 뭘까?
에나멜링 에나멜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비닐 같은 질감이 나는 가짜 가죽도 에나멜로 칭하고, 광택이 나는 유성 페인트도 에나멜 페인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짜 에나멜은 고급 시계 브랜드에서 다이얼을 채색할 때 쓰는 유리질의 유약을 말한다. 앞에 것들은 에나멜처럼 깊은 광택을 낸다고 에나멜로 부르는 것일 뿐. 에나멜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꾼다면 ‘법랑’이다. 어머니들이 주방에서 쓰는 냄비 중에 표면에서 유리 질감이 나는 바로 그 소재 말이다. 1000℃ 근처 온도에서 녹으며, 금속 표면에 얹어 구우면 변색이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금속의 내구성도 높인다. 사실 시계 업계에서도 진정한 에나멜이 아닌, 비슷한 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진짜 에나멜은 ‘그랑 푀’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에나멜링: 클로아조네(Cloisonné) 클로아조네라는 에나멜링 기법은 가느다란 골드 와이어로 칸막이를 용접해 만든 뒤, 틀 안에 에나멜 안료를 넣어 800℃ 정도의 온도에서 굽는 것을 말한다. 보통 여러 번 반복하면서 두께를 만들기에 작업이 끝나면 불필요한 부분을 다듬어 마무리한다.
에나멜링: 샹르베(Champlevé) 금속 표면을 조각하며 윤곽선을 남긴 뒤, 그 안에 에나멜을 채워 구워내는 기법이다. 클로아조네와는 음각과 양각 정도의 차이다. 일반적으로 샹르베 기법으로 완성하는 것이 윤곽선이 더 뚜렷하다.
에나멜링: 플리크아주르(Plique-à-jour) ‘플리크 에나멜’이라는 반투명 소재를 스켈레톤 틀 안에 채워 굽는 방식이다. 완성하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여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12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유행했다.
미니어처 페인팅 시계는 작다. 그래서 시계에 그림을 그리면 작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미니어처 페인팅이라 부른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미니어처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아니다. 미니어처 페인팅은 미니엄(minium)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미니엄은 연단이라는 납의 붉은 산화 물질, 즉 산화 납을 원료로 한 안료로 그리는 모든 페인팅을 말한다. 때문에 크기가 커도 미니엄을 원료로 쓴다면 미니어처 페인팅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변색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시계 페인팅의 원료로 쓰이며, 가느다란 선을 묘사하기에 어려운 에나멜링과 달리 더욱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다.
포셀린 말 그대로 도자기 소재다. 언뜻 에나멜과 비슷해 보이지만, 에나멜은 유리질이고 포셀린은 세라믹 계열이다. (유리질인 코렐의 접시가 도자기 접시와 다른 질감을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포셀린 다이얼은 자기토를 다이얼에 칠해 1200℃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낸 후, 유약을 칠해 마감한다. 파손의 위험이 크고, 구워내는 온도가 너무 높아 다이얼에 변형이 오기도 쉽다. 이렇게 높은 제작 난이도 때문에 좀처럼 시도하는 브랜드가 없다.
- 에디터
- 김창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