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스타 같은 박제된 말이 아니다. 권상우를 권상우답게 만드는 것은 팔 할이 활기다.
정우성과 짝을 이루는 이름이 이정재라면, 권상우는 송승헌과 짝을 이룬다. 둘씩 함께 찍은 (청춘) 영화가 있어서기도 하지만, 미남과 스타와 배우라는 삼각 고리를 두고 (게다가 한류까지) 한국에서 90년대와 21세기를 횡단하는 이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맥락에 대한 해묵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배우인가, 스타인가. 비교하자면 몇 살쯤 나이가 위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강화하며 둘 사이에 단단한 균형을 찾았다고 본다. 그들의 얼굴과 연기와 분위기 모두 배우로서, 스타로서 자연스럽게 숙성되었으니까. 그러니 차례라면 이제 송승헌과 권상우의 차례인데, 두 사람이 나란히 요즘 화제인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송승헌은 <사임당 빛의 일기>, 권상우는 <추리의 여왕>에 나온다.
그런데 배우로서든 스타로서든 권상우의 매력을 한마디로 줄이면 부족함이 아닐까 싶다. 되돌려보건대 그는 한 번도 완결된, 완성된, 완벽한, 완전한 뭔가를 보여준 적이 없다. 필시 그는 뭔가 부족한 매력을 지닌 게 아닐까. 어떤 미성숙, 심지어 종종 우스갯거리로 다루는 그의 목소리나 발음 역시 그런 부족한 매력의 갈래로 보인다. 방점은 매력에 찍힌다. 아무리 그의 발음이 부족하다 한들, 그게 언제 연기력 논란 따위로 이어진 적이 있던가? 아울러 그가 발끈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 적이 있던가? 대중은 이미 그의 매력을 간파하고 있으며, 그 역시 강박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풋풋하다. 밝다. 활기가 있다. 굳이 대조를 두자면 송승헌에겐 우수가 있다. 좀 어둡기도 하다. 짝을 이루는 이름이지만 권상우와 송승헌은 퍽 다르다.
<추리의 여왕> 첫 회,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2년여의 공백을 둔 권상우의 첫 번째 과제는 건재함을 알리는 것일 터, 첫 회가 끝나기 전에 그가 상의를 벗을 거라는 기대는 확신에 가깝다. 권상우의 건재를 표현할 아이템으로 그보다 간결한 것도 없으니, 이윽고 그가 셔츠를 벗는다. 스치는 장면이지만 몸이 나쁘지 않다. 그러니 됐나? 얼굴엔 약간 변화가 있다. 피곤할 때 생기는 쌍꺼풀이 전보다 짙다.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추리의 여왕>의 권상우는 점점 권상우다워지고 있다. ‘저게 권상우지’ 싶어서 미소가 생기는 장면이 잇달아 나온다. 투덜거리거나, 짜증을 피우거나, 귀찮아하고, 집중하지 않고, 그러면서 어떤 순결함을 담보하는 표정들. 하지만 예능감 같은 말과는 거리를 둔다. 권상우는 여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스운 얘기를 늘어놓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오히려 그는 부끄러워할 테니까. 그는 웃기는 배우가 아닌 채, 보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배우다. 이유인즉 그에게 아직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가 있다면 바로 ‘연륜’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륜’을 거부한 채 성숙한다. 청춘은 이미 박제된 말,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배우로서 다만 자연스런 활기를 보여준다. 그것은 비슷비슷한 또래 배우들이 “이제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든가, “중년 남성의 깊은 매력을 어필하고 싶다”든가 하는 포부를 드러내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람이 변하나? 그는 내내 부족하여 풋풋하다. 갑자기 뭘 좀 안다는 듯 멋있는 척하지 않는다. 권상우는 늘 권상우다. 그 믿음엔 참으로 활기가 있다.
- 에디터
- 장우철
- 일러스트레이터
- 이승훈