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지만 탐할 수 없는 차. 브랜드에서 수입하지 않는 모델이거나, 아예 브랜드가 여기에 발을 들이지 않았거나. 물론 병행수입으로 살 수는 있다지만 비교적 높은 가격과 A/S 문제를 생각하면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으니, 이참에 갖고 싶다고 속으로라도 외쳐보는 10대의 차.
MERCEDES-AMG GT R
누군가에게 드림카를 뽑으라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GT다. 롱노즈 쇼트데크(보닛이 긴 반면 트렁크는 짧은 형태) 타입의 고전적인 스포츠카 디자인에 더한 AMG 엔진의 성난 소리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더 진보한 AMG GT가 있다. 가슴 뛰는 AMG에 고성능을 상징하는 GT, 그리고 R까지 붙은 AMG GT R이다.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독일의 서킷 뉘르부르크링을 약 7분 10초 만에 통과해 ‘녹색 괴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AMG GT보다 123마력 높은 85마력의 최고출력으로 뉘르부르크링을 헤집고 얻은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서 수입할 계획이 없다니, 안타깝지만 꿈에서나 타볼 수 있는 진짜 드림카가 되어버렸다.
DAIHATSU MOVE CANBUS
국내에서는 생소한 브랜드인 다이하쓰는 일본에서 경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토요타의 자회사다. 대표 모델로는 혼다 S660의 경쟁 모델인 ‘코펜’이 있지만, 오히려 눈이 가는 차는 무브-캔버스다. 지난해 9월 출시해 일본에서도 아직은 따끈따끈한 모델이다.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커다란 미니밴처럼 보이지만 0.6리터 엔진을 얹은 엄연한 경차다. 길이와 높이, 너비는 각각 3395×1475×165밀리미터로 레이보다도 작다. 1리터로 약 20킬로미터를 달리는 연비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 최소한의 크기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본차답게 곳곳에 똑똑한 수납공간이 가득하다. 특히 뒷좌석 시트 아래 있는 서랍은 굳이 트렁크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요긴하다. 여성 드라이버를 염두에 둔 모델이라지만 실용성과 경제성 앞에서 남녀 구분이 필요할까.
FORD F-150 RAPTOR
우리나라에도 픽업 트럭을 원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실용적이기도 하고, 픽업 트럭이 주는 고유한 멋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코란도 스포츠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 픽업 트럭의 천국인 미국으로 눈을 돌리면 선택지는 다양해진다. 그중 한 대를 고르라면 역시 포드 F-150 랩터가 으뜸이다. 프런트 그릴을 커다랗게 장식한 ‘FORD’ 네 글자는 “다시는 미국차를 무시하지 마라”라고 엄포를 놓는 듯하다. 몸을 한껏 부풀린 근육질의 외모답게 최고출력은 411마력, 최대토크는 60.0kg·m에 이른다. 짐차에 아메리칸 머슬카의 DNA를 불어넣은 격이다. 뻔한 남자 운전자보다는 활동적인 여성 운전자가 다룬다면 뜻밖에도 더 잘 어울릴 법한 모델이기도 하다.
HSV GTSR MALOO
조금 의외지만 호주에도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GM 가문의 일원인 홀덴HOLDEN이다. HSV는 홀덴의 고성능 버전에만 허락되는 이름이고, GTSR은 그중에서도 끝까지 간 버전이다. GTSR 말루는 실용성까지 욕심낸 픽업 트럭이다. 여느 픽업 트럭에 비해 차체가 낮은데, 세단을 바탕으로 만든 UTE 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소독차로 맹활약하던 포니 픽업 이후 기억에 남는 UTE가 있었던가. 그러니 세단과 SUV가 점령한 도로에 ‘종의 다양성’을 불어넣을 존재로도 손색없다. 성능 또한 결코 따분하지 않다. 최고출력 587마력, 최대토크 73.5kg·m으로 한달음에 치고 나가는 조금 괴짜 같은 재미있는 차다.
HONDA S660
사진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혼다의 슈퍼카 NSX다. 하지만 S660은 높이와 폭이 각각 1475밀리미터, 1180밀리미터에 지나지 않는 미니카 중의 미니카다. 배기량은 모델명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660cc(정확히는 658cc)로 기아차의 모닝(998cc)보다도 낮다. 그냥 작기만 한 차였다면 이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터, 덩치만 보고 무시하기엔 곳곳에 스포츠카의 날선 DNA를 숨겨두었다. 최고출력은 64마력에 불과하지만 830킬로그램의 가벼운 몸무게가 경쾌한 움직임을 보장한다. 미드십 엔진에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도 스포츠카와 닮았다. 차가 작아 헤드룸이 걱정이라면 루프를 개방하면 된다. 컨버터블이라 공간이 무한대로 늘어난다. 현재 일본에서는 약 200만 엔에 판매 중이다. 혼다에서 저렴한 가격에 국내로 들여온다면 어코드를 뛰어넘는 효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일단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옮겨 달아야 한다.
CHEVROLET CORVETTE GRAND SPORT
2012년부터 2년 동안, 한국GM은 짧게나마 6세대 콜벳을 판매했다. 더는 수입하지 않지만 콜벳은 수많은 자동차 팬이 기다리고 있는 ‘명’ 스포츠카다. 1953년에 태어나 현재 7세대에 이르는 유서 깊은 모델인데, 콜벳 그랜드 스포츠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그랜드 스포츠라는 이름을 단 네 번째 모델로, 도로보다 트랙이 잘 어울리는 콜벳 중의 콜벳이다. 6.2리터 V8 엔진이 최고출력 460마력, 최대토크 64.3kg·m를 쏟아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3.6초. 우락부락한 디자인만큼이나 거친 성능을 자랑하는 이 문제적 자동차를 다시 만날 날은 언제일까.
DODGE CHARGER SRT HELLCAT
지난해 쉐보레가 신형 카마로 SS를 들여오면서 아메리칸 머슬카의 왕좌를 건 승부가 다시 시작됐다. 상대는 포드의 머스탱. 경쟁은 역시 삼자대결이 재미있는 법. 닷지 차저라면 둘 사이에 끼어들 자격이 충분하다. 특히 가장 고성능 버전인 SRT 헬켓은 6.2리터 V8 엔진이 최고출력 707마력, 최대토크 89.8kg·m의 폭발적인 힘으로 두 경쟁자를 압도한다. 닷지 차저의 역사는 1964년에 시작됐다. 그때도 포드 머스탱을 잡겠다며 등장했는데, 이름도 ‘야생마’ 머스탱을 의식한 듯 ‘군마’라는 뜻을 지닌 ‘차저Charger’로 지었다. 미국에서는 머슬카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미 닷지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뒤라 출시를 기다릴 수 없는 아쉬운 차다.
ALFA ROMEO GIULIA QUADRIFOGLIO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역사는 알파로메오가 한 수 위다. 더욱이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가 알파로메오의 레이서 출신이다. 알파로메오가 국내에서 사업을 펼친다는 이야기는 주기적으로 나돌지만, 언제나 소문만 무성한 상태. 그래도 혹시 도전장을 내민다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차가 있으니, 바로 줄리아 콰드리폴리오다. 이탈리아어로 ‘네잎 클로버’라는 의미의 콰드로폴리오는 알파로메오의 고성능 모델을 뜻한다. 알파로메오 특유의 역삼각형 프런트 그릴 덕분에 귀여운 얼굴이지만, 최고출력은 503마력, 최대토크는 61.0kg·m에 이르는 뚝심 있는 세단이다. 게다가 최고속도는 시속 307킬로미터에 이르러 이탈리아에서는 경찰차로 사용할 정도다.
SUBARU WRX STI
호기롭게 국내 시장에 진입했다가 2012년 쓸쓸히 퇴장한 스바루.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홀대받았지만 해외에서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브랜드다. 스바루의 간판을 꼽으라면 역시 WRX. 원래는 임프레자 시리즈 중에서 스포츠 버전을 뜻하는 이름이었는데 2014년 별개의 모델로 분리했다. 특히 WRX STi는 과거 WRC 등의 모터스포츠를 주름잡던 고성능 튜닝카다. 올해 초에 공개한 최신형은 터보를 장착한 2.5리터 복서 엔진(수평대향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가 호흡을 맞추며 최고출력 305마력, 최대토크 40.1kg·m를 쏟아낸다. 스바루가 WRC를 떠나면서 힘이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차, 아직도 원하는 사람이 많은 명차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TESLA MODEL 3
지금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전기차다. 그 중심에는 역시 테슬라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별다른 홍보 없이 조용히 진입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현재 모델 S를 판매 중인데 1억이 훌쩍 넘는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인지, 정작 빨리 만나고픈 테슬라는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않아 ‘가질 수 없는 너’인 모델 3다. 5인승 준중형 세단으로 한번 완충하면 346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토너. 성격도 급해 시속 100킬로미터를 돌파하는 데 6초도 걸리지 않는다. 보급형 전기차를 콘셉트로 만들었지만 성능은 보급형이 아닌 셈이다. 여기에 획기적인 수준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더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테슬라는 3만5천 달러부터 시작하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차를 널리 보급하겠다고 했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모델 3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무게중심을 옮긴 역사적인 모델로 기록될 것이다.
- 에디터
- 글 / 이재현 ('모터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